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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물의 양식 (시 8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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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양식 (시 80:1-5) 
 
 
어떤 시인의 글에서 엄마가 아들에게 맨 처음 준 것은 눈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아들이 엄마에게 맨 먼저 드린 것도 눈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엄마는 아기를 낳는 진통을 겪으며 아파서 울고, 숨 막히는 산고 끝에 태어난 아기를 보며 새 생명의 환희와 감격에 북받쳐 눈물을 흘립니다. 이 눈물의 성분은 얼마의 수분과 염분만이 아닌 사랑과 생명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편을 노래한 아삽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였다고 하였습니다. 아기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소리를 지릅니다. 엄마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따라 젖을 물립니다. ‘우는 아기 젖 준다.’는 말처럼 아기의 울음은 양식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물로 지새우는 사람을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5: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눈물의 양식으로 먹이시기 때문입니다.

1. 환난의 눈물입니다.

폭군 아합 왕 시절 선지자 미가야는 감옥에서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먹었습니다(왕상 22:27). 환난은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딤후 3:12). 이사야 30:20에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1) 국가적인 환난입니다.

본문 4-5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수난 당하는 자기 민족을 위한 기도이며 하나님의 긍휼로 회복시켜 달라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나라를 수립한 이후 연속 되는 국가적인 환난에 시달렸습니다. BC 721년 앗수루에 의하여 북조 이스라엘이 멸망당했고 예루살렘은 BC 586년 바벨론에 의하여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포로에서 회복된 후에도 BC 175년부터 100년간 수리아의 통치를 받았고, AD 70년 이후에는 로마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눈물의 백성입니다. 앗수루 왕 산헤립의 침공을 받았을 때 히스기야 왕은 성전에 올라가서 통곡을 했습니다(왕하 19:14-19). 그의 후손들이 이방인에게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도 바벨론 강변에 모여 한없이 울었습니다(시 137:1). 이처럼 범죄한 백성은 눈물의 양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2) 개인적인 환난입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일생동안 환난과 역경에 시달렸습니다. 시편 3:1에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 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고 하였습니다(시 18:5). 성도가 고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것 때문에 눈물이 나게 됩니다. 옛날 고라 자손들은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시 42:3). 성도가 환난을 통하여 흘리는 눈물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 그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이끌어내곤 합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고 하였습니다(왕하 20:5).

2. 회개의 눈물입니다.

시편 102:9에 “나는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나는 눈물 섞인 물을 마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범죄한 사람은 자기의 죄를 자복하면서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습니다(마 11:21). 그때 흘러내리는 눈물이 재를 적시고 그것이 입으로 들어갑니다. 회개하는 자는 눈물의 양식으로 영혼이 새롭게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1) 민족적인 회개가 있습니다.

사사기 2:1-5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와 백성들의 지은 죄를 책망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자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보김(우는 자)’이라고 불렀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면서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고 하였습니다(애 3:48).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그 기초 돌을 놓았을 때 옛날의 솔로몬 성전을 기억하는 족장들이 아우성을 지르며 대성통곡하였습니다(스 3:12). 아무리 범죄한 백성이라도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요시야 왕이 백성을 모아 놓고 율법서를 읽으며 회개운동을 전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고 하였습니다(왕하 22:19).

2) 개인적인 회개가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죽게 하고 그 아내 밧세바를 취한다음 나단 선지로부터 책망을 받았을 때 즉시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였습니다(삼하 12:13). 그 일로 인하여 다윗은 평생 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편 6:6에는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56:8에는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눈물의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합니다. 시편 51:17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를 듣고 밖에 나가 통곡을 하였습니다(마 26:75). 믿음의 회개는 눈물의 양식이 되어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게 되는 것입니다.

3. 사명의 눈물입니다.

사무엘상 6:12에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울면서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두 암소와 같이 사명을 받은 사람은 자기의 소임을 다 하기 위하여 눈물의 양식을 먹는 자입니다.

1) 전도자의 사명입니다.

시편 126:5-6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복음 전도자를 씨 뿌리는 자로 비유하였습니다. 땅에 떨어진 씨가 저절로 열매를 맺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토양이라도 농부의 많은 수고와 눈물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를 명하실 때 그 가는 길에는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10:17-23). 거부하고 박해하는 세력에 의해서 고생의 떡을 먹고 고생의 물을 마시기도 합니다(왕상 22:26-27). 예레미야는 유대왕국의 멸망을 내다보면서 왕과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지만 거부하는 백성들 때문에 눈에서 눈물이 시내처럼 흘렀습니다(렘 13:17).

2)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목자는 양무리를 위하여 목숨을 거는 자입니다(요 10:11).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자기가 대가를 치르기도 합니다(히 13:17).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고별 설교를 하면서 모든 겸손과 눈물로 그들을 가르치고 섬겼다고 하였습니다(행 20:19-20). 그것은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의 심정으로 고통의 눈물과 사랑의 눈물이며 보람과 감격의 눈물입니다. 사도 요한은 유배지 밧모섬에서 인봉된 계시의 비밀을 알고자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계 5:4). 이처럼 목회자는 하나님께 매달리며 말씀과 성령의 은사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입니다. 그뿐 아니라 양떼의 영혼과 그들의 헌신에 감격하면서 또 눈물을 흘립니다. 바울은 옥중에서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의 눈물을 생각하고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딤후 1:4).

4. 소망의 눈물입니다.

환난으로 흘리는 눈물과 죄로 인하여 애통하는 눈물, 또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때문에 눈물의 양식을 먹는 자에게는 소망에 벅찬 감격이 있습니다. 시편 84:6에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고 하였습니다.

1) 기다림의 눈물입니다.

소망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오랜 기간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냅니다.

요셉은 어릴 때 해와 달과 열한 별의 꿈을 꾸었으나 그 꿈을 이루기까지 길고도 험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노예로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기약 없이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아픔을 가지고 많은 세월동안 눈물의 양식으로 지새웠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역경에도 참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 기간 동안 매우 갈급한 심정으로 눈물의 양식을 먹게 됩니다(시 42:3). 바울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롬 8:24-25). 기다리는 자가 흘리는 눈물입니다.

2) 회복의 눈물입니다.

고난이 극심할수록 또 기다림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회복의 의미가 깊고 감격스럽습니다. 종으로 팔려갔던 요셉이 총리가 된 다음 자기 앞에 엎드린 형들을 보고 소리쳐 울었습니다(창 45:2). 아들을 잃고 백발이 음부에 내려가는 아픔을 겪으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던 야곱이 요셉과 만나서 목을 안고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창 47:29). 그들의 만남과 눈물은 오랜 고통과 분노와 아픔을 씻은 듯이 날려 보내고 환희와 감격으로 회복시켜주었습니다. 탕자 비유에서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으니 품꾼의 하나로 여겨 달라.”는 아들과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고 하는 아버지는 다같이 회복된 기쁨에 눈물을 흘렸습니다(눅 15:20-24). 그리스도인은 예외 없이 눈물 골짜기를 통과하고 눈물의 양식을 먹게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흘린 눈물을 닦아 주시고 큰 위로를 주십니다(계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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