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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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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17)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내일은 추석명절입니다. 그래서 모두 고향에 내려가느라고 고속도로마다 정체가 극심합니다. 이 때문에 매년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매년 고생하면서도 명절 때가 되면 사람들은 고향을 향합니다. 이는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체가 귀소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어는 죽을 때가 되면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알을 낳아놓고 죽습니다. 이것이 귀소의식입니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로 늘 고향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죽어서라도 꼭 가고 싶어 합니다. 이 때문에 국제결혼가정은 늙으면 갈등이 심화된다고 합니다. 늙으면 각기 자신의 고향으로 가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모두가 타향살이를 하는 시대입니다. 이 타향살이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주고 마음을 공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명절은 삶에 꼭 필요한 절기입니다. 명절은 피곤한 삶에 활력과 쉼과 마음의 회복을 줍니다. 또한 가족들의 만남을 통해 가족결속의 기쁨을 줍니다. 타향살이로 공허한 마음을 고향과 가족이 메워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절 때만 되면 사람들이 기를 쓰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인 명절이 둘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설입니다. 이 설은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시작을 잘하게 해 달라고 제사를 지냅니다. 또 하나는 추석으로 가을 농사를 다 지어놓고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우리민족은 오래전부터 이 추수감사제를 지킨 민족입니다. 그래서 추석 때가 되면 각종 과일과 곡식과 먹을 것들이 풍성해 집니다. 

그래서 옛 말에 한가위만 같으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추석은 감사의 명절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들의 삶에는 감사의 정신이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감사가 뿌리 깊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감사에는 종류가 있습니다. 

본문 골로새서 3장을 보면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이 감사는 근본적인 감사를 말합니다. 즉 구원받음의 감사를 말하고 하나님의 자녀 됨의 감사를 말하고 은혜 받음의 감사를 말합니다. 내가 구원받음, 하나님 자녀 됨, 은혜 받음은 생각할수록 엄청난 감사의 조건입니다. 아주 근본적인 감사입니다. 

그런가 하면 시편 65편에서 말씀하는 감사는 일상의 감사입니다. 오늘같이 추석절을 맞이하면서 하는 감사입니다. “농사짓게 하시고 싹이 나게 하시고 초장을 윤택하게 하시고 도랑에 물을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라”고 합니다. 이는 오늘 추석절에 딱 맞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어떤 감사이든지 최고의 언어이고 최고로 권위 있는 단어이고 최상의 정신입니다. 또한 감사라는 말 속에는 깊은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가 있는 곳에 넉넉함과 따뜻함과 푸근함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본문에서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에게 감사해야 하고 이웃에 감사하고 하나님께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 감사는 성숙한 삶의 내용입니다. 이 “감사”는 “유카리스테오(eucaristeo)”의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어둠의 세력에서 자신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영역으로 옮겨주신 것을 깨달음으로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감사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면 나타나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16절을 보면 말씀이 너희 마음에 풍성하게 거하게 되고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되며 감사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사가 그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람은 원래 너무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면 너무 쉽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이가 예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이를 교정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어머니가 돈이 없으니 다음에 하자고 타 일렀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이도 고쳐주지 않으려면 왜 나를 이렇게 낳았느냐”고 따졌습니다. 

아이들이 이렇습니다. 그때 엄마가 기가 막혀서 대답하기를 “아니 네가 태어났을 때는 이가 없었어!”라고 했답니다. 오늘 우리는 원망, 불평, 불만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차하면 불평부터 쏟아냅니다. 그렇기에 감사는 성숙함의 표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도 시대에 따라 형태가 달라졌습니다. 
  

구약시대의 감사   

구약시대에는 주로 제물을 드려서 제사로 감사하였습니다. 매일 동물을 끌 고와서 그 동물을 잡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짐승들이 죽어갔습니다. 특히 유월절 같은 경우는 수많은 짐승들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때로는 곡식을 드려서 제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가인의 제사가 그에 해당합니다. 

원래 감사라는 말은 우리말로는 “고맙게 여기는 마음”을 뜻합니다. 이것은 은혜나 신세를 입어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에서는 이 감사를 히브리어로 “야다”라고 합니다(사 38:19. 시 49:19). “찬양하다, 고백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구약성경(특히 모세오경)에서의 드려진 감사의 제사를 화목제라고 하는데 이 화목제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레 7:12-15). 그것이 감사제와 서원제 그리고 낙헌제입니다. 서원제와 낙헌제는 특수한 경우에 드리는 제사이지만 감사제는 일반적인 제사였습니다. 이 감사제는 제사를 드리고 남은 제물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교제의 감사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뜻하는 제사로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의미가 있었고 이웃과의 나눔이라는 수평적인 관계의 차원에서 이웃과 교제하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또 구약의 감사는 제도화 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백성들이 지켜야 할 3대 감사절기가 있습니다. 하나가 무교절입니다. 이스라엘의 기후는 우리나라와 달라 5월-10월은 건기이고 11월-4월은 우기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두 계절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 년에 3번 농작물을 수확합니다. 

그중 이른 봄에 겨울 보리를 추수하는데 그때 무교절을 지킵니다. 즉 무교절은 일 년 중 첫 번째 추수와 관계된 명절입니다. 그래서 한해 중에서 제일 먼저 추수한다고 하여 그때 묵은 누룩을 집안에서 다 치우고 새 누룩을 만들 때까지 7일 동안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을 만들어 먹습니다. 그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이 무교병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명절이고 감사제입니다. 두 번째는 그로부터 7주 후 다음날 즉 50일째 되는 날 맞이하는 명절이 맥추절 혹은 칠칠절이라고 하는 명절입니다. 그 때는 밀과 여름 보리를 추수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그때 맥추절을 지킵니다. 세 번째는 수장절입니다. 수장절에는 가을이 되어 익은 포도와 무화과 그리고 올리브 등의 과실을 추수합니다. 그리고 그 추수한 것을 저장합니다. 그것을 수장절이라고 합니다. 

이 세 가지 명절의 의미는 모두 추수와 농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가지 의미가 더 가미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고 감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무교절에는 애급에서 해방된 출애굽의 역사와 연관하여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앉아 쓴 나물과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맛없는 무교병 빵을 먹으며 유월절을 기념하며 무교절을 지냅니다. 또 맥추절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계명을 감사하며 절기를 지킵니다. 

또한 수장절에는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간 광야생활 한 것을 대대로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집집마다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7일 동안 초막생활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수장절을 초막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은 농사의 절기를 종교적 절기로 수용하고 접목시켰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그 외에도 감사의 종류는 많습니다. 다윗이 모든 대적으로부터 구원받게 됨을 감사하였고(삼하 22:50), 언약궤를 옮기면서 또 감사하였고(대상 16:7-8), 솔로몬의 그 유명한 1천 번제의 감사도 있고(왕상 3:15. 8:64. 9:25), 성전건축 후 했던 봉헌의 감사(대하 5:13)도 있습니다.

또한 유다 여호사밧 왕이 암몬과 모압과 마온군이 침략해 왔을 때 성가대를 앞세우고 나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감사(대하 20:21)한 감사도 있고, 므낫세 왕이 죄를 지었으나 곧 깨닫고 신앙이 회복되어 화목제로 감사제를 드린 감사(대하 33:16)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구원받음의 감사(사 12:1), 이사야의 질병으로부터 회복됨을 감사한 감사(38:18-19), 포로귀환의 감사(사 51:3), 다니엘의 꿈을 해석함에 대한 감사(단 2:23 4:34 6:10),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감사(요나 2:9), 하박국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가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가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리라”고 했던 감사(3:17-19)도 있습니다. 이렇게 구약에서의 감사는 일반적 감사가 민족의 감사로 발전하고 그 감사가 또 종교적인 감사로 승화되고 발전된 감사가 담겨 있습니다. 감사는 성숙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신약시대의 감사  

신약시대에는 제물이 아니고 헌금이나 현물로 감사했습니다. 그 헌금이나 현물 안에 마음을 담고 뜻을 담아서 감사했습니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추수감사절 때에 농작물로 감사헌금을 드립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기도로, 찬양으로, 예배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감사를 “유카리스테오”라고 했지만 신약에서는 감사를 “유카리스티아”(eukalistia)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께서 어둠속에서 구원하시고 영적인 세계로 옮겨주심에 대해서 감사하는 감사를 의미했지만 신약에서의 감사는 “식사하기 전에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라는 뜻이고 “축복하다”라는 뜻으로 바뀌게 됩니다. 바울 서신에만 이 감사가 15회 등장하고 신약전체에는 38회가 등장합니다. 

마가복음 6장 30절에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들고 축사하십니다. 그것이 감사입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주셨더니 12바구니가 남았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에도(막 6:41) 예수님이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축사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감사입니다. 그 밖에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한 감사(요 11:41-44), 나병환자의 감사(눅 17:11-19), 사도바울이 말한 감사를 넘치게 하라는 감사(골 2:7), 범사에 감사하라는 감사(살전 5:16-18), 고난에도 감사하라는 감사(고후 1:8-9), 직분 주심의 감사(딤전 1:12) 등이 나옵니다. 

구약성경의 감사가 종교적이고 근본적인 감사라면 신약성경의 감사는 일상적이고 생활에서 고백되는 감사입니다. 즉 신약시대의 감사는 삶에 널리 퍼진 감사입니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감사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오늘의 감사   

오늘의 감사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하면 전천후의 감사입니다. 오늘날은 여러 가지 면에서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감사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태어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부르시고 기억하시고 운명을 책임지시고 내 존재를 알아주심의 감사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입니다. 

주께서 나를 미리 아시고 택하시고 나를 주목하시고 구원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리고 평범한 삶속에서의 나를 일깨우심의 감사도 있습니다. 나에게 좋은 가정을 주시고 좋은 일터를 주시고 자녀를 낳게 하시고 행복한 삶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악하게 살지 않게 하시고 좋은 부부를 만나게 하시고 좋은 집에서 좋은 교회에서 생활하게 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또 나로 하여금 일찍 하나님을 알게 하심의 감사도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다 보니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아니고 섭리 중에 알게 하셨으니 참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로 인해 드리는 감사입니다. 또 나로 하여금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게 하심에 대한 감사도 있습니다. 감사 뿐 아니라 그 십자가 속의 의미를 알게 하심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또 알 수도 없는데 특히 나로 하여금 알게 하시니 깨닫게 하심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기도의 의미도 알게 하셔서 깊이 기도하게 하시고 또 응답받게 하심에 대한 감사도 있습니다. 또 나로 하여금 매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하신 것도 감사하고 그래서 언어로 감사하고 생각으로 감사하고 실패에서도 감사하게 하심 등등 모두가 감사의 조건입니다. 이것이 “유카리스티아”의 감사입니다. 
  

감사의 이유   

그런데 감사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왜 감사하라고 강조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감사는 구원을 완성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열 명의 나병환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가 모두 예수께 와서 고침을 받게 되었는데 그중 한사람만 다시 돌아와서 예수께 감사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때의 감사는 마침내 구원을 완성한 감사였습니다. 

감사는 감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완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성숙함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스스로가 선택하는 삶의 성숙한 자세입니다. 감사는 자발적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보다 불평하는 사람이 더 많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보다 이기적인 사람이 더 많은 것입니다. 

뉴욕의 블루클린교회에서 목회하시던 에반스 목사님이 24개월 동안 결장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병상에서 남긴 투병신조 4개항이 사후에 공개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첫째 나는 결코 불평을 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나는 집안의 분위기를 밝게 유지할 것이다. 셋째 나는 받은 복을 헤아려 감사할 것이다. 넷째 나는 질병을 유익한 뜻으로 바꿀 것이다. 에반스 목사님은 이러한 신조를 가지고 삶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숙한 신앙은 몸이 병들었으나 감사하고 내가 죽어가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감사는 감사하는 만큼 더 행복해지게 합니다. 불평하면 불평한 만큼 더 불행해지고 더 초라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삶속에서 감사하면 감사한 만큼 더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향하신 뜻(살전 5:18)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강조하십니다. 이 감사는 한편 내가 구원받음을 감사하고 또 한편 농사를 지어 풍년을 이루게 하심을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옛날부터 하늘에 이 감사를 해 온 민족입니다. 

감사는 인생에서 가장 잘 익은 단어이고 성숙한 정신이고 가장 따뜻한 마음이고 가장 풍성한 삶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은혜가 있고 발전이 있고 화합이 있고 찬양이 있고 시가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금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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