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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 20:1-16)

첨부 1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 20:1-16)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금년 8월 우리나라의 전체 실업률은 3.7%이고, 청년 실업률은 7.3%인데, 체감 실업률은 둘 다 훨씬 높다고 합니다. 실업문제는 언제나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직장을 구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다음은 아버지의 정년퇴직을 지켜본 어떤 아들의 글입니다. <쓸쓸한 추억 하나, 그 아버진, 열두 살과 열 살 난 남매를 꼭 끌어안으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빤, 추워서 오늘 못 나가겠다. 

너희들이 대신 나가서 근무 좀 서고 와라.” 아빠의 얼굴에선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지만, 남매는 정말 아빠가 추워서 일하러 나가기 싫어하는 줄로 알고, 남매는 아빠가 일을 그만두신 날엔 정말 행복해 하실지 모른다고 철없이 믿었다. 그런데 막상 정년퇴직을 하신 아버지가 될 것 같지도 않은 일들을 자꾸 벌이자, 따지듯 물었다. “왜 자꾸 일을 벌이세요?” “매일 나가다 안 나가니까 못 살겠다. 돈은 안 벌어도 매일 어디 나갈 곳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그 아버진 30년 내내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퇴직 후 한 달도 안 돼 터득하신 것이었다.>

오늘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는 일터가 없어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는 한 주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마 19장 마지막절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는 말씀을 설명해 주는 연속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맥을 반영하여 Living Bible은 본문을 “여기에 또 다른 천국의 예증이 있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비유를 근거로 하여 천국의 상급에는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포도원의 품꾼’ 비유는 천국의 상급에 관한 교훈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인간의 구원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우리에게 교훈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1절에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간 주인은 품꾼들에게 하루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 제 삼시 곧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에 나가보았더니 장터에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상당하게 주리라.”고 약속하고 들여보냈습니다. 집주인은 12시와 오후 3시에도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오후 5시에 장터에 나갔더니 그 때까지 장터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측은하게 생각한 주인은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고서 그들을 들여보냈습니다. 

이윽고 날이 저물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에게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후 5시에 온 자들부터 이른 아침에 온 사람들 까지 모두 한 데나리온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른 아침에 온 사람들이 집주인을 원망하며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고 하면서 불평을 쏟아 놓았습니다. 

주인은 원망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 비유에서 포도원은 하나님께 부름 받은 선민 공동체인 교회를 뜻하며, 그리고 품꾼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성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품꾼을 부르는 집주인은 택한 자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이 비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 구원관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데, 그것은 사도 바울이 갈파한 로마서 주제 곧 구원은 ‘인생의 노력의 대가’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임을 역설한 것이, 이 비유의 중심 사상입니다. 이 비유를 좀 더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포도원 주인

1)부지런한 주인입니다.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으로 비유된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집주인은 날이 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품꾼을 모으기 위하여 밖으로 나갔다고 했습니다. 이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애쓰는 하나님의 열심을 잘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직후부터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려고 열심을 다 하셨습니다. 렘 25:4에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시다가, 마침내는 독생자까지 보내주신 하나님의 열심에 우리는 다만 놀라고 감격할 뿐입니다.

2)긍휼이 많은 주인입니다.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는 주인의 행동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섭리의 목적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하시지만, 그 안에는 창조하신 인류의 행복도 포함됩니다. 비록 인류가 하나님을 등졌다고 해도 그 목적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의 식민 통치하에 있었던 유대 나라는 경제가 몹시 피폐하여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너무도 분주하다고 불평을 합니다만, 그러나 분주한 괴로움은 실직의 고통에 비하면 비할 수 없는 기쁨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죄인 중에서 부르시되, 그들에게 꼭 어떤 의무를 맡기려고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기 위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 뿐만 아니라 3시에도, 제 6시에도, 제 9시에도, 그리고 저녁 무렵인 11시에도 품꾼들을 자신의 농장으로 불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일을 시키기보다는 그들에게 품삯을 주려는 의도가 더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3)천국은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포도원 주인의 초청에 응하는 일꾼들을 주목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맨 처음에 부름 받았던 일꾼들과 같이 확실하고도 명백한 주인의 약속이 없었지만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히 주리라,”는 말만 듣고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신실함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초면의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명령하셨을 때, 예수님의 전인격을 믿고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림으로써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수님의 구원하심과 축복하심에 동참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우리는 모두 품꾼입니다.

1)품꾼은 자신의 주인만 섬깁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품꾼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코 우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오로지 우리를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 한 분뿐이며, 따라서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2)품꾼에게는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품꾼은 주인의 명령에 왜? 라는 이유를 달지 않습니다. 백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한 아브라함처럼,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의 이해하지 못할 명령에 무조건 순종한 하인들처럼, 품꾼인 우리에게는 주님의 명령에 대한 전적인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3. 성도의 일터는 교회입니다.

집 주인이 품꾼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냈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로 들여보내십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명하신 하나님 나라의 확장 사역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교회 안에서 내게 맡겨진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천국 백성의 일터인 교회에서, 맡은 직무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나태함이나 게으름은 결코 천국 일꾼의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천국 일꾼의 참된 자세는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주어진 일을 성실히 행하는 것이며, 정직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분깃을 땅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오자 그대로 꺼내 온 게으른 종에게는 주인의 책망과 추방밖에 없었으나, 자신이 받은 분깃으로 열심히 일한 종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상급이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성실과 인내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4. 품꾼들의 불평

긍휼이 많은 주인과 품꾼들 사이에 이견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먼저 온 품꾼들에게 늦게 온 품꾼들과 똑같은 품삯을 준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땅히 먼저 온 자신들이 품삯을 더 받든지, 아니면 늦게 온 사람들이 덜 받든지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틴의 한낮 더위는 매우 심합니다.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온 품꾼들은 자신들이 바로 이러한 더위를 견디며 수고하였음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을 늦게 들어온 자들과 똑같이 취급한 주인을 원망하였습니다. 물론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주인의 행동은 형평에 맞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인은 처음에 약속한 대로 품삯을 지불하였다는 점에서 잘못이 없습니다. 그들은 집주인이 불러 주지 않았으면 일할 기회조차 없었으며, 더군다나 처음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았으므로, 원망하고 불평할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이른 아침에 포도원으로 부름 받은 일꾼들은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나중에 부름 받은 일꾼들은 이방인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먼저 온 일꾼들이 포도원 주인에게 항의하는 모습은 곧 유대인들이 자기들만 하나님의 선민이며, 이방인들에게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고 고집하는 완악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원 주인은 먼저 온 일꾼들의 항의를 일축해 버리고, 나중 온 일꾼들에게도 동일한 품삯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비록 유대인들보다 늦게 부름을 받았지만, 그들도 분명 창세전부터 하나님이 예정하신 택한 자들이며, 유대인들과 차별 없이 구원을 받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임을 잘 보여 줍니다. 

5. 포도원 품꾼 비유의 교훈

1)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청지기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집주인이 청지기를 통하여 품삯을 지불하듯,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분명하게 증거 합니다. 단 4:35에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고, 사 14:24-27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은 반드시 이루리라...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고 하였습니다.

주인은 자기의 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습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지만, 주인은 자기 생각대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돈을 쓰는 것도, 물건을 사는 것도, 일꾼들을 채용하는 것도, 주인의 마음입니다. 종과 주인의 차이점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세계에 대하여 이와 같으십니다. 그 분은 무엇이든지 임의로 하실 수 있습니다.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이 세계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들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지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나님 주권 사상인 것입니다. 이 지식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고 또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할지라도 인생을 실패하게 되고 맙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계와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두어야 할 점은 품삯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포도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된 동기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원한다고 임으로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할 수는 없었습니다. 설령 그들이 남보다 능력이 있고 또 부지런할지라도,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은 전적으로 주인의 의지에 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도가 되고 또 일군이 된 것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학교나 직장 등은 요구하는 자격만 갖추면 얼마든지 갈 수가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의 일꾼이 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선택으로 되는 것입니다.

3)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총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포도원에서 일한 모든 품꾼들이 받은 한 데나리온 곧 품삯은 구원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꾼들에게 품삯이 동일하게 주어진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성도에게는 부름의 시기에 관계없이 구원이 동일하게 주어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축복에는, 그 어떤 시대적 차별도 민족적 차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먼저 믿은 자나 나중에 믿은 자나, 구원을 얻는 데에는 전혀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실업자나 실직자의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직장이 있는 분들은, 자신에게 일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많든 적든 매달 정해진 날짜에 꼬박꼬박 통장으로 들어오는 월급에 대해, 그 월급에서 뚝 떼어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신에게 확실한 일자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늘 바쁘다는 핑계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 비하여, 자신이 얼마나 큰 축복을 받은 사람들인가를 알아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일자리가 없어서 오후 5 시가 되도록 장터에서 놀고 있던 일꾼들에게, 일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얼마나 큰 은총이었습니까? 더구나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아가는 날품팔이 일꾼들에게 있어서, 만일 주인의 자비로운 은총이 없었던들, 그와 그의 처자식들은 그날 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호의로 이른 아침에 온 사람들과 똑같은 품삯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품꾼들의 마음은 얼마나 고마운 마음으로 가득 찼겠습니까? 

이 비유에서 포도원은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키며, 품꾼은 교회의 구성원을 이루는 성도를 의미하고, 집주인은 성도를 부르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때, 분문 말씀은 구원의 진리를 모르고 허송세월하고 있는 죄인들을 교회로 불러, 구원의 대열에 동참케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보여 주시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가진 것이 많거나 혹은 남보다 의로워서 구원을 받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증거 하듯이 우리는 자랑하거나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지만, 오직 무조건 선택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주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주인의 자비와 선한 뜻이 없었더라면, 품꾼들은 그저 장터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정녕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여전히 죄와 사망의 그늘 아래 머물다가 결국은 영원히 파멸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같은 이방인을 불러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 일꾼으로 일하도록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마치 오후 5시에 부름 받은 품꾼처럼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도록 충성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자비로우신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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