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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에는 원이로되 (마 26:36-46) -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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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는 원이로되 (마 26:36-46)

1.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이 불과 몇 시간 남지 않은 때에, 기도하시고자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이곳은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자주 들른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으라.” 하시고 그들에게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이니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픔을 가슴에 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슬픔이 너무 심해서 거의 죽을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참혹한 고통이 실제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금까지 이같은 곤경에 처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의 고난에 참여할 수는 없다할지라도 인간적인 연민(憐愍)과 격려로써 자기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해서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자신의 속깊은 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시고 오직 홀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호소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며 안타까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26:42) 예수께서 다시 와서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곤이 몰려와 너무 졸려 눈을 뜰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같은 말씀으로 당부하시고, 다시 가서 세 번째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그들에게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26:45-46)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곧 가롯 유다를 앞장 세운 대적들에게 체포되어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을 목전에 두고 기도하신 것은 연약한 인간으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십자가 고통의 쓴 잔을 마시지 아니하고 그냥 지나갈 수 없는지 하나님 아버지께 탄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이니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십자가 고통도 감당키 어렵지만 자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제자들이 시험에 빠지게 될 것이 극히 염려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세 번의 기도 끝에 육신의 연약함을 극복하시고 하나님의 뜻, 곧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들이고 하산하시자 곧 체포되어 가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제자들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깨어 기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보다 아무리 육신이 연약했을지라도 예수께서 조금 후가 되면 체포되어 십자가의 고난 끝에 죽음을 당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도저히 잠에 떨어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고, 예수님 앞에 닥쳐온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이 깨어 기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그 결과 제자들은 뒤이어 닥쳐온 시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깨어 기도하지 못하여 제자들의 실패가 시작된 것입니다.


2.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에 가셔서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첫째 아담을 선악과 열매로 시험하여 시험에 빠지게 했던 마귀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의 행보를 막으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 첫 번째 받은 시험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40일 동안 전혀 주리셨다는 것은 그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먹는 것’이었다는 것을 마귀가 알고 그 가장 약한 부분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한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께서 40일 금식으로 인해 육체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던 때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아니하고 결정적인 유혹의 순간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나님 말씀, 신명기 8:3, “(신8:3)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는 말씀을 들어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이렇게 마귀는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알고 그것을 이용해 유혹하고 시험하여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해서 시험에 빠지게 되었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육신으로 마귀를 이겨내고 시험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귀는 영물이기 때문에 경험이나 지식,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겨내야만 합니다. 

성도가 시험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한 마디로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고,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기도했으면 하루쯤 쉬는 것도 괜찮지.” 이것은 착각입니다. “피곤하니 내일 기도하지 뭐.” 이것은 마귀의 전략입니다. 바로 기도의 게으름이 시험에 들게 합니다. 성도들을 패배하게 합니다.

성도의 마음이 황폐한 것은 기도의 부족에서 옵니다. 기도가 부족하면 믿음이 시들해집니다. 기도가 부족하기 시작하면 마귀가 드나들기 시작합니다. 기도가 부족하면 신앙의 열정이 식어가고 마귀는 더욱 힘을 얻고 기회를 노리게 됩니다. 기도가 부족하게 되면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귀는 기도가 없는 성도의 텅 빈 집을 좋아합니다. 거기에 묵기를 좋아합니다. 자기 집처럼 친구들까지 초대합니다. 누가복음11:24-26입니다.

(눅11:24-26)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 닥칠 위험에 대해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죽음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임박한데도 육신이 연약한 가운데 깨어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의 부족으로 무감각해진 성도는 자신에게 닥칠 위험에 대해 결코 경고를 받지 못합니다. 경고를 들어도 무시합니다. 영적인 무감각은 바로 기도의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기도는 호흡과도 같은 것인데, 그 기도가 부족하다면 스스로 호흡하지 못해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식물인간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겨내기 위해 ‘깨어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제부터 기도해야지’ 하면서도 쉽게 잊어버리고 기도하지 못합니다. ‘이제 성경을 읽어야지’ 하면서 쉽게 성경을 손에 들지 못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영적(靈的) 식물인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오셨는데 제자들이 사람들과 논쟁하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 물으시자 무리 중 한 사람이 ‘선생님, 내 아들이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렸습니다. 귀신이 그 아이를 사로잡으면, 장소를 불문하고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그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제자들이 내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다.’ 라며 정황을 말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에게 참아야 하겠느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 속에 있는 귀신을 향해 “(막9:25)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고 명하시자 귀신이 쫓겨나고 아이는 깨끗하게 치유되어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제자들이 ‘왜 우리는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까?’ 고 예수께서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막9:29)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마귀의 시험을 스스로 이겨낼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육신으로 마귀를 이겨내려고 하지 말고 기도를 통해 예수님처럼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연약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시험에 들려하는 것을 깨닫고 알면서도 그 시험을 이겨내기 위해 기도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나 환경부터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조목조목 사람에게 따지기부터 하는 것입니다. 결코 그렇게 해서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가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기도밖에는 없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예수께서 처방하여 주신 것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으면 예수 믿을지라도 능력이 없는 무능한 성도로 주저앉게 되고 맙니다.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마6: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시험받으신 것처럼 예수 믿을지라도 죽을 때까지 시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께서 최후의 성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6:31-35)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이 말씀에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며 절대로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하지 않겠노라고 장담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며 사생결단하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나머지 모든 제자도 베드로의 각오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보기좋게 새벽 닭이 울기 전 세 번 예수 그리스도를 전혀 모른다며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특히 베드로를 지목하셔서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노라 호언장담했지만 베드로는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깨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게을리 하거나 쉬게 되면, 그 어떤 성도라도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가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배신하게 될 것을 미리 아시고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이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고 베드로는 ‘(눅22:33)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며 장담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베드로 마음의 진실이었습니다. 진정한 고백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이 온다할지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아니야. 사탄이 너희를 청구하였으니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면 너희가 사탄에게 까불리어 나를 부인하게 될 것이라. 몇 번씩이고 부인하게 될 것이라.”(눅22:34)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탄이 알곡과 가라지를 가려내려 체질하듯이 청구했다.’는 말씀은 베드로의 배신의 행위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악령의 힘에 의해 이끌리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과연 그날 밤 그 고백 후에 있었던 베드로의 행동은 예수님을 철저히 버렸습니다. 그리고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아주 확실하게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울 때에 비로소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탄에게 까불리어 스승을 배신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이처럼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철저하게 예수님을 배신하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시험에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귀가 이미 베드로를 포함한 그 제자들을 밀 까부르듯 하기 위하여 청구한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마귀의 집요한 노력과 마귀의 재주에 별 수 없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사실도 예수께서 보신 것입니다. 베드로 마음속에 물론 주님을 버리지 아니하고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는 진심이 있었지만 베드로가 갖고 있는 능력은 마귀가 공격하는 능력에 비하여 심히 약한 것을 보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처럼 마음에 원한 것과는 다르게 참으로 주님을 서운하게 해 드릴 수밖에 없었던 이 같은 죄스러운 행동은 어떻게 해서 나왔겠습니까? 깨어 기도하지 않아서 시험에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베드로를 청구하여 밀 까부르듯 했고, 기어이 그는 마귀의 시험에 빠지고 말았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가 여러분을 밀 까부르듯 덤벼들어 시험하게 됩니다. 


4. 베드로가 시험에 빠져 예수 그리스도를 배신했지만, 그래서 뒤늦게 깨닫고 심히 통곡했지만 믿음에서는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믿음이 좋아서 입니까? 예수께서 베드로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해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누가복음22:31-32을 보겠습니다.

(눅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여기 32절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가 바로 예수님의 ‘중보기도’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드리는 기도를 ‘중보기도’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중보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라고 합니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 관계,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관계를 화목한 관계로 회복하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One mediator between God and men)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중보가 되시는 예수께서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중보기도’입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이 ‘마음에는 원이로되 연약하여’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할 때,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께서 ‘중보기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베드로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리신 후에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해 ‘중보기도’를 드린 것처럼, 깨어 기도하지 못하여 사탄에게 밀 까부름 당한 것을 회개하고 돌이켜 너도 네 형제들이 믿음에 굳게 서도록 ‘중보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위해 지금도 변함없이 ‘중보기도’드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여 이웃의 구원을 위해 ‘중보기도’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의 구원을 위해 중보자가 되어 ‘중보기도’하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십니다. 

(히 8: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B.C.845년경, 선지자 엘리사가 활동하던 시대에 아람의 군방장관 나아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강한 용사로 아람 왕이 아끼는 큰 인물이고,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나병,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나아만의 아내를 수종들던 어린 소녀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이스라엘 포로였습니다. 포로된 이스라엘 소녀였지만 주인인 국방장관이 문둥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여주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 어른께서 사마리아에 있는 한 선지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어른의 나병을 고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은 어느 구름에 비 올지 모른다는 심정으로 왕의 허락을 받고 엄청난 선물을 수레에 싣고 길을 떠났습니다. 선지자 엘리사 집을 찾아온 나아만에게 엘리사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면 나으리라고 하자 시킨 대로, 요단 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나아만과 그의 모든 수행원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로 되돌아와, ‘이제야 나는 온 세계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디,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가져온 선물 ‘은 십달란트, 금 6천개 의복 열 벌’을 엘리사에게 드렸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내가 섬기는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그것을 받을 수가 없소” 하고 일체 사양합니다. 나아만이 받아 달라고 다시 권했지만, 엘리사는 끝내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이 ‘정 그러시다면, 이제 내가 아람에 돌아가게 되면 그곳에서도 오직 참 신이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되겠는데 아람 우리나라에는 거룩한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새 두 마리에 실을 분량의 거룩한 땅의 흙을 저희에게 주신다면 우리 아람 땅에 이 흙을 펴놓고 그 위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게 되면 하나님께서 아람 안에서 예배드리는 저에게도 임하지 않겠습니까? 하오니 이스라엘 성소의 거룩한 흙 노새 두 마리에 실을 분량의 양을 제게 허락하여 주소서’ 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이어 나아만은 한 가지 더 중요한 요청을 합니다. ‘제가 이제 아람으로 돌아가게 되면 우리 왕이 나이 많아 항상 나를 의지하고 거동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왕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림몬 우상 앞에 절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왕 혼자 우상숭배하면 별 문제가 있겠습니까마는 군대장관인 나를 꼭 붙들고서 따라 들어가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부하인지라 그를 부축하여 우상을 숭배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고국으로 돌아가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왕께서 우상숭배하기 위해 절을 하는데 왕을 부축해야 하는 제가 빳빳하게 서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은 아니로되 어쩔 수 없이 내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 왕이 절할 때에 나도 우상 앞에 굽힐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제가 그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행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 죄를 사유하여 주시도록 엘리사님께서 구하여 주시옵소서.’(열하 5:18) 

한 마디로 불치병인 문둥병을 고쳐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거룩한 이스라엘 땅 흙을 가져다가 그 위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지만, 또한 아람 왕의 신하로서 어쩔 수 없이 우상숭배하게 될지라도 우상숭배하는 죄가 사함받을 수 있도록 엘리사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신하로서 직무상 어쩔 수 없이 우상 앞에 절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죄 용서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엘리사는 가타부타 대답 없이 다만 “너는 평안히 가라.”고만 말했습니다.(왕하5:17-19) 

사실 나아만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 바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고 단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양해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바랬을 뿐이기 때문에 엘리사가 특별히 대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엘리사는 단순히 떠나가는 나아만을 향해 복을 빌어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나아만이 문둥병에서 치유되는 것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으면 그간 우상숭배의 허무함을 깨닫고 우상숭배 죄를 회개하고 이제부터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했습니다. 

죽은 몸이나 다름없는 문둥병에서 치유되었으면 국방장관이라는 직위에 연연하지 말고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섬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에서 살아나고 보니 다시금 권력 앞에 마음이 약해져 하나님과 자기가 섬기고 있는 왕과 자기 나라 우상의 비유를 맞추어 겸하여 섬기도록 양해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양다리 걸치겠으니 이해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사도 바울 역시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고전 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래서 엘리사는 그저 잘 가라는 말만 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무릇 자기 행위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잠 1: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거두는 것은 헛될 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편115:3-8을 보겠습니다.

(시115:3-8)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그러나 예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은 그 행한 일에 축복으로 보답을 받고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사 3:10) 의로운 사람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복이 있고, 그들이 한 일에 보답을 받고, 기쁨을 누릴 것이라고 말하여라. 

B.C.538년경, 바벨론 제국이 망하고 다리오가 통치하던 때였습니다. 바벨론 제국이 분열되어 망하고 왕이 바뀐 상황에서도 다니엘이 가진 총리라는 직위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다니엘에 대한 신뢰가 대단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시기하던 무리들이 법을 제정했습니다.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자 굴에 던져 넣도록 하는 법이었습니다.(단6:7-9) 

그리고 이 법은 왕이라 할지라도 고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법을 제정한 목적은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없애고 한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매일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하던 습관을 이용해서 그를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서슬퍼런 법 제정 사실을 총리로서 알고 있었으면서도 평소 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고소당해 왕도 어찌할 도리없이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미 천사를 보내 사자들의 입을 봉해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목격한 다리오 왕이 전국에 조서를 내려 이렇게 공포했습니다.  

(단6:25-27)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 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다니엘은 이 사건 후로 다리오 왕 시대에 이어 고레스 왕 시대에도 여전히 총리로서 형통하는 축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 외에 어떠한 신에게도 절하지 말라는 시험을 받았을 때, 그 시험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항상 하루 세 번씩 기도하던 신앙생활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람의 나아만 장군도 자신의 문둥병에서의 치유 경험을 증언하여 아람 왕 앞에 자신의 신앙을 고백함으로 다리오 왕처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던 사람이 아니었고 그래서 엘리사에게 ‘중보기도’를 부탁드렸지만 양다리 걸치는 ‘중보기도’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항상 깨어 기도하는 신앙생활로 다니엘처럼 시대를 초월해 형통하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자신을 위해 ‘중보기도’드리시고 계신 것을 감사하며, 이웃의 구원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는 생활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연약한 육신을 극복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영광의 보좌에 이르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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