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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충만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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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충만 (행 2:1-4)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1.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유대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세속화된 자들로 유대교 간판을 달고 탐욕에 빠진 삯군들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들이 자신들의 더러운 생활을 회개하고 세례받고자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알고 이렇게 책망합니다.

(마3:7-12)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이 말씀에서 세례 요한은 지금 자신은 회개케 하기 위해 물로 세례를 주지만,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불”로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세례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와 예수 그리스도 위에 머무는 것을 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요1:33-34)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여러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니라.” 

그 약속하신 오순절 날이 되자 예루살렘에 모여 있는 제자들 무리 가운데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폭풍처럼 강하게 휘몰아치는 바람소리가 하늘에서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은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바람’, ‘불’(출3:2-5, 왕상19:11), ‘비둘기’, ‘생수’(요7:38-39)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령을 ‘불’로서 상징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죄악을 태워 없애는 ‘정결의 도구’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예수 믿고 회개하여 정결함 받기를 끝까지 거절하면 끝내는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B.C. 854년경 이방여인인 이세벨과 함께 온갖 패역을 일삼던 북이스라엘 아합 왕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등극했습니다. 나라 전체가 바알 우상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해 가장 악독하게 권력의 칼날을 휘둘렀던 이세벨과 아합 못지 않게 아하시야 역시 우상숭배를 일삼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크게 다쳐 병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신을 바알 숭배자에게 보내 자기의 병이 나을 수 있을지를 물어 보게 했습니다. 

그 때에 주의 천사가 당시 선지자 엘리야에게 나타나 왕의 사절단을 만나서 이렇게 전하라고 명령합니다. “너희가 바알 신에게 물으러 가다니,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올라가 누운 그 병상에서 일어나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고 말 것이니라.” 

엘리야 선지자는 천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사절들은 가던 길에서 돌이켜, 왕에게 되돌아갔습니다. 왕이 되돌아온 이유를 묻자 엘리야가 한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왕은 그 사람이 엘리야임을 확인하고 병사 50명을 거느린 중대장을 보내 엘리야를 체포하고자 했습니다. 중대장이 산꼭대기에 엘리야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어명이오. 하나님의 사람께서는 내려오시오!’ 라고 명령합니다. 

이에 엘리야가 그 중대장에게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네 부하 쉰 명을 모두 태울 것이니라.” 고 말하자 이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와 그의 부하 쉰 명을 태워 버렸습니다. 이같은 소식에 왕이 다시 다른 중대를 엘리야에게 보냈습니다. 그 중대장이 전 중대장과 똑같이 ‘어명이오. 하나님의 사람께서는 내려오시오!’라고 외치자 엘리야가 이번에도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네 부하 쉰 명을 모두 태울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들을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왕이 세 번째로 또 다른 중대장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세 번째 중대장은 올라가서, 엘리야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께서는 우리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목숨과 어른의 종들인, 이 50명의 목숨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 보십시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이미 중대장 두 명과 그들의 부하 백 명을 모두 태워 죽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의 목숨을 귀하게 여겨 주십시오.’ 그 때에 주의 천사가 엘리야에게 “그와 함께 내려가거라. 그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자 왕에게 가서 하나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전했습니다. 엘리야가 전한 주의 말씀대로, 아하시야 왕이 죽었습니다.(왕하1:9-12)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절한 자에 대한 심판의 불이 내린 것이었습니다. 거룩하신 성품의 하나님께서 회개하여 정결함을 입지 못한 자들을 불로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2. 그런데 오순절이 되어,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제자들이 예루살렘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 때에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하늘에서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혀들이 갈래갈래 갈라지면서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소위 오순절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이 때 제자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자 그들 각자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탑 사건을 통해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인생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만하게도 자신의 이름을 높여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목적으로 바벨탑을 쌓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해서 그들을 전 세계 곳곳으로 흩어 놓으신 것입니다.(창11:1-9) 

그 이후 인간은 각각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게 되었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는 의사소통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자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기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예루살렘에는 오순절 절기를 맞아 세계 곳곳에서 살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몰려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어 한 언어를 사용하는 한 민족이었지만 세계 곳곳에 살다보니 자기 말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살던 곳 언어를 각각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유대인이라 해도 각자가 살던 곳에 따라 쓰는 언어가 달라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 성령이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자 그 제자들이 그곳에 세계 각처에서 몰려온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자 다른 방언으로 말하게 된 사건은 혼잡케 되었던 언어가 다시 회복된 것을 뜻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며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성령 시대가 열린 것을 말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땅 끝까지 증거될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또한 구약 언약시대에서는 성령이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특정한 사람에게만 한정되었지만, 이제는 예수를 믿는 모든 무리 가운데 각각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그 사람을 변화시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성령(聖靈)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성령이 충만하여 먼저 자신이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쓰임받기 전에 그에게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10:6-12입니다.

(삼상10:6-12)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너는 나보다 앞서 길갈로 내려가라. 내가 네게로 내려가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리니 내가 네게 가서 너의 행할 것을 가르칠 때까지 칠 일을 기다리라.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셨고 그 날 그 징조도 다 응하니라.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이 사울의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비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가로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

사울은 이처럼 왕이 될 때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지만 권력과 탐욕에 눈이 멀어 결국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서 사울에게서 성령을 거두시자 사울은 악령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삼상 16: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 왕은 끝내 회개하지 아니하다 결국 악령에 이끌려 전쟁에 나가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성령이 충만하기 위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가장 거룩한 체 했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마3:7-9)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고 책망했던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거룩’입니다. ‘거룩함’이란 회개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정작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거룩함’이 없다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과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5:14-16입니다.

(마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성도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여 세상의 빛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으로 나타나는 성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기 바랍니다. 전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스스로 거룩한 삶을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밝히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5-14입니다. 

(롬8:5-14)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가장 크고 중요한 차이점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그 안에 함께 하신다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은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사는 반면, 믿지 않는 사람은 그 안에 성령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영과 자신의 마음과 뜻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성령이 없는 자들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령이 그 안에 없기 때문에 자연히 육신의 일만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성령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거역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을 위해 모든 삶의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추구합니다. 자기중심적 생각만 나올 따름입니다. 성령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도 맺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없어 육신의 일만 도모하며,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다시 살리시는 성령이 없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사는 사람을 ‘영을 좇는 자’라 부르며 이들은 ‘영의 일을 생각’하여 하나님을 위해 삶의 목표를 세우며 그것을 추구하며 삽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각이 나옵니다. 

성령은 성도의 영과 더불어 활동하게 되어 육신의 생각대로 살고자 생각이 나오면, 자신을 부정(否定)하고 그 생각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입니다. 그래서 결국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거하는 성령은 그 사람의 몸이 죽으면 그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시게 됩니다. 때문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과 평안을 금세와 더불어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사는 것’을 ‘성령이 충만한’ 삶으로 말씀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할 것임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합니다. “(마16:22-23) 주님, 안 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이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게 되면 성공과 출세의 탄탄대로를 걷게 되리라고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일만, 오직 육신의 일만 생각하다가 졸지에 사탄으로 몰리게 된 것입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마지막 선교 3차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자신의 생각이나 어떠한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성령에 매여’(tie, bind)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다시 말해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예루살렘으로 가려는 거역할 수 없는 마음을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행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분명히 환영리에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 아님을 짐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행20:23-25)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바울은 지금까지 세 차례 선교 여행을 할 때마다 성령께서 각 성읍에서 투옥과 상상 못할 환난이 기다린다고 말씀하셨지만, 예수께 받은 복음 전도의 사명을 다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생명조차도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고백입니다. 이제 성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예루살렘으로 떠나 두로에 도착해서, 그곳 제자들과 함께 일주일 동안 머물고 있었는데,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고,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예루살렘 가까이 가이사랴에 도착해서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빌립 집사에게 딸 넷이 있는데 예언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과 발을 묶고서 말합니다. “유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허리띠 임자를 이와 같이 묶어서 이방 사람의 손에 넘겨 줄 것이라고, 성령이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성도들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바울에게 간곡히 만류합니다. 

그 때에 바울이 “왜들 이렇게 울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까?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할 것뿐만 아니라, 죽을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고 하자 그곳 성도들은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하고는, 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 얼마 되지 않아 유대인들의 고발로 체포되어 투옥되었는데 그 밤에 하나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23:11)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받은 바 사명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9:15-16입니다.

(행9:15-16)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바울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행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이렇게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는 사명을 받은 바울은 복음 전도가 그 삶의 목표이며 그것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택함받은 그릇이기 때문에 그 사명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러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서 투옥과 환난이 기다라고 있다고 했지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과연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오직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살아왔기 때문에, 투옥과 환난이 두려워 육신의 생각을 가지거나 육신에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투옥되어 그 밤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는 말씀을 듣고, 자신을 환난가운데 예루살렘으로 부르신 목적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 300년 만에 전 세계로 통하는 로마가 복음화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친히 여러분과 함께 하시어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입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영광을 바라보며,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서 받는 고난이 있다면, 그 고난은 장차 누리게 될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믿고, 끝까지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 사시기 바랍니다.(롬8:16-17) 하나님의 영, 성령이 항상 여러분의 영과 함께 하시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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