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화해 : 세계 감리교 대회에 다녀오다 (사 11:6-9)

첨부 1


화해 : 세계 감리교 대회에 다녀오다 (사 11:6-9)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저는 지난 8월 1일(월)부터 12일(금)까지 South Africa, 즉 남아공에서 열린 제 20차 세계감리교대회에 다녀왔습니다. “World Methodist Council”(WMC), 즉 “세계감리교협의회”는 존 웨슬리의 정신을 이어받은 Wesleyans들과 Methodists들이 한데 모여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을 꾀하기 위해 결성된 기구입니다. 

1881년 런던에서 “Ecumenical Methodist Conference”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립된 이래 지금까지 20회에 걸쳐 세계총회를 열어왔습니다. 1951년까지는 10년에 한 번씩 개최해오다가 그 이후에는 5년에 한 번씩 대회를 열어오고 있습니다. 5년 전에는 아시아에서 싱가포르 다음 두 번째로 우리나라에서 개최가 되었지요. WMC는 현재 전 세계 132개국, 76개 회원교단의 웨슬리의 감리교 정신을 따르는 약 7천 5백만의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번 20차 대회는 지난번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남아공의 Durban에 있는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ICC), 즉 더반 국제회의장에서 열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ICC에는 아직도 평창 올림픽 유치의 감동이 가시지 않고 그대로 살아있는 듯해서 남달리 뿌듯했습니다. 남아공은 우리나라에서 가려면 비행기를 타는 데에만 꼬박 20시간이 걸리는 먼 나라였는데 계절이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였습니다. 남아공의 겨울철은 5월-8월 사이이고, 여름철은 11월-2월 사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겨울철에 남아공을 방문한 셈인데 아프리카의 최남단에 위치한 나라여서 그런지 아침저녁으로만 약간 쌀쌀할 뿐 낮에는 반팔 옷을 입어도 괜찮을 정도로 따뜻했습니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님들과 평신도 지도자들 총 17명이 참석했습니다. 8월 1일(월)부터 8일(월)까지 꼬박 8일 동안 매일 아침 8시 30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각종 회의와 다채로운 행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WMC 대표로 처음 참석하는 회의였기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는데 무엇보다도 그동안 헤어져 있었던 외국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와 함께 SMU에서 공부했던 나이지리아에서 온 친구 Sunday는 금년에 47세인데 5년 전 42세의 나이에 감독으로 선출되어 교계의 큰 지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부목사로서 네브래스카에서 섬겼던 담임목사님 내외분도 미국 대표로 오셨는데 다시 만나서 너무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 영어가 짧은 한국 대표들을 위해서 통역봉사도 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한국 감리교회는 WMC에서 이제 미국의 UMC, 즉 연합감리교회 다음으로 큰 교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한국 감리교회를 세계에서 인정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걸맞은 큰 기대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습니다.

이번 WMC 국제대회의 주제는 “Healing”, 즉 “치유”였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Jesus Christ: for the Healing of the Nations”, 즉 “열방의 치유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래서 각종 기조연설과 설교, 워크숍 세미나 등이 개인과 공동체의 치유, 국가와 민족 간의 치유 등등, 모두 이 치유와 화해라는 주제에 집중했습니다. 

저는 특히 대회 첫날 기조강연 연사로 나선 남부 아프리카 감리교회의 므부베 단달라(Mvume Dandala) 감독의 연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단달라는 포효하는 사자와 같이 아프리카의 저항 정신을 그대로 일깨워준 예언자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 대륙으로 들어와 아프리카 흑인들의 전통 언어와 문화, 역사, 종교, 토지를 차례로 빼았었던 뼈아픈 역사를 되새겼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서구 제국주의의 아프리카 침탈의 배후에는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단달라 감독은 남아공의 흑인 지도자로서 1984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주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백인 선교사들이 처음 아프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땅밖에 없었지요. 그들이 기도할 때 ‘기도합시다’라는 말을 하기에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난 뒤 눈을 떠보니 우리 손에는 성경이 들려 있었고, 선교사들이 우리 땅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제국주의를 등에 업고 아프리카 땅에 들어간 선교사들이 성경을 전해주고 기도를 가르쳐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아프리카의 땅까지 차지해버리고 말았다는 풍자이지요.

저는 단달라의 연설을 들으면서 즉각 남아공의 “Apartheid” 정책, 즉 “인종분리” 정책을 떠올렸습니다. 사실 이번 20차 WMC의 주제가 “치유와 화해”인데 이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남아공보다 더 좋은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아프리카 대륙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가 남아공에 처음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하면 가난하고 전쟁이 그칠 날이 없고, 가뭄과 식량난에 허덕이는 흑인들의 나라만 생각했는데 남아공은 전혀 달랐습니다. 

누구 말대로 남아공은 아프리카 안에 있는 유럽 나라였습니다. 마치 독일이나 영국에 와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된 곳이었습니다. 그만큼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고 “남아공 안에 세계가 모두 들어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를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남아공의 이렇게 화려한 무대 배경에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인종차별 정책이 숨겨져 있습니다. 

남아공에는 17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백인들이 집단적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코이산족과 반투족 등 흑인 부족들이 조상대대로 터 잡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민을 오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주로 농사와 목축에 종사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어로 “농부”를 뜻하는 “Boer”로 불렀습니다. 현재 남아공의 인구는 4천 8백만 정도 되는데 그중에 백인이 4백 50만입니다. 이 백인 인구의 약 60%에 해당되는 250여만 명이 바로 이 네덜란드계의 보어인들인데 이들을 “Afrikaners”로 부릅니다. 그러다가 19세기 초부터 영국계 이민자들이 남아공에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이와 같이 남아공의 백인들은 크게 네덜란드계와 영국계로 나누어집니다. 

문제는 이들 네덜란드계 후손인 보어인들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 정책을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아예 헌법에 명기해 실정법으로 운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아프리칸스어로 “(인종의) 격리”라는 뜻입니다. 남아공에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백인과 비(非)백인을 얼굴색, 즉 인종에 따라 분리시킨다는 차별 정책이지요. 바로 이런 아파르트헤이트 정책 때문에 흑인은 백인과 결혼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같은 건물을 올라가는 데에도 백인 전용계단과 흑인전용 계단이 있을 정도로 주거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공공시설과 직업에 이르기까지 차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이념적 근거가 바로 기독교였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합니다. 남아공의 백인들은 흑인들보다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확신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러한 확신을 성경에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특정 성서구절, 예컨대 신명기 32장 8절과 사도행전 17장 26절 등을 근거로 해서, 또한 칼뱅의 예정론에 영향을 받아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분리하고 지배할 권리와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아주 교묘하게 세뇌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1959년 남아공의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모든 민족과 인종이 분리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공식적인 선언을 한 적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단달라 감독은 아프리카의 식민화 역사에 있어서 기독교가 알고 모르고 자행했던 잘못을 회개하고 자성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지요. 

이번 남아공 여행 중 우리는 남아공에서 가장 큰 삼대 도시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요하네스버그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서 오고 가면서 잠깐 공항에만 들렸고, 주로 세 번째로 큰 더반에서 8일 동안 세계 감리교 대회를 했고, 두 번째 도시인 케이프 타운에서는 이틀을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케이프 타운에서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참 아쉬운 것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수감되었던 로빈 아일랜드(Robben Island)를 가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델라는 본래 변호사였는데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을 벌이다가 바로 이 로빈 섬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서 총 27년간의 투옥 생활 가운데 18년을 이 섬에서 강제노역을 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케이프 타운의 상징인 “Table Mountain”, 마치 칼로 반듯하게 자른 것처럼 평평하게 보인다고 해서 “식탁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산꼭대기 위에서 로빈 아일랜드를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만델라의 흑인차별 철폐 운동이 마침내 성공해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었고 1994년 만델라가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만델라는 또 다른 백인 대통령 데 클럭(de Klerk)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었지요.

이와 같이 열방의 치유와 화해를 말할 때 남아공보다 더 상징적인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대회 내내 자연스레 우리 남한과 북한 사이의 민족 간의 치유와 화해를 생각했습니다. 아마 남아공 못지않게 민족 간에 치유와 화해가 필요한 곳이 우리 한반도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남북한의 관계는 해가 갈수록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치유와 화해의 목소리보다는 증오의 목소리가 더 높기 때문입니다. 

남아공에서의 마지막 체류 이틀을 우리는 남단에 있는 세계적인 휴양도시 케이프 타운에서 가졌습니다. 케이프 타운은 제가 다녀본 외국 도시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땅이다 보니 아파르트헤이트의 슬픈 역사가 가장 진하게 남아있는 도시가 또한 케이프 타운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맑고 푸른 청량 해역 케이프 타운 주변의 바다에는 아름다운 펭귄과 물개들이 서식하는 희귀 어종의 천국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케이프 타운을 품에 안고 있는 대서양 해안가의 풍광을 감상하며 아프리카 대륙의 땅끝 마을이요, 케이프 타운의 상징인 희망봉을 찾아 나섰습니다. 케이프 반도의 끝이자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을 영어로 “Cape of Good Hope”, 즉 “선한 희망의 봉우리”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면 “Cape”는 봉우리가 아니라 “곶” 혹은 “갑”, 즉 육지에서 바다로 삐죽 튀어나온 곳을 말하지요. 좌우지간 왜 이곳을 “희망봉”이라고 불렀을까요? 

대답은 그곳에 올라가보니 알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 앞쪽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에서 흘러오는 인도양과 서쪽에서 흘러오는 대서양이 만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전혀 서로 다른 해류인 인도양과 대서양이 정확히 이 지점에서 합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도양과 대서양이 서로 만나는 바로 그 곳에 선한 희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인도양은 흑인을, 대서양은 백인을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요? 혹시 인도양은 동양을, 대서양은 서양을 상징하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동과 서, 흑인과 백인, 차별 당하는 자와 차별하는 자가 만나서 하나가 되는 곳, 바로 거기에 희망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면 모든 차별과 구별이 사라집니다. 그냥 똑같은 바닷물로 용해가 되고 말지요.

저는 이번 세계 감리교 대회에서 또 한 분의 강연들 듣고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세계의 화약고요 유대인들에 의한 아랍인들의 차별이 가장 심한 곳 이스라엘의 갈릴리 지역 하이파(Haifa) 희랍 정교회의 대주교 엘리아스 샤쿠르(Elias Chacour)의 연설이었습니다. 저는 이 분의 연설을 통역실에서 직접 통역을 했기 때문에 비교적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천년 동안 아랍인들이 터 잡고 살아오던 곳에 유대인들이 쳐들어와 땅을 빼앗고 아랍인들을 학살했을 때 그들에 대한 증오심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지만 샤쿠르는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인 자신을 소개할 때 자기는 유대인도 아랍인도 가톨릭도 감리교인도 아닌 어린 아기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어린 아기, 그 아기에게는 그 어떤 이념과 종교도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도 없는, 그저 하나님의 형상만을 입은 순전한 인간 그 자체이지요. 그렇다면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갖가지 장벽과 갈등과 증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어린 아기, 그 어떤 편견도 없는 순진무구한 어린 아기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도 구유에 누운 어린 아기로 이 땅에 오셨지요. 그 예수님에게는 유대교인 기독교인 가톨릭교인 감리교인 그 어떤 종교적인 치장도 감투도 없는 순진무구한 아기,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진정한 인간이셨습니다. 이제 그런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모든 갈등이 사라졌고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증오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유대인은 우월하고 이방인은 열등하다는 민족과 인종에 근거한 경계선이 무너졌습니다. 강자와 약자, 부자와 빈자,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사이 등등, 계층 간 인종 간 남성과 여성 간의 모든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역시 치유와 화해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 용서와 화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치유받기 원하십니까? 먼저 참마음으로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화해하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유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할 때 오늘 우리가 읽은 이사야의 비전이 우리의 역사적 현실 속에서 그대로 실현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 다함께 이사야서 11장 6절로 9절에 있는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아멘. 


“미국에 사는 여러분이 친(親)이스라엘 성향이라면 팔레스타인의 자녀들을 대표해서 감히 부탁드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더 많은 우정을 선사하십시오. 그 분들에게는 여러분의 우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우정을 제 사랑하는 유대인 형제자매들이 홀로코스트나 아우슈비츠 등과 같은 곳에서 당했던 비극 때문에 그 유대인들에 의해 대신 고통을 당하는 저희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 대한 반감으로 쉽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편을 들 정도로 의식이 깨어있다면 참으로 복 받을 일이지요. 이번 한 번만큼은 옳은 편을 들 것이기에 우리 편을 들어주세요. 그렇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우리 편을 드는 것이 저의 유대인 형제자매들을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렇게 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따위의 우정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한 사람의 공동의 친구이지 하나님을 위하여 또 하나의 원수가 아닙니다.”(Archbishop Elias Chacour) 

“You who live in the United States, if you are pro-Israel, on behalf of the Palestinian children I call 
unto you: give further friendship to Israel. They need your friendship. But stop interpreting that 
friendship as an automatic antipathy against me, the Palestinian who is paying the bill for what 
others have done against my beloved Jewish brothers and sisters in the Holocaust and 
Auschwitz and elsewhere.

And if you have been enlightened enough to take the side of the Palestinians -- oh, bless your 
hearts -- take our sides, because for once you will be on the right side, right? But if taking our 
side would mean to become one-sided against my Jewish brothers and sisters, back up. We do 
not need such friendship. We need one more common friend. We do not need one more enemy, for 
God's sake.”
 
(김흥규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