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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롬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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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롬 8:1-11)

1. 사람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당신이 지은 죄가 어떠하든 결코 정죄(定罪)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 선언은 인생의 금세와 내세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대한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과 ‘예수 밖에 있다.’는 것의 차이점은 ‘생명이냐’ ‘죽음이냐’ 입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 가운데 있다는 것이고, ‘예수 밖에 있다.’는 것은 사망 가운데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산사는 것이고, ‘예수 밖에 있다.’는 것은 저주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 믿고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지만 그 말씀대로 다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자기 육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사랑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고백하며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이기며 살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로마서8:37-39입니다.

(롬8:37-39)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다윗 왕은 하나님께 대한 변함없는 사랑으로 항상 하나님 안에 거하는 생활, 다시 말해 항상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 때 왕궁 옥상을 거닐다 건너편에 보이는 한 여인에게 눈이 팔려 그 여인을 끌여 들여 간통죄를 범했었습니다. 자신의 간통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 여인의 남편, 충신 우리아를 청부살해하는 살인죄까지 범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하나님의 통렬한 책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온 이스라엘 백성을 네 손에 맡겼노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너에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그러한데 어찌하여 내 말을 업신여기고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그러므로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삼하12:7-12) 이때 다윗 왕은 진심으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합니다. 시편51:7-11입니다.

(시51:7-11)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새롭게, 거듭나게 해 주시라는 간구입니다. 자신의 마음과 영혼이 새롭게 되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써만 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 말씀을 멸시한 사울 왕에게서 성령을 거두심으로, 사울 왕이 악신에 시달리다 결국 비참한 죽음을 당한 사건을 직접 목격한 바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간구했던 것입니다. 

(삼상 16:14-15)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이러한 모습들은 다윗 왕이 비록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했을지라도 항상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잘못들에 대해 징계를 받았을지라도 최종적인 심판, 정죄함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다윗은 징계를 받았을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었기 때문에 성령을 그에게서 거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다시 축복과 승리 가운데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성령을 거두시고 심판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믿고 산다고 하면서 때로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할 경우가 있다 해도 항상 믿음 안에, 끝까지, 그리고 끊을 수 없는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이 항상 성령 안에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성령을 따라 생각하고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육의 생각을 가지고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본성대로, 육체의 본능대로 사는 것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생각대로 살게 되면 삶에 생명과 평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간 어린 다니엘은 왕궁에서 최고의 환경과 최고의 산해진미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궁에서 최고의 환경과 최고의 산해진미’가 우상 앞에 바쳐진 우상의 제물임을 알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왕궁에서 최고의 환경과 최고의 산해진미를 즐길 수 있다’는 육의 생각을 버리고, 성령과 말씀에 따르므로 결국 그 지혜와 총명이 10배나 더 뛰어나며 마침내 바벨론 총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왕이 바뀌고 국호가 변경되었어도 항상 육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으로 살아 형통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반면 그 유명한 삼손은 이방 여인 들릴라에 빠져 육의 생각대로 살다가 결국 두 눈이 뽑히고 짐승과 노예들처럼 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육의 생각대로 살다가 결국 사탄의 노예가 된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입니다. 

항상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사는 삶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성령의 생각으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함으로 예배드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편 69편 다윗의 삶을 보겠습니다.

(시69:1-31)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들어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무리히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내 죄가 주의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이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열납하시는 때에 나는 주께 기도하오니 하나님이여 많은 인자와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큰 물이 나를 엄몰하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로 내 위에 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에게 가까이 하사 구속하시며 내 원수를 인하여 나를 속량 하소서.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다윗은 ‘수렁’, ‘웅덩이’ 등으로 표현되는 헤어 나오기 힘든 삶의 위기와 고통 속에서도 반드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믿음을 확신했습니다. 시편69:31입니다.

(시 69: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생활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기쁘게 보시고 평안의 복과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는 복,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복을 약속하셨는데 이것입니다. 사무엘 하7:14-15입니다. 

(삼하7:14-15)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하신 대로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는 죄 등을 범했을 때, 그리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더럽힌 죄를 범했을지라도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셨지만, 사울처럼 은총을 거두어 왕위를 빼앗지는 않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삶의 어떠한 경우를 만날지라도,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형편에 있을지라도 항상 성령이 함께 하시는 생활이 되도록 ‘비록 외양간에 송아지가 없고, 포도나무에 포도열매가 없을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성전에 나아가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몸과 마음, 심신(心身)이 힘들고 지칠 때일수록 더욱 더 성전을 가까이 하여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예배드리게 될 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여 영의 생각을 가지고 마침내 ‘생명과 평안’에 이르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항상 성령 안에 거하는 생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되도록, 성전과 예배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범사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성령 안에 거하는 사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생각으로 자신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이룩할 수 없는 복을 주십니다. 잠언 16:7을 보겠습니다.

(잠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의 행위’란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담긴 하나님 말씀을 가감하지 아니하고, 그리고 의심하거나 지체하지 아니하고 그야말로 순전하게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어떠한 이유로든 그 사람을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자들의 마음을 우정과 사랑으로 돌이키어 화목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약속하신 축복,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삼하7:11)는 것 이상으로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 예배를 지키면 ‘내가 뭇 민족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너희의 영토를 넓혀 주겠노라. 너희가 한 해에 세 번, 절기 예배를 드리려 집을 비우고 예루살렘 올라올 때에, 아무도 너희의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게 하리라.’고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출애굽기34:23-24입니다. 

(출34:23-24)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실제 B.C. 872년경 남 유다에 여호사밧이 왕에 등극했습니다. 그는 왕이 되면서부터,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믿음과 하나님 말씀에 순전히 순종하는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의 여론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따르기로 하고 나라 곳곳에 모든 우상들을 철저히 타파해버렸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5명의 최고 지도자와 9명의 레위인, 2명의 제사장을 전국 각지에 파견해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대하17:8-9) 

이들은 하나님 말씀 뿐만 아니라, 당시 만연했었던 악습과 우상 숭배를 척결하는 방법 등 신앙생활 전반을 세세히 지도했습니다. 이러한 여호사밧 왕의 통치를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주시고, 온 유다 백성들은 왕에게 감사함으로 선물을 바쳤습니다. 그로 인해 여호사밧 왕은 대단한 부귀와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역대하17:3-5입니다. 

(대하17:3-5)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하셨으니 이는 저가 그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 부친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저가 부귀와 영광이 극하였더라.

여호사밧 왕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계속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에 부어 주신 축복으로 인하여 이방 나라들이 두려워 떨도록 하신 것입니다. 유다의 주위에 있는 모든 나라가 하나님께서 유다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두려워서 감히 여호사밧에게 싸움을 걸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여호사밧 왕에 조공으로 예물을 바치도록 주변 나라들을 섭리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여호사밧은 점점 강대하여 부국강병을 이룩하게 하셨습니다. 역대하17:1-12을 보겠습니다.

(대하17:10-12) 여호와께서 유다 사면 열국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블레셋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도 짐승떼 곧 수양 칠천 칠백과 수염소 칠천 칠백을 드렸더라. 여호사밧이 점점 강대하여 유다에 견고한 채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성령을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어 성도 여러분 주변 환경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4.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어떠한 환경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 후서5:9, 데살로니가 전서4:1을 보겠습니다.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살전 4:1)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집 안에 있든지 집 밖에 있든지, 나라 안에 있든지 나라 밖에 있든지 항상 하나님을 특별히 기쁘시게 아주 열심을 다하여 노력하라는 것입니다.(desire very strongly, strive eagerly) 더 나아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삶의 죽음의 문제에 대해 초연(超然)한 자세로 오직 모든 관심을 주를 기쁘시게 하는데 집중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 중심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봉사를 하든 복음을 전하든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10:31입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사도 바울이 숱한 고난과 환난 중에서도 기뻐하며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오직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목표로 해서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 후서4:7-9입니다.

(고후4:7-9) 우리가 이 보배를 질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우리 인생을 깨어지기 쉬운 ‘질 그릇’에 비유했습니다. 

(사64:8)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애4:2) 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는고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질 그릇’이 스스로를 빚을 수 없고 토기장이가 빚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실 때 ‘질 그릇’(흙)으로 빚으셨습니다. 이 ‘질 그릇’은 쉽게 깨어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인생은 아무리 고결한 인격을 갖추었다 해도 깨어지기 쉬운 ‘질 그릇’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배’, 즉 복음이 되시는 전지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결코 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진정한 성도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믿음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게 합니다. 마치 욥이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이유로 엄청난 고난을 겪은 것처럼 고난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즙을 짜기 위해 포도를 짓누르는’ 듯한 극심한 고난을 당하여도 결코 부서지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능력의 심히 큰 것”의 원천이신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 안에, 성령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질그릇’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절감(切感)하는 것이 그가 가장 강해질 수 있는 비결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깨어지기 쉬은 연약한 ‘질 그릇’같은 존재임을 깨닫게 될 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은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극심한 환난은 스스로를 신뢰하지 말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게 하려 하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질 그릇’같은 자신이지만 하나님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믿음 안에, 성령 안에 거하기 때문에 결코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1:8-9입니다.

(고후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대적들이 포위하여 한곳에 몰아넣는다 하더라도 결코 움직일 틈이 없도록 궁지에 몰아넣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능력의 심히 큰 것‘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어떠한 고난이나 환난도 예수 안에 거하는 성도들을 궁극적으로 패배시키지 못한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음으로 사는 성도 여러분의 삶에 때로 위경을 당하거나 어떠한 고난과 환난을 겪게 된다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사시기 바랍니다. ‘질 그릇’같이 부서지고 깨어지기 쉬운 인생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결코 부서지고 깨어지지 않고,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궁극적으로 승리하고 형통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모든 일에서 그를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빛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받을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암흑의 권세에서 건져 내셔서,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골1:10-13)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으니, 감사를 드립시다. 그래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섬기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히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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