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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을 놀라게 한 믿음(2)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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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놀라게 한 믿음(2) (마 8:5-13)

어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앉아 기차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둘 다 예수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은 금방 친해졌고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점심으로 김밥을 준비해왔고 또 한 사람은 기차에서 사먹으려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식중독 위험이 있다며 기차에서 아무것도 팔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김밥을 사온 한 사람이 김밥을 꺼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점심을 준비 못한 사람이 한 마디 합니다. 저는 요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에 질세라 혼자서 김밥을 먹고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뭐라고 말했을까요? 저는 요즘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말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조금 과장된 부분이 없지않아있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어쩌면 믿음이 무엇인지를 전혀 내 주변의 사람들과 하나님앞에 보여드리지 못하며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믿는다 하는데 그 믿음이 과연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난 주에 예수님앞에 칭찬받았던 백부장의 믿음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올 2011년 새해 기왕 예수님을 믿는 거 그저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믿는것처럼 믿으며 남은 생애를 살아보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칭찬하셨던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첫째로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나요? 8장5절을 읽어볼까요? 백부장의 믿음은 주님 앞에 나아와 간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에는 크게 세 가지 측면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을 대하는 태도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첫 번째 백부장의 믿음은 주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신 그의 믿음 그것은 예수님께로 늘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 백부장은 주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좇았지만 그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앞에 나아온다고 하여 다 예수님께 칭찬받는 믿음은 아니라고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단 한마디의 기도를 드리고 단 한마디의 찬송을 드리고 단 한번의 봉사를 하여도 주님이 받으실만한 찬송을 기도를 예배를 봉사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께 칭찬받는 믿음은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하여 간절히 구하는 믿음 주님이 받으실만한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수백만의 사람들이 오늘도 예배당을 찾지만 그 가운데서 과연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할 예배자들은 몇 명이나 될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는 예배의 관람자가 아니라 예배의 헌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과의 거리가 날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가까워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거리 뿐만 아니라 그 뜨거움이 그 순도가 더욱 뜨거워지고 온전케 되길 바랍니다. 단 한마디의 찬송, 단 한마디의 기도 단 한번의 예배도 진정으로 주님이 받으실만한 주님께 상달될 수 있는 그런 예배, 기도, 찬송을 드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실 때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칭찬받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 여러분 모두가 이 칭찬 받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길래 예수님께 칭찬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자기가 아닌 하인을 생각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의 세 가지 측면 중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6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주님 앞에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챦은 종 하나를 위해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과연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판단하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생각하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어떤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많이 하고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면 그 사람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것도 믿음에 있어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의 전부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교회생활 열심히 하고 기도 많이 하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 중에도 주님께 칭찬받을만한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지만 어떤 목사님이 간증하시는데 시골에서 목회할 때 보면 어떤 집사님이 새벽 기도때는 침이 튀겨라 세게 기도하시고는 돌아 갈 때는 남의 텃밭에 들어가 오이 상추 깻잎 다 따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더랍니다. 여러분, 이 사람의 믿음이 과연 예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믿음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원에서 정말 목이 쉬도록 기도하고 내려 올 때는 서로 먼저 버스에 타겠다고 싸우는 모습들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목이 쉬도록 뭘 기도한 것일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 칭찬받았던 백부장은 자신의 기도제목이 아닌 하챦은 하인을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도 체면도 다 버리고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 백부장이 어떤 존재입니까? 그 당시 백부장은 단순한 로마 군인 장교가 아니었습니다. 백부장은 예하의 100명의 부하를 거느린 고급장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로마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나라였습니다. 
 
아주 쉽게 예를 들면 일제치하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헌병대 장교를 생각해보세요..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와 위엄을 가지고 있었던 권력자요, 세력가였던 것입니다. 그 지역사회에서 그의 말 한 마디면 안 되는 게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세력가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종 하나를 위해 간절하게 주님 앞에 매어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러한 믿음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종은 어떤 존재입니까? 

요즘은 밑에 일하는 직원에게도  말 잘 못했다간 큰 일납니다. 일하시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종업원들 무서워서 장사 못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당시 종은 지금과 같지 않습니다. 종은 가라면 가고 하라면 하고 죽으라면 죽는 것이 그 당시 종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소나 개와 같은 짐승처럼 취급받던 시절의 하인입니다. 그런 짐승 같은, 물건 같은 하인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 믿음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것도 지극히 연약한 사람,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섬겨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여러분, 교회 공동체안에서 늘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때로 누군가가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처럼 나도 어느 순간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듯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을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 여러분들에게 이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칭찬받는 믿음이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살펴보았고 오늘은 마지막 세 번째 칭찬받는 믿음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지막 셋째,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이러한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말씀하시자 8절에 보면 백부장은 예 어서 오세요 하지 않고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지극히 겸손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세 번째 측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측면입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자신의 가치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가 그 인근지역에서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실력자였지만 그는 예수님앞에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여러분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느니 내 주먹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의 주먹보다도 못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 그런 분은 없겠지만 여러분은 예수님보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지식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들 때문에 예수님보다 여러분 자신을 더 의지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대적하신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으시다면 그 분 앞에 겸손하십시오.. 그 분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 자입니다. 라고 두 손을 들고 나아오십시오.. 그 사람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손에 무엇인가를 가득 들고 있다면 우리는 주님이 주실 그 어떤 좋은 은혜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손에 들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가 버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크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다윗과 사울을 통해 교만과 겸손의 차이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보다 인물도 뛰어났고 모든 면에 있어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다윗은 그저 어린 목동에 불과했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철저히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골리앗을 만났을때도 또 사울의 자신을 죽이려는 위협 속에 죽을 고비를 몇 번씩이나 넘기면서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뢰하며 겸손히 그 분과 동행했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결코 모른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앞에 위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겸손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인생은 마치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여러분, 밑빠진 독을 채우는게 가능할까요? 불가능하죠..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밑빠진 독을 채울수 있을까요? 
그 밑빠진 독을 강물에 풍덩 내어던지면 가능합니다. .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할 때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우리가 그 독을 채우려고 하지 말고 그 독을 깊은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풍덩 내어던지면 그 독은 충만하게 채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강물에 풍덩 내어던지면 그 독은 가득히 채워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이 채워보려고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럴 때 돌아오는 것은 실패요 좌절이요, 실망뿐입니다. 
오직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맡기고 내어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밑 빠진 독과 같은 여러분의 인생을 풍성한 은혜의 독, 축복의 독으로 새롭게 채우실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지난주와 오늘 우리는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주님께 칭찬받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 칭찬받는 믿음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삼각형의 꼭지점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무게중심으로 한 믿음의 삼각형의 첫 번째 꼭지점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백부장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간절한 마음으로 아뢰는 모습이 칭찬받는 믿음입니다. 멀찍이 예수님을 뒤따르는 성도가 아닌 진정으로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그분을 간절히 찾는 성도들 되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을 향한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의 백부장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주님 앞에 나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당시 소모품에 불과했던 종 하나를 위해 주님 앞에 나아와 간구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칭찬받는 믿음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섬겨주고 사랑해주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지극히 작은 소자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 

세 번째는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백부장은 주님 앞에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다면 하나님 앞에 겸손하기 바랍니다. 
하나님 없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없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 어떤 인생으로 살아가시겠습니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 , 우리를 멸망에서 구원해 주시고 우리 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그 주님을 위해 멋지게 살다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 칭찬받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대망의 2011년 새해 우리 모두 백부장과 같이 칭찬 받는 믿음의 주인공들로 설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속에서 칭찬 받을 수 있는 믿음의 모습으로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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