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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실 때 (삼상 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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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실 때 (삼상 16:1-13)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지난주에 있었던 정치, 사회적인 최대의 이슈가 있었다면 안철수 해프닝이었을 것입니다. 안철수 신드롬이라고도 말을 합니다. 그에 대한 정치적인 호불호는 2차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이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국민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젊은 세대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고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안철수 연구소의 대표가 되고, 카이스트 교수가 되고, 서울대 대학원장이 되었다는 그의 외적조건에 감동받은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며 흐르고 있는 그의 진정성에 대해서 젊은이들이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그의 스토리에 감동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쉽게 안주하고 있었던 정치인들에 대한 거센 반발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여야 정치인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입니다. 보수도 진보도 싫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는 열망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보수는 안일하고 부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치적인 진보는 거짓과 위선에 얼룩져있습니다. 선거철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국민들이 누굴 택할 것인가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현실입니다. 보수는 더욱 자기 반성적이면서 견고한 목표를 제시해야 진정한 보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보는 더욱 순수하고 도전적이 되어야 진정한 진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수행할만한 진정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요청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를 원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인이 부상하길 알게 모르게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사회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자유롭게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국민들에게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직분에 참으로 맞는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민족을 이끌어가는 최고의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은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이것은 결코 인간만의 일이 아닙니다. 외적으로는 분명 사람이 선택하지만 끊임없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는 모습이 담겨져 있는 본문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하실 때 참으로 신중의 신중을 기하는 것을 우리가 목격할 수가 있습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 누구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한 사람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울 왕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다음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선지자 사무엘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은 더 아프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것을 놀랍게도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셨다.” 하나님은 슬퍼하는 사무엘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아, 지금 네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위기와 문제점을 인정해라. 내가 사울 왕을 떠난 것이 아니다. 사울이 먼저 나를 버렸단다. 그래서 나도 사울을 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단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향해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사울 왕 때문에 네 마음을 슬픔에 계속 머물러있게 하지 마라.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새롭게 시작해라.” 

하나님은 사울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위해서 빨리 지도자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공백을 너무 길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는 백성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지 지도자를 위해서 백성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오르고자 하는 위치에 올라갈 때까지 백성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올라가기만 하면 백성들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독재자라고 말합니다. 권력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취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 대신에 다윗이라는 인물을 택한 것은 다윗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와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해서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 그 지도자는 거짓 지도자가 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지도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선택하는 방식은 어떤 모습일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택하실 때 외모를 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외모란 무엇일까요? 그 사람의 신분과 출신입니다. 그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쌓아놓았던 업적들, 소위 스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기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 그의 중심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순전한 사람인가, 분별력이 있는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먼저 보십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작은 마을인 베들레헴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곳에는 이새의 자녀들이 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왕이 될 것이라 예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베들레헴으로 가서 이새의 자녀들을 초청합니다. 모두 여덟 명이었는데 일곱 명만 초청을 받습니다. 첫째 아들인 엘리압이 사무엘 선지자 앞에 섰습니다. 그때 사무엘의 마음에 ‘아 이 사람이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려는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구나!’ 하고 느껴졌습니다.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사무엘상 16:6)

그런데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상 16:7)

그의 용모, 건장한 체격, 늠름한 모습,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본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외적인 스펙에 대해서 열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의 순전한 모습을 지켜보신다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사무엘은 일곱 명의 아들들을 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하다. 하나님께서 이들 중에 하나가 있다고 했는데 대체 누굴까? 혹 다른 아들이 있는가?’ 그래서 물어봅니다. 

하나님은 어린 목동에 불과한 다윗을 사용하셨습니다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상 16:11上)

“아직 막내가 남았습니다.” 이 막내라는 말에는 하찮은 존재, 중요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뉘앙스가 담겨있습니다. 아버지조차 이 아들은 초청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아예 다윗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복된 자리에는 초청하지 않아도 괜찮을만한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계속해서 딸만 낳다가 마지막 여덟 번째에 아들을 낳았다면 그 아들을 매일 지켜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일곱째까지 아들만 낳다가 마지막까지 아들을 낳았다면 어떻겠습니까? 다윗은 있어도 그만이요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눈여겨보지 않았던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은 본래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본래부터 멋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이 별 볼일 없었던 막내, 양치기 다윗에게 관심을 끄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에게 축복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우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린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별 볼일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거저주시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의도가 무엇일까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부활과 생명을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깨닫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적대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존재였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것을 다윗이라는 인물을 통해 예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평범하고 변두리 인생을 사는 사람들, 스스로를 주변적인 존재라고 여기며 낙심하는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기대와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사건이 바로 다윗을 택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라고 말할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복된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면서 사람이 없다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있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희망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기대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소망이다. 네가 세상의 소망이다. 너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새롭게 이룩하실 것이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다윗을 향해서 네가 이스라엘의 희망이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박노해가 쓴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시집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이렇게 사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다윗은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사람이 하나님의 희망인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주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다윗의 성품을 우리가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은 한 가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다윗은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젊은 시절에 자기의 삶을 그 자리에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거대한 골리앗이라는 장수 앞에 나가기 위해 사울 왕 앞에서 자신을 소개했던 말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사무엘상 17:34~35)

그는 목자로서 그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양입니까? 자기양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양입니다. 이 양들이 내게 유산으로 주어질 것인지 알지를 못했습니다. 형들이 너무 많았기에 형들의 몫일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지켰습니다. 사자나 곰같이 사나운 짐승이 다가와도 목숨을 걸고 양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골리앗 앞에 섰을 때 갑자기 그의 재주가 나타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무 살도 안 된 젊은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양을 지키기 위해서 물맷돌 질을 배웠습니다. 아마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맡은 책임에 대해서 인식하고 준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저 직분을 내게 주시면 내가 본때 있게 잘 할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사원이어서 그렇지 사장이 되면 무슨 일이든지 잘 운영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를 보십니다. 그래야 축복받는 자가 되고 앞으로도 축복받을 자가 된다고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으려면 내가 지금 있는 자리가 내게 주어진 최고의 자리임을 알고 충성해야 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맡길 수가 없습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무엘상 16:12) 

사무엘은 다윗이 오는 것을 보면서 그의 내면의 준비된 마음이 외적인 모습으로까지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가 이 참 멋진 친구구나. 정말 하나님이 택하신 친구구나!’ 그리고 그에게 기름을 붓기 시작합니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충성하며 사십시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위에 감추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처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그런 사람들을 찾아야 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과학, 문학, 모든 분야에 다윗과 같은 사람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맡겨진 일에 충성하면서 애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세워야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다윗과 같이 감추어졌다고 생각될 때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을 부른 하나님께서 나도 부르실 것이라는 기대와 작정을 하면서 내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최종 인사권자입니다. 그 하나님께 나를 맡기고 나의 길을 가야합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어떤 존재라고 말했습니까?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습니다. 내게 주어진 이 축복을 감사하면서 이 땅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충성하고 사랑하며 맡겨진 일을 기쁨으로 감당해나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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