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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번째 나타나심(히 9: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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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입
히브리서는 계속해서 구약의 제도와의 비교를 통해서 예수님의 우월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구약시대의 성막제도와 제사제도와 긴밀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제 살펴본 말씀과 관련지어서 생각해볼 때 율법에 따라 구약시대의 성막에 쓰인 거의 모든 물건이, 그리고 성소에서 드려진 모든 제물이 피를 뿌림으로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고도 말씀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보다 나은 희생제물로 깨끗해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좋은 제물로 깨끗해져야 할 하늘에 있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드려진 속죄 제사를 위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자신이 흘리신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예수님 자신이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본문은 예수님 자신이 더 좋은 제물이 되셨다고 말씀합니다.
■ 본론
그렇다면 예수님이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예수님은 참 성소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구약의 성소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참 성소인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참 성소인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기 위함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이 바로 오늘 말씀의 핵심으로 가는 열쇠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성막을 만드시고 제사장들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1년에 한 차례 대속죄일에 이들 제사장 중의 우두머리인 대제사장들이 속죄함을 받기 위해 나온 사람들을 대표하여 짐승을 잡고 그것의 피를 내어 그 희생제물을 가지고 지성소로 들어가 속죄함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1년에 한번씩 성소에 나아가서 죄사함을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도 지성소로 나아가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많은 이들을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오직 자기의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고 죄를 없이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나아가사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하나님 앞에 나타나셔서 많은 이들을 구원하고 계시는 것이지요. 이로 인해서 예수님이 참 성소인 하늘의 성소로 들어가신 목적은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예수님이 참 성소인 하늘의 성소에 거하시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제적으로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들이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심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된 새 언약의 말씀을 우리가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과, 구약의 성막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성소, 곧 예수의 피로써 정결하게 된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우리들이 속하게 된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 새 언약의 말씀과 하늘의 성소인 교회와 이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인 우리들이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아 정결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늘의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실 때에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이 땅이 하나님 나라인 것을 선포하면서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계속해서 25-26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짐승을 잡은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모든 이들의 죄를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구약의 대제사장의 법을 그대로 따르셨다면 당연히 예수님께서도 해마다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셔야 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로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구약의 제사제도도 그분의 손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러나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섭리하심 가운데 하나님의 때에 오셔서, 곧 ‘세상 끝에 나타나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단 한 번 희생제물로 드려 여러분과 저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율법을 뛰어넘는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속죄제사는 1년동안 유효한 것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 나오신 여러분과 저에게도 이것이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여기까지가 본문의 표현대로 하자면,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첫 번째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 결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제물이 되셔서 자신을 드리신 사건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효력을 갖는 것임에 주목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원히 죄사함을 받는 것은 언제까지 그 효력이 유효합니까? 네. 바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입니다. 27-28절을 읽어드립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핵심은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이 두 번째 나타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을, 곧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27절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성숙한 성도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기대하고 갈망하면서 한 영혼이라도 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얻도록 잘 인도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시면서까지 여러분과 저의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해주심을 기억하면서 오늘 하루도 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고 예수님의 두 번째 나타나심을 갈망할 수 있도록 말씀대로 살아가기에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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