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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가정(1) (벧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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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리스도인의 가정(1) (벧전 3:1-6)

옛날 성소에는 ‘메노라’라는 금촛대가 있었다. 제사장들은 이 금촛대의 불이 항상 꺼지지 않도록 돌보는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종종 불을 꺼뜨리는 사고가 발생하곤 했다. 그 이유가 5가지 있다.

1)소명의식의 상실 때문이다. 2)책임감의 망각 때문이다. 
3)제사장들 상호간의 의사소통의 혼선을 빚을 때 꺼뜨린다. 
4)경제적으로 관리하지 못해서이다. 5)외부의 적들의 침입이다. 

부부 간의 가슴 속에도 메노라의 불빛 같은 사랑의 불빛이 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1)결혼에 대한 목적 상실
2)책임감을 망각할 때 부부의 불꽃은 꺼진다. 예)초보운전 때는 사고가 없다.
3)의사소통의 혼선. 4)경제적 관리 실패. 5)외부의 적들의 침입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국가에 대한 윤리, 그리고 직장인으로서의 직업윤리에 대하여 언급한 후 부부 윤리에 대하여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와 직장 뿐 아니라 가정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한 가정의 행복은 부부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2번에 걸쳐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란 주제로 설교하고자 한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먼저 아내의 도리에 대하여 권면하고 있다. 


1.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1절 앞 부분의 말씀을 보면,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들으면 즉시 반발을 일으킬 수 있는 자극적 멧세지가 원색적으로 선포되고 있다. 19세기 20세기 초,여성인권이 무시당할 때라면 몰라도 21세기 개명 천지에 이런 명령은 여성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발언일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 특별히 그리스도인이면서 아내된 입장에 있는 분들은 무조건 반감을 갖고 분노하기 전에 사도 베드로가 왜 단도직입적으로 이런 명령을 하고 있는가? 왜 이런 비인격적이고 불평등한 요청을 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경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적 위치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1) 창조의 질서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딤전 2: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2) 영적 질서
고전 11: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엡 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또 다른 차원에서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실제적인 이유를 근거로 하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남편의 구원을 위해’ 순종하라는 것이다. 

벧전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바울의 견해를 원리적이라고 한다면, 베드로의 견해는 매우 실제적이다. 순종은 아내의 자존심보다 남편의 구원이 더 중요하고 큰 문제라는 인식을 가질 때 가능하다. 반쪽 신앙을 가진 여성도들의 심적 고통이 크다. 그들의 관심사는 명품 가방이나 모피 코트가 아니다. 부부가 함께 교회당에 나오는 것이다. 

아내들에게 요구되는 일방적 순종이 성경적 원리요, 영적 질서로 그친다면 순종은 하겠지만 억울한 마음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불신 남편의 구원, 믿음이 부족한 남편의 영적성장을 위한 순종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왜냐하면 자신의 행복, 가정의 행복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아내들의 바르지 못한 행실로 인해 남편들로부터 공격을 당할 때가 있다. 예)남편을 무시할 때. 남편들은 아내의 태도와 행실을 지켜 보고 있다. 

벧전 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2. 순종의 구체적인 내용 - 단장하라

벧전 2: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1) 외모로 말라
여성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적이다.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 그것 자체가 잘못될 것은 없다. 어떤 글에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랑받는 아내의 비결, 남편에게 맨 얼굴을 보이지 말라. 남편들은 아내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한다.’ 

사도의 권면은 여성이 단장하는 것 자체를 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 입장에서 외모를 꾸밀 만큼 여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외모를 꾸미는 일은 부유한 귀족 여인들 가운데 유행하던 모습이었다. 같은 여성 입장에서 외모를 꾸미고 싶지 않은 여성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여성들 중에 사치스럽게 꾸민 세상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여성들이 외모를 꾸미는 일에 열중하다 보면 가정을 소홀하게 되고 영적인 생활에도 지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외모로 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예)명품사기 위해 백화점에서 줄서기. 명품을 들고 있으면 자신감이 생긴다. 남이 나를 알아준다.

2)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것
‘마음의 숨은 사람’은 ‘중생한 자아, 곧 속 사람’을 의미한다. 정말 거듭난 사람은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인생의 최고의 가치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모양내는 세상의 여인들을 흉내 내려기 보다는 그리스도를 닮기 원한다. 참된 믿음의 여성은 내면의 아름다움 곧, 온유함(조용함)과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정숙함)으로 단장한다는 것이다. 

왜 내면의 속 사람을 단장해야 하는가? 불신 남편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외모의 치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켜 보고 있다. 또한 내면의 아름다운을 꾸미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다. 그것은 마치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 앞에 드린 헌신과 같이 값진 것이다(막 14:3).

그러나 아내들은 주의 해야 한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남편들은 두 가지를 다 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3. 거룩한 부녀들의 예

벧전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5절에서, ‘거룩한 부녀들’은 누구인가? 하늘에 소망을 둔 믿음의 여인들이었다. 거룩함은 언제나 신앙이 두터운 여인들의 표준이요 특성이 되어 왔다. 그 여인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표준을 지키려고 결심했다. 
이렇듯 그들은 부드럽고 온유한 마음으로 자신을 장식하고 자기 남편에게 순종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여인으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꼽고 있다.

벧전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순종한 것 같이 너희는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하면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주’라 칭했다. ‘주’라는 말의 의미를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경외자, 존경받을 자. 둘째는 소유주. 셋째는 섬김의 대상이란 뜻이다. 남편에 대하여 이런 자세를 갖는 아내는 참으로 지혜로운 여인이다. 왜냐하면 그런 태도가 자신과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아브라함은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가뭄, 하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을 ‘주’로 섬겼다. 

예)클린턴의 아내 힐러리, 그녀는 남편 빌 클린턴이 대선 기간이던 1992년 나이트클럽 가수인 제니퍼 플라워스와 부적절한 관계로 곤경에 처하자 방송에 남편과 동반 출연해 당당하게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했고, 결국 퍼스트레이디'의 지위에 올랐다. 그녀는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졌을 때에도 똑같은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사라는 열국의 어미가 되어 후손들에게 믿음의 사표가 되었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신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해 단장하는 여인에게 약속된 복, ‘그의 딸이 된 것이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살아간 거룩한 부녀들의 반열에 들어가는 복과 영광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사도 바울의 말씀이 떠 올랐다.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진정한 회복이 이뤄지게 되었다. 가정의 중심은 부부다. 부부의 위기는 곧 가정의 위기다. 희생 없이는 부부의 화목도 가정의 행복도 없다. 

추석이 설 명절이 지난 후 이혼율이 높아진다는 보도가 있었다. 부부가 화평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지 않은 결과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하신다. 그 가정을 통해 천국을 미리 경험하게 하시길 원하신다. 

억울하다. 불합리하다 따지고 싸울 일이 아니다. 불신 남편의 구원을 진정 원한다면, 그리고 연약한 남편의 신앙이 성숙해지길 원한다면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 그리고 속 사람을 아름답게 단장하길 바란다. 그렇게 하면 행복한 가정이 이뤄지게 될 줄로 믿는다.

그리고 남성들은 아내들에게 권면한 말씀을 이용하려 하면 안된다. 하나님께서 남편을 앞세우신 것 만큼 남성들에게는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1)순종하라 - 남편에게 존대말, 격려의 메세지
2)단장하라 - 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한 결단. 깊은 신앙심과 부드럽고 조용한 마음의 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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