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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하는자가 되라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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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자가 되라 (골 3:15-17)

어떤 사람이 하루는 강도를 만나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모두 빼앗기고 심하게 얻어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강도를 만나서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다 빼앗기고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 마음을 가지실 것 같습니까?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투덜거리며 불평하겠습니까? 
이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요?
이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다음과 같은 4가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첫째, 가지고 있던 돈만 빼앗기고 목숨은 남아 있게 하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둘째, 강도에게 가지고 있던 돈은 다 빼앗겼지만 그래도 아직 빼앗기지 않은 많은 것이 자신에게 남아 있음을 감사했습니다. 
셋째, 전에는 이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았음을 감사했습니다. 
넷째, 내가 강도가 아니고 강도 만난 자가 되게 하심을 감사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영국의 유명한 성경학자 메튜헨리 목사님이었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행복을 담는 그릇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일까요? 감사의 그릇의 크기가 크면 그 감사의 그릇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커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감사가 크면 클수록 행복도 커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도요. 
우리의 남은 생애가 얼마가 되었든 그 남은 생애가 불평과 원망과 시기와 미움과 짜증으로 가득찬 생애가 아니라 감사와 찬양과 기쁨과 평강으로 가득한 행복한 생애가 되길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애가 그런 행복한 생애가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은 맥추 감사주일로 드립니다. 맥추감사주일은 전반기동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15절-17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감사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서 감사를 통해 저와 여러분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감사가 행복을 담는 그릇이고 우리가 감사할수록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감사하지 못할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면 실상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나 환경보다는 감사하지 못할 상황과 환경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사실 감사하면서 살기보다 감사하지 않으면서 살기가 훨씬 더 쉬운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은 우리의 삶의 조건이나 상황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15절을 볼까요?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오늘 말씀15절에서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봅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나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라...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만약에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평강이 지배하지 못하고 우리의 삶의 환경과 상황이 지배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의 삶의 환경이나 상황이 좋을 때는 우리의 마음도 좋고 평안하지만 만약 우리의 삶의 환경과 상황이 좋지 못하고 낙심스럽고 좌절로 가득하다면 우리의 마음 역시 낙심과 좌절로 가득한 불행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 환경이 좋을 때는 마음도 편안한데 상황이 좋지 못하면 마음도 좋지 못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치 흔들리는 조각배와 같은 마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파도가 아무리 무섭게 몰아치고 폭풍우가 불어 닥친다할지라도 전혀 흔들림 없이 여전히 평안할 수 있기 위해서, 여전히 행복할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요16:33절 말씀을 찾아볼까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항해해 나가는 가운데 때로는 고난의 폭풍우와 환란의 거센 파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평강이란 우리에게 그런 삶의 험난한 문제들과 환란들이 존재하지 않게 제거함으로 주시는 평안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란 오히려 그 삶의 험난한 문제들과 환란들을 뛰어 넘어 승리함으로 얻게 되는 평안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파도타기 선수들과 일반 사람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일반 사람들은 수영을 하다가도 파도가 높아지면 무서워서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파도타기 선수들은 오히려 파도가 높아질수록 바다를 향해 달려갑니다. 뛰어듭니다. 그리고 남들은 무서워 빠져 나왔던 그 바다에서 그 파도를 즐깁니다.

세상 사람들과 우리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인생의 험한 파도가 다시는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때로는 똑같이 힘들고 어려운 삶의 파도를 만나게 됩니다. 
똑같이 입시에 시달려야 하고 좁은 취업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질병이나 경제적 어려움등 예상치 못한 난관과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고통스러워 들어가 맞서 싸울 엄두도 못내는 그 삶의 파도를 향해 달려 들어가 그 삶의 파도를 타고 넘으며 즐기고 정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박수를 칠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높고 높은 파도를 즐기는 그 사람들을 향해 멋지다고 박수를 쳐 주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삶의 파도를 뛰어넘고 정복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를 부러워하며 우리를 향해 멋지다고 박수를 쳐 줄 것입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여러분, 이 땅에 비가 내리고 있다고 해서 하늘에도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는 비가 내리고 폭풍우가 아무리 분다 할지라도 어느 정도 높이 이상의 하늘로 높이 올라가면 그곳은 고요함과 평안함과 푸르름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하늘을 사는 사람들 인줄로 믿습니다. 비록 땅위에 발을 두고 살고 있지만 우리는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에게 불어 닥치는 환란의 바람과 시련의 폭풍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시련과 환란의 비바람을 뚫고 마치 독수리가 솟구쳐 올라가듯이 비행기가 비상하듯이 하늘을 향해 비상함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불어 닥치고 있는 이 환란이 끝이 아님을 알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시련의 바람과 환란의 폭풍우를 뚫고 올라가면 반드시 청명하고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질 것을 믿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함인 그리스도의 평안함이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고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상황이나 환경이 나의 마음을 지배하면 절대로 평안할 수 없습니다..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흔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면 그때부터 우리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이나 환경에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상황과 환경을 지배하며 사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안함으로 상황과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오히려 상황과 환경을 지배하며 살아가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평강이 지배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 혼자만 평안한 사람으로, 행복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 골3장15절에 보니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평안은 예수님 한 분에게서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그의 열 두 제자들에게 옮겨졌습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여러 가지 문제와 고민거리로 힘들어하던 많은 사람들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질병으로 고통당하던 수 많은 사람들에게로 옮겨졌습니다. 
예수님의 평안은 배고파 굶주려 있던 오천명의 사람들에게도 옮겨졌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지는 평안이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 평안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평안함이 옮겨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안은 전염되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과 시기와 다툼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평안도 전염되고 행복도 전염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함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평안하며 감사하며 웃을 수 있다면 그런 나로 말미암아 내 주위의 사람들이 평안하고 웃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리스도의 평안이 아닌 세상의 평안 때문에 흔들리고 낙심하고 좌절하는 모습은 내 주위의 사람들을 흔들리게 하고 낙심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평안함이 지배하는 사람은 가는 곳마다 평안이 되어야 합니다. 즉 피스 메이커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피스메이커와 트러블 메이커 입니다. 피스메이커는 가는 곳마다 평안을 만들어 냅니다. 화평을 만들어 냅니다. 감사를 만들어 냅니다. 행복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트러블 메이커는 가는 곳마다 문제 거리를 만들어 냅니다. 분열을 만들어 냅니다. 불평을 만들어 냅니다.

마7장에 예수님은 8가지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의 한 가지 복이 바로 화평케 하는 자의 복입니다. 화평케 하고 평화하게 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우리가 가는 곳에서는 그곳이 비록 싸움과 불신과 원망이 있는 곳이라 할지라도 그 곳이 평화의 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과 한숨과 짜증이 가득한 곳이 평안과 감사와 행복의 땅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평안을 가진 자이기에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트러블메이커가 아닌 피스메이커로 살아갑시다. 행복을 전염시키고 평안을 전염시키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진 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면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고 피스 메이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는 어떻게 하면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나의 입술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16절을 다함께 읽어볼까요? 감사는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표현될 때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의 감사의 고백, 최선의 찬양을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그 최악의 삶 속에서도 최선의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행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는 많은 매를 맞은 채 빌립보 감옥속에 갇혔습니다. 그 밤 그들은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많이 지쳤을 것입니다. 아무 잘못도 없고 그저 복음을 담대히 전한 것 밖에 없는데 그들의 삶에 돌아온 결과는 실컷 얻어터지고 깊은 감옥속에 묶여 내동댕이 쳐진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뭐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하나님 해도 해도 참 너무하시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요? 이렇게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 쓰라리고 고통스럽고 답답한 그 밤에 입술을 벌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성경에 보니 온 죄수들이 다 들을 수 듣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온 죄수들이 들을만큼 힘차게 찬양했다는 뜻이며, 온 죄수들이 그 귀를 기울여 들을만큼 간절하고 진실하게 찬양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도 들을 수 없는 찬양이 하나님께 들릴 수 있을까요? 사람의 귀에도 들리지 않는 찬양이 하나님의 귀에 들릴 수 있을까요? 사람의 마음에도 감동이 되지 않는 찬양이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단 한 마디의 찬양을 드려도 하나님이 감동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들으실만한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들으시는 찬양,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찬양을 드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였을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묶였던 착고가 풀어지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도 묶였던 모든 것이 풀어지고 닫혔던 모든 것이 열리는 기적을 경험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입술로 하나님이 기뻐받으실 하나님이 감동하실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부르세요. 찬송을 부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찬송 부르세요.
감사를 드리세요. 감사를 드리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감사 드리세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의 입술을 열 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늘 넘침으로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일들이 가득히 넘쳐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 번째 매사에 그리스도를 힘 입어. 
본문 17절 말씀에 보면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감사하는 일조차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사하는 일 조차 그 즉 예수 그리스도를 힘 입어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의 첫 시작은 감사의 눈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의 문제로부터 시작됩니다. 
장미에 가시가 있는 것일까요? 가시에 장미가 있는 것일까요? 
장미에 시선을 고정하면 아름답고 향기 나는 장미만 보이고 가시에 시선을 고정하면 향기 나는 장미는 보이지 않고 보기 싫은 가시만 보이는 법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통 사고를 당해 팔 한쪽을 잃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왜 하필이면 나냐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따지고 원망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팔 한쪽에만 그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눈으로 잃어버린 팔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똑같이 교통사고를 당해 팔 한쪽을 잃은 상황속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내게 팔 두개와 다리 두개를 주셨는데 그 4개를 다 잃지 않고 팔 한개만 잃었으니 나에게 아직도 팔 한개와 두 다리가 남아있음을 감사합니다. 그는 감사의 눈으로 그의 남아있는 팔 한쪽과 두 다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잃어버린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잃어버린 것만 보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없습니다. 남아있는 것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되어진 것만 바라보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되어질 것을 바라보는 자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의 눈이 열린 사람은 매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잃어버린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아직 남아있는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그 남아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새로운 것들을 얻게 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감사는 결국 행동을 통해 보여 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절이나 어떤 특별한 날이 되면 부모님이나 친지, 어른들 그리고 은사님들이나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선물을 사서 가지고 가기도 합니다. 고맙지 않다면 무엇 하러 비싼 선물을 사 가지고 가겠습니까? 말로만 고맙다고 하기엔 그 고마움이 너무 커 그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내 돈을 들여 선물을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때로는 용돈도 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고마움이 크면 클수록 그 고마움을 표현하는 행동도 커지게 마련입니다. 
조금 고마운 사람에게는 조그마한 선물을 하는 것이고 크게 고마운 사람에게는 큰 선물을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은인에게 밥 한끼 대접하는 것으로 끝내는 사람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그 만큼 큰 은혜를 받았다면 평생을 두고 갚고 또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어떻습니까? 
말로 하나님 고맙습니다. 하나님 찬양합니다. 하고 말기에는 너무 큰 은혜 아닙니까? 그 분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그 분이 기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드리려고 해도 아깝지 않은 은혜가 아닐까요?  

가장 큰 감사는 드림을 통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삶 속에 주신 은혜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드리기에 힘쓰는 복된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하신 하나님 앞에 시간을 드리고 우리의 물질을 드리고 우리의 삶을 드리고 우리의 인생 전부를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드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준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어떤 임금님이 하루는 음식을 너무 잘 먹고 나서 주방장을 불렀습니다. 어떻게 이런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했지.. 참 수고했어 그러자 그 주방장이 저는 별로 한 게 없습니다. 사실 제 요리가 맛있는 것은 신선한 재료 덕분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임금님이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를 공급한 가게 주인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가게주인이 말합니다. 임금님, 저는 그냥 물건을 파는 장사꾼에 불과합니다. 사실 이 좋은 재료는 농부들이 수고해서 얻은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농부를 불러 말합니다. 이렇게 좋은 재료를 생산해내느라고 수고가 참 많았네.. 

그러자 이번에 그 농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닙니다. 임금님 저는 그냥 때가 되면 심고, 김을 메고 수확을 한 거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 좋은 재료가 수확되게 하신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시때때로 햇빛과 물을 공급해주지 않았다면 결코 훌륭한 농작물은 재배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임금님은 큰 사실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 것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구나..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숨을 쉬고 살게 되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그리고 자비하심과 도우심이 없이는 주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그 많은 것들을 바라보기보다 우리가 잃어버린 그 어떤 것 또는 이루어지지 않은 그 무엇, 속상하고 답답하게 하는 그 어떤 것 하나 둘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그렇게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행복하게 될 리 없는 것입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통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행복을 만들어가기 원하십니까? 감사의 그릇을 크게 넓히십시오. 
감사의 마음을 넓히시고 감사의 입술을 넓히시고 감사의 드림을 넓히십시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맨발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양말을 주시고 양말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신발을 주시고 신발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양복주시고 양복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코트를 주시고 코트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자동차 주시고 자동차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비행기 주시고 비행기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 저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영원한 구원의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그 좋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합시다. 우리의 입술로 진심으로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것 가장 최선의 것들을 주님께 드림으로 그 크신 은혜에 감사합시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고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이 자꾸 생기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불평할일이 자꾸 생깁니다.

오늘 이 아침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 주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다 세어보면서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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