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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으로 감사할까? (레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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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감사할까? (레 7:12) 
 
“만일 그것을 감사하므로 드리거든 기름 섞은 무교병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과 고운 가루에 기름 섞어 구운 과자를 그 감사 희생과 함께 드리고”(레 7:12) 

I. 본문해설 

중추가절이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때가 되면 한 해에 있었던 일들에 감사하며 조상에게 제를 올렸다. 우리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빛이 없었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과 경의를 자신의 조상들에게 표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아는 지식의 빛 아래 있기 때문에 한 해 동안 베풀어 주신 모든 은덕이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온 것임을 고백하며 감사해야 한다. 

II. 화목제의 규례 

오늘 읽은 본문에 화목제의 규례가 등장한다. 화목제는 히브리말로 ‘샬렘’인데, 이 말은 샬롬과 어원이 같다. 하나님의 평화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자신과 이웃들이 함께 평화를 누리는 안녕된 상태를 가리킨다. 구약의 화목제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개인적으로 감사한 일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올리는 감사의 제사와 서원과 관련한 서원제가 있다. 그리고 가슴 벅차는 감격적인 일이 있거나 누구의 강요 없이 하나님을 섬기고 싶을 때 올리는 낙헌제 혹은 자원제가 있다. 화목제는 개인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드리기도 하였다. 

III. 감사로 드릴 제사 

A. 기름 섞은 무교병 

본문은 바로 이런 화목의 제사에서 하나님 앞에 올려야 할 제물들을 설명하는 가운데 일부를 다루고 있다. 제물은 세 가지가 나오는데, 첫 번째는 기름을 섞은 무교병이다. 기름을 섞어 반죽을 지어 만든 떡이다. 그 떡은 누룩이 없는 떡이다. 눅 1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하셨는데,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가리킨다. 외식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자신의 명예를 높일 의도로 짐짓 선한 모양을 꾸미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기름 섞은 누룩 없는 무교병은 바로 성령으로 말미암는 순수한 신앙을 가리킨다. 그래서 주님 앞에 올바로 감사하는 첫 번째 제물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순수한 신앙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릴 최고의 예물이며 헌신이다. 

다윗은 범죄 하여 어느 때보다도 불결하고 더러운 영혼이 되었지만, 바로 그때 하나님 앞에 올려야 할 최상의 예물은 상한 심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짓과 형식주의가 아닌 내면의 진실함으로 하나님 앞에 신앙을 보여드리는 것이야말로 주님이 감사절에 받으실 최고의 제물이다. 

B. 기름 바른 무교병 

두 번째는 기름 바른 무교병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말 성경에는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바른’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보면 ‘맛사흐’(חשמ)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메시야라는 명사와 같은 어원을 가진 말이다. ‘맛사흐’는 기름 붓다라는 뜻이고 메시야는 기름부음 받은 자이니, ‘기름 부음 받은바 된 떡’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즉, 이미 만들어진 떡 위에 기름을 붓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윤리적인 생활이다. 

기독교의 위대한 힘은 사상의 힘과 윤리의 힘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하나님을 오디오로 들려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비디오로 보여주는 것이다. 오디오로 들려주는 것은 사상, 신학, 성경지식, 교리 이런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의무는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윤리의 힘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윤리적인 삶을 살아감으로써 우리 뒤에 우리를 통치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종종 우리가 속한 하나님 나라의 법과 세상 나라의 법이 충돌 할 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세상 나라의 법을 가차 없이 버리고, 우리를 통치하는 보다 더 완전한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에 복종하기를 기꺼이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윤리적인 삶의 힘이다.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지식을 삶으로 표명하면서, 이 세상에서 손해를 받거나 박해를 받거나 때로는 목숨을 잃어버리는 경우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윤리적인 생활이 기독교의 힘이다. 

그러나 오디오가 분명하게 정리되어 있어도 이런 삶을 사람들이 못 산다. 그래서 필요한 제3의 힘이 있는데 바로 은혜의 힘이다. 사상의 힘과 윤리의 힘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힘이 은혜의 힘이다. 하나님께 은혜 깊이 감사할 때 우리들이 드릴 최상의 제물은 기름 부음바 된 무교병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올바르게 된 윤리적인 삶을 살 때,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이다. 

C. 고운 가루로 빚어 구운 전병 

세 번째는 고운 가루로 빚어 구운 과자라고 했는데 사실은 전병이다. 이 특별한 전병은 곡식을 가늘게 간다. 가늘게 빻아지거나 절구로 찌어진 가루들을 체에 친다. 남은 곡식은 더 빻아서 더 가느다란 체에 내리면서 가장 부드러운 곡식의 가루를 만들고 거기에 기름을 넣어서 빚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자기 깨어짐이다. 하나님을 거스르며 살던 죄인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던 자기 사랑에서 깨뜨려져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자기 깨어짐이야 말로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감사의 제물이다. 

여기에 기름이 빠지지 않는 것은 성령을 뜻하는 것으로 무한하고 영이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과 교제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중재자는 성령이시다. 누구도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유한한 피조물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다. 고운 가루로 빚어지는 것은 철저한 자기 깨어짐으로 그 위에 기름을 무으시고 드디어 주인의 손에 반죽으로 들려져 주인이 원하는 대로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떡이 되는 것이다. 나의 뜻을 포기하고 주님의 손에 한 반죽이 되면 주님이 우리를 빚으신다. 

그래서 당신이 기뻐하는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빚어진 전병은 불에 구워짐으로써 하나님 앞에 바쳐질 제물이 된다. 이것은 시련과 연단을 의미한다. 불같은 시련이 신앙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겁내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로부터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감사해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순수한 신앙으로, 성령으로 말미암는 윤리적인 생활로, 성령으로 말미암는 깨어짐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것들을 모두 감사의 열매로 받으신다. 

D. 희생제물과 함께 드림 

그런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성경 구절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감사의 희생 제물과 함께 드릴 지니라”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는 소제라고 불리웠는데 이것은 단독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질 수는 없는 제사였다. 짐승을 죽여 피를 흘려 드리는 동물의 희생제 위에 겹쳐서 드리는 제사였다. 그래서 이 희생 제물이 등장한다. 죽임을 당하고 찢겨져 먼저 올려진 희생 제물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 우리를 화목케 하실 예표이다. 우리가 순수한 신앙으로, 윤리적인 생활로, 자기 깨어짐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린다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려 이루신 속죄 때문인 것이다. 

IV. 은혜에 합당하게 살자 

그래서 이렇게 감사의 절기가 될 때마다 많은 감사의 제목들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주 앞에 올리는 희생의 제사는 소제일 뿐이고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원래의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은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살라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이다. 교회의 역사를 회고할 때, 사상에 대한 투철함과 윤리적인 삶에 대한 분명한 표준이 있어도 거기에 자기를 헌신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체험들은 대부분 자기만족적 영성으로 부패하거나 신비주의로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의미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V. 결 론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중추절에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이 무한하신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은혜와 우리에게 베푸신 그 한량없는 사랑에 감사하면서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온전히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십자가의 감격을 가슴에 품고 순수한 신앙으로, 윤리적인 생활로, 그리고 깨어짐이 있는 회개로 주께 제사를 올리는 성도들이 된다면 주님은 더 많은 은혜와 사랑을 여러분들에 부어주실 것이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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