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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씩 바쳐진 화목제물 (레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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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바쳐진 화목제물 (레 7:14) 
 
“그 전체의 예물 중에서 하나씩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그것을 화목제의 피를 뿌린 제사장들에게로 돌릴찌니라”(레 7:14) 

I. 본문해설 

본문은 화목제로 드려진 제물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게 되는지 제사의 방식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서 이 화목제물은 거제로 바쳐진 화목제물이었다. 


II. 거제로 바쳐진 화목제물 

성경에는 많은 제사들이 등장하는데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제사의 목적에 따른 분류이다. 여기에는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등이 있다. 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고, 소제는 손으로 수고한 곡식과 이러한 식물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제사였다. 속죄제는 죄의 용서를 위한 제사였고,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에 관하여 범한 죄 때문에 불결해진 사람이 다시 성결해지는 제사였다. 그리고 감사와 서원과 자원하여 드리는 화목제가 있었다. 이 5가지 제사를 구약의 오대 제사로 부른다. 

둘째는 어떻게 제사를 드리느냐에 따르는 방식에 의한 분류가 있다. 4가지인데, 첫째는 번제로 모두 태워서 하나님 앞에 바치는 불의 제사이다. 요제는 제물을 하나님 앞에 흔듦으로써 하나님께 열납 되게 하는 제사였는데, 화제와 요제는 모두 동물과 식물의 제물 모두에게 적용되는 방식이었다. 전제는 이미 있는 제물 위에 추가적으로 액체를 부어서 드리는 제사였다. 기름이나 포도주 혹은 피를 부어 드리는 제사이다. 마지막으로 거제는 어떤 제물을 하나님 앞에 높이 올려서 드리는 제사의 방식이다. 

A. 거제의 의미 

거제의 의미는 무엇일까? 히브리 성경에 ‘테루마’라고 되어 있는 이 거제라는 명사는 원래 ‘룸’이라고 하는 동사에서 왔다. ‘룸’은 ‘높이다, 높이 들다’ 비유적으로 ‘교만해지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그래서 이 거제는 그 제물 하나 하나를 높이 들어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의 방식이다. 제물을 하나님 앞에 높이 듦으로써, 이 제물이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함께 오직 높으신 하나님 한 분께만 바쳐진 제물이라는 신앙의 표현이다. 

B. 하나님께 바쳐짐 

이미 화목제물로 하나님 앞에 바쳐진 제물인데, 하나님은 바쳐진 그 제물 하나 하나를 개별적으로 들어 높이 듦으로써 오직 이 제물과 제물을 드리는 헌제자 자신이 높으신 하나님 한분께만 바쳐졌다는 것을 표명하기 원하셨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복음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화목제가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후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웃들과 함께 누리는 것을 예표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받은바 은혜에 대한 감사로 바쳐진 제물을 하나씩 거제로 올리는 것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격이 우리의 개별적인 삶 속에서 구체성을 띠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동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많은 고백들이 나온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님을 높입니다. 주님을 찬송하며 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보편적인 헌신의 고백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그 고백을 삶의 한 방면 한 방면에서 하나님께 높이 올려드려 주님이 받으실만한 제사가 되도록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고백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 앞에 바쳐진 삶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아도 구체적인 삶이 하나님 앞에 바쳐지지 않으면 신앙이 계속 굴러 떨어지는 생활을 되풀이 한다. 그래서 영적인 성장이 없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극복하고 승리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해 나간다. 그러나 영적으로 성장한다고 해서 항상 은혜 충만 한 것이 아니라 많이 성장을 했는데도 은혜가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완전히 고꾸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은 은혜가 떨어지면 완전히 불신자인 시절로 돌아간다. 그것은 성장이 아니다. 왜 성장이 없냐면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을 못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성경의 지식을 터득하며 기쁨을 누린 것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 훌륭하게 이미 헌신되고 바쳐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은혜를 받고 교리를 많이 알아도 머리는 커졌지만 손은 꼬부라졌고, 다리는 부러졌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구체적인 삶의 실천이 없다. 

여러분 가정에서의 삶도 하나님 앞에 높이 올려질 만한 거제의 제물이 되었는가? 은혜는 받았지만 가정에서 아내에게 폭력과 폭언을 퍼붓고, 자녀들에게 신앙적인 모본은 보이지 않고 함부로 하는 성도들, 주중에 성도들을 가르쳐도 주말에는 남편을 무시하는 부인들의 태도, 이런 것들은 하나님 앞에 드려질 만한 거제의 제물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바쳐진 교회 봉사의 영역을 하나님께 올린다고 생각해보자. 하나님께만 바쳐진 거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결함이 너무 많다. 보편적인 헌신만으로는 이런 것들이 다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욕을 먹는 것은 현대인의 밑바탕에 깔린 강력한 무신론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도 잘못한 게 많다. 교회에 나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을 하지만 충분히 은혜를 받지 못하고, 은혜를 받았어도 삶의 어느 부분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해 정직하지 못하게 살고 불의하게 살고 타협하면서 산다. 우리끼리는 이것이 연약한 것이지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위선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내면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복음적인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에 합당한 개별적인 삶에 있어서 헌신이 따르지 않을 때 이런 종교적인 경험들은 자기만족적인 소비의 영성이 되고, 오히려 그런 은혜의 경험들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다. 

올바르게 사는 삶은 삶의 모든 방면에서 구체적으로 삶이 하나님 앞에 거제처럼 드려진다. 아버지께 드려지는 이 삶은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하고 그 은혜를 더 풍성하게 하는 중요한 비결이다. 집에 갔는데 개념 없는 아내가 또 성질을 돋궜을때, 예전 같으면 확 퍼부었을텐데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가정생활의 영역을 거제로 하나님 앞에 올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 더 간절히 매달리게 되고 어려움과 역경이 있지만 계속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님께로부터 받은 구원의 은혜를 구체적인 삶 속에서 고백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C. 제사장들에게 바쳐짐 

마지막으로 이렇게 거제로 올려진 제물은 불태워서 없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돌려졌다. 바로 제사장들이 그 제물을 취했고 자신의 생활에 활용을 했다. 제사장의 직무는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의 피를 뿌리므로 제물이 하나님과 헌제자 사이의 속죄와 중보를 위해 희생했다는 것을 표명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이 제사장이 오늘날의 목회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럼 제사장이 신약에서 누구를 예표하는 것일까. 신약성경에는 제사장이란 단어가 40회 사용된다. 세 가지 용례가 나오는데, 가장 많이 나오는 용례는 그 당시 혹은 구약에 있었던 제사장 자체를 지칭한다. 나머지 두 용례 중 첫째는 속죄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로 제사장이란 말이 사용되었다. 삶의 어떤 부분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올려 감사의 제물로 바쳤을 때 이 올린 제물은 제일 먼저 예수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한다. 즉, 구속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삶의 한부분 한부분을 높이 올려 하나님 아버지께 바쳤다고 한다면 그 바쳐진 헌신의 유익 때문에 예수님이 배부르셔야 한다. 

예수님을 배부르게 하는 비결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더라면 하셨을 일들의 뒤를 잇는 것이다. 그래서 병든 자를 돌보고 무지한 자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외로운 자를 위로하며 진리로 시련을 이기게 하셨던 주님의 착한 행실을 본받아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아는 사람들은 자신의 개별적인 삶을 하나님 앞에 거제로 올리고 이 유익 때문에 예수를 배부르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마지막 둘째는 성경에 보면 왕 같은 제사장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했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영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풍요롭게 하고 번영하게 하는데 이바지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고 아무것도 안하는 무위도식 하는 사람들은 회개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고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신 분이다. 그러나 그 능력으로 우리를 이용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병든자를 고치고 주린자를 먹이시며 종 같은 인자의 생을 사셨다. 우리는 그분을 배부르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분이 사랑하셨던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예수의 피로 구속해주신 구원의 백성들이다. 


Ⅲ. 결론 

과거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자신의 행복에만 골몰하는 동안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가득차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섬김의 삶을 살았을 때는 마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가득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기와 화목해진 사람들에게 원하는 바로 그 사랑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작은 부분이라도 주님께 드려서 그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바쳐지고, 그 섬김 때문에 그리스도가 배부르고 이 땅의 많은 성도와 이웃이 배부르며 교회가 번영하도록 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되길 바란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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