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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루터의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시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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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종교개혁과 한국교회 (시 22:1-8)

성경과 교회 역사에 나타난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나고 체험하며 삶과 운명이 변화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로 사용되었습니다. 저들의 하나님 만남과 체험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저들의 삶과 사역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남으로 그의 삶과 운명이 변화되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야곱도 요셉도 모세도 이사야도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나므로 저들의 삶과 운명이 변화되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도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사울도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나고 또 만나므로 저들의 삶과 운명이 변화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32살 때 무화과 나무 아래서 롬13:12을 읽음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났고, 마르틴 루터는 31살 때 비텐베르그 어거스틴 수도원 탑 속에서 시편 22편을 읽음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들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마르틴 루터(1483-1546)의 하나님 만남과 체험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 보려고 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탑 속의 체험”을 통해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비록 종교적인 삶을 살았지만 죄 의식과 어두움과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사로잡힌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루터는 몇 단계의 종교적 체험을 통해 비로서 죄 사함과 밝음과 평안과 기쁨에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루터가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지금까지 루터가 관념적으로 알았던 진리와 심판의 두려운 하나님과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루터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시고 끊어짐을 당하신 긍휼과 용서와 은혜의 예수님이셨고, 루터 대신 아들을 버리시고 끊어지게 하신 긍휼과 자비와 은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루터가 경험한 첫 번째 종교적 체험은 슈토테른하임의 뇌성벽력 가운데 죽음의 공포로 임했습니다. 종교적으로 민감한 청년 루터는 에르프르트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해인 1505년 7월 찌는 듯이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슈토테른하임 마을 근처의 시골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소나기가 쏟아지며 천둥이 대지를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두움을 가르는 번개와 뇌성벽력에 루터는 땅에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공포에 사로잡혀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성 안나여, 나를 도우소서. 나는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루터가 경험한 두 번째 종교적 체험은 1505년 7월 에르푸르트 수도원의 수도사가 된 후 2년 동안의 견습수도생활을 한 다음 사제로서 첫 미사를 집행했을 때 소멸하는 불과 같은 또 하나의 벼락에 맞는 듯한 죽음의 공포로 임했습니다. 제단 위의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성례 집행으로 하나님의 살과 피로 바꾸어지는 변화의 이적이 일어나고 갈보리의 희생이 반복된다고 생각했을 때 루터는 너무 두려워서 떨었습니다

“나는 티끌과 같은 재이며, 죄로 가득한데 어떻게 감히 살아계시고 영원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대면하고 말할 수 있는가?” 

루터는 벼락에 맞은 듯이 떨며 부르짖었습니다. 이와 같은 번뇌와 시련은 오랫동안 루터의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계속해서 수도 생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때로는 3일간씩 금식했습니다. 수도원 규칙 이상으로 몸을 괴롭히며 기도에 힘썼습니다. 1510년에는 로마의 라테란 성당을 찾아가서 그곳에 있는 28 계단으로 된 “빌라도의 계단”을 손과 무릎으로 오르며 처절하게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헛수고였습니다.

루터가 경험한 세 번째 종교적 체험은 비텐베르그 어거스틴 수도원 탑 속 서재에서 소위 “탑 속의 체험” 이라고 불리는 복음적 체험으로 임했습니다. 로마에서 돌아온 루터는 에르푸르트에서 비텐베르그의 어거스틴 수도원으로 옮겼습니다. 거기서 슈타우피츠를 만나 영적인 지도를 받게 되었고 그리고 성경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슈타우피츠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지옥에 빠졌을 것이다.” 슈타우피츠는 루터에게 성경을 연구하라고 그리고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루터는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만인 1512년 9월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513년 8월부터 비텐베르그 대학에서 시편강해를 시작했습니다.

루터는 1513년 혹은 1514년 가을 어느 날 비텐베르그 어거스틴 수도원 탑 속 서재에서 소위 “탑 속의 체험” 이라고 불리는 복음적 체험을 가졌습니다. 

시편 22편을 읽고 있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루터는 자기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그려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이 시편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글이었음을 생각했을 때 이해할 수 없는 놀라움에 사로잡혀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습니다. 

“어째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버림을 당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 자신이 버림을 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타당한 일이다. 나는 약하고 불순하고 불경건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약하지도 불순하지도 불 경건하지도 않으신데…. 어째서? 어째서?” 

다음 순간 루터는 벼락에 맞은 듯한 놀라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끊어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 루터 대신 그리스도가 친히 하나님으로부터 끊어버림을 당했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내 대신 죄를 담당하시고 나 대신 죄가 되셨다.”

루터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무서운 심판자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로 가득 찬 구주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도 전혀 새로워졌습니다. 진노와 심판의 하나님이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성취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성취가 아니라 선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함으로 얻어지는 선물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또한 1515년 또는 1516년에 로마서 1장을 읽으며 하나님의 공의와 창의와의 관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기를 그렇게도 소원했다. 그런데 ‘하님의 공의’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말을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셔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것으로만 이해했다. 그리고 죄인인 내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공의로우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를 미워했고 불평을 늘어 놓았다. 

그러나 나는 밤낮 묵상하면서 그 뜻을 이해하기를 원했다. 드디어 ‘하나님의 공의’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란 말을 연결시킴으로 그 뜻을 깨닫게 되었다. 이 ‘의’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을 의롭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의 ‘의’인 것을 깨달았다. 이 진리를 깨달았을 때 나는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 마치 천국의 문이 열려서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다. 이제 모든 성경은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었다. 전에는 ‘하나님의 의’라는 말이 나의 마음 속에 미움으로 가득 채웠으나 이제는 매우 달콤한 사랑으로 채워준다. 사도 바울의 이 말이 나에게 천국으로 가는 문이 되었다.”

루터는 “탑 속의 체험”으로 십자가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났고 로마서를 읽으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들의 믿음으로 우리 죄인들을 의롭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보다 깊이 체험했습니다. 결국 루터가 십자가의 주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였고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은혜를 통해서였고 자가 자신의 공로나 성취가 아닌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을 통해서였습니다. 루터는 이제 “오직 말씀”(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믿음”(Sola Fide)이란 모토를 내 세우는 종교개혁의 횃불을 들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의 봉화를 높이 들었습니다. 칼빈은 후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의 모토를 함께 높이 들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6년 후에 맞게 될 한국교회는 지금 극심한 세속화와 인간화의 문제와 함께 극심한 분쟁과 분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언제부터인가 너무 세상의 유행을 따르게 되었고 너무 정치와 경제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교회들이 너무 크게 성장했고 일부 교회의 지도자들이 너무 유능해지고 너무 유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성장주의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교회가 더 커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 온갖 성장 프로그램과 전도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사용하게 된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단이나 연합기관의 장이 되는 것을 소원과 목표로 삼기까지 되었습니다. 결국 한국교회는 물욕과 정욕과 명예욕과 자리 욕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 결과 극심한 세속화와 함께 극심한 분쟁과 분열에 휩싸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한국교회는 주님과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이 지녔던 순수한 영성과 도덕성을 많이 상실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주님과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이 지녔던 “처절한 회개”와 함께 “버림과 떠남” “온유와 겸손” “눈물과 기도” “긍휼과 용서” “사랑과 섬김” “희생과 죽음”을 많이 상실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종교개혁자 루터가 죽은 지 100여 년이 지난 17세기 중엽 독일 루터교회는 생명력을 잃은 사변적 기독교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영적 각성운동인 경건주의 운동이 필요하게 되었고 필립 야콥 슈페너가 1675년 독일 경건주의운동의 횃불을 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딤후3:14)고 권면한 사도 바울의 권면과 “믿음의 선진들을 바라보고 예수를 바라보라”고 권면한 히브리서 저자의 권면을 따라 믿음의 주님과 믿음의 선진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우리들에게 물려주신 고귀한 영적 유산을 고이 간직하고 발전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만났던 만남의 체험을 계속해서 지니는 것이 무엇보다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이 물려준 “오직 말씀”(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의 영적 유산을 고이 물려받아야 하고 체험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이 지니셨던 “처절한 회개”와 함께 “버림과 떠남” “온유와 겸손” “눈물과 기도” “긍휼과 용서” “사랑과 섬김” “희생과 죽음”의 영적 유산을 고이 간직하고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가 이룬 화해와 연합과 통일의 바탕 위에서 세계 복음화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총력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고 한국교회 안에 순수한 영적 각성과 함께 회개와 믿음, 긍휼과 용서, 사랑과 화해 그리고 버림과 천국 소망의 은사들을 부어주시옵소서!”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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