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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기쁨을 충만케하라 (빌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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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쁨을 충만케하라 (빌 2:1-4)


(빌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어떠한 격려나, 사랑의 어떠한 위로나, 성령의 어떠한 교제나, 어떠한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빌 2:2)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나의 기쁨이 넘치게 해주십시오.
(빌 2:3) 어떤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서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빌 2:4)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제게 기쁨을 주려고 마음을 써주는 성도들을 보면 참 감사한 생각이 듭니다. 선물을 통해 기쁨을 안겨주는 이가 있습니다. 선물 상자를 받으면 기쁩니다. 어떤 이는 명절때마다 선물을 챙겨줍니다. 그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 참 고맙습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기쁨을 안겨주는 이도 있습니다. 음식을 만들어 오기도하고 집에 초대하거나 식당으로 초대하여 대접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 기분이 참 좋습니다. 또한 봉투를 내미는 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선교여행이나 연수 등으로 외국에 나갈때 봉투를 받으면서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나도 돈을 참 좋아하는구나!'  여러분, 목사는 돈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바랍니다. 
  
제가 언제 가장 기쁨이 충만할 것 같습니까?  선물을 받을 때도 기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을 때도 기쁘고, 봉투를 받을 때도 기쁘지만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볼때 가장 기쁩니다. "목사님! 그동안 기도하고 관계를 맺던 VIP가 드디어 목장모임에 왔어요. 이번 주일에 교회도 오기로했어요. 기도해주세요."  "목사님! 이번에 은혜받고 술, 담배 끊고 한 달을 버티고 있어요."  "목사님! 목원들이 목자, 목녀의 섬김을 당연히 여기고 받기만하고 요구만하는 것같아 속상해요. 그렇지만 절대 사명을 포기하지 않을래요." 또는 "목원들이 음식도 싸오고 이제 섬기려고 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기쁜지 눈물이 날려고 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의 4절에 보면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기쁨을 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너희가 나의 기쁨을 충만케하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빌립보교인들이 서로 분열하여 감옥에 있는 바울을 근심케 하였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 많이 힘든데 너희때문에 더 힘들다는 것입니다. 너희들만이라도 내게 기쁨을 선물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자녀들중에도 부모의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는 자녀가 있습니다.  제자들중에 스승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는 제자도 있습니다.  교인들중에도 목사에게 기쁨을 많이 안겨 주는 교인이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근심을 안겨주는 자녀나 제자, 교인도 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도 근심거리가 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기쁨을 충만케하는 성도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충만한 기쁨을 선사하는 교인은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역시 기쁨을 충만케 안겨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충만한 기쁨을 선사하는 교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화합해야 합니다.(2)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화합하지 못하고 갈등을 자주 만듭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람들과 화합하지 못합니다.  상사와 싸우고 부하직원과 갈등을 겪고 동료와도 자주 싸우고는 뛰쳐 나옵니다.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화합입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 줄 알아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시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이해를 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함께 일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소한 문제로 목숨을 걸고 싸워서 얻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딴에는 열심도 있고 지식도 있고 의욕도 넘치지만  별 것 아닌 문제로 다투고 미워하고 등지고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회의를 하다보면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팀을 이루어 일을 추진하다 보면 방법이 다른 사람도 나타납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나라에 관심을 갖다보면 관점이 다른 사람과 부딪칠때가 있습니다.  이때가 중요합니다. 사단은 이때 우리를 이간시킵니다. 오해하게 하고 미워하게 하며 속상하게 만듭니다.
  
이런 때 다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비난하지 않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이해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그런 방법도 있네', 하며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나와 다른 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라고 자신을 타이를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나와 다른 사람과 불필요하게 고집을 내세우지 말고 화합하려는 자세로 대해야합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여러분,  하나님과 한마음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가족들과 한마음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적인 가족과도 한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한마음을 품으려면  이해가 안 될때 이해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마음에 안들때 품으려고 애써야합니다. 생각이 다를때 맞추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우리가 다투는 이유는 내 생각, 내 뜻, 내 의지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모두 뜻을 합하려면 내 뜻은 포기하고 주님의 뜻을 깨닫고 내 뜻으로 삼으며 살아야 합니다.  본래 내 뜻이 아니어도 기도하면서 함께 정했으면 이제는 그것이 내 뜻이 되어야 합니다.
  
형제교회라는 교단이 있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성찬식 대신 세족식을 합니다. 세족식은 발을 씻어주는 예식입니다.
  
어느 형제교회의 세족식에서 목사님이 습관적으로 교인의 왼발을 먼저 씻었습니다.  목사님이 오른쪽을 잡으면 교인의 왼발이었던 것입니다.  세족식이 끝난 다음 그 교회의 선임 집사님이 용기를 내어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 왜 왼발을 먼저 씻습니까? 오른발을 먼저 씻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성경에도 없는 사실을 가지고 목사님께 따지는 것을 목사님은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사님은 '다음 세족식 때는 설마 오른발을 먼저 씻어주겠지'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세족식에도 목사님은 왼발을 먼저 씻었습니다.
  
화가 난 집사님은 교인을 선동하여 교회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새로 교회를 세우고 교회 이름을 '오른발 교회'라고 했습니다.  이 교회는 지금도 미국에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않는 닫힌 마음은 작은 차이를 큰 분쟁으로 만듭니다.   
  
우리는 모두 다 화합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먼저 사람들과 화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들과 원만하게 두루두루  화합할 줄 알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화합하려는 태도로 서로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2.겸손해야 합니다.(3) 
  
70년대 후반에 강원도 예수원의 대천덕(R. A. Torrey) 원장님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공부를 많이 한 지식인치고 겸손한 사람이 없고, 또 겸손한 사람 가운데는 지식인다운 면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다"고 도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무능한 사람은 비굴하고 유능한 사람은 교만한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유능하면서 겸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주님께서 아주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처음에는 겸손하다가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 교만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요한 위치에 오르게 되면 점차 교만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를 다른 사람보다 낫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자기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만 교만한 사람은 대적하십니다. 사울은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우려 하자 행구 사이에 숨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되고 전쟁터에서 승리를 하자 점차 교만해지기 시작합니다.  제사장을 대신하여 제사를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말씀하십니다.   "병고치는 능력을 내게 배우라."  또는 "설교하는 것을 내게 배우라" 그렇게는 한번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 내게 겸손을 배우라", 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는 겸손함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높은 분으로서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비천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을 보고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의 최고의 덕목이 무엇입니까?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제일의 덕목이 무엇이냐?" 질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겸손입니다",   또 묻습니다. "기독교의 두번째 덕목이 무엇입니까?" 두 번째도 "겸손입니다."  "기독교의 세번째 덕목이 무엇입니까?" 한결 같이 "겸손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겸손한 사람이 됩시다. 우리가 겸손하게 살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는다, 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기독교인이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니까, 성령의 사람들이니까, 겸손하게 살아야 됩니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시기와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어떤 일이든지 다툼과 허영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그게 무엇입니까? 교회 일이든지, 직장 일이든지, 가정 일이든지, 나라 일이든지, 아무 일이든지  곧 모든 일에 있어서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남을 낫게 여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존경한다" 그런 뜻입니다. 이웃의 사정과 형편에 따라서 존경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웃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경외하듯이 피차 서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나보다 상대방을 낫게 여기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얼마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평화롭게,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3. 섬겨야 합니다.(4)
  
사람들은 자기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이기심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도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이 왔어도 "새가족 사역팀에서 섬기겠지.." 하고 무관심합니다.  교회당이 지저분해도 "나는 청소당번이 아니니까.." 하고 무관심합니다.  "어린이들이 놀다가 넘어졌어도 "나는 주일학교 교사가 아니니까.." 하고 생각하고 지나칩니다.
  
주님은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일도 잘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에 반해 자기의 일을 철저하게 잘 해내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맡은 일을 잘 못하면 도와 주라는 말씀입니다.  대신해서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안에서 어떤 사정으로 맡은 일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를 비난하기에 앞서서 대신 짐을 져 주려고 서로 앞장서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섬김의 자세입니다.
  
섬김의 기본은 그 사람의 사정과 형편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우리는 이웃의  상황을 모르고,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상대에게 문제가 보이면, 비판하려고 합니다. 먼저 비판하기 전에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문제를 가진 성도가 있다면,  문제를 가진 가족이 있다면, 정말로 내가 도울 게 무엇일까? 무엇을 도와줄까? 도울 일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요. 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천국 가서 상급과 면류관 받습니다. 누가 받습니까?  연약한 사람들을, 도와줬느냐, 섬겼느냐에 따라서 상 받고,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많이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이 복주십니다. 

미국에서 가구점 경영으로 대단하게 성공한 사람의 일화입니다. 비가 많이 온 오후였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그 가구점 앞에서 추워서 왔다 갔다 합니다. 그것을 가구점 안에서 보고 있던 가구점 주인이 문을 열고 "할머니, 추우신데 밖에 계시지 말고 가구점 안으로 들어오세요. 여기는 따뜻해요." 할머니가 말합니다. "아니에요. 나는 가구 사려고 하는 게 아니고, 비가 오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가구점 주인이 말합니다. "알아요. 가구 안 사셔도 괜찮아요. 지금 추우니까, 비가 오니까, 비를 피해 따뜻한데 좀 들어오세요." 가구점 안으로 모셨어요. 그리고 아주 따뜻한 차를 대접해주었습니다.
  
한 일주일쯤 되어서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 그룹 회장실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만나기를 원합니다. 회장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그 편지를 받고 이 가구점 주인은 깜짝 놀라 편지가 잘못 온 거 아닌가? 전화를 걸어 확인했습니다. '우리가 보낸 편지 맞습니다. 만납시다.' 들어갔습니다.  강철왕 카네기를 만났습니다.  카네기가 말합니다. "고맙습니다. 얼마 전에 당신 가구점 앞에서 비 맞고 추워서 달달 떨고 있던 그 할머니가 나의 어머니입니다. 나의 어머니께 그렇게 잘 해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우리 어머니께 당신 너무 착하다는 말 들었습니다. 올해부터 우리 그룹에 납품하는 전체 가구는 당신이 다 납품하십시오." 벼락부자가 된 겁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비맞는 할머니 한 분을 섬겼더니, 잠시 섬겼더니, 엄청난 축복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본을 받아 서로 섬긴다면 상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주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집사님들이 전체 교인들을 섬기고, 목자, 목녀들이 목원들을 섬기고, 먼저 믿은 교인들이 새가족들을 섬기고, 교인들이 모두 전도대상자들을 섬긴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섬김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해 하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섬기는 자세로 서로 다가갑시다.  인사합시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종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기쁨과 만족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기쁨을 드리고 주께서 붙여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누군가 눈여겨 보십니다.  주님의 기쁨을 충만하기 위해 다른 이들과 화합합시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십시다. 자기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도와주며 열심히 섬깁시다. 여러분 모두 주님께 큰 기쁨을 드리는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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