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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축제] 네 가족에게 알리라 (막 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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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족에게 알리라 (막 5:1-20)
   
오늘은 우리교회가 가을철 총력전도주일-새생명축제주일을 지키기 위해, 새생명축제 선포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한 영혼을 귀중히” 보시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에 이 구원받은 감격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이웃에게 증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뜨거운 감격과 열정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영혼의 값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를 잘 알려주시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을 살리시면서 돼지 2000마리와 맞바꾸시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온 천하와도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마16: 26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영혼, 사람의 생명이라는 것은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생명이란 이 지구상에서 단회의 유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이 끊어지면 그 순간부터 이 지구와는 영이별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부귀와 명예는 잃어버렸어도 다시 얻을 수 있고, 다시 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한번 잃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도 없는 고귀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이 세상에서 현존하는 사람은 온 세상이냐, 아니면 자기 목숨이냐 하는 것을 선택하는데, 이러한 선택은 종말론적인 선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과 바꿀 수 없고,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말합니다. 건강이 악화되면 인간은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돈을 잃으면 적게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절반을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건강이란 생명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람에게 질병이 찾아오는데,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질병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하여 알아보았더니 600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질병을 모르고 살고 싶어 하는데, 장수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오래 살고 싶습니다. 불노장생하고 싶어 합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먹고 오래 살고 죽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나이 50세에 죽었습니다. 

늙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다시 젊은이로 돌아가라고 하면 다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두려워서 저는 거절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다시 젊은이로 돌아가라고 합니까?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보다 훨씬 잘못 살 것 같아서 두렵습니다. 이제는 남은 생애에 최선을 다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악한 영,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가정을 떠나야 하고 사람들이 무서워서 무덤가에서 거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거라사인의 광인은 귀신에 들린 사람입니다.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포기하고 귀신에게 압도되어 귀신의 말을 들어야 하고,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살고 있습니다. 

한 영국의 잡지사(Choices UK)에서 귀신의 존재를 믿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잡지사에서는 할로윈 데이를 맞이하여 영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응답자의 68%가 귀신의 존재를 믿고 있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응답은 55%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또 응답자의 76%가 귀신의 존재를 믿는 이유로 영화나 텔레비전의 영향을 꼽았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의 영국인들은 영화나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믿는 사람보다 귀신을 믿는 사람이 13.5%나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저는 설교 중에 가급적이면 귀신의 역사에 대하여 말씀을 많이 드리지 않는 편입니다. 귀신에 대하여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을 사탄, 마귀, 귀신의 역사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죄는 자기가 지어놓고 사탄의 역사라고 하면 모든 책임을 사탄에게만 전가하려는 나쁜 습관이 생깁니다. 감기에 걸렸으면 내가 무리한 때문이요, 약을 먹고 잘 쉬면 낫습니다. 그런데 감기에 걸린 것도 귀신의 역사라고 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달려드는 사람을 보면 귀신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이성을 주셨습니다. 자기 이성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여야 건전한 사람입니다. 귀신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계속해서 귀신이야기를 하면 귀신에 대하여 불안한 마음이 생겨서 복음의 긍정적이고 적극성보다는 모든 죄악과 불의를 귀신의 역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귀신에 대한 말은 가급적이면 하지 않았습니다.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귀신을 두려운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사탄과 귀신이 존재하지만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21세기 첨단과학문명이 발전한 시대에 귀신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귀신이란 정신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이 만들어내 상상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한편 귀신의 존재를 인정할 뿐 아니라, 귀신은 우리가 상대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귀신의 존재를 인정할 뿐 아니라, 귀신의 능력도 인정합니다.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귀신의 능력을 무서워하는 것도 바른 신앙은 아닙니다. 귀신이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귀신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마15:22에 보면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16:16에서도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선교지 빌립보에서 귀신들려 점을 치는 여종을 고쳐준 적이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우리는 성경에 나와 있는 분명히 귀신의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귀신을 두려워할 것도 아니고, 무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보면 귀신들려 고통 받는 자들을 만나주셨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제압하시고 귀신을 몰아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귀신에게 사로잡혀서 당하는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거라사인의 광인은 집에서 나오고 동리에서 나와 무덤가에 거하면서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 소리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동리 건장한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쇠사슬로 매어놓기도 하였고, 움직일 수 없게 발에 고랑을 채워놓았습니다. 그러나 힘이 장사입니다. 그는 집에서 나오고 사람들을 피하여 동리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무덤가에 거하면서 옷은 남루해졌습니다. 정상적으로 먹고 입지 못하니 짐승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귀신은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하고, 비정상적으로 살게 하고, 인간관계를 악화시키고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게 하고 저주받은 인생을 살게 합니다. 그는 한 남자로 부모님 앞에 자식으로, 아내 앞에 남편으로, 형제들 앞에 한 사랑받는 형제로 그 좋은 위치를 떠나게 하고, 사탄의 지배를 받고 귀신의 영이 조정하는 대로 움직여야 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 앞에 달려와서 절하면서 큰 소리를 부르짖어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라고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거라사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그가 예수님 앞에 나아오기도 전에 그 사람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군대라는 말은 ‘레기온’이라고 하여 로마의 한 군단으로 6000명 정도로 편성되었습니다. 레기온이라고 하여 그 수가 많다는 말입니다. 이 귀신이 예수님에게 그 지방에서 내보지 마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었습니다. 이에 간구하기를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들어가도 좋다고 허락하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2000 마리가 되는 돼지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갈릴리바다에서 몰사하였습니다. 돼지를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들어가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고 그 귀신들이 돼지에게로 들어가 바다에 몰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동리 사람들은 와서 예수님과 그 귀신들렸던 사람을 보면서 두려워하면서 예수님이 자기 동리에 들어오시는 것을 거절하면서 그 지방에서 떠나가기를 구하였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잘 들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배에 올라야 했습니다. 거라사 사람들이 예수님이 자기 동리에 들어오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오늘 돼지 2000마리가 몰사하였는데, 앞으로 얼마나 큰 피해가 주어질지 모르기에 예수님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온전히 고침을 받은 것은 감사하지 않고 자기들에게 물질적인 손해나 걱정하면서 예수님을 들어오시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평생 물질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귀신들렸던 사람, 이제 온전히 고침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입니까? 일생 귀신에게 포로되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사람답게 살지도 못할 줄 알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귀신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귀신이 떠나가고 온전하고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이것이 웬 은혜입니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격입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님만 따라다니면 다시는 귀신을 무서워할 것도 없고, 온전히 살 것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가정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의 가정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집안의 소중한 아들을 밖으로 보내놓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정의 소중함을 아시고, 가정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가정에서 안식을 누리면서 살아가야 가장 큰 은혜입니다. 

오늘 거라사의 광인은 그가 고침을 받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하였지만, 예수님을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시고 있습니다. 그를 돌려보내면서 예수님이 한 가지를 부탁하시고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19)고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떠나보내고 집으로 갔으며, 예수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가족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20절을 봅니다.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고 하셨습니다. 인근의 여러 동리를 두루 다니면서 예수님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다 놀라게 되었습니다. 데가볼리라는 지역은 요단강 동편 지역의 아주 큰 지역으로 10개의 마을이 있었기에 데가볼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귀신들렸다가 나음을 받은 사람은 데가볼리 여러 마을에 다니면서 자기가 어떻게 고침을 받았는지, 예수님이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증거하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놀라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사탄, 귀신의 영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고통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하고 귀신이 조정하는 대로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에게 온갖 죄악과 저주와 멸망으로 묶어버리고 사탄에게 추종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있어 사탄은 원수마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님 앞에서만 꼼짝 못하고 힘을 쓰지 못합니다. 오늘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들 앞에서 사탄을 힘을 쓰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의 하나은 사탄, 곧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일3:8에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자기를 추종하는 세력을 만들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마귀를 멸하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은 악한 영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원하시고 있습니다. 

오늘도 악한 사탄에게 포로 되어 종노릇하는 많은 사람들,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모든 불의와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사람들, 시기와 살인과 분쟁과 사기, 악독이 가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요, 반드시 구원받아야 할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도 주님의 큰 사랑과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소중하고 가장 귀한 은혜였다고 하면 우리가 받은 복음에 대하여 빚진 심정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집안에서 아직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과거에 믿다가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구원받고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먼저 믿은 나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부르심을 받은 종들로 나를 사탄의 종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죄악에서 구원하여 주신 것처럼 아직도 사탄의 종으로 살고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에게 주의 복음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의 집에서 먼저 구원받은 감격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여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식구들 중에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구원받는 것도 먼저 믿음 성도들의 책임이요, 그가 혹 믿지 못하고 죽어 지옥에 들어간다고 하여도 그에 대한 책임은 먼저 믿은 성도가 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으로 엄중한 경고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겔3:10-11에서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겔3:17절에서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친절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에스겔의 손에게 피 값을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18)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예를 드는데 생명을 보존하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19)고 하셨습니다. 엄중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구원받으신 성도들은 말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벧전3:15에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증거해야 하고 신앙에 대하여 묻는 사람들에게 간단하면서도 확신 있게 증거할 수 있는 복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혼자는 잘 믿는 것 같은데, 나 혼자 있으면 구원받은 것 같은데, 사람들 앞에 나가서 말하려고 하면 말문이 막히고 입술이 뻣뻣해진다고 하면서 뒤로 물러나는 사람을 보면 주님이 보실 때에, 무어라고 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복음을 들고 가야 하는 전도자들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증인들입니다. 전도는 어명입니다. 우리 주님의 마지막 유언이요, 지상명령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어 십일조를 잘 드리고 열심히 기도에 새벽기도에 개근하여도 주님이 주신 어명을 깨닫지 못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등한히 하면 예수님을 잘 믿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 많이 하고 예배에 잘 참석하였어도 복음을 전파하라는 어명을 어기면 좋은 성도는 아닙니다. 주님은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지옥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영혼 구원하는 일에 한번 뛰어들어서 주님으로부터 잘 하였다고 칭찬받는 자리에 들어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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