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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빌 4: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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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빌 4:14-18)


기독교 윤리에 대하여 세계적 권위자인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는 인간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누어 말했습니다. 

첫째, 목적 지향적인 사람입니다.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단적 이기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일 수도 있고, 내가 잘살기 위해서는 남이 가난해도 괜찮습니다. 이것을 비유로 말하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에 나오는 강도와 같은 사람입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때려 눕혀 돈 몇 푼이나 옷가지나 빼앗아 가면 그만입니다. 그가 죽든지 살든지 상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 공동체 규범에 전적으로 예속된 사람입니다. 
어떤 규범을 만들어 놓고 스스로 그것을 지키는 사람, 소위 지성인입니다. 이 또한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은 상관할 것 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만 사는 사람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나오는 레위인이나 제사장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사람 돌보다가 죽기라도 한다면 시체를 만진 부정한 손으로 하나님께 제사 들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이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자기 규범에 살고, 또 어떤 공동체 규범을 철저히 지키면 그것으로 자기의 할 일을 다한 줄로 아는 사람입니다. 

셋째, 책임적인 존재입니다. 
즉 다른 사람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된 것도 나 때문이고, 다른 사람이 가난한 것은 내가 도와주지 않아서 그런 것으로 아는 사람 즉 다른 사람의 것까지 내가 책임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이 사회가 잘못된 것도 나의 책임이요, 이 세상이 잘못 된 것도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고 느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매사에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부자라면 가난한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내 아들은 대학에 입학해서 잔치라도 열고 싶도록 기쁘지만 옆집 아이가 낙방했기에 자신의 기쁨을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알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곧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빌립보교회 교인들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 교인들은 그들도 인간이지라 문제도 있었지만 인간미 넘치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참교회의 모습,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Ⅰ. 바울사도의 괴로움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본문 14절에“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 하였도다.”라는 말씀이 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로마 감옥에서 고통당하고 있을 때 빌립보교회 교인들은 함께 괴로워하며 모금을 하여 바울사도의 옥바라지를 했습니다. 이웃의 괴로움에 동참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있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여러 명의 학생들이 삭발을 하고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삭발이란 데모나 반항의 의미로만 하는 것으로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삭발한 학생들을 야단하기 위해 한 어린이를 나오게 하였더니 삭발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 반에 한 친구가 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를 받고 보니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부끄러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부끄러움을 덜어주기 위해 일곱 명의 친구들이 머리를 깎았다는 것입니다. 철없는 어린아이들이지만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마태복음 25장 31절~45절에는 세상 끝날 심판 때에 양과 염소를 구별하여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양광 염소를 분리하는 기준이 이웃 사람들의 어려움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 사람들의 어려움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어려움에 참여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반면 주위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6.25 동란 무렵에 있었던 일입니다. 경남 사천교회 여전도회원들이 사모님과 함께 산기도를 갔습니다. 산속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기도를 했습니다. 사모님도 한적한 곳을 찾아서 기도를 하려는데 웬 신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소리 나는 쪽으로 가보았더니 어떤 남자가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사모님은 음식을 가져다가 먹도록 했습니다. 그 사람은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린 후 그곳을 떠났습니다. 얼마 후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공산군이 사천에 쳐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모두 총살시키려 했습니다. 그때 공산군 고급장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물었습니다.“몇 달 전 산속에서 허기로 스러져 있던 사람에게 밥을 준 사람이 여기 있소?”“예, 저입니다.”사모님이 대답을 했습니다.“그때 그 사람이 바로 나요. 내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소. 지금 그 은혜를 갚을 테니 얼른 집으로 가시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총살이오.”“안됩니다. 저 혼자만은 살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가족과 마찬가지입니다. 다 살려 주시든지, 아니면 저도 같이 죽이든지 하십시오.”고민하던 그 장교는 모든 사람을 살려 주었습니다. 밥한 그릇의 선행이 마을 사람 모두를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

반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하여 냉담하면 나도 망할 수 있습니다. 뺑소니차에 치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한 여학생을 택시 운전기사가 차에 태우고 근처 병원을 갔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보호자도 없고 바쁘기 때문에 환자를 받을 수가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다른 여러 병원을 갔지만 역시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병원을 다니는 동안 그 학생은 죽고 말았습니다. 후에 그 여학생의 신원을 확인해보니 첫 번째 찾아갔던 병원의 원장 딸이었습니다. 

“모든 만남은 신적인 만남이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웃의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이웃의 일만이 아니고 그것은 곧 나의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일인 것입니다. 

Ⅱ. 빌립보 교회는 받은 은혜에 보답했습니다. 

본문 15절에“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마게도냐 지역의 빌립보란 도시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후 구원받은 것에 더없이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훗날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날 때 바울사도를 도왔습니다. 은혜를 아는 교회였습니다. 다른 교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는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바울을 도왔다고 본문 16절에 밝히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는 누구나 서로 주고받으며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사이에도, 형제사이에도, 부부사이에도 주고받는 거운데 기쁨이 있게 됩니다. 이는 삶의 윤활유와 같습니다. 

감사의 절기인 추석 명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은혜를 되새기며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고유명절이 지나고 나면 불화로 파경에 이르는 가정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특히 가정주부들은 원인모를 질병을 앓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면 아무 이상이 없는데 여러 가지 증상의 질병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것을“걸프전 증후군”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걸프전 때, 전쟁을 앞둔 병사들이 불안과 공포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갑자기 눈이 멀거나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증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진단을 받아보면 아무 이상이 없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는 질병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것은 꾀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의 스트레스에 신경을 써야 하고, 힘들게 일하는 아내를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들도 명절을 지내면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잊고 살아가는 은혜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사람에게 작은 눈썹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알았고, 막대기처럼 되어버린 오른 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을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깨달았습니다.”2000년 7월 명문여대 졸업반이었던 한 여학생이 학교에서 집으로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전신 55%의 3도 중화상을 입고 7개월 동안 11차례의 수술을 감당해낸 뒤 행복의 전도사로 널리 알려진 이지선양의 고백입니다. 

Ⅲ. 빌립보교회는 복음전도에 협력했습니다. 

본문 15~16절에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빌립보를 떠날 때만 아니라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도 선교헌금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모습은 다른 교회에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고후 8:1)라고 했습니다. 고린도교회에게 빌립보교회를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빌립보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역의 중심역할을 했던 도시였습니다. 

예루살렘지역에 기근이 들어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빌립보교회를 포함한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들은 정성을 다해 구제 헌금을 모아 보냈습니다. 그들은 넉넉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베푼 그들의 형편을 고린도후서 8장 2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그들에게도 환란과 시련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극히 가난했습니다. 그런데도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돕고, 고난당하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자 풍성한 연보를 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실천하며 복음증거에 힘쓰는 교회가 빌립보교회였습니다.

사람은 많지만 사람이 귀하듯, 교회는 많지만 참된 교회는 귀합니다. 우리는 빌립보교회를 통해 우리교회가 꿈꾸는 건강한 교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참된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므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으며,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은 왜 오셔서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궁극적인 목적은 단 한 가지 영혼 구원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주님의 심령을 베드로후서 3장 8절~9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불신 영혼이 돌아와 구원받기를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복음증거는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증거는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충성입니다. 
복음증거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최고의 사랑입니다. 
복음증거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보증수표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약속 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 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19-20)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 사람을 누가 해하겠습니까? 이 사람은 승리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대상 11장 9절에“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므로 강성했던 다윗은 이렇게 소원하며 기도했습니다.“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시편 71:18) 그도 장수하기를 바랐습니다. 장수함의 목적은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과 함께 하셨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 다윗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천안 명물로 널리 알려진 호두과자는 그 주인이 신복순 권사라고 합니다. 호두과자 수입으로 한때는 충남에서 소득세와 재산세를 가장 많이 내는 재벌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보증을 잘못서서 전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전 재산을 잃고 난후 그는 깨닫기를, 아무리 욕심을 부리며 돈을 모아도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만 위해 살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일곱 개 교회를 지었고, 지금도 복음증거를 위한 성전 건축에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썩어질 땅의 것만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19절~21절 말씀하시기를“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이웃의 괴로움을 보고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참여하여 사랑을 베풀며 무거운 짐을 나누어 졌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보답하고자 노력을 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복음증거를 위해 최선을 다해 협력했습니다. 

사랑의 실천과 복음증거는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와 성도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을 다하는 곳에 하나님의 은총이 풍성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이 고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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