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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 받기 작전 (창 27: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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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받기 작전 (창 27:1-23)         


본문 창세기 27장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모든 인간은 실수를 하고 또 실수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실수를 용서하시고 치유하시고 당신의 계획과 뜻을 이루어 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약점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약점을 덮어 주시고 당신의 은혜의 역사를 베풀어 주신다는 내용입니다. 설교 끝났습니다. 

I. 드라마: 축복 받기 작전

오늘 본문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싶습니다. 
이 드라마의 기획과 연출은 어머니 리브가가 맡았습니다. 주인공은 둘째아들 야곱입니다. 상대역으로 아버지 이삭과 맏아들 에서가 등장합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축복 받기 작전」입니다. 

이 드라마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차 메시야가 태어날 한 가문의 태동이야기입니다. 주몽 2탄 정도 된다고 할까요. 본문의 소제는 독자들에게 많은 의문점을 제공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축복하는 축복이란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성경은 이처럼 깊은 관심을 가지는가? 이미 동생이 장자권을 팥죽 한그릇에 샀던 그 장자권과 지금 형이 받겠다고 설치는 축복권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아내는 남편을 속이고 자식은 아버지와 형제를 속이고 축복을 빼앗습니다. 
그러면 빼앗은 축복도 유효한 것인가? 
축복은 너무 귀한 것이기에 과연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빼앗아야 하는 것인가? 
성경이 이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왜 이토록 자세히 다루고 있는 것인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본문은 기록된 것인가? 
그러므로 이 드라마는 개봉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II. 이삭 - 실수하는 늙은이

이 본문을 통해 성경은 축복을 누가 받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성경 스스로 격렬한 논쟁거리를 제공합니다. 
이삭 자신이 아브라함의 맏아들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갈등없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먼저 태어난 그의 형 이스마엘은 본부인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첩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자연스럽게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본문 에서와 야곱 얘기는 상황이 다릅니다. 
둘 다 본부인의 아들입니다. 쌍둥이 형제입니다. 에서가 맏아들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에서는 이 장자권, 축복받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장자권을 상실합니다. 

이렇든 저렇든 사회풍습은 맏아들이 축복을 받아 가문의 족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맏아들 에서가 아니라 둘째 야곱을 선택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왜 사회적인 관습은 무시하시고 둘째 아들을 선택했는지 성경은 그 이유를 성명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때 축복이 누구에게 가는 것이 옳으냐는 논쟁이 일어납니다. 

본문의 핫이슈 - 엄청난 갈등, 논쟁속에서 성경이 뭐라고 얘기하는가? 
사회 관습을 따른 이삭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전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세상관습의 갈등속에서 이삭은 사람의 뜻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인간의 어떤 실수, 어떤 몸부림에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뜻을 피조물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거스릴 수 없다는 전제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좋은 영성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으면 순복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이삭,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에 무관심했던 이삭이 틀렸다는 것이 성경의 결론입니다. 

장자권 - 이미 동생이 팥죽 한 그릇에 형으로부터 샀습니다. 
몇 명 안되는 가족 안에서 두 아들 사이에 명백한 장자권 거래가 있었음을 이삭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편애합니다. 에서를 편애한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해서 그렇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축복의 시기도 잘못되었습니다. 
축복은 족장권을 물려주는 임금의 선위와 같은 예식입니다. 이 예식은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하는 예식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후 이삭은 40년이나 더 살다 죽습니다. 

축복의 방식도 잘못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엄숙하게 거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에서 둘이 은밀하게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고 축복해야 하는데 고기를 배부르게 자신이 먹고 축복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인간적이었습니다. 눈이 어두워진 이삭을 소개하면서 성경은 이삭이 육신적인 눈만 어두웠던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어두워졌음을 암시합니다. 

성경의 해석은 이삭이 잘못되었다. 지금 이 축복행사는 처음부터 모든 과정에 하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일수록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비록 내가 손해를 봐도 하나님 계획은 이루어 져야 합니다. 내 뜻과 비록 달라도 하나님 계획은 이루어 져야 합니다. 
칼빈은 내가 지옥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지옥 문을 내려가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얘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지옥 보낼리 없지만 내 생각과 내 계획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은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III. 리브가: 위대한 어머니

오늘 본문에서 성경은 숨은 주인공으로 리브가를 소개합니다. 
창세기 24장 이미 리브가는 지혜로운 여인으로 무대에 등장합니다. 잘못된 남편의 생각과 행동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이 그르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을 속이기로 결정합니다. 이 결정이 옳은 것인가? 잘못된 것인가를 차제하고 이때 성경은 리브가 편을 듭니다. 
에서가 장자권을 소홀히 여겼다고 기록하고 리브가의 행동을 정당화 시켜줍니다. 이삭의 눈이 어두웠다고 기록함으로써 리브가의 귀가 밝은 여인으로 소개합니다. 분별력 있는 여인으로 성경은 리브가를 소개합니다. 

이삭이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오라. 그것을 먹고 축복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 또한 이삭의 행동이 인간적이었음을 말함으로써 리브가를 영적인 여인으로 소개합니다. 

창세기 27장 7절에 리브가가 이상한 말 한마디를 첨가합니다. 그의 남편이 하지 않은 말인데 자기 아들에게 남편의 말을 전하면서“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을 첨가합니다. 지금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아버지가 축복을 거행하지만 만약에 이 축복이 여호와 앞에서 행하는 축복이요, 유효하다면 이것은 엄청난 잘못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배신이다. 거역이다. 이것은 막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남편이 아니라 그 누구도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리브가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야 하고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는 것, 여러분을 통하여 만인간이 구원을 받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한번 예수를 영접했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교회가 평안하고 부흥되고 교회 존귀함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 집니다. 

크리스틴 알렌(Christine G. Allen)이란 신학자는 오늘 본문이 리브가를 소개할 때 정말 위대한 어머니로 소개하는 한 구절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창세기 27장 13절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다가 오히려 저주를 받을까 두렵다고 말할 때 이때 리브가가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라”

리브가 성경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겠다고 나선 최초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역사가 흐른 다음에 모세가 - 내가 저주를 뒤집어 쓰는 한이 있어도 내 민족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 울부짖습니다. 사도바울 - 내가 저주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내 동족을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버지인 자신이 제물이 되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리브가는 인류의 저주를 대신 진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결단을 한 여인으로 기록되어 집니다. 

이때 독자들의 가슴에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하나 남아 있습니다. 
리브가가 한 일은 분명 속임수가 아닌가? 남편에게 들어가 대화를 하고 설득하고 만류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던가? 이에 대해 신학자들은 그 관점을 오늘의 윤리수준, 오늘의 관점으로 수천년전 문화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는 것입니다. 
당시 족장인 남편의 결단을 아내라 할지라도 여인이 직접 들어가서 만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화하고 설득시킬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브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수단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옳고 그름의 윤리수준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인간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인간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 앞에 주권을 맡겨 드리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은혜요 축복이요 구원의 길이란 사실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IV. 야곱: 부족한 인간을 통하여!

본 드라마의 기획, 연출가였던 리브가가 야곱을 등장시키며 한 가지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아들 야곱이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즉,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받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너무나도 멋지게 연기를 합니다. 멋지게 축복을 받아 냅니다. 

중간 중간 스릴 넘치는 위기가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사냥을 했느냐? 아버지가 물을 때에 하나님께서 순조롭게 잘 잡히게 했습니다. 능청을 떱니다. 네 목소리는 야곱인데 네가 정말 에서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을 것입니다. 에서는 몸에 털이 많으니 몸 한번 만져보자. 에서와 야곱은 향취가 다르니 냄새 한번 맡아 보자.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요? 

독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독자들은 야곱의 태도에도 의구심을 갖습니다. 과연 야곱의 태도가 옳았는가? 축복을 위해서라면 남을 속여도 되는가? 하나님의 뜻을 믿고 기다릴 수는 없었는가? 왜 성경은 이 사기행각을 이토록 자세하게 소개하는가? 

여러분! 

야곱의 속임수를 이토록 자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야곱을 칭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야곱이 악발이가 되어서 축복을 끄집어 낸 것을 칭찬한 것이 아닙니다. 축복은 소중한 것이니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쟁취하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런 일들을 자세히 기록함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 - 즉 야곱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얼마나 합당하지 못한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신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 이것이 여러분에게 조건이 있고 자격이 있고 선행이 있고 공로가 있어서 우리를 선택하고 축복하고 구원해 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공로나 선행이나 자격이나 조건으로 구원받고 축복받기에 얼마나 합당하지 못한 존재인가? 너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주인공 야곱의 얼굴속에서 너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한 사건이 본문 창세기 27장입니다. 
이런 야곱에게 하나님은 축복합니다. 그 내용이 28절 29절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의 기름진 복, 번성하는 성공의 복을 허락하십니다. 
세상에서 출세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향력을 드러내며 살라는 리더십의 복을 주십니다. 한번 얻은 구원을 영원히 빼앗기지 않는 영적인 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네가 잘나서 출세하고 성공한 것 아니다. 네가 착해서 구원받은 것 아니다. 
100%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출세하고 성공하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지만 갚지 못하고 살아왔고 갚지 못하고 살 줄 뻔히 알면서도 오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셔서 예배드리게 하셨고 내일도 동트는 아침을 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감사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이삭과 야곱, 심지어 기획 연출가 리브가 마저도 흠이 있고 실수가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완전한 인물은 그 누구도 없습니다. 모두 무자격자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제가 설교를 하고 한소망교회를 섬기는 목사가 되었지만 자격이 있어서 목사가 된 것이 아니고 오늘도 이 모든 설교에 내가 합당하기만 해서 설교하는 목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자격 없지만 가치 없지만 목사로 삼았으니 감사하면서 목양하라는 것입니다. 한소망 교인이 되었으면 여러분의 목사를 불쌍히 여기고 모자란 목사인 것을 알고 덮어줄 줄 알라는 것입니다. 교인들 가운데 장로가 되었으면 잘나서 장로된 것 아니다. 자격 없는 줄 알고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셨음을 알고 평생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고 성도가 된 것이 자격이 있어서 된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본문을 읽을 때에 모두가 머리 숙여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실수합니다. 약점이 많습니다. 허물이 많습니다. 무자격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폐기처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어 기어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예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모두가 은혜로소이다. 실수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인간은 실수하지만 그것을 치유하시고 기어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도 끝도 없는 넘어짐과 약점이 있지만 문제를 문제시하지 아니하고 덮어서 감추어서 녹여서 부서뜨려서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V. 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고 야곱이 방을 나서자 마자 30절 “곧” 에서가 들어옵니다. “곧”
아버지! 제가 사냥에서 돌아와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왔습니다. 맘껏 드시고 축복해 주세요. 33절 이때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다”
왜요? 야곱에게 속았기에 억울하고 분해서 두려웠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생각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는 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경외감이었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구나. 

진작 하나님께 기도했어야지요. 
야곱이 들어 왔을때 - 
「하나님 한 아들이 들어왔는데 나는 에서에게 축복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놈이 야곱인지 에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이 말씀하셨겠지요. 종아, 너는 에서에게 복을 주길 원하지만 지금 네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아들은 둘째 아들 야곱이다. 그것이 내 뜻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그 아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라. 그것이 나의 뜻이다.」 이삭이 순복했어야 옳았지요. 

에서는 야곱이 자신의 축복을 가로채 갔다는 이 사실을 알고 통곡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주실 축복이 하나뿐입니까? 내게도 축복하소서! 
성경은 말합니다. 축복은 하나다. 머리가 되는 것도 하나다. 족장은 하나다. 구원의 길은 하나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피를 타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될 것이고 지금 야곱을 선택하는 것은 예수를 통하여 만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 구원의 길은 하나다. 

에서. 영적인 가치를 소홀이 여겼습니다. 성경적인 가치보다 세상적이고 일시적인 가치를 따라갔습니다. 영원한 가치의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구원론을 짓밟았습니다. 구원의 가치, 영원한 가치를 소홀히 여긴 죄, 그 댓가가 얼마나 큰 것인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그것은 수천년을 흘러오는 진리이며 영원한 진리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원한 가치만 남습니다. 
영원을 위해 산 것만 하나님 앞에 남습니다.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남습니다. 

저주받은 에서, 복받지 못한 에서가 사는 길은 없는 것인가? 
야곱의 그늘에서 종살이 하는 것입니다. 에서가 사는 길? 에서가 축복받는 길? 에서가 받았던 저주를 끌어안고 축복의 그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기브온 족속들이 두손 들고 이스라엘 축복의 그늘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했습니다. 성전을 섬기는 가족으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
저 햇볕 심히 뜨겁고 또 짐이 무거워 
이 광야같은 세상에 늘 방황할 때에 
주 십자가의 그늘에 내 쉴곳 찾았네 (찬415장)

세상 햇볕이 뜨거웠습니까? 힘들었습니까? 외로웠습니까? 
넘어졌는데 일어날 힘이 없습니까?
모든 상처와 실패와 실수를 가슴에 끌어안고 십자가 그늘로 들어가십시오.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으로 세상에서 넘어지고 깨져서 모든 축복을 잃어버렸습니까? 기쁨과 은혜를 상실하고 빈 그물 들고 파도처럼 세상 한복판에서 눈물지으며 달려 나오셨습니까? 

그 상처와 저주를 안고 예수께로 나오십시오. 두손 들고 주님 앞에 나오십시오. 온갖 실수를 끌어안고 십자가 그늘로 들어오십시오. 주님께서는 그 실수를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회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살아계십니다. 여러분의 약점 때문에 여러분은 복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넘어지고 깨지고 실수했다는 사실 때문에 버림받지 않을 것입니다. 야곱에게 복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하십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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