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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느냐 (민 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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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느냐 (민 14:1-12)
  

들어가는 말

아침저녁으로 제법 날씨가 쌀쌀합니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 가을에 우리교회는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를 10월 9일부터 29일까지 실시합니다.
다니엘 세이레 기도란 다니엘 10:2-3절에 근거한 기도회입니다.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단단히 결심하여 21일 간 기도하는 것입니다.

몇 주 전 교회학교 교사대학 때 류태영 박사가 오셔서 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분의 어린 시절 얼마나 가난했는가 하면, 나무기둥이 없는 움막집에서 살았답니다.
아버지는 머슴살이, 어머니는 식모살이.......
그는 8남매 중 다섯째인데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이 그 집안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4촌 ,6촌 형제들 중에 아무도 초등학교 문지방을 넘어보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18살 때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덴마크, 이스라엘에 유학한 후 약관 36살에 대통령 보좌관으로 새마을운동을 기획하고, 추진하였습니다.
그는 건국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였습니다.
그가 쓴 ‘기도 인생’이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만일 제게 기도하지 말라고 한다면 그것은 제 숨통을 끊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기도는 제 영혼의 생명줄입니다.”
“장관이나 대통령 면회도 하늘의 별따기인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일을 어찌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새벽기도에 나가 하나님께 소원을 말씀드리는 일을 난 단 하루도 거를 수 없었다.”

책에는 그가 덴마크어를 배우던 일화가 소개되었습니다.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하자 온통 주위에서 덴마크어만 들렸다. 영어나 독어, 일어, 불어는 대학에서도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덴마크어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사방에서 덴마크 말이 들리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귀에 덴마크어는 새가 노래하는 것처럼 재잘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 아버지! 어떻게 합니까?”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하나님만 불렀다.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질 때까지 부르다보니 내 마음 깊은 곳에 평안이 찾아왔다. 나는 다시 하나님을 불렀다.
“하나님!”

그러자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바벨탑이 무너지는 장면이었다. 바벨탑이 무너지기 전에 세상 사람들은 한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무슨 언어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한 언어임은 분명했다. 창세기에 보면, 사람들은 탑을 쌓으면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기도가 터져 나왔다.
“말을 만드신 하나님! 말의 주인이신 하나님! 제 굳은 혀를 풀어 주시옵소서.”

우선, 하나님은 어린 시절 내가 어떻게 말을 배웠는지 생각하게 하셨다. ‘나는 우리말을 어떻게 배웠지?’ “아빠, 엄마, 까까, 쉬, 응가, 맘마” 같은 어린아이의 단어들이 떠올랐다. 순간 무릎을 탁 쳤다. 하나님께서 덴마크어를 터득할 수 있는 답을 주신 것이다. 엄마 말을 흉내 내다가 그 단어들을 따라 한 것이다. 그러니까 덴마크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흉내 내면 그 나라 말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이 몇 마디나 되는지 알아보았다. 기도하다 말고 노트를 꺼내 생각나는 영어로 문장을 써내려갔다. ‘I am a boy’, ‘You are a girl’, ‘We are student’, ‘How are you?’… 90문장쯤 쓰니까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300 문장만 외우면 일상적인 회화는 불편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태영 박사는 일상적인 회화를 3개월, 학문적인 용어를 3개월, 합하여 여섯 달 만에 덴마크어를 마스터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새벽기도회를 통해 지혜를 구하였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보통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하였습니다.
오늘 설교의 주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사랑을 기도함으로 체험하자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어드리자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께 매어달려 불가능한 일을 극복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를 따라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직전 그 변경 가데스바네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정복하게 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어떤 땅인가를 조사하기 위하여 12명의 정탐꾼을 보내게 됩니다.

‘그 땅은 살만한 땅인가?’
‘그 땅에 곡식은 잘 자라는가?’
‘그 땅에 이미 도사리고 있는 적들이 있는가? 있다면 어느 정도 강한가?’
40일 동안 조사하고 온 정탐꾼들이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보고를 합니다.
정탐꾼 10명이 먼저 보고를 합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말하기를, ‘그 땅은 우리가 정복하기는 불가능하다’ 는 것입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우리의 힘, 우리의 병력, 우리의 능력, 우리의 재력으로 그 땅을 정복하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포기합시다!’ 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이에 반하여 다른 두 명-갈렙과 여호수아는 “무슨 말입니까?” “할 수 있습니다.” “해봅시다.” 라고 백성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똑같은 상황을 보았습니다. 
똑같은 땅을 다녀왔습니다. 
똑같은 환경을 접했습니다. 
똑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똑같은 산과 들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보고는 너무 다릅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갈렙과 여호수아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낙천적이며, 가능성으로 가득 찬 보고를 했습니까? (질문)

1. 갈렙과 여호수아는 절대 확신의 사람입니다.

민 13:30절에 보면,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보고합니다.
‘능히 이기리라!’
'certainly!' 확실히 이깁니다. 
실패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합니다.
열 명이 절망하고 있을 때, 열 명이 체념하고 있을 때, 갈렙은 들뜬 목소리로 “해볼 만한 과제입니다! 한번 부딪혀봅시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이것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절대 확신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초기에 미국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려는 수차례의 노력이 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수차례의 정상 정복에 실패한 후에 일단의 청년들이 다시 도전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등정에 앞서 심리학자들과 인터뷰를 가진 일이 있었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러 떠나는 청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들은 이번에는 그 산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가?” 
한 청년이 대답하기를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또 한 청년은 대답하기를 “최선을 다해 보지요.” 라고 했습니다. 
그다음, 짐 위트카 라는 청년이 옆에 있다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1963년 5월1일 네 명의 친구들을 에베레스트 산자락에 묻고, 짐 위트카는 홀로 8,880m의 산 정상에 미국의 성조기를 꽂고 돌아왔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일에 대한 다른 태도와 확신 그리고 고백이 다른 결과를 낳았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본문에 보면 확신이 없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심리적인 변화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1) ‘악평’이 일어납니다.

민13: 32절 상반절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자신감 없이 세상을 바라보면 악평밖에 할 게 없습니다. 
자신감 없이 내 삶을 바라보면 한숨밖에 나올게 없습니다. 
다 마음에 안 듭니다. 

2) 문제를 과장합니다.

민13:32절 중반절에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이 표현을 보십시오. 
땅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설마 사람을 잡아먹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공공연히 ‘거주민을 삼키는 땅’ 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를 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금방 죽을 듯이 호들갑을 떠는 사람이 있습니다.

3) 열등감이 깊어집니다.

민13:33절 중반절에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이 구절은 성경에 나타난 열등감과 관련된 표현 중의 압권입니다. 
얼마나 깊은 열등감입니까? 
‘스스로 보기에도 어린아이 같다’는 정도라면 그래도 들어줄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메뚜기 같다.”라고 자기를 곤충으로 비하시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이것이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는 길입니다. 
세상과 내 삶에 대하여 악평하고, 문제를 과장하고, 열등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2. 그러면 어떻게 갈렙과 여호수아는 절대 확신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갈렙은 말하고 있습니다. 
민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진짜로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진짜로’라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기도 하고, 체험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려운 일에 부딪히니까 상황을 돌파하지 못합니다. 
다 주저앉고 맙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그 환경을 돌파합니다. 
그래서 저는 ‘진짜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이라는 고백은, ‘하나님의 허락이 문제이지 사람과 상황은 문제가 아니다.’ 라는 믿음입니다.
민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기 보십시오.
갈렙이 신경 쓰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었습니다.
다른 것에 대하여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요.
우리의 삶에 있어서 모든 결재는 하나님의 손에서 떨어지는 것이지 상황과 사람에 의하여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아무리 아낙자손 대장부가 대단해 보이더라도, 아무리 상황이 나쁘더라도, 그것은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성가-나의 등 뒤에서

본문에 민14: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하나님의 능력, 지혜,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지 맙시다.
성도들의 좌절, 의기소침, 무력감, 열등감 때문에 얼마나 하나님은 멸시를 당하고 있습니까?

류태영 박사의 책에는 이런 얘기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유학할 당시, 대학원에서 ‘협동조합 심층분석론’에 대해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어느 날 담당 교수님이 강의를 마치며 나가시면서 “미스터 류, 다음 주에 발표죠?” 하며 나에게 책을 한 권 건네주셨다.
“이 책을 보면 다른 교과서에는 없는 내용이 있어요. 그 내용을 꼭 찾아서 다음 주에 요약 발표해주길 바랍니다.”

나는 책을 받아들고 잠시 훑어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영어 알파벳인데 읽을 수가 없었다. 너무 놀라서 교수님 뒤를 쫓아가 물었다.
“교수님! 이 책은 영어가 아닌데요.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가요?”
“네, 영어가 아닙니다. 이건 스페인어입니다.”
“교수님! 저는 스페인어를 배운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당당하게 말하고 교수님께 책을 돌려 드리려는데, 교수님 대답이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스페인어는 아주 쉽습니다. 그러니 그냥 읽고 발표하기 바랍니다.”
교수님은 미소까지 살짝 지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곤 가던 길을 갔다.
착잡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다시 책을 펼쳐 보았다. 천천히 읽고 또 읽어도 아는 단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결국 나는 기도에 매달렸다. 
“하나님, 이 과목을 통과하지 못하면 1년 더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중에 히브리대학에 스페인에서 온 학생도 분명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구나. 내가 왜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스페인 마드리드대학 출신이 있다는 말을 듣고 부리나케 그가 묵고 있는 기숙사로 달려가 방문을 두드렸다.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저녁식사하자.”

그도 나도 기숙사에 살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나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따뜻한 밥 한 끼는 대접할 수 있었다. 아내에게 저녁 준비를 부탁했다. 스페인 사람들도 쌀밥을 먹는다는 것을 알기에, 솜씨를 발휘해 쌀밥에 불고기와 백김치 등 한식 위주로 식사를 준비했다. 스페인 학생은 먹성 좋게 그릇을 싹싹 비웠다. 우리는 즐겁게 양껏 식사를 하고 거실 소파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누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나는 그 친구에게 본론을 이야기했다.

“이 책 좀 읽어 줄 수 있겠어?”
그는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히브리어로 설명해 주었다. 다음 주 발표 준비를 완벽하게 끝낸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류태영박사는 문제 앞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기도로 지혜를 얻어 문제를 해결하여 승리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문제에 굴복하지 말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읍시다.
다음 주일 새벽부터 ‘다니엘 세이레 기도회’가 시작됩니다.
“장관이나 대통령 면회도 하늘의 별따기인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일을 어찌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새벽기도에 나가 하나님께 소원을 말씀드리는 일을 난 단 하루도 거를 수 없었다.”
류태영 박사의 이 고백을 새겨들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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