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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놀라게 한 믿음(1)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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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놀라게 한 믿음(1) (마 8:5-13)

어떤 기독교 신자 혼자서 등산을 하다가 실족하는 바람에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신자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용케 손을 뻗쳐 절벽 중간에 서 있는 소나무 가지를 움켜 쥐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신자는 절벽 위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위에 아무도 없습니까?”
그러자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들아! 염려 말라 내가 여기에 있노라!”
신자가 “누구십니까?”하고 물으니,
"나는 하나님이다” 라는 대답이 들렸다.
신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하나님, 저를 이 위험한 곳에서 구해 주시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나이다."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좋다. 그러면 내가 시키는대로 하여라. 그 나무를 놓아라.” 
"아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이걸 놓으면 떨어져 죽습니다.” 
"아니다. 네 믿음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그 나무를 놓아라!”
그러자 신자는 아무 말 없이 잠시 침묵을 지켰습니다.
잠시 후 신자가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소리쳤습니다. 
"위에 하나님 말고 누구 딴사람 안 계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 중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 계십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 똑같이 믿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 앞에 칭찬 받았던 믿음의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백부장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읽어볼까요? 예수님은 이 백부장을 가리켜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만나보지 못한 믿음이라고 칭찬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당시에도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은 백부장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좇고 있었습니다. 8: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이 인정하고 칭찬한 믿음은 백부장의 믿음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의 백부장의 믿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길래 그 수 많은 사람들속에서 예수님 앞에 칭찬받는 믿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이 백부장의 믿음을 살펴봄으로써 주님을 믿는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예수님 앞에 칭찬받을 수 있는 참된 믿음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로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나요? 8장5절을 읽어볼까요? 백부장의 믿음은 주님 앞에 나아와 간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에는 크게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 믿음은 주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실만한 믿음 그것은 예수님께로 늘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오늘 백부장은 주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좇았지만 그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뒤에서 멀찍이 좇아야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 나아가 그 분과 만나고 그 분과 함께 동행 해야 할 그 분의 사람들인줄로 믿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님을 멀찍이 뒤따를 때 그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는 부끄러운 제자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 그는 예수님을 뒤에서 멀찍이 뒤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 생명을 걸고 복음의 최일선에서 십자가를 거꾸로 지기 까지 주님 앞에 나아가고 복음을 위해 나아가는 믿음의 용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 앞에 얼마나 자주, 얼마나 가까이 나아가시고 계십니까? 

여러분, 겨울과 여름은 어떻게 오는 지 아시나요? 겨울은 태양하고 멀어지면 여름은 태양하고 가까워지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여름과 겨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과 거리가 멀어진다면 우리의 신앙이 겨울이 되는 것이요, 예수님과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면 신앙의 여름이 되는 것입니다. 

차갑고 냉랭한 신앙의 겨울 그것은 주님을 가까이 하지 않을 때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과의 여름처럼 뜨거웠던 첫 사랑이 행여 식어지지는 않으셨는지요? 
주님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했던 불처럼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주님에 대한 그 사랑이 아직 활화산처럼 타오르고 계시는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오늘 이 시간 주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과의 뜨거운 첫사랑을 회복해야 우리의 신앙이 뜨거운 여름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 날씨가 매우 춥습니다. 날씨는 한 겨울이지만 우리의 신앙만은 겨울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히려 날씨가 추울수록 주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뜨겁게 타오르는 여름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백부장의 믿음이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뜨거운 신앙이었기에 주님께 칭찬받았음을 기억하며 우리 역시 주님께 날마다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 칭찬받는 믿음은 먼저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칭찬받는 믿음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나아왔으면 간구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길래 예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자기가 아닌 하인을 생각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의 세 가지 측면 중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6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주님 앞에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챦은 종 하나를 위해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과연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판단하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생각하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어떤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많이 하고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면 그 사람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것도 믿음에 있어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의 전부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기도 많이 하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 중에도 주님께 칭찬받을만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간증하시는데 시골에서 목회할 때 보면 어떤 집사님이 새벽 기도때는 침이 튀겨라 세게 기도하시고는 돌아 갈 때는 남의 텃밭에 들어가 오이 상추 깻잎 다 따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더랍니다. 여러분, 이 사람의 믿음이 과연 예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믿음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원에서 정말 목이 쉬도록 기도하고 내려 올 때는 서로 먼저 버스에 타겠다고 싸우는 모습들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목이 쉬도록 뭘 기도한 것일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 칭찬받았던 백부장은 자신의 기도제목이 아닌 하챦은 하인을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도 체면도 다 버리고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 백부장이 어떤 존재입니까? 그 당시 백부장은 단순한 로마 군인 장교가 아니었습니다. 백부장은 예하의 100명의 부하를 거느린 고급장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로마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나라였습니다. 
 
아주 쉽게 예를 들면 일제치하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헌병대 장교를 생각해보세요..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와 위엄을 가지고 있었던 권력자요, 세력가였던 것입니다. 그 지역사회에서 그의 말 한 마디면 안 되는 게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세력가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종 하나를 위해 간절하게 주님 앞에 매어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러한 믿음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종은 어떤 존재입니까? 

요즘은 밑에 일하는 직원에게도  말 잘 못했다간 큰 일납니다. 일하시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종업원들 무서워서 장사 못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당시 종은 지금과 같지 않습니다. 종은 가라면 가고 하라면 하고 죽으라면 죽는 것이 그 당시 종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소나 개와 같은 짐승처럼 취급받던 시절의 하인입니다. 그런 짐승 같은, 물건 같은 하인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믿음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것도 지극히 연약한 사람,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섬겨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마25장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마25:40절 말씀을 볼까요?
여러분이 만약 지극히 작은 주일학교 학생 한 명에게 빵을 하나 사 주었다면 그것은 그 아이에게 사준 것이 아니라 주님께 사드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힘겨워하고 있던 성도에게 작은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던졌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주님께 드린 위로의 말 한마디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동전을 요구하는 누추하게 보이는 그 사람에게 동전 한 닢 던져주었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칭찬받는 믿음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눈물로 안타까운 심정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결코 외면치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빠가 퇴근 하는길에 형을 위해 바지를 하나 사왔는데 동생이 막 입고 싶어 합니다. 형이 넓은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저는 괜챦으니까 동생 주시지요.. 그렇게 말했을 때 어떤 아버지가 기쁘지 않겠어요? 아이고 그래 내가 자식 하나 제대로 키웠구나 자기만 생각할 줄 알았더니 동생도 생각할 줄 알고.. 내가 아버지라도 그 형에겐 더 좋은 것으로 더 멋있는 것으로 사주고 싶을 것입니다. 
인간도 그런데 하물며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다 아십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만 다른 사람을 먼저 섬기지만 그 마음 안에 어떤 소원이 있는지 어떤 어려움과 고통과 눈물이 있는지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보다는 남을, 다른 사람을 특별히 나보다 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위해서 기도해주고 섬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족해 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을 부족하다고 연약하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점점 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부족하다고 여겨질수록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아직은 연약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주십시오. 
그 기도속에서 부족한 사람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으로, 연약한 사람이 연약하지 않은 사람으로 점점 더 변화되어 가게 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안에서 늘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때로 누군가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처럼 나도 어느 순간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듯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말씀하시자 8절에 보면 백부장은 예 어서 오세요 하지 않고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지극히 겸손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세 번째 측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측면입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자신의 가치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그 인근지역에서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실력자였지만 그는 예수님앞에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여러분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느니 내 주먹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의 주먹보다도 못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 그런 분은 없겠지만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지식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들 때문에 예수님보다 여러분 자신을 더 의지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대적하신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으시다면 그 분 앞에 겸손하십시오.. 그 분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자입니다. 라고 두 손을 들고 나아오십시오.. 그 사람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손에 무엇인가를 가득 들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이 주실 그 어떤 좋은 은혜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손에 들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가 버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다윗과 사울을 통해 교만과 겸손의 차이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보다 인물도 뛰어났고 모든 면에 있어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다윗은 그저 어린 목동에 불과했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철저히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골리앗을 만났을때도 또 사울의 자신을 죽이려는 위협 속에 죽을 고비를 몇 번씩이나 넘기면서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뢰하며 겸손히 그 분과 동행했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결코 모른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앞에 위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겸손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은 마치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여러분, 밑빠진 독을 채우는게 가능할까요? 불가능하죠..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밑빠진 독을 채울수 있을까요? 
그 밑빠진 독을 강물에 풍덩 내어던지면 가능합니다. .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할 때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가 그 독을 채우려고 하지 말고 그 독을 깊은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풍덩 내어던지면 그 독은 충만하게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강물에 풍덩 내어던지면 그 독은 가득히 채워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이 채워보려고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럴 때 돌아오는 것은 실패요 좌절이요, 실망뿐입니다. 
오직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맡기고 내어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밑 빠진 독과 같은 여러분의 인생을 풍성한 은혜의 독, 축복의 독으로 새롭게 채우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주님께 칭찬받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 칭찬받는 믿음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삼각형의 꼭지점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무게중심으로 한 믿음의 삼각형의 첫 번째 꼭지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백부장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간절한 마음으로 아뢰는 모습이 칭찬받는 믿음입니다. 멀찍이 예수님을 뒤따르는 성도가 아닌 진정으로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그분을 간절히 찾는 성도들 되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향한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주님 앞에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당시 소모품에 불과했던 종 하나를 위해 주님 앞에 나아와 간구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칭찬받는 믿음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섬겨주고 사랑해주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지극히 작은 소자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세 번째는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백부장은 주님 앞에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다면 하나님 앞에 겸손하기 바랍니다. 
하나님 없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없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 어떤 인생으로 살아가시겠습니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 ,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 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그 주님을 위해 멋지게 살다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칭찬받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아침 우리 모두 백부장과 같이 칭찬 받는 믿음의 주인공들로 설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예수님과의 관계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속에서 칭찬 받을 수 있는 믿음의 모습으로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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