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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와 같이 걷는 길이 즐겁다 (시 119:97-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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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같이 걷는 길이 즐겁다 (시 119:97-106)
 

지나가는 100사람에게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를 묻는다면 답은 아마 틀림없이 ‘그럭 저럭 삽니다,’ ‘마지못해 삽니다,’ ‘죽지 못해 삽니다.’ 순 일 겁니다. ‘기쁩니다.’ ‘즐겁습니다.’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수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겁니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설교 한 지가 20년은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20년 전에도 제 삶은 기쁘고 즐거웠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제 답은 변함이 없습니다. 

왜 삶이 즐거울까를 단순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정적으로 안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는 일이 안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경제와 가정과 목회에 복을 주셔서 항상 기쁘고 범사가 감사한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경제적으로 참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서 늘 쪼들리며 살았습니다. 전에도 말씀을 드린 기억이 있는데 결혼을 한 1977년도에 저희 집 한 달 수입은 20대 초등학교 교사 봉급의 1/3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그것이 결혼 전까지 제 경제 수준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가난했으면 아마 불행을 느꼈을 겁니다. 겨우 밥만 먹고 사는 수준이었지만 불행은 느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참 많이 불편하다는 생각은 많이 했습니다. 사실 그때도 저는 즐겁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가난함이 불행과 고통으로만 여겨졌다면 신학교엘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선택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불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에 평생을 가난하게 살지도 모르는, 아니 그럴 가능성이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았던 목회의 길을 선택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경제적인 안정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제가 매달 헌금과 구제와 선교로 지출하는 액수가 평균  1,000만 원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헌금과 구제와 선교로 지출한 액수가 118,000,000원 정도 되었고 올해도 계산해 보니 지난 8월까지 8천 만 원 정도 지출한 것을 보니 매달 천 만 원 정도 지출하며 사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제 생활이 크게 쪼들리지 않습니다. 본시 아내가 살림을 낭비하지 않게 하기 때문에 그렇기는 하지만 덕분에 늘 경제적으로 여유를 느낍니다. 경제적으로 좀 어려웠을 때에도 즐거웠기 때문에 오늘의 즐거움이 경제적인 여유 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분명 없지만 그래도 구태어 부인할 마음은 없습니다.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정적으로도 제 삶은 꼭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거의 매일 아버지의 술주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일주일에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날이 그렇지 못한 날 보다 많이 적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잊고 아버지의 좋은 점만 기억하고 그것을 남에게 이야기하며 살았지만 저의 가정에서의 삶은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 때에 가정적인 안정을 복으로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아내와 아이들과의 사이가 좋다는 것입니다. 아내와의 사이는 나이 들어 갈수록 더 좋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함께 있는 것이 너무 좋고 편합니다. 집회 때문에 이곳 저곳 다니느라 함께 지내지 못하는 날이 제법 되지만 그냥 아내가 있다는 것만으로 저는 늘 편하고 마음이 좋습니다. 둘 사이가 좋기 때문에 만약 제가 먼저 세상을 뜨던지 아니면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서 아내나 제가 혼자 있게 되었을 때 힘들까봐 많이 기도합니다. 상식적으로 이겨낼 수 없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믿음으로 이겨내 어렵지 않게 해 달라고 미리, 미리 기도합니다.

저도 보통의 한국의 아버지처럼 말 수가 적고 무뚝뚝한 축에 속합니다. 시간적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대화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습니다. 보통의 부자지간처럼 자식과의 사이가 서먹거릴 수도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아이들과의 사이가 너무 좋습니다. 그래서 삶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어제도 세 아들과 모두 전화 통화를 하였습니다. 큰 아들은 지금 아프리카에 있어서 제가 전화를 하였습니다. 둘째와 셋째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었습니다. 왜 전화했느냐고 물었더니 둘 다 다 ‘그냥’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특별한 용건이 없어도 늘 자식들에게서 그냥 전화를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감사하게도 바르게 잘 자라 주었습니다. 

아들만 셋이 있는 집에 손녀를 셋이나 주셨습니다. 큰 손녀와 둘째 손녀가 미국에 있어서 큰 즐거움이 없어졌는데 하나님이 막내아들이 낳아준 셋째 손녀가 주말마다 집에 와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적지 않게 힘들었던 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정되고 복된 가정의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목회와 사역의 복을 주셨습니다. 저는 열등의식이 많았고 많이 심하게 내성적이어서 목회와 사역에 성격적으로 적합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저를 아는 어느 누구도 제 목회와 사역이 오늘 같게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를 아는 대부분은 저의 지금의 저를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에 대표가 있다면 그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접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제 목회와 사역이 신기합니다. 제가 이런 목회와 사역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보다 훌륭하고 성공적인 목회를 하는 분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래서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의 제 목회와 사역은 저의 능력을 훨씬 뛰어 넘은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교육전도사를 할 때부터 제 목회에는 부흥이 있었습니다. 힘든 일도 많이 있었지만 목회는 늘 즐거웠습니다. 청량리 중앙교회, 인천제일교회, 영락교회, 승동교회, 동안교회, 높은 뜻 숭의교회, 높은 뜻 연합선교회 그리고 높은 뜻 씨앗교회로 이어지는 목회가 저로서는 언제나 제 능력을 뛰어넘은 성공이었습니다. 저는 요즘 새롭게 개척된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를 섬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몇 년 전 하나님이 새롭게 시작하게 해 주신 재단 사역이 너무 즐겁습니다. 열매나눔재단의 일이 너무 너무 잘 됩니다. 잘되고 발전하는 속도가 빠릅니다. 녹십자 회장님이 돌아가시면서 자신의 거의 전 재산을 출연해 주셔서 세우게 된 미래나눔재단의 일도 잘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미래나눔재단은 우선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탈북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미래나눔재단의 사무총장직을 맡으신 장로님이 너무너무 그 일을 잘 감당해 주셔서 아이들에게 학비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을 잘 관리하여 함께 캠프도 가고 뮤지컬도 가고 매달 책을 사주어 읽게 하고 독후감을 쓰게도 하고 멘토들을 붙여서 아이들 하나 하나의 삶을 살펴서 어제 두 번째 장학금을 수여하였는데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아직도 저는 꿈을 꿉니다. 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리고 더 감사한 것은 그 꿈이 다 몽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꿈이라는 것입니다. 꿈이 순간순간마다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그 복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제가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여보 복이 바람으로 부는 것 같아....!!!!’

제가 이런 복을 누리며 사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상투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실는지 모르겠으나 그 답은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경제와 가정과 목회와 사역에 복이 되었습니다. 절대적이고 치명적인 복이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교회 다니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저에게 은혜를 받을 줄 아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설교 중에도 곧잘 은혜를 받고, 찬송 중에도 감당 못할 은혜를 받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는 은사를 주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저는 믿어졌고 부족하지만 순종해 보고 싶은 마음이 늘 기본으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도 원죄를 가진 죄인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보다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훨씬 더 많았지만 하나님은 어쩌다가라도 순종한 말씀을 크게 보시고 큰 복을 제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 이하에는 우리가 잘 아는 십일조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외면하며 삽니다.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저도 십일조는 부담스럽습니다. 

어쩌다가 잠시 재정적으로 쪼들리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로서는 적지 않은 십일조 헌금을 미루지 않고 낸다는 것은 요즘도 부담스럽고 조금 어렵습니다. 그래도 저는 십일조에 붙어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믿어졌습니다.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땅에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않나 보라”는 말씀이 저는 믿어졌습니다.

십일조는 정말 온전하고 흠 없이 드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상속해 주신 집을 몇 번 사고 팔았습니다. 살 때와 팔 때가 늘 값이 달랐습니다. 그 집을 팔 때면 늘 살 때 가격과 비교하여 상승한 부분만큼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도 은행에 저축한 돈에 이자가 붙어도 잊지 않고 십일조를 떼었습니다.

목사인 제가 거의 매달 천 만 원 정도의 헌금과 구제와 선교비를 뗄 수 있게 된 것은 “하늘 문을 열고 땅에 복을 쌓을 곳이 없도 붓지 않나 보라”시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참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들어오고 싶으시면 그냥 ‘나다’하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저는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들어오시는 것이 하나님에게 뿐만 아니라 저에게 옳고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함부로 막 들어오시지 않으십니다.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고 제가 문을 열어 드릴 때 까지 기다리십니다. 저는 그것을 ‘하나님의 예의’라고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 보니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례하지 않으시고 피조물인 우리들에게도 예의를 갖추시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이 말 수 적고 무뚝한 아버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들 셋과 친구처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복을 받게 하였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문을 열어주기 까지는 밖에서 기다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실수 할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인정해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름 예의를 지키려고 문 밖에서 기다려 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매우 중요한 신앙과 삶의 원칙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따라 살 것이냐 욕심을 따라 살 것이냐?’ ‘ 네 삶의 주인이 너냐 나냐?’를 묻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네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죽고 망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교회와 교인들과 목회자들이 어려움을 격는 이유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자신이 교회의 주인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사가 주인인 교회, 장로가 주인인 교회, 서로 주인이 되려고 목사와 장로가 주도권 다툼을 하는 교회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는 그리스시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신앙고백을 하는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며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는 말씀이 제 목회에 큰 교훈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제 삶의 주이십니다’는 바른 신앙고백이 천국의 열쇠와 같은 능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 (마 16:24)이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쉽지 않지만 교회와 목회에서 나를 부인하고 늘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나타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신경 썼습니다. 정말 천국의 열쇠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목회와 사역이 기적처럼 쉽게, 쉽게 부흥하고 발전한 것 같습니다.

요즘 복이 바람으로 부는 것 같은 삶을 사는 저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잠언 16:18 말씀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아멘 이 말씀을 좀 더 자극적으로 기억하기 위하여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는 말씀을 좀 더 자극적으로 번역하여 제 스스로에게 날마다 기억하게 합니다. 그것은 ’까불면 죽는다‘입니다. 죽을 때까지 잠언 16장의 말씀을 기억하고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넘어지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워졌던 모든 은혜를 땅에 쏟지 않고 끝까지 지키게 되리라 저는 믿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말씀 하나 하나가 제 신앙고백입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의 신앙고백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주의 법도들로 말미암아 내가 명철하게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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