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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시대를 분변하라 (눅 12: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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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분변하라 (눅 12:54-56)
 

오늘은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많은 성도님들이 고향을 찾은 까닭에 빈자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모처럼 고향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로운 시간을 보낼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푸근해 집니다. 명절을 맞이하여 도시 교회의 성도들이 고향 교회를 찾는 것은 도시 교회와 시골 교회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지고 시골 교회의 목회자들이 힘을 얻게 되므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몇 년 간은 추석이 되면 하늘 본향에 대한 설교를 했는데, 오늘은 주님의 강림과 관련해서 성도들이 유의할 점에 대하여 말씀하려고 합니다.

명절에 고향 친지를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의 고향보다 더 소중한 고향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본향입니다. 지상의 고향에는 혈육의 부모 형제가 기다리고 있지만 하늘 본향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앞서 간 믿음의 형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지상의 것들은 하늘의 것들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육신의 부모, 형제를 등한히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혈육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야 영적 가족의 소중함을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상의 것들은 완전하지 못하고 유한하지만, 하늘의 것들은 완전하고 영원하다는 점에서 뚜렷이 구별이 됩니다. 이 점을 올바로 이해하는 성도라야 이 땅의 재물과 안일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변함없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비록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성도들의 영원한 본향은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의식주를 위해서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여러 가지 직무를 감당하는 가운데서도 우리의 영적 신분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들은 지상 나라의 시민이면서 동시에 천국의 시민입니다. 그러나 지상 나라는 일시적으로 나그네로 머물다 갈 곳이지만 천국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입니다.

그뿐 아니라, 지상 나라의 시민권은 필요에 따라서 다른 나라의 시민권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이민을 가면 그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시민권은 임의로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천국은 구원 받은 성도들의 영원한 고국이요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올바로 알아야만 이 세상에서 길 잃고 방황하는 일이 생기지 않고, 아까운 세월을 허송하지 않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대충대충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매사에 책임성이 있고 근면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그렇게 하면 생존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도 얼마든지 일상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신앙위주로 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고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면 열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주시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삭은 한 해 농사를 지었더니 다른 사람들보다 백배나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살아갈 때 결코 이 땅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들에게는 시련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셔서 시련을 이기고도 남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부요하다고 해서 교만하지 않으며 가난하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언제나 자족하면서 살아가는 비결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8절에서 이르기를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매일 같이 진수성찬을 먹어야만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한 마르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 10:41-42)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부할 때도 있고 가난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에게 족하다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소망하면서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현실적인 목표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지상의 아름다움은 금방 시들고 영광은 쉬이 사라지고 맙니다. 젊음은 곧 시들고 노쇠를 거쳐 죽음에 이르고 맙니다. 이 땅의 것들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이 같은 원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24절에 이르기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눈에 보이는 소망 곧 이 땅에 근거를 둔 소망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천국에 근거를 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이지만, 이 땅에 머무는 동안에는 구원의 성취를 누리지 못합니다.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갖고 있지만,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하늘 본향에 다다르지 못한 채 이 땅에서 나그네 길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歸天)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답다고 말하리라…“ 

천 시인은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운 세월을 살았으나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삶이 고생스러울수록 지나고 보면 아름답게 보이나 봅니다. 저는 천 시인이 이 세상의 삶을 ‘소풍’이라고 한 것은 참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풍은 몇 날씩 가는 것이 아니고 단 하루 갔다 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한 나절처럼 짧습니다. 그리고 소풍을 끝내면 각 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을 끝내면 영원한 집으로 돌아갑니다.

성도들이 돌아갈 영원한 집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는 천국입니다. 반면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있는 사람은 영생으로 들어가고, 이름이 없는 사람은 영벌에 처하게 됩니다. 성도들은 영원한 하늘 본향을 향해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그만큼 더 본향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는 하늘 본향에 당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고 하셨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시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까닭은 우리를 위한 처소를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라고 하였고, 계시록 1장 7절에 보면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가심을 우리가 본 그대로 오신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행 1: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강림하시는 첫째 이유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데려 가시기 위함이요, 둘째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영광과 환희의 날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심판과 애곡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강림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지 정확한 일자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천사들도, 예수님 자신도 모르시며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만 아십니다. 이처럼 재림 일시를 비밀에 붙여 두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재림 일시를 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면 영적으로 미혹된 자들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강림 일시를 모른다고 해서 그 시기가 가까운 것조차 모른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이 가까웠음을 알려주는 여러 가지 시대의 징조를 보여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비가 서쪽의 지중해에서 몰려옵니다. 그러므로 서쪽에서 구름이 일어남을 보면 비가 올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리고 뜨거운 바람은 남쪽의 광야지대에서 불어옵니다. 그러므로 남풍이 불면 “심히 더우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 기상 관측의 기술이 2천 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리만치 발달해서 기상청의 일기 예보가 매우 정확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위성을 통해서 구름이나 태풍의 진로를 환히 내려다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일기 예보에 의하면, 추석인 월요일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올 것이므로 보름달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날씨의 변화에 관심이 많아서 정확한 예측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날씨 보다 더 중요한 시대의 징조를 분간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급변하는 것을 보면서 과학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결과라고만 생각해서는 시대의 징조를 제대로 분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들은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하신 다니엘서 12장 4절의 예언을 떠올립니다. 유사 이래로 오늘날처럼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는 시대가 있었습니까?

요즘 초등학생들을 보면 방과 후에 학원 수업을 받기 위해 얼마나 분주하게 다니는지 모릅니다. 학원 자동차가 집 앞까지 와서 대기했다가 실어가고 실어옵니다. 이 학원을 마치면 저 학원으로, 어떤 어린이는 학원을 아홉 곳이나 다닌다고 합니다. 그처럼 바쁘게 다니면서 배우니 지식이 더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는 분초를 다투어서 새로운 지식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그야말로 지식의 홍수시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시대상을 보면서 ‘경쟁에 지지 않기 위해 나도 분발해야겠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성경의 예언을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이 이 시대가 마지막 때가 가까웠음을 알려주는 징조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날 이 세상이 경제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것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돈을 사랑할 것이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말세를 알리는 시대의 징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딤후 3:2). 오늘날 민족 분규가 빈발하고, 국가 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단지 경제적, 정치적인 원인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강림이 임박한 때가 되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예언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지진과 화산 폭발로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 기근으로 수백 만 명이 굶어죽는 사태를 보면서 지질학적인 원인 분석이나 지구 온난화를 탓하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재난을 보면서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시대의 징조임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단, 사이비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을 보면서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다”고 하신 주님의 예언을 생각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단들이 설치는 것은 이 시대가 마지막 때가 가까움을 말해 주는 징조입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가 출현해서 전 세계를 장악할 때까지는 아직 종말이 아닙니다.

사탄의 전략은 사람들을 점점 더 바쁘게 만들어서 영적인 문제를 생각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을 한없이 부추겨서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향락과 유흥에 빠지게 만들어서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육신만을 위해 살아가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현실을 바라보면서 세상 사람들을 본받고 따라 갈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세상 풍조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1-14절에 이 같은 권면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보면 이 같이 권면합니다.

“1)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7)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라야 이 시대의 되어져 가는 일들을 보면서 마지막 때가 가까움을 분간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라야 이 시대의 징조들을 분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이 가까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도 졸고 자면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동작이 민첩한 사람이라도 술에 취해 깊이 잠들면 재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들은 이 시대에 일어나는 온갖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서 말세의 징조들을 파악하고, 강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춥니다. 자기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고,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일들을 내어버리고, 늘 깨어 기도하고 주의 일에 열심을 냄으로 언제 주님께서 강림하실지라도 어엿이 맞이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 나갑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성경에 보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살전 5:2). 곧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때에 갑작스레 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도적은 모든 사람이 잠자는 틈을 이용해서 집안에 들어와서 훔쳐갑니다. 그러나 주인이 깨어서 방비하는 집은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세상 꿈에 취해 잠자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마치 도적맞은 사람처럼 당황하고 낭패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 믿음 생활을 잘 해 온 성도들은 언제 어느 시에 주님께서 강림하실지라도 그 시간에 주님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반갑게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의 강림에 대하여 말해 주면 허황된 이야기처럼 여깁니다. “요즘도 그런 이야기를 곧이 믿는 사람들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같은 반응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그랬으니까요. 그들은 노아가 방주를 짓는 것을 보면서 비웃었습니다. “이 광명한 날씨에 어디서 세상을 다 멸할 홍수가 난단 말이냐?”고 하면서 노아를 정신병자 취급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당시 사람들은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에만 몰두해 있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아침부터 밤늦기까지 무엇이 바쁜지 분주하게 활동합니다. 과연, 무엇 때문에 그토록 바쁜 것일까요?

우리는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의 강림이 가까운 이때에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인지를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수가 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고 하셨습니다.

진리는 다수가 지지한다고 진리가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라야 진리입니다. 많은 사람이 비 진리를 따르는 마당에 진리를 따르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생명의 길임을 알기에 고난을 감수하면서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믿음과 용기와 소망을 더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에게 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신령한 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는 마지막 때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 하나씩 성취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이 후에 나타날 시대의 징조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방송에서 일기예보를 전해 주는 기상 캐스터와도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믿음이 어린 신자들이 세상의 미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고 주의 강림이 가까운 사실을 성경의 예언을 들어서 일깨워 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불신 친지들과 이웃 사람들에게 이 세상의 심판이 가까웠음을 알려주고 부지런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전도를 통해서 구원의 길로 돌아온 사람들은 장차 주님 앞에서 우리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설교를 경청하신 성도님마다 시대의 징조를 분변하여 세상의 유혹을 물리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시든지 기쁨으로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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