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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고민 (출 32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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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고민 (출 32 :1-14)

애플사의 스티븐 잡스는 발표하는 제품마다 아이(I)로 시작했지요. 아이팟 ․ 아이폰 ․ 아이툰즈 ․ 아이패드. 그래서 풍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스티븐 잡스의 마지막 제품을 i quit이라고 했습니다. 나 그만둔다. 스티븐 잡스가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한 것을 그렇게 풍자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성공적인 경영인으로 기업을 성장시키고 건강상의 문제로 물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퇴장입니다마는 세상에는 그렇게 물러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무엇을 그만둔다는 말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요즘 주식시장이 계속해서 곤두박질치고 있는데 주식 투자하는 사람들에게는 손절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의 손해를 막기 위하여 부득이 판다는 뜻입니다. 주가가 올라서 이익을 얻기 때문에 파는 게 아니고 이미 본전도 건지지 못하게 됐는데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더 손실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판다는 뜻입니다. 이건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나마 그것을 사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지요.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인 HP사는 태블릿 PC가 유행하니까 자기들도 태블릿 PC를 만들어서 그것을 소개했습니다. 터치 패드라고 해서. 그런데 시장의 반응이 냉담했습니다. 모두 40만개를 만들었는데 팔린 것은 5만개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HP사가 태블릿 PC를 접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재고를 99불에 떨이를 하고 이 부분을 접었습니다. 여기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교회도 큰 기대를 가지고 시작했다가 접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도 몇 년 전에 영어예배를 큰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영어예배에 대한 수요를 잘못 판단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영어에 대한 수요는 많은데 영어예배에 대한 수요는 별개에요. 그래서 두 달 만에 저는 힘든 결정을 내려야했습니다. 저조한 출석률을 가지고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의 손해를 보기 전에 중단할 것인가. 

저는 후자를 선택했는데 정말로 눈물을 머금고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영어예배가 저희 교회 사역의 작은 부분이었으니 망정이지 주일 예배 자체의 존립이 불확실해져서 교회의 문을 닫아야 하는 것을 고민한다면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독일이나 영국 같은 나라를 가보면 매물로 나와 있는 예배당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배당이 통째로 매물로 나옵니다. 이건 교인들 숫자가 완전히 줄어들어서 교회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교회 문을 닫고 교회 건물을 매물로 내놓는 것입니다. 목회를 그만둔 것입니다. 

사역을 하다보면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전도사가 됐을 때 저는 저의 믿음이나 또 하나님이 주신 은혜나 저의 경력이나 이런 것을 고려할 때 저의 미래가 찬란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교회에서 교육 전도사 사역을 시작하고 보니까 현실은 저의 생각과 많이 달랐습니다. 얼마나 목회가 어려운지 몰랐어요. 

첫째는 사람들이 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간은 됐는데 빈자리를 바라보면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그 마음은 뭐에 비교할 수 없어요.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인도하는 예배를 원하는 대로 은혜로운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은혜를 받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은혜로운 예배가 어떤 것이고 은혜 없는 예배가 어떤 것인지를 분간할 줄 압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준비를 해도 인도하는 예배가 제가 원하는 만큼 은혜롭게 풀리지 않을 때 그 괴로움은 어디에 비교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장하지 않고 두 주에 한번 꼴로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일이 나에게 맞는 않는가보다. 이것은 나의 적성이 아닌가보다. 이건 너무 어렵다. i quit. 그만두고 싶다. 이런 생각을 자주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매번 새로운 방법으로 저를 격려하셔서 제가 그만두지 않고 인내하고 그 시절을 감내하고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게 벌써 23년 전 일입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배운 가장 귀한 훈련 중의 하나는 어떻게 설교하느냐, 어떻게 예배를 인도하느냐, 어떻게 설교 준비하느냐, 이런 노하우가 아니고 실망을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용기를 얻고 믿음을 지키고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릴 수 있느냐 하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이건 신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고 이건 어떤 기술이 아니고 이건 믿음이 현실에 부딪혔을 때 그 아픔과 실망과 고난을 극복하고 그것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교훈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하느냐면 목회는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건 사람들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서 파는 것과는 다릅니다. 저마다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에게 죄인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회개하라고 야단을 치고 그리고는 헌금 내라고 바구니를 돌리고 다음 주에 또 오라고 말합니다. 

제가 재미있게 말씀드려서 그렇지 실제로 이것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이건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고 주님이 하실 줄을 믿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사람이 교회를 다니면 변화할 수 있을까, 사람은 정말로 거듭나는가, 인간의 변화가 가능한가, 정말로 기독교는 인생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는가, 여러분은 효험이 얼마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건 섣불리 대답하면 안 됩니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자주 듣는 말이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염려하는 게 아니고 세상이 교회에 대해서 염려한다는 말입니다. 이건 오늘날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비판입니다. 어떤 이들은 언론이 악의적으로 교회를 지목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항변합니다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대한민국 사회는 대한민국의 기독교에 대해서 인내했습니다. 교회를 존경하고 교회를 어려워하고 오랫동안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기 때문에 터져 나온 것입니다. 당해도 쌉니다. 우리는 그동안 거품이 너무 많았고 너무 교만해졌고 비대해졌고 울리는 꽹과리처럼 됐습니다. 대한민국의 개신교는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면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만 이런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는 최근 아일랜드의 총리가 가톨릭교회에 대해서 강력하게 항의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수십 년 동안 천주교 신부들이 어린이들을 성추행한 사실을 교회가 조직적으로 은폐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아일랜드의 신앙의 근간을 흔드는 아주 중요한 스캔들입니다. 우리와는 스케일이 달라요. 

하나님의 심판은 교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화를 내시는 게 아니고 당신의 선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겼지만 이방인들은 우상 섬기는 일에는 이미 도통한 사람들인데 하나님은 이방인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이스라엘을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 시대에 그 원리를 적용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부터 심판하시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진노하셨으면 그들을 진멸하겠다, 노아의 홍수 때처럼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10절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제가 아까 손절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또 i quit-내가 그만둔다, 여기에 대해서 말씀드린 이유는 사람도 무슨 일을 하다가 지쳐서 힘들어서 실망이 되어서 그만두겠다, 포기하겠다는 유혹을 느끼고 목회자도 목회를 하다가 힘들기 때문에 내가 그만두겠다는 유혹을 느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백성에 대해서 실망하셔서 내가 저들을 버리겠다, 내가 포기하겠다, 내가 그만두겠다는 충동을 느끼실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만일 성경이 말하는 심판과 종말이라는 것이 하나님이 인류를 오랜 세월동안 참고 또 참으시다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도 그만두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럴 권한이 있으시지만 그러나 그건 하나님답지 않고 하나님이 그동안 역사하신 방법과 맞지 않고 우리가 뭔가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하는 면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치시는 하나님이 당신이 포기하시겠습니까. 이것은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만일 하나님의 심판과 인류역사의 종말이 하나님이 손해를 감수하고 여기까지다, 나는 더 이상 이들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만-enough, 이런 차원이라면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그럼 하나님이 실수하셨다는 얘기냐.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는 얘기냐. 창세기 6장 7절에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시기 전에 ‘내가 사람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사람 지은 것을 한탄한다. 이것이 만일 후회한다는 뜻이라면 그건 우리가 뭔가 성경을 잘못 번역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부모가 자녀에 대해서 너무 실망한 나머지 ‘내가 너를 괜히 낳았다. 내가 너를 낳은 것을 후회한다.’고 하면 자녀는 어떻게 하라는 얘기입니까. ‘그럼 왜 나를 낳아서 나도 괴롭고 부모님도 괴로워하십니까.’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무력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뜻 아니냐. 사람을 하나님이 포기한다는 뜻 아니냐.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람을 포기하신다면 왜 우리에게는 서로를 용서하고 인내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포기하신다면 왜 우리에게는 서로를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고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인간의 일에서 손을 떼고 철수하신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은 수년간 수십억 불의 돈을 쏟아 부어서 전쟁을 하다가 승리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패배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철수했습니다. 하나님도 오랜 세월동안 인류를 변화시키고 구원하려고 하다가 안 되기 때문에 손절매를 하고 물러나신다는 얘기입니까. 그럴 수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심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건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건 저의 지혜와 지식의 한계에 부딪히는 문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전례를 발견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서 섭섭해 하시는 것을 봅니다. 7절에 모세에게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your people. 왜만하면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실 텐데 섭섭하시기 때문에 ‘너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고 9절을 보면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성도님들 중에 교회에 대해서 섭섭한 일이 있으면 교회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세요. ‘이 교회’라고 합니다. 내가 이 교회에 와서, 이 교회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교회’라고 하지만 교회에 대해서 섭섭하면 ‘이 교회’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백성에 대해서 섭섭하시니까 ‘이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섭섭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민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내가 이들을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화를 낼 때 ‘이놈의 자식, 내가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지 않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말할 때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 아십니까. ‘제발 누가 나를 좀 만류해 달라.’ 만약 아빠가 ‘이놈의 자식 오늘 들어오기만 해봐라. 내가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린다.’고 할 때 엄마가 덩달아서 ‘맞아, 맞아. 그놈 내쫓아야 돼.’ 그게 아니고 ‘여보, 한번만 참아.’ 이렇게 누그러뜨리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고 화를 내는데 누군가가 ‘제발 한번만 더 참아요. 한번만 더 봐줘요.’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 그것처럼 서글픈 일은 없지요. 

하나님이 내가 이 백성을 멸하리라고 할 때 모세가 한 일은 참 대단한 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에게 ‘여호와여 진노하시니이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면서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건지셨다는 사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일깨워 드렸지요. 하나님이 잊어버려서 그렇습니까. 아니에요. 그럼에도 때로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역사를 사람이 기억하고 하나님께 일깨워드려야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지 않으셨나이까.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이까. 

누가 우리를 송사하리요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가 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이까. 예수께서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사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지 않으셨나이까. 그런데 어찌하여 이제 와서 우리를 멸하시려 하시나이까.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이것이 중보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 하는 것은 장차 인류의 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에요. 예수님이 죄인과 인류를 위해서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중보하십니다. 예수님을 중보자 또 대제사장 ․ 대언자 ․ 마지막 아담 ․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고 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14절에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 그럼 심판이 없다는 얘기입니까.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돌이키신 전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모세가 중보 했지만 이제는 모세보다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지 않겠느냐. 참으시지 않겠느냐.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정말로 기쁜 소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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