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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바라기 (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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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바라기 (히 12:1-2)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엇을 보고 듣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孟母三遷之敎’ 라는 말처럼 맹자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 맹자 어머니의 자녀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맹자가 자랄 때 공동묘지 근처에 집을 두었더니 늘 장례 지내는 광경을 본 맹자는 장례지내는 흉내를 냅니다. 벌레를 잡아서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땅을 파서 묻습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이를 보고 안되겠다는 생각에 집을 시장가로 옮겼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흉내를 내면서 노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맹자의 어머니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서당 근처로 집을 옮겼습니다. 
그러자 매일 듣는 것이 글 읽는 소리였고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맹자는 늘 글 읽는 흉내를 내면서 자랐고 후에 위대한 학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아서 평생을 살면서 무엇을 바라보고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늘 보고 듣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바라보자’ 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십자자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자’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먼저는 따라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면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에 따라 마음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유혹에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꾸만 유혹의 대상을 바라보고 유혹하는 말을 들으면 그 마음이 시험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불안, 공포, 좌절, 염려, 근심이 마음에 가득하게 하는 소리들입니다. 

이런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 소식만 들으면 염려와 절망이 자신도 모르게 우리 마음에 가득하여 짜증이 나고 우리의 삶도 그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면 마음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1.불안과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지켜야지,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더 마음을 두게 되면 오히려 더 큰 염려와 불안이 엄습해 옵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기를 바라보고 대속의 은혜를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해방되고 자유를 얻게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그 은혜를 생각하면 생각이 달라지고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죄를 지으며 살아가더라도 예수님의 보혈로 나를 용서해 주시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면 의롭게 되는 생각이 들어와서 죄가 주는 불안과 공포와 억압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바라보면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는 말씀처럼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가졌다 하더라도 마음이 불안하면 행복이 없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입을 것이 없어도 마음이 평안하면 그것이 참된 행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평안입니다. 
평안이 없으면 어떠한 지위도, 명예도. 권세도, 부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평안이 어디에서 온다고 하였습니까? 다른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고 무거운 짐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 는 마음이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바라보면 참 자유를 얻게 됩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자유가 어디에서 옵니까? 십자가의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가 참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십자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나의 죄를 다 씻으시며 죄와 사망에서 승리하셨다는 것을 확신하며 믿을 때에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202장에서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보혈의 능력’ 이라는 찬송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깨닫고 믿을 때에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좌우편에 강도 두 사람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들이 거의 죽어갈 때, 한 강도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 메시아시다.’ 라는 것을 깨닫고 말하기를 “주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라며 예수님께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구 했습니다. 

그리하였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너는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진리를 알고 고백하게 되었을 때에 당장 구원을 받고 낙원이 약속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강도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운명에 처했지만 한 사람은 깨달음으로 죽음에서 해방과 자유를 얻고 천국의 영광을 얻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깨닫지 못하므로 영원 형벌을 받는 자리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깨닫는다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똑같이 교회에 와서 똑같은 설교를 들어도 어떤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깨달아 자유를 얻게 되고. 어떤 사람은 깨닫지 못하므로 왔다 갔다 하나 아무 효과가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깨달을 때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는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종의 멍에가 벗겨집니다. 

원하기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모두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긍정적인 꿈을 갖게 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을 때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인생의 목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면 마음에 평안만 얻는 것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갖게 됩니다.

십자기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이제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위해 살아야 하겠다고 마음에 결단하게 됩니다.

그러면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게 됩니다. 모든 부정적이었던 것이 이제는 긍적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바뀌어집니다. 꿈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꿈이 그 사람의 미래를 만들고 그 꿈으로 인해 그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달라지고 그러면 결국 축복의 삶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꿈이란 늘 새로워져야 하는데 문제는 사람의 노력만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어야 꿈이 생겨나고 이유가 있어야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얻은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어두움의 세력을 우리에게서 물리치사 십자가를 통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셨고, 우리가 강건하기 위해서 채찍에 맞아 주셨으므로 우리는 이런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님을 바라봄으로써 굉장한 자화상을 가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103:1-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러분 얼마나 멋진 자화상 입니까? 시편 기자는 어떻게 이런 자화상을 갖게 되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런 이름다운 자화상을 가졌는데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실제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우리를 대속해 주셨으니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과 고난을 통해서 얼마든지 아름다운 미래의 꿈과 자화상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아 하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인생의 아름다운 긍정의 꿈을 날마다 꾸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세상에 무엇보다 믿고 의지할 든든한 반석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 의지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큰 힘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의지할 참 대상을 몰라서 우상에게 절하고 우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가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반석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살면서 흔들리지 않는 터전과 반석위에 기대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세상에 아무리 부귀영화도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아무리 세계를 제패하는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해가지지 않을 것 같아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한 때 세계 최고의 기업들도 무너지고 판도가 달라지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변화무상합니다. 그런가하면 그렇게 건강하던 사람도 한순간에 쓰러지고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는 일들도 비일비재합니다.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고 한 것처럼 세상에 안개를 믿고 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까?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여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그 사랑은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지 아니하시며 무엇을 주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 
날이 변하고 계절이 변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가족 혈육이 다 변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단6:26 ‘그는 사시는 하나님 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라고 하였듯이 우리 주님의 은혜는 결코 변하지 않으며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는 변하지 않는 굳건한 반석이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세상의 어떤 위협에도 든든할 수 있습니다. 
원하기는 살아계신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더욱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는 세상 가운데 더욱 든든히 서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네 번째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의 언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의 말이 달라지게 됩니다. 
말에는 큰 힘이 있습니다. 

약3:3-6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우리의 혀는 삶의 방향을 운전하는 키와 같습니다. 
바다에서 거대한 화물선이 무사히 항구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은 밑에 있는 작은 키 때문입니다. 키가 있어서 배의 방향을 잡는 것처럼 혀도 우리 인생의 방향을 잡는 키라는 것입니다. 

혀가 방향을 잡는 대로 인생은 그리로 향해서 가게 됩니다.
실패로 방향을 잡으면 실패로 가고 성공의 방향을 잡으면 성공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주님의 피가 나를 깨끗하게 하였고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되었을 때에 생각이 달라지고 꿈이 달라지고 믿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언어도 자연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말에 자연적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고 하였듯이 마음에 믿은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이 달라져야 인생이 달라지는데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면 여전히 죄가 있고, 여전히 마귀가 있고, 유혹이 있고, 고통이 있고, 병이 있고, 가난이 있고, 슬픔이 있고, 낭패가 있고, 실망이 있고, 죽음이 있으니 부정적인 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부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니, 자꾸만 부정적인 것이 내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는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갈보리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운명이 달라진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말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달라지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몇해 전 한국 최고의 지성이라고 일컫는 이어령 박사가 적지 않은 나이에 하나님 앞에 나와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분이 얼마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분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분이 딸을 통해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의 이야기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이 우리나라가 그래도 이만큼 잘살게 된 이유가 코흘리개 아이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예전에 아이들이 어디 요즘 아이들처럼 깨끗이 하고 다녔습니까? 
늘 누런 코를 흘리고 다니면 부모들이나 어른들에게 듣는 말이 “야! 코 흥 해라! 홍! 흥해라! 흥!”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어령 교수가 말하기를 “흥하라” 는 것은 잘되라는 말이니 이 말을 듣고 시골이나 도시할 것 없이 부모들이 자식들 보고 모두 “흥해라! 흥! 흥하라! 흥!” 하니까 그 자식들이 다 흥해서 잘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유머의 말이지만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흥하라고 하는 것하고 망하라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망해라, 빌어먹어라” 그러면 망하고 벌어먹을 것인데, 아이들이 그 뜻도 모르고 흥했는데 결국은 흥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믿음이 좋은 가수 집사님이 말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였는데 가수는 대개 자기가 가장 히트한 곡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가수가 한 곡을 히트곡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개 5천번 이상을 불러야 하는데 그렇게 노래를 계속 부르니까 그것을 입으로 시인해서 노래 가사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야고보서 말씀처럼 말이 입에 있는 쇳조각 같이 되고, 배의 키 같이 되고, 불씨가 되어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늘 슬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슬픈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늘 긍정적이고, 밝고, 환한 노래를 부른 사람은 또 그대로 되더라는 것입니다.
말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주는 말을 복 받는 인생으로 변화시켜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 은혜를 헤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바라보고 사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어디에 살고 무엇을 하며 사는지 자신과 비교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썩어질 것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사람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께서 우리로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에서도 별과 같이 빛나는 삶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원하기는 그러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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