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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양식 참된 음료 Real Food Real Drink (요 6:4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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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기독교는 경험의 종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확신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의 존재를 파악한다거나 논증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그리스도의 사역을 연구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생명의 떡‘ 으로 오신 그분을 먹는 일입니다!

 


본문 51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고 하십니다.

 

먹는다, 혹은 마신다는 것은 확실한 경험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체험적인 행위를 수반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먹거나 마시면 이것이 식도를 통하여 위로 내려가서 소화되고 영양분이 몸에 흡수되어 우리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다!” 우리 주님은 이처럼 생생한 표현으로 성도가 가져야 할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본문 말씀의 배경을 잠시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벳새다 광야로 몰려왔던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오병이어의 엄청난 이적을 베푸심으로 무리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떡의 기적을 바라고 예수님 일행을 찾아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 가버나움까지 왔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얄미운 모습입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들을 밉게 보지 않으시고 오히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오직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여 그 이상을 바라볼 줄 모르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영원한 생명과 참 양식에 대한 가르침을 베풀기를 원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그들의 속 마음을 날카롭게 진단하셨습니다.

 


요 6:26-2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무리들은 영적인 일에 매우 무지하였고 어리석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생활 가운데서 겪었던 ‘만나’ 의 체험이 가장 큰 표적이었습니다. 주님은 이 ‘만나’ 의 이야기로부터 놀라운 진리를 끌어 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진리는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우리의 뜨거운 피를 솟구치게 합니다.

  

  

1. 예수님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몸을 주심

 

51절=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본절은 엄청난 내용이 담긴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몸을 주신다고 친히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은 죄로 인해 생명을 상실했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동산에 남자와 여자를 두셨을 때 그들에게는 영원한 삶이 약속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 그들은 이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세상은 이제 온통 죄악으로 가득차게 되었고, 오직 죽음의 세력만이 인류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양식이나 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매일 일정량의 만나를 거두어야 했고,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기준치 이상을 초과해서 거두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들이 명령을 어기고 더 많은 만나를 거두었을 때 그것을 썩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이 땅에서 나는 것들로는 우리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생명 양식’ 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이 누구이십니까? 그분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태초에 계시던 ‘말씀’ 이십니다.

 

요 1:1-3=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이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우리에게로 오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그분, 우주를 만드신 그분, 세상을 다스리시는 율법을 제정하신 그분이 스스로 지극히 낮아지셔서 육체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이 되셔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겸손히 지키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고난을 달게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영원한 ‘임마누엘’ 이 되셨습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살과 피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심으로 주님은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그의 희생제물 되심은 세상을 위한 것이었으나, 당시 유대인들은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52절=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유대인들은 어리석어 예수님을 직접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 시대에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모세와 같은 불세출의 위대한 지도자도 여러 번 백성들로부터 원망과 불평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엘리야 시대는 또 어떠했습니까? 당시 사람들은 자기 시대의 위인을 몰라보았습니다. 알아보기는커녕 엘리야를 죽이는 데에 혈안이 되었습니다(왕상 19:10).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셨습니다. 주님의 희생으로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죄 용서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양자로 입적되었습니다.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의 모든 축복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주님의 살과 피는 우리 영혼의 참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먹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참 양식을 먹음으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참된 양식 참된 음료를 먹고 마시는 복된 자가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교제의 근본임

 

56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또다른 진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시는 것이 주님과의 교제를 이루는 근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 ‘먹는다’, ‘마신다’ 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온전히 받아들여 자신의 일부로 삼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신학적 용어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며, 그리스도를 자신의 생명의 주로 영접한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를 영접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행위인 먹는 것과 관련시켜 보다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그리스도와의 연합’ 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주의 만찬(Lord's Supper)’ 의 의미를 암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본서가 기록되어진 초대교회 시대에는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떡을 떼며 잔을 취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동시에 자신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확인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믿음 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살을 먹고, 믿음으로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사역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 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산 떡이라” 는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살을 내어주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되 떡을 먹듯이, 잔을 마시듯이 믿어야 합니다. 믿음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터져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써 이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53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여기서 주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의 생명과 연결시키고 계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주님께서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 먼저 영혼의 주림과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야 백성들이 배고플 때나 목마를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도움을 받았던 것같이 우리 또한 진정한 목마름이 있어야겠습니다.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영혼의 탄식이 있어야 합니다. 죄로 인해, 허물로 인해 허덕이는 깊은 영혼의 탄식이 필요합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 예수님에 대하여 배우는 정도가 아니라 그분을 실제로 나의 개인의 구주요 주님으로 인정하고 영접하고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배운 진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야 합니다. 양식을 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확실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다) 본문의 ‘먹고 마신다’ 는 동사는 모두 현재시제로 되어 있어 동작의 계속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살과 피를 계속 섭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먹는 기쁨과 마시는 즐거움 안에서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그리스도의 부요하심이 내 영혼의 부요함으로 전달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승리의 생활의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에게 힘이 넘치게 됩니다. 

  

  

많은 재산을 소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한 만큼 생활에 기쁨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의 옆집에 사는 가족들을 지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집은 허름하고 윤택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 사람들은 언제나 웃음띤 얼굴이었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집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자랑할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즐겁게 살아갑니까?” 

“자랑할 것이 없다니요? 모르긴 해도 당신보다 자랑할 것이 더 많을 겁니다.” 의아해진 부잣집 사람은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재산을 소유하고 있길래 그렇습니까?” 그 가난한 집 사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첫째, 나에게는 영생(요3:16)이 있습니다. 

둘째, 크고 아름다운 집(요14:2)이 천국에 있습니다. 

세째,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평화(빌4:7)를 소유하고 있습 니다. 

네째, 말로 다 할 수 없는 즐거움(벧전1:8)이 있습니다. 

다섯째,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고전13:8)을 받았습니다. 

여섯째, 현숙하고 신실한 아내(잠언31:10)가 있습니다. 

일곱째, 건강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출20:12)이 있습니다. 

여덟째, 진실하고 변함없는 친구들(잠18:24)이 있습니다. 

아홉째, 캄캄한 밤중에도 찬송(시42:8)을 부를수 있습니다. 

열째, 생명의 면류관(약1:12)이 있습니다. 

열한째,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하게 채워주시는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빌4:19)를 모시고 살아갑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교제의 근본입니다. 주님과 연합하여 주님의 부요하심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됨

 

58절=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본절은 32절부터 계속된 생명의 떡 교훈에 대한 최종적 요약이며 재확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임을 거듭 천명하시며 또다시 자신을 만나와 비교하십니다. 만나가 ‘하늘에서 내린 떡’(32절)인 것처럼 참된 만나이신 예수님도 하늘에서 내려온 떡입니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린 떡이라도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 못했습니다. 조상들은 만나를 먹고도 결국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님은 성육신하여 죄 없는 온전한 인간이 되어 전인류를 위한 대속의 희생을 치룸으로써 그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만나는 하늘에서 내린 떡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만나가 예수님과 다른 점은 거기에는 생명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나는 이 땅에서 나는 음식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지도 못하며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 하나 만나가 하늘로부터 왔다는 사실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거기에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조상들이 만나를 먹었던 광야 40년의 세월은 무엇입니까? 어떤 면에서 광야 생활은 만나의 약효 검증 기간이었습니다. 40년을 먹었지만 그들에게 어떤 변화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그렇게 광야에서 죽어갔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예수님 오신 지 2천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예수님이 과연 인류의 생명의 떡이 되는가를 검증하기에 충분한 기간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생명의 떡이 되지 못하신다면 기독교는 약효 없음을 판정받고 역사에서 사라져도 벌써 사라졌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강하게 주장하신 것이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한 중문학자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출판해 사회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오랫동안 신봉해 온 공자가 동양권 대부분의 나라에서 폐기처분 당했고 이제 우리나라만이 여전히 공자를 놓지 못하는 유일한 국가로 남아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루 빨리 이 땅에서 공자가 사라지지 않으면 그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그 누구도 온전한 정신으로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때 공산주의자들이 예수님을 폐기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자기들이 역사에 의해 폐기 처분 당했습니다. 인도의 민족 운동가 간디 같은 이는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게 됩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납니까? 얼마나 많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소생을 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인격 파탄자들이 예수님에 의해 고침을 받고 건전하게 살아갑니까? 

  

  

실로 예수님은 인류의 2천년 역사가 보증하는, 유효 기간이 다함이 없는 영원한 생명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썩어지고 사라질 것을 따르는 삶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만을 끝까지 붙잡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요하심을 누리고 사십니까? 주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고 하십니다. 이런 주님의 약속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이것은 오직 주님의 살과 피에 동참하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은 이처럼 중요한 일입니다. 본문 5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본문 54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부활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56절, 57절의 약속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주님의 살과 피를 믿음으로 먹고 마시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리스도로 인해 살게 됩니다. 그에게는 분명한 삶의 목적과 의미가 주어지고, 이 땅에서도 가장 부요한 삶이 약속되어 집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아갑시다. 주님의 매 맞으심을 인정하고, 주님의 피 흘리심을 의지합시다. 주님 때문에 내가 산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부여잡고, 나의 죄와 허물을 토해 내어야 합니다. 

  

  

십자가 이전의 것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예표들입니다. 구약의 모든 기록들은 구속의 완성으로 오실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는 언약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한점 의혹 없이 믿어야 합니다.

  

  

십자가 이후의 것들은 더욱 영광스런 약속들입니다. 주님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교회를 세우심은 새 언약의 완성을 향한 구속사의 위대한 드라마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구름타고 천사장의 호령과 하나님의 나팔로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것을 한점 의혹없이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위대한 구원의 역사에 동참합시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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