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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충성스러운 일꾼의 삶 (롬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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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스러운 일꾼의 삶 (롬 12:1-8)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 보여 주는 말 가운데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딤전 4:6 참조) 참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먼저 우리의 소속이 아주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우리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일꾼은 주인이 맡긴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일을 하지만 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아무렇게나 하면 결코 아니 됩니다. 좋은 일꾼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입니다. 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충성스럽다는 단어의 뜻을 ‘임금이나 국가에 대하여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 있다.’고 풀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가 뭐래도 그리스도 예수의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먼저 믿음의 도리, 즉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사실을 밝힌 후 이제 그 믿음을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인이 일꾼에게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주인을 정성껏 섬기는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정성껏 섬길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아울러 우리가 주님의 뜻을 받들어서 이웃을 섬기되 특히 연약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길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하나님과 이웃을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하나님의 뜻은 선하심, 기뻐하심, 온전하심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세 가지 요소는 어그러진 이 세대를 변화시키는 일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라고 하면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그렇습니다! 선한 목자가 생각납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여기서 선하다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선한 목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에게 있어서 착한 양심은 필수적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권면하지 않았습니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주님도 제자들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지시하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아울러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에 기뻐하셨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지으실 때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신 후 심히 기뻐하셨다고 성경이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을 것 같으면 그 무엇보다 기뻐하신다고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다시 말해서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는 사도 바울의 말은 상당히 어려운 요구 같지 않습니까? 우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주님이 우리의 형편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형편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때문에 주님이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온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는 온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온전하신 하나님의 성령에 사로잡힐 것 같으면 우리도 또한 온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충성스러운 일꾼들에게 이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았으면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볼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충성스러운 일꾼은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평가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이 있고 또 단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다만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겸손은 자신의 장점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 정직한 것이다.” 아마 그래서 겸손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충성스러운 일꾼들에게 받은 바 하나님의 은사를 잘 활용할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는 각각 다르게 마련입니다. 은사는 각 사람에게 주시는 독특한 기능과 역할을 가리키는 것 아닙니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은사를 가지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일곱 가지 대표적인 은사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은사는 과연 어떤 것입니까? 각자 자기가 받은 은사가 어떤 것이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먼저 예언의 은사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은사가 바로 예언의 은사입니다. 단순히 언어 구사 능력이 좋다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예언의 은사입니다. 때문에 믿음의 분수대로라고 단서를 붙인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섬기는 은사가 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복음을 전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누구나 날마다의 삶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 줄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가르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복음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가 가르치는 일을 쉽다고 합니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가르치는 일입니다. 때문에 가르치는 것을 하나님의 은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위로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위에는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도 고난을 당하는 이웃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웃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서 그 첫 단계는 우리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위로로 그들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만약 때를 놓칠 것 같으면 그들이 낙심하여 삶을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제하는 은사가 있습니다. 사실 돈이 많아서 구제하고 가난해서 구제하지 못하는 것 아닙니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이웃을 성실한 마음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구제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구제도 하나님의 은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결코 구제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다스리는 것도 은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가 다스린다고 말한 것은 교회 안에서 다스리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것은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의 지체들의 형편과 처지를 부지런히 살피는 것이 바로 잘 다스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끝으로 긍휼을 베푸는 은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경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막힌 담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기꺼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은사들을 충성스러운 일꾼들이 잘 활용할 때 교회는 교회다운 모습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은 충성스러운 주님의 일꾼들 때문에 살맛 나는 세상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과연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또한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받은 바 은사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어떤 은사를 받았든지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맡은 바 일에 충성을 다해야 마땅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삶 전부를 거룩한 산 제물로 주님께 드림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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