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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욱 기도합시다 (왕상 18: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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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기도합시다 (왕상 18:41-46)

   
오늘 본문은 선지자 엘리야의 아주 특별한 기도와 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는 아합왕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던 이스라엘에 영적 어둠이 본격적으로 뒤덮이기 시작한 때입니다. 

아합이 이방나라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세벨은 자기가 섬기던 바알 신을 이스라엘 땅으로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아합이 이것을 용납했을 뿐 아니라, 자기도 아내와 함께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또한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짓고 제단을 쌓게 했습니다. 이제 이세벨은 한 수 더 떠서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박해했고, 심지어 저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며 바알 앞으로 나가게 되었고, 서서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영적 어둠이 짙게 드리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아합 왕에게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을 것이라”(왕상 17:1) 이것은 우선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징계입니다. 그리고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심으로 비와 구름의 신인 바알이 가짜신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제 그 땅에 기근으로 큰 고통이 임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들을 그 기근 가운데서 먹이시고 돌보셨습니다. 이것이 왕상 17장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은 지 3년이 지난 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갈멜산의 영적 전투를 벌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진정 참 신이시고, 바알과 우상은 거짓 신임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거짓 신을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처단하셨습니다. 이것이 18장 본문 바로 앞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본문에 오면 하나님께서 다시 그 땅에 비를 내리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비와 구름의 신, 거짓 신 바알이 비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비와 구름을 창조하신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이야기 가운데 엘리야의 기도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신실한 종들의 사역 중에 핵심이 바로 기도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 가운데 우리는 엘리야의 아주 특별한 기도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에 대한 매우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큰 비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18:1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아합에게 가서 이제 하나님께서 큰 비를 내리실 것이라고 전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 말씀대로 아합에게 갔고, 큰 비가 올 것이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3년 동안 이스라엘 땅에 극심한 기근이 있었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큰 비를 내리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엘리야는 분명히 비가 올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또한 이것을 아합에게 선포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년 전에도 기근이 임할 것이라 말씀하셨고, 또 이것을 아합에게 선포하라 하셨는데, 말씀대로 기근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또한 믿음에 대한 체험도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분명히 큰 비가 올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된 것 아닙니까? 엘리야는 갈멜산의 영적 전투를 벌이느라 지치고 곤고한 상태입니다. 우상 선지자들을 처단하느라 온 몸이 탈진 직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순종하여 아합에게 선포했으니까 이제는 가서 쉬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본문 42절을 보면 엘리야가 다시 갈멜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것도 지난번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믿고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과 믿고 기도하는 일은 별개의 일입니다. 믿는다고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대로 되더라도 그 일은 기도의 응답은 아닙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하신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역사는 삼위일체의 동역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성부 하나님께서는 뜻을 세우시고 그 뜻대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다음으로 성자 예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실까요? 히 7:24-25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심이라”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실까요? 롬 8:27-28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 대신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 뜻대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고, 성자 예수님은 저 하늘 보좌 우편에서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우리 심령 안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를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체적으로 동역하시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는 일은 우선 중요합니다. 그런데 믿고 기도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하는 구체적인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엘리야는 지금 기도로 하나님과 동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3년 동안 기근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비를 내리시는데, 엘리야는 지금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도록 놀랍게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 시작했지만, 여기까지 에벤에셀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완공하고 입당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봉헌하게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믿고 거기 머물면 안 됩니다. 기도로 이 놀라운 역사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로 동역한 이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상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전 건축을 기도로 시작했습니다. 2008년 1만 시간 기도대행진으로 성전 건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2009년 5만 시간 기도대행진으로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2010 5만 시간 기도대행진으로 성전건축을 본격적으로 진척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제 2011년 5만 시간 기도대행진으로 성전건축의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기도해 왔지만 이제 마무리하면서 더욱 기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과 동역한다는 영적인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참여한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와 상을 베푸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귀한 일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빠짐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 함께 더욱 기도하는 일에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오늘 본문을 보면 엘리야의 아주 특별한 기도 자세를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말씀 그대로 해보았습니다.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보았습니다. 아무리 당겨서 무릎 사이로 가까이 하려고 해도 무릎 앞 10센티 이하로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앞 이마를 무릎 사이까지 당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자세는 서커스 단원들이나 기예 전문가들이나 가능합니다. 그리고 기계체조선수들이나 요가로 단련된 사람들이나 가능합니다. 보통 신체구조를 가진 사람들로는 불가능한 자세입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어떻게 이런 자세가 가능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오랜 기도의 습관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얼굴을 땅에 대고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이루어진 자세인 것입니다. 여기서 엘리야의 기도의 내공을 볼 수 있습니다.

성서신학자들 역시 이 자세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이 자세에서 세 가지 의미를 지적합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땅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 앞에 가장 낮은 자리에서 기도를 드렸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창 18:27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겸손하게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오만시간 기도대행진에는 엘리야처럼 아브라함처럼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간절함입니다. 

땅에 엎드렸다는 것은 꼭 이루어주시기를 간구하는 간절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마 15:21 이하를 보면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께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 간청하여 고침 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서 이 여인은 이방인이라고 예수님께 외면당하고 또한 무시당했지만 그래도 물러서지 않고 간절하게 청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하시며 고쳐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오만시간 기도대행진에는 엘리야처럼 가나안 여인처럼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기도의 깊이입니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넣었다는 것은 모든 외부의 시선과 소리를 차단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여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 6:6에서 이렇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깊은 골방으로 들어가 깊은 기도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만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깊은 기도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오만시간 기도대행진에는 엘리야처럼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더욱 깊은 기도를 드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본문을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기도하면서 수발드는 사환에게 한 가지를 지시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서 비가 오는 징조가 있나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갈멜산은 이스라엘에서 북서쪽에 있는 산으로 지중해와 연해있습니다. 그리고 지형 상 바다 쪽에서 서풍과 함께 구름이 몰려와서 비가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지금 비가 내리기를 믿고 기도하면서 비가 내리겠는지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사환이 보고하기를 아무런 징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사환에게 다시 명을 내립니다.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계속 기도하고 있고, 사환은 비가 올 징조가 있는가를 보려고 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바다가 보이는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기도에는 끈기가 필요하고,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기도가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면서도 기도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기도가 정말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힘이 드는 것은 우선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쪼개서 기도의 골방으로 찾는 것입니다. 기도에 우선권을 두고 다른 일정들을 조정하기가 힘이 듭니다.

다음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왔다고 해도 기도에 몰입하기가 힘이 듭니다. 긴 시간 기도 자리를 지키기가 힘이 듭니다. 그리고 기도에 집중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도가 힘이 드는 것은 기도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입니다. 기도 자리에 나오고 또 기도에 집중해도 기도의 응답이 생각만큼 빨리 그리고 바라는 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에 귀 기울이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기에게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런 기도 응답이라 할 수 있는 징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답답해 하다가 결국 포기해 버리고 말 때가 많습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끈기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인내와 기다림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까지 다시 가지 못하고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에서 포기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일본 춘추전국시대에 천하를 주름잡았던 세 인물이 있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어느 날 현자가 그들에게 울지 않는 앵무새를 보여주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제일 먼저 오다는 “울지 않거든 죽여버리자”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도요토미는 “울지 않거든 울게 만들자”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도쿠가와는 “울지 않거든 울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그때 이 현자는 도쿠가와에게 언젠가 천하를 통일할 것이라 말하고는 그 앞에 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자는 이 도쿠가와와 같은 태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하고 당장 어떤 응답의 결과를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오만 시간 기도대행진에는 일곱 번까지 다시 가는 인내로 더욱 기도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2011년 오만 시간 기도대행진을 시작합니다. 모두가 참여하셔서 기도에 더욱 힘써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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