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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망의 편지를 받아들게 되었을 때 (왕하 19: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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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편지를 받아들게 되었을 때 (왕하 19:14-28)
  
어느 뚱뚱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승마를 하면, 살이 빠진다는 이야기에 매일같이 승마를 했습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자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다.
여자의 몸무게는 그대로.... 말이 5Kg 빠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늘 기쁜 소식, 행복한 소식을 기대하지만 사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편지와 같아서 늘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것처럼 기쁘고 행복한 소식만이 우리를 향해 날아들지는 않습니다. 
때로 우리의 인생속에서 어떤 때 우리는 우울하고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화가 나고 심지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만큼 당황스러운 절망과 슬픔의 편지를 받아 들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의 삶에 불행은 끝나고 행복만이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는 불행이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예수 믿어도 똑같이 인생속에서 우울하고 당황스럽고 슬프고 절망적인 편지를 받아들게 된다면 왜 계속해서 예수를 믿어야 할까요? 그것은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절망의 편지를 희망의 편지로 바꿀 수 있는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최악의 절망적인 편지를 받아 들었을때 그것을 놀라운 희망의 편지로 승리의 편지로 바꾸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히스기야 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주인공 히스기야를 통해 저와 여러분의 인생속에서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편지를 받았을 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고 극복할 수 있는지,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편지를 어떻게 가장 행복하고 반가운 편지로 바꿀 수 있는지 함께 배움으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어떤 절망의 편지를 받아들게 되더라도 그 절망의 편지를 희망의 편지로 승리의 편지로 바꿀 수 있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히스기야 받아 본 절망의 편지의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왕하 19:14절에 보시면 히스기야는 앗수르왕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받아 보게 됩니다. 받아 본 편지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왕하 19:10-13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편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너는 망할 것이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구원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앗수르의 조상들이 이미 고산과 하란과 레셉을 멸망시켰고 그들처럼 너희도 멸망당하게 될 것이고 너의 신도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성경이니까 그렇지... 한 마디로 뭡니까? 다 죽여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끅 이제 끝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울하고 절망스러운 편지를 받자마자 히스기야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14절 다함께 읽어볼까요? 
히스기야왕이 제일 먼저 할 일은 무엇입니까? 
히스기야왕은 가장 먼저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갔습니다. 
한번 따라해볼까요?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스기야는 다 죽여버리겠다 너는 이제 끝이다라고 위협하는 충격적인 편지 앞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전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그가 왜 하나님의 전을 향하여 올라간 것일까요? 

여호와의 전에는 여호와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술집에는 술이 있고 음식점에는 음식이 있고 주유소에는 기름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이 머무시는 그 곳을 찾아 올라갔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여호와의 전에만 계시는 장소에 제한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어디든 계시며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무소부재하시며 유일무이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든 계시지만 하나님은 특별히 하나님의 전에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합 2:20, 개정)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을 찾아 나온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히스기야에게 이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결국 가장 절망스럽고 좌절스러운 편지를 가장 행복하고 기쁜 편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실 너무 당혹스럽고 절망스러운 일을 만나게 되면 그 일에 대한 충격 때문에 하나님을 망각하며 잊기 쉽습니다. 
그러나 당혹스럽고 절망스러운 일을 만나게 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전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는 일입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날씨가 추우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면 되죠. 
거기서 난로를 쬐면 되죠. 
날씨가 더우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시원한 곳으로 들어가면 되죠. 거기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되죠.  
옷이 필요하면 옷 가게에 들어가서 사 입으면 되죠. 배가 고프면 어떻습니까? 식당에 들어가서 사 먹으면 되죠. 

어디로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디를 향하여 가느냐 하는 그 방향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망의 편지를 받아 들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가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앞입니다.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존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 사람을 결단코 모른척 하지 아니하시고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맞이하여 주실 것입니다.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 절망의 편지를 희망의 편지로 바꾸어 주실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 히스기야는 성전에 올라가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14절 다시 한번 읽어볼까요? 마지막 부분에 보니 그 비참하고 답답하고 절망스러운 내용의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그 편지를 펴놓지 않으면 보실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잘 보시라고 펴놓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내면 깊은 곳까지 불꽃같은 눈동자로 감찰하시는 보시지 못할 것이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히스기야는 그 펴보기도 싫은 그 비극적인 내용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 놓는 것일까요? 

나 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이 비극적이고 답답한 편지를 보아 달라는 간절함과 순수함이 담겨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희 딸 다은이가 가끔 그림을 그려 저에게 보여줍니다. 9살짜리 딸 아이가 그린 그림이 뭐 뻔한 거 아닙니까? 대충 흝어보고 그래 잘 했어 한마디 하면 아니 아빠, 자세히 좀 보세요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대충 흝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어떻게 그렸고 뭐라고 썼는지 나는 알지만 딸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더 자세히 더 많이 봐주기를 원하는 순수함과 간절함이 있는 것입니다. 아빠니까 그렇게 봐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왜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놓았을까요? 바로 그런 마음이 아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내용을 모르실까봐 봐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다 아시지만 하나님, 좀 보세요 세상의 이방왕 산헤립이 하나님을 이렇게 모욕하고 우리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렇게 모욕했어요. 하나님 이대로 계시겠습니까? 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함과 간절함이 드러나고 있는 장면인 것입니다.

구구절절이 하나님이 다 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해주시라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 앞으로 온 편지를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큰 실례죠.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입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정말 구구절절히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정말 믿을만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보여주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 그 편지를 보여주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서 절망과 비극의 편지를 받게 될 때 그냥 그것을,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펴놓으십시오. 순수함과 간절함으로 가지고 펴놓고 하나님이 보게 하십시오. 16절 말씀처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하고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그 비극과 절망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칠 때 하나님이 그 편지를 오히려 희망과 행복의 편지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떤 기독교 대학에 다니는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이 칠판에 써놓았습니다. 
God is no where!! 하나님은 아무데도 없다.. 
그러자 한 용기 있는 학생이 칠판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 다음과 같이 글자 한 글자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God is now here!!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앗수르왕의 편지를 하나님앞에 보여드리는 순간 하나님은 내가 여기 있다고 그 글자를 바꾸어 놓으실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수 많은 상황과 환경이 이래도 하나님이 있냐? 하나님은 아무데도 없다고 우리를 향해 옥죄어고 달려들때 그 편지를 하나님앞에 보여주십시오. 
하나님 계시지요? 하나님 살아계시지요? 하나님 지금 여기 계시지요.. 라고 외치는 우리의 기도 보여드리는 우리의 믿음을 결단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반드시 
God is no where!! 아무데도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God is now here!! 지금 여기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 우리의 인생 최악의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지켜주시며 함께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9.11 테러로 세계무역센타(World Trade Center)가 붕괴될 때 일어난 일입니다. 건물이 붕괴된 후 마지막 생존자가 있었습니다. 
27시간 만에 구조된 지넬 거즈만(Genelle Guzman)이라는 흑인 여성이었습니다. 
64층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사고가 나자 13층까지 내려가던 중 큰 굉음과 함께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건물이 무너지며 함께 매몰된 것입니다. 
건물더미에 깔린 그녀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교회에서 기도하시던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던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멀리하고 살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탓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그 순간입니다. 
무너진 틈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들어왔는데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다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가까이 계셔주세요. 제 곁에 머물러 주세요.”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다시 희미한 불빛이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곳을 빠져 나가지 못할지 모릅니다. 기적이 없이는 안 되겠지요.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기적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뜻대로 되기 원합니다.” 
기도가 끝나고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넬이 외쳤습니다. 
“누구세요? 다리가 끼어 움직일 수 없어요. 도와주세요.” 
다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불을 비추고 있는데 보입니까?” 
“안 보여요. 제 손이 보이나요?”
간신히 뻗은 손을 누군가 잡는 것을 느꼈습니다. 
“누구세요?” “걱정 마세요. 곧 구조될겁니다. 제 이름은 폴입니다.” 
그녀가 구조되는 순간까지 폴은 말을 건네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얼마 후 구조된 그녀는 인터뷰가 끝난 후 구조대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폴이라는 구조대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구조대에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폴은 누구일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질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아주십니다. 오늘 그 하나님을 향해 여러분의 그 절망의 편지를 펼쳐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절망의 편지를 희망의 편지로 바꾸어주실줄로 믿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히스기야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15절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히스기야를 보게 됩니다. 

15절에서 19절까지 히스기야의 기도의 내용을 주목해서 살펴보면 히스기야는 여호와여 하나님, 주여라는 표현을 계속하여 반복하여 고백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는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16절에도 여호와여 여호와여 하나님을 17절에도 여호와여 19절에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짧은 구절속에서도 하나님이여, 하나님이 주가 오직 하나님 여호와께서만이 이 절망과 비극의 편지를 새로운 희망과 행복의 편지로 바꿀 수 있음을 고백하며 기도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도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으면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밖에 없다라는 고백의 기도입니다. 

오늘 히스기야의 기도는 바로 그런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믿음에 찬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16절의 그의 간절한 기도와 같이 결국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앗수를 오히려 멸하시겠다는 담대한 약속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20절 말씀입니다.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 히스기야를 향해 보낸 편지에 대하여 답장을 하십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네가 처녀 딸 시온과 같이 약한 나의 백성을 비웃고 조롱하였는데 네가 조롱거리가 되고 비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결국 28절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네가 오던 길로 돌려보낼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결국 선언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35-37절까지 읽어볼까요?

하나님은 밤에 앗수르 진영을 치셨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군사 십팔만 오천명이 다 송장이 되어있었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비웃음을 당하며 돌아갔고 칼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너는 이제 죽었다. 이제 너는 끝났다고 앗수르왕 산헤립은 위협하였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죽었던 것은 앗수르 군사들과 산헤립이었습니다. 
히스기야가 받아들었던 절망의 편지가 희망과 승리의 편지로 바뀌어지게 된 것입니다.  

상황이 환경이 사람이 죽이겠다고 이제 끝났다고 우리를 향해 위협하며 달려들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옛날 미국에 목재회사 직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출근해 보니 책상에 해고 통지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황당하고, 배신감으로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그는 자포자기했고, 끝내 가출합니다. 한참 방황 끝에 귀가했지만 여전히 괴로웠습니다. 
아내에게 대못을 박는 말을 합니다. 
“여보, 죽고 싶소! 하는 일마다 하나도 되는 거라고는 없고 ... ” 
그러자 아내가 눈물로 호소합니다. 
“여보! 한 가지 안 해 봤잖아요! 기도요!” 
그 순간 그 말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는 감동을 받고, 아내와 함께 회개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러자 분노와 복수심이 녹고, 의욕이 생겼습니다. 
결국 용기를 가지고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 사업을 시작합니다. 
5년 만에 작은 건축회사를 갖게 됩니다. 
그러던 중 한번은 가족들과 여행하다 
고급 호텔은 너무 비싸고, 저렴한 호텔은 분위기가 안 좋아서 불편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적절한 가격대에 좋은 호텔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렇게 시작된 호텔 사업이 하나님의 은혜로 날로 번창합니다. 
미국 전역에,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체인을 갖게 됩니다. 
유명한 할러데이 인(Holiday Inn)의 창업자 케몬스 윌슨의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끝이다라는 생각이 들때 그때 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이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그때 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인생의 위기를 만나고 그것을 극복하고 뛰어넘기 어렵게 여겨지는 순간을 만나게 되거든 그때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기도를 결단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절망의 편지를 받게 되었을 때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어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심으로 그 절망의 편지가 희망의 편지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가 함께 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어떤 교인이 앵무새를 새로 구입을 했는데 이 앵무새가 꼭 한 마디만 할 줄 압니다. 무슨 말을 할줄 알았을까요? 바로 <키스해 주세요>라는 말입니다. 경건한 집사님 가정에서 손님이 왔는데 앵무새가 갑자기 <키스해 주세요>하면 당황스러울 거 같기도 하고 우리집에서 그런 것도 아니고 이미 다른데서 그렇게 익혀서 온 것인데 오해 받을 것 같기도 하고 난감했습니다.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소문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댁에도 앵무새가 한 마리 있는데 목사님댁 앵무새는 믿음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주로 말하면 무슨 말을 했을까요? 네 <기도합시다> 그런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생각합니다. 아, 그럼 우리 앵무새를 그 집에 보내서 몇 일만 함께 있게 하면 믿음의 영향을 좀 받아서 돌아오지 않겠나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허락을 받아서 그 앵무새를 들고 목사님댁 앵무새가 있는 곳에 갔습니다. 
그리고 같은 우리 속에 앵무새를 집어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댁 앵무새가 어찌나 반가워하는지 모릅니다. 
손님이 오니까 반가워서 한다는 이야기가 <기도합시다> 그러더랍니다. 
집사님댁 앵무새는 늘 하는 말이 무슨 말 <키스해주세요>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 댁 앵무새가 평소때 안 하던 말을 하더랍니다. 
<주여,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목사님 댁 앵무새가 짝궁 앵무새를 기도하면서 기다렸고 응답받은 것일까요? 앵무새에게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물인 앵무새도 우리가 기도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응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생을 살다보면 늘 기쁘고 행복한 소식만을 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의 편지도 받게 되고 그럴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그 절망의 편지를 희망의 편지로 바꿀 수 있는지 히스기야를 통해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세 가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둘째, 그 편지를 펼쳐놓고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간절히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아무데도 없는 하나님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반드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며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밤 저와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왔습니다. 이제 그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문제, 우리의 절망의 편지를 내려놓고 펼치십시다. 하나님 보소서... 하나님 들으소서 하나님 역사하소서 그런 히스기야의 믿음을 가지고 기도함으로 오늘 이 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절망의 편지를 들고 왔지만 돌아갈때는 희망의 편지를 들고 돌아가는 축복의 밤, 응답의 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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