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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속을 믿는 사람들 (갈 3: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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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믿는 사람들 (갈 3:15-22)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일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위대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고,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다고 다 구원 받고, 다 위대한 역사를 체험하고, 또 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 8장을 보면 주목할 만한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31절을 보면,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2절을 보면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이 예수가 귀신들렸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한 술 더 떠서 37절, 40절, 그리고 59절을 보면, 예수를 돌로 치려했고, 또 죽이려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예수를 대적했고, 나아가 예수를 죽이려고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를 대적하고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유대인들의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눈으로 목도했습니다. 그리고 바다 위를 걸으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초월적인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이 다였습니다.

약 2:19를 보면, 더 놀라운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도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두려워 떤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귀신은 무엇을 믿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만이 참 신이시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귀신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 세계에 대해 우리 인간보다 잘 압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고, 그 분이 유일한 신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역시 안타깝게도 그것이 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다가 아닙니다. 그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믿어야 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믿음이 올바른 믿음일까요? 우리가 믿을 때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말씀해 줍니다. 한 마디로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을 지킵시다.

성경을 구약과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옛 약속과 새 약속으로 된 책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이전에 주신 약속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에 주신 약속으로 된 책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믿음이란 바로 이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라는 점을 말해 줍니다.

이 약속의 책인 성경에서 올바른 믿음의 원형으로 소개하고 있는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성경은 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아브라함이 올바른 믿음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올바른 믿음이 무엇이지를 보여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야기는 창 12장에서 시작됩니다. 창 12:1-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4-5절은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약속을 따라 고향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믿음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을 따라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 그것도 믿음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임을 믿는 것도 믿음은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여기에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담겨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보편적인 약속입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 약속을 믿고 지키면,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객관적인 약속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요 3:16에 소개되고 있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요 11:25에도 중요한 약속의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예수님처럼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성경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이런 약속의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구든지 그 말씀을 믿고 따르면 그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약속을 믿는 믿음이요, 올바른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약속의 말씀들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특수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특정인에게 특수한 상황 속에서 말씀하신 약속을 말합니다. 그가 이 말씀을 믿고 준행하면, 그대로 이루어주시는 주관적인 약속입니다.

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진로를 놓고 하나님께 깊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뜻 밖에 하나님께서 제게 주의 종이 되기 위해 신학교에 가라시는 것입니다. 취업을 할 것인가 유학을 갈 것인가를 놓고 기도하던 중에, 생각지도 못했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

당시 저는 신학교에 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집안에 예수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온 집안이 반대할 것입니다. 어서 돈을 벌어서 집안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식구들의 기대를 저버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신학 공부하려고 할 때,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습니다. 더더욱 결혼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기도하며 이런 문제를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마음 속에 강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문제를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아멘하고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제 기도를 마치고 우선 신학교를 가기 위해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만나게 하셨고, 강권적으로 부족한 저를 배필로 돕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학교 가기 위해 먼저 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놀랍게도 제가 군에 가 있는 동안, 그렇게 전도해도 꿈쩍도 않던 가족들이 하나 둘씩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통해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약속하셨고, 신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그 약속을 지키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신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켜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개인과 특수한 상황 속에서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지켜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신 것은 무엇인지를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약속을 끝까지 잘 지켜 가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11:1에서 믿음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며 바라는 것을 보는 것이고, 아직 보이지 않는 약속의 실현을 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현재 어떤 사실 여부를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장차 이루어 질 것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약속을 믿는 믿음을 굳건히 지켜 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위기를 잘 극복합시다.
그런데 이런 약속을 믿는 믿음에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그 구체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 15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세월이 흐르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80이 넘었습니다. 아내의 나이도 70이 넘었습니다. 그 나이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말씀을 뒤로 하고 인간적인 대안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청지기인 엘리에셀을 자기의 상속자로 삼아 노후를 준비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밤하늘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이 자식을 낳을 것이고, 그 자식이 큰 민족이 되어 저 밤하늘의 별처럼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약속하셨던 것을 다시 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끝까지 그 믿음을 지켜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선 약속 성취까지 대체로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 약속 성취가 우리가 이 세상 떠난 뒤에 이루어질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약속은 오랫동안 인내와 끈기로 지켜가야 합니다.

다음으로 눈앞에 보이는 현상은 아무리 봐도 약속이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약속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쉽게 흔들릴 수 있음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 곁에서 격려해 주시고, 믿음을 굳게 붙잡아 주십니다. 주님과 함께 약속을 믿는 믿음을 잘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약속을 믿는 믿음에 더 심각한 위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왜곡된 믿음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약속을 믿는 믿음을 변질시키고, 왜곡시키는 잘못된 믿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바로 율법에 대한 맹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된 믿음에 빠져버리고 말았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고 율법을 신봉하는 믿음 아닌 믿음을 붙잡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저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지침을 주신 것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죄 짓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연약한 저들이 죄에 빠지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을 조금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율법의 기초는 십계명입니다. 말하자면 이 십계명이 모법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각종 하위 법과 시행세칙이 덧붙여져서 전체 율법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율법은 크게 세 종류의 영역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첫째가 의식법입니다. 각종 제사와 예전과 관련된 법들을 말합니다. 둘째가 민법입니다. 의식주에 관련된 법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셋째가 도덕법입니다. 

그리고 토라에 기록된 율법 조항이 613개 조항입니다. 그 중에 ‘하라’고 되어있는 긍정적인 조항이248개요, ‘하지 말라’고 되어있는 부정적인 조항이 365개입니다.

율법이 이러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지키는 일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저들의 관심사가 온통 율법 지키는 일에 쏠려있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신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약속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율법에 대한 맹종에 빠져버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들의 믿음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약속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대신 눈앞에 보이는 신앙행위에 대한 맹종에 빠져버리고 있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얼마 동안 교회 출석을 하지 않아서 목사님이 심방을 했습니다. 이분은 10여년 전에 불교에서 개종을 하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절에서 불공드리듯 예배 때마다 목욕재개하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대신 장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일도 교회에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목사님께 마음 속의 염려를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하나님께 복 받기는 다 틀렸지요? 저 같은 것은 이제 천국가기 다 틀렸지요?”

그렇습니다. 당장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수주일 열심히 하고, 십일조와 헌금생활 열심히 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 철저하게 지키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구원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구원을 약속 받은 사람들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하늘의 복을 약속 받은 사람들로서 감사를 표할 일들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왜곡되면 안됩니다. 약속이 먼저 있고, 율법이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약속을 돕는 보조 수단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약속을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십시오. 모두와 맺으신 약속과 여러분 개개인과 맺으신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을 잊지 마시고, 그 약속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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