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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우상 (사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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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우상 (사 44)

 “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을 베며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 15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16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18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19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것의 절반을 불 사르고 또한 그 숯불 위에서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 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사44;14-19) 
 
오늘 본문은 우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사야 44장 전체가 우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 대부분은 우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일단 안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 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그냥 읽을 때에는 두려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 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상의 문제는 절에 가서 부처상에 절을 하거나,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하거나,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바른 신앙’이라고 한다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미신(迷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과연 ‘미신’ 이 아닌 ‘바른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를 이 시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 앞의 9절에 보면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고 말합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다’고 말합니다. ‘우상은 무익한 것이고 결국 우리로 하여금 수치를 당하게 할 것 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늘 예배를 통해서 우상숭배의 본질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먼저 하나님과 우상을 비교해보겠습니다. 

*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상은 생명(生命)이 없습니다. 나무를 깍아서 조각을 하고 칠을 한 것이니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운행하시고 지금도 섭리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상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생각(生角)하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상은 우리를 구원(救援)하지 못합니다. 아무 능력이 없는 그냥 조각하고 칠한 나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審判)하시는 심판주이십니다.  우리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은  반드시 하나님의 책에 기록이 됩니다. 그러나 우상은 우리를 심판하지 못합니다. 아멘인가요?  이제 하나님을 믿는 바른 신앙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 하나님을 믿는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두려움’입니다. 
 
여러분은 이제까지 하나님을 어떤 식으로 믿었습니까? 우상을 대하듯 하나님을 대했습니까 아니면 진짜 하나님을 대하듯 하나님을 대했습니까. 아마 우상을 대하듯 대한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말한 대로 우상은 보지도 못하고, 생명도 없고, 생각도 없고, 우리를 심판하지도 못합니다.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15절) 나무를 가지고 절반은 불을 때서 난방도 하고, 밥도 해먹고, 남은 절반은 조각해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상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지요. 내 행동을 볼 수 없고 나를 심판할 수 없는 우상인데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이 있으시고, 살아 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고, 구원도 하시고, 심판도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매일 매순간 두려운 마음을 가졌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우상처럼 대한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사는 것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고 있지도 않고, 나를 심판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들이 다 제 마음대로입니다. 성경말씀과 점점 멀어지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날마다 나를 보고 계시고, 마지막 때 내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지금처럼, 자기 멋대로 살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우선 당장은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 몸 편하고,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길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다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항상 눈앞의 일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우상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상은 우리를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의 언행을 보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상을 섬기느냐 안 섬기느냐의 문제는 부처에게 절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언행을 주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살았느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우리를 보지도 못하고 심판도 하지 못하는 우상을 대하듯, 전혀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을 믿었다면 결국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생명이 없는 신, 즉 우상을 섬기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렇게 ‘바른 신앙’은 평소에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느냐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두려움’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을 믿는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감사’입니다. 
 
성도여러분, 하루 세끼 밥 먹고 살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왜냐? 하루 세끼 밥 먹고 사는 것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별 것 아닌 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너무 부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5,000년 역사 속에 하루 세끼 밥 다 먹고 산 것이 몇 년이나 되었을 까요? 백년?(=1910년) 50년?(=1960년) 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현재 전 세계 많은 나라 중에서도 밥 세끼 다 먹고, 맛있는 것 먹으러 몇 시간 차타고 다니고, 전국의 축제(祝祭)마다 수십만 명에서 수 백만의 사람들이 몰리는... 특별히 잘사는 소수의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아멘?  

실제로 우리 부모님, 할아버지 시절에 보릿고개가 있었고 그때에는 하루 세끼 먹는다는 것은 별 것 아닌 것이 아니라 정말 은혜(恩惠)였습니다. 그때는 굶지 않은 것만 가지고도 감사했었습니다. 지금은 굶지 않고 사는 것으로는 감사할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는 하루하루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이고,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이 일어나게 하신 것임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왜 오늘 하루를 살게 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께 헌신되어진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서 이런 감사를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숨을 쉬며 살아가고, 하루 세끼 먹는 것으로 감사하기에는 우리들의 욕심(慾心)이 너무 커버린 것입니다. 욕심이 너무 커서 감사도 은혜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미신’입니다. 
  
그러나 천지를 창조하시고 홍해를 가르신 것만이 능력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이 숨을 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능력으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능력안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무기력을 가져오게 됩니다. 조그만 일에도 마음이 자주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능력으로 지금도 여러분을 지키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예배드리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은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을 믿는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믿음’입니다. 
 
우상을 믿는 ‘미신’은 항상 지금 이 순간, 현실 상황만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보게 하시고, 영원한 것을 보게 하십니다. 미신은 항상 눈앞의 일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찾지만,  하나님은 나중의 일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찾습니다.   나중 일, 우리가 이 땅을 떠난 후의 일, 영원한 일에 우리가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바른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나중은 나중 일이고 우선 급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다’ 라고 해버린다면 결국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없고 우상만 남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학생들이 공부하고, 취업준비하는라고 고생하고, 또 직장에서 가게에서 죽어라 일을 하는 것이 다 어디를 바라보면서 하는 것입니까?  먹고 살기 위한 것입니까? 영원을 바라보는 중간 과정입니까?  인테넷을 보니까 대학가에‘등골탑’혹은 ‘인골탑(人骨塔)’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을 한답니다. 과거 시골 부모님들이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자식의 등록금을 보태기 위해 논과 소를 팔았지요.  이 때문에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이 말이 이제 부모 등골을 빼는 ‘등골탑’ 혹은 ‘인골탑(人骨塔)’이라는 신조어로 다소 격하게 변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삼포세대’는 경제적인 이유로 연애·결혼·출산 3가지를 포기한 청년층을 뜻한다. 학자금 대출로 졸업 전 이미 빚을 생긴 학생들은 취업이 돼도 이를 갚다보면 목돈을 마련하기 힘들어서, 결혼과 출산이 엄두가 나지 않아서 생긴 말이 랍니다.  

'거마대학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다단계 일까지 하는 대학생들이 주로 서울 거여동·마천동의 관련 업체 숙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기에 생긴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어려운 현실을 잘 보여주는 조금은 우울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부모는 또 땅이나 소를 팔고, 학생들은 또 알바를 합니다. 왜요?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나중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자주, 종종 바라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지금 당면한 현재만, 눈앞의 편함만 바라보게 하는 ‘미신’이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오늘 하루가 영원속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바른 신앙’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믿는 신앙입니다. 
 
신자는 우상의 문제가 나올 때 '나는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다' 라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상은 내가 안 섬긴다고 마음먹는다고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는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라고 해버리면 내가 하나님을 선택(選擇)한 것이 되 버립니다. 내 의지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나는 우상을 안 섬기고 하나님을 섬기겠다' 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우상을 향해 달려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상이 인간의 본성에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가 지금 본성을 거스리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이것을 아는 신자라면 ‘나는, 나는’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것을 합니다. 저것도 합니다. 또 나는 이것을 하지 않습니다. 저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내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우상을 안 섬깁니다' 라고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우상을 안 섬기는 사람 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나님에게 감사를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을 가진 신자의 감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바라봅니다.  '하나님 제가 우상을 안 섬기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전도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봉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기도는 제가 최고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자기의 선택이요, 자기의 공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냥 우리들이 하는 것을 보면서 박수나 치고 있으라는 것입니까? 칭찬이나 하고 상이나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들러리입니다. 이것이 ‘미신’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는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하고 그 결과로 복(福)을 달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잘한 사람은 복으로 갚아주고, 못한 사람은 벌을 내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일하신 결과를 보여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자라면 '내가 사랑합니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내 속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나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니 사랑도, 봉사도, 섬김도 하나님이 하게 하셔야 가능합니다.  이것이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죽은 우상처럼 여겨버리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하려고 하게 되고 결국 자랑하고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자녀가 먹고 입고 배우는 모든 것이 부모의 덕분이지요? 하나님을 부모님처럼 믿고 따르는 것, 이런 신앙이 ‘바른 신앙’ 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고, 책임지고 있습니다. 아멘입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겸손’입니다. 여러분, 폐일언하고 우리교회에서 가장 겸손한 분이 누구입니까? 그분이 가장 신앙이 좋으신 분입니다.   우리교회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분이 가장 ‘미신 신앙’을 많이 가진 분입니다. 바른 신앙은 사람을 겸손하게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멘??!!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귀신을 좇아내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라, 지금 이렇게 예배드리는 것이 다 기적이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매일 매순간 감사하는 우리가 됩시다. 

*세상 사람들처럼, 눈앞의 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바라보며,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준비하시고 일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우상중심의 ‘미신’이 많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중심, 성경 중심의 ‘바른 신앙’으로 바꾸어져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고 게십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들이 크게 성숙하시고, 많이 성화되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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