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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 (느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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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느 9:1-8)
  

들어가는 말

지난 8월 27일자 국민일보 ‘미션 라이프섹션’에 ‘가수 박재란'에 대한 인터뷰 기사가 나왔습니다.
가수 박재란 아시지요?
이분은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낸 스타였습니다.
‘산 넘어 남촌에는’ ‘님’ ‘소쩍새 우는 마을’ 등 1,000 여곡을 불렀던 가수였습니다.
그 당시 로얄 살롱을 탄 사람은 연예인 중 가수 최희준과 박재란 밖에 없었답니다. 

지금은 안산 동산 교회의 권사로서 ‘노래하는 전도사’의 삶을 살아가며, 딸 가수 박성신도 목사사모가 될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가정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아픔도 있었습니다.
두 번의 결혼 실패, 악성 위궤양과 신장염 등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같은 육신.
그는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다 놓아도 성경만을 붙잡아라. 거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다.”

“예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온몸이 오싹해진다. 예수 없는 인생은 공허할 뿐이다. 세속적인 기쁨은 움켜쥐면 쥘수록 허무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스타들이 비극으로 생을 마쳤는가?”
가수 박재란은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삶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느헤미야서는 주전 6세기 이스라엘 백성이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을 때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바벨론에게 망하고, 이어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성벽은 무너지고 백성의 삶은 피폐되어 그야말로 초토화된 상태였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궁에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동생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을 듣자 너무 슬퍼서 통곡하며 금식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왕의 허락을 받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와서 많은 시련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합니다.

그러나 성벽 재건으로 이스라엘의 재건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벽 재건과 함께 영적 재건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를 모시고 민족 부흥회를 엽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열린 이 집회를 통해 백성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율법의 말씀대로 살기로 다짐합니다. 
그 결과 다시 시작한 것이 초막절이었습니다. 

매년 가을에 곡식을 수확한 후 작은 초막을 짓고, 과거 광야시절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현재의 삶을 기뻐하고, 내일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꿈꾸며 절기를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절기를 지킴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구체적인 삶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느 8장까지의 내용입니다.

기도

이제 9장1절을 보겠습니다.
“그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기도했다는 얘기지요?
여러분,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기도응답을 받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가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이다.” 
왜 이 말이 중요합니까? 
예를 들어 설명해보지요.
여러분도 아이들을 키울 때 경험하셨지요?
저의 아이가 아주 어릴 때 밖에서 놀다 들어와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보니까 얼굴은 먼지로 뒤덮여 있고, 손엔 더러운 것들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엄마는 아이에게 무엇부터 하라고 요구합니까? 
화장실에 가서 얼굴 씻고, 손 씻으라고 하지요?
아이가 요구한 것은 아이스크림이지만 엄마의 생각은 손부터 씻는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손과 입에 더러운 것이 있는 상태로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줄 수 없습니다. 
엄마에게 있어서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주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손부터 씻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는 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C.S.루이스가 기도의 응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응답의 여부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문제다. 경우에 따라 들어주시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거절하시기도 하는 것은 그분의 권한이다. 기도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성공주의적인 기도는 성경적 기도가 아니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마술에 가깝다.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얻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기 원하시는 그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내게 최고로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기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깨어져야합니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벌였습니다. 
야곱이 원했던 것은 형 에서의 마음을 녹여서 자신에게 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은 야곱의 요구보다 야곱의 변화였습니다. 
에서의 마음을 녹여달라고 기도했던 야곱에게 하나님은 “야곱아, 네 마음부터 먼저 녹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야곱이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 보게 하셨습니다. 

야곱, 그는 속이는 자, 거짓말쟁이, 도둑놈입니다. 
그는 20년 이상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라반을 피하여 얍복 강까지 도망쳐 온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절룩거리게 만드셨습니다. 
환도뼈가 부러졌다는 것은 야곱이 깨어졌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형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야곱은 에서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야곱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목표입니다.
야곱이 깨어졌을 때 야곱의 기도는 자연스럽게 응답을 받았습니다.

회개

깨어짐을 우리는 '회개'라고 말합니다.
회개에는 3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회개는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적인 면이지요.

1974년 3월 10일은 필리핀 열대우림의 한 섬으로 파병되었던 일본의 한 병사가 약 30년 만에 자유를 얻은 날입니다. 
1944년 2차 세계대선이 한창일 때 오노다는 필리핀으로 파병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적의 공격을 막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곧 전쟁은 끝났고 일본은 항복했습니다. 
그러나 오노다는 일본의 항복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30년 동안 그는 나름대로 섬을 방어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필리핀 외딴 섬에 마지막 병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일본 정부는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해 수십만 달러의 돈을 투입하여 전단, 신문, 사진, 친구들의 편지를 정글에 투하했습니다. 
대형 스피커로 나오라고 권유하는 방송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노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의 전직 상관이 나서서 직접 설득한 후에야 오노다는 동굴에서 나왔는데, 그를 설득하기 위해 동원된 인원만도 무려 13,000명에 달했습니다.

그가 쓴 <항복은 없다 : 나의 30년 전쟁>이라는 자서전에서 그는 그가 동굴에서 나온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마치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내가 그동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처음으로 제대로 깨달았다……끝이었다. 탄창을 풀고 실탄을 제거했다……항상 메고 다녔던 군장을 벗고 총을 그 위에 내려놓았다. 그때 전쟁은 끝났다.”
오노다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오노다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려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회개의 출발점은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인 됨을 알려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병원의 X-Ray기에 비유하며 설명 드린 적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기 전에는 건강한줄 알았는데 X-Ray기 앞에 서서 속을 비춰보니, 위는 축 늘어져 엉망진창이고, 간도 1/3은 죽어 거무죽죽하고, 동맥은 피가 통하지 못할 정도로 기름때가 끼고.......
의사선생님이 “아이고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하겠어요? 형편이 없네요.”
“나는 하루 3끼 밥도 잘 먹고 소화도 잘되는데.......”
“밥 잘 먹는 게 다 뭡니까? 오늘 안 오셨더라면 큰 일 날 뻔했습니다. 이 사진 보세요!”
X-Ray사진을 보니깐, 
“너는 이런 놈이야. 정신 차려!”
“너는 이런 놈이야. 의사한테 빨리 가봐!”
“너는 이런 놈이야. 빨리 약 먹어!”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X-Ray기의 역할은 몸을 진단해서 병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성경이 바로 이 X-Ray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는 은혜가 임하길 축원합니다.
우리교회는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후반기 성경통독성회를 갖게 됩니다.
이번 성회에도 그런 은혜가 충만할 줄 믿습니다.

둘째, 회개는 상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감정적인 면이지요.
지난날의 삶이 후회스럽고, 바보스럽습니다. 
이렇게 회개에는 감정적인 요소를 동반하지만 감정이 곧 회개는 아닙니다. 
감정에 머물러 있으면 죄책감에 빠집니다. 
죄책감은 회개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죄책감에 머무르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죄책감에서 곧 믿음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후회와 ‘세리’의 회개의 차이가 여기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후 후회도 하고, 뉘우치기도 했습니다. 
마태복은 27장 3-4절의 말씀입니다.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스스로 뉘우쳐’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그는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는 뉘우치고 후회했으나 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죄책감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그는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달랐습니다. 
그는 가룟 유다와 같이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가슴을 치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회개는 자신에 대한 절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절망으로 끝나면 가룟 유다처럼 자살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자신에 대하여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대로, 사람은 앞에서 보면 실망이요, 옆에서 보면 낙망이요, 뒤에서 보면 절망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보면 소망입니다. 
회개는 나에 대해서는 절망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소망을 갖습니다. 
이것이 세리의 자세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복음성가-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셋째, 그래서 회개는 믿음입니다.

의지적인 요소이지요.
한 필리핀 소녀가 실제로 기도 중에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마닐라에 있는 주교에게 그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주교는 이 소녀를 몬시뇨르 신부에게 상담 받도록 했습니다. 
신부는 소녀의 이야기가 진정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 후 또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다음 주에 만난 신부는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이번 주에도 예수님을 만났니?” 
“예, 신부님, 그랬어요.”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신부가 물었습니다.
“지난번 너는 나에게 고해성사를 했지?” 
“네, 신부님.” 
“혹시 고해성사한 죄에 대하여 주님께 물어보았니?”
“네, 신부님. 주님께서 내 죄를 용사하셨는지에 대하여 여쭤보았습니다.”
“그래?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든?” 
이때 어린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잊어버렸다고 하시던데요.”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그 고백된 죄를 잊으신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 43: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자녀의 잘못을 기억하고 있으면 기억하고 있는 부모가 더 괴롭고 힘들어요.
성도들의 죄를 기억하고 있으면 하나님 아버지가 더 괴롭고 힘듭니다.
그래서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너무도 잘 잊어주시는 주님’ 
그렇게 죄 많은 우리가 또 다시 회복되고 새롭게 되는 것은 ‘너무도 잘 잊어주시는 주님’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습니다. 
그래서 회개는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자기 변화입니다.
자기변화를 이루자면 깨어짐이 필요합니다.
울어야 합니다.
울어야 응답 받습니다.
야곱이 깨어졌을 때 기도응답을 받은 것처럼 깨어짐으로 기도응답이 풍성한 교우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가수 박재란처럼 “예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온몸이 오싹해진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교우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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