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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끊을 수 없는 사랑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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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을 수 없는 사랑 (롬 8:31-39) 

세상에서 아무리 질기도 단단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그보다 더 단단한 연장이나 도구로 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쉽게 끊을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무슨 넌센스 퀴즈 같지만 실상 세상에서 끊기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술과 담배를 즐겨 하시는 분들은 이것을 정말 끊기 어렵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도박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며 또 어떤 분들은 약물과 같은 중독성이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이러한 것을 끊은 분들이 있다는 것은 다시말해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다보면 자연적으로 멀리하게 되고 끊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당연히 끊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정말 끊기 어려운 것이 있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할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남녀간의 관계일 것입니다. 

남녀가 사랑하면 쉽게 끊을 수 없습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반대를 하고 끊게 하려고 하더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그렇게 떨어질 수 없고 헤어질 수 없다고 고집하며 결혼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도 한결 같지는 않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남녀간의 사랑도 얼마든지 끊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세상에서 사실 가장 끊기 어려운 관계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이 관계는 피로 맺어진 평생 부인하거나 끊을 수 없는 관계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혈육의 관계도 오늘날 깨어질 수 없는 그 관계까지 깨어지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분명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산소가 없으면 질식해서 죽는 것처럼 사랑이 없으면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비록 가난하고 어려워도 사랑이 있으면 그 힘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누가 뭐라 하더라도 ‘사랑’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며 사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앞서 말씀 드렸듯이 인간적인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원할 것 같아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무엇을 더 이상 해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중국에서 산모가 교통사고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식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성애가 눈물겹지만 아무리 사랑해도 더 이상 책임져 주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는 유한한 존재인지라 영원토록 사랑하고 싶어도 그 사랑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사랑하며 살아가지만 어쩔 수 없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랑의 원천이며 사랑 그 자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4:8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달리 한계가 없는 사랑입니다. 영원하고, 완전하고, 전능한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을 우리에게 어떻게 보여 주셨습니까?
바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그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한 보증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몰랐을 때, 하나님을 거역할 때, 범죄할 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신 그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많은 사랑을 표현할 때 무엇이라고 표현합니까? 
‘하늘만큼 땅만큼’ 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이렇게 표현해야 정확합니다.
‘예수님 만큼’ 그래서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 짜리’ 라고 합니다.

여러분 한번 따라해 보시겠습니다. “나는 예수님 짜리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어떤 것의 가치를 매길 때 ‘얼마 짜리’ 이렇게 말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 삼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피 값을 투자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 짜리’ 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가치를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것입니다.
그 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고 자녀 삼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배에서 나왔고 온 정성을 기울였기에 결코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어 주시고 우리를 얻으셨는데 어찌 쉽게 포기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얼마 짜리’ 인데 포기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 믿음의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절대 포기하실 수 없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끝이 없는 사랑인 것입니다.  

렘31:3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여기서 ‘무궁한 사랑’ 이란 말은 하나님의 사랑은 시간의 한계를 초월한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소홀히 하거나 잊어버리는 불완전한 사랑이 아니고, 완전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사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젖먹이 자식을 둔 어미가 어찌 그 자식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혹시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잊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놓치지 않으시고, 실패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로마서는 ‘성경의 반지’ 라고 불리는 귀중한 책입니다. 그 가운데서 8장은 가장 빛나는 반지의 보석과도 같은 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오늘의 본문은 보석의 가장 밝은 빛을 발하는 부분과도 같습니다.

바울은 오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우리 인생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그 모습을 크게 세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첫째는 바로 ‘인정해 주시는 사랑’ 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를 의인으로, 천국 백성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 뭐래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31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를 정죄하거나 판단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33-34절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이 우리 죄 값을 다 치러주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올라가신 후에도 계속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우리를 변호해주시고, 우리 편을 들어주시는데 누가 감히 우리를 나쁜 사람이라고 고발하고 정죄할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눅15장에 탕자의 비유처럼 집을 나가 방탕한 삶을 살았던 아들을 맞아주고 감싸주는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용서해 주시는 사랑, 감싸주시는 사랑, 편들어 주시는 사랑, 허물을 보지 않는 사랑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 때문에 인정해 주시는 사랑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사랑스런 아들 딸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기억하고 세상에서 누가 뭐라 하든 기죽지 말고 늘 담대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사랑은 ‘공급해 주시는 사랑’ 입니다.

3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주시고도 남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여러분 생명까지 우리를 위해 주신이가 무엇을 우리를 위해 아까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간혹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때, 혹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에 하나님을 사랑을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나 하는 거야?’ ‘그렇다면 왜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고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거지?’ 그런 마음을 순간 순간 얼마나 많이 갖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으로 필요한 때에 응답하여 주심을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마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궁급하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만사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인간적인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만 결국 우리의 생애를 책임져 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노후가 걱정되십니까? 
하나님 사랑안에 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노후대책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도록 맡기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은 ‘보호해 주시는 사랑’ 입니다.

35-37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바울 당시 성도들은 세상의 많은 핍박과 시련을 당하고 살았습니다. 
물론 그 당시하고는 비교할 수 없지만 저와 여러분들도 세상을 살면서 이런 저런 핍박과 시련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어도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험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된 저와 여러분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며 세상속에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험하고 무섭습니까?
매일 마다 들리는 범죄와 사건과 사고의 소식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루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언제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내 자녀가 될지 내 사랑하는 사람이 그 대상이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노력하고 준비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야 됩니다. 
바울은 험한 세상이지만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그는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후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당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서 망하지 않았음을 그의 사역을 통해 분명히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지하면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렇다면 이 사랑을 받은 우리는 과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그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8-39절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보장해 주시므로,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체념하고 포기하고 낙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는 말씀처럼 때로는 힘들고 어렵고 이런 저런 상황이 닥쳐도 결국은 모든 것을 조화시켜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의 확신을 갖고 흔들림 없는 확신 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았다면 이제는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삶’ 이 되어야 합니다

요일4:8-11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할렐루야!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게 분명하다면 자동적으로 우리도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불가능한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이 우리의 삶속에서 실천되어질 때 놀라운 변화와 기적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며 그로인해 우리 인생은 더욱 풍성해지며 아름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일제시대 일본에 ‘나가노’ 목사님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5년동안 성도 한 명의 생기지 않을 정도로 미신이 강한 곳에서 가난과 핍박의 고통을 견디며 사랑을 실천했던 분입니다. 

어찌나 사랑이 많은 분이었던지 차츰 목사님의 아름다운 삶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하루는 나가노 목사님 집에 결핵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던 가난한 신학생 한 명이 찾아왔습니다.

결핵에 걸리면 당시에는 죽어야 했던 시절 가난한 살림살이와 아이들이 전염될지도 모를 위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각혈하는 이 신학생을 나가노 목사님은 가족으로 받아들여 지극한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이때 이 신학생은 나가노 목사님을 통해 ‘신앙은 곧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은 말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 임을 깊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죽을 거라면 자신도 사랑을 실천하다가 죽기로 결심한 이 신학생은 빈민굴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심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 같았으면 빈민굴을 떠났겠지만 자신이 죽을 고비에 처해 있었을 때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보여준 나가노 목사님의 삶을 따라 빈민굴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갔습니다. 

이 신학생이 바로 훗날 20세기의 성자로 불리게 되는 ‘가가와’ 목사님입니다. 

패전 후 많은 일본인들이 피살될 때에 일본군에 의한 피해가 가장 컸던 중국 거주 200만명의 일본인들은 오히려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을 분할시키려던 연합국의 당초 계획이 취소되었는데 평소 가가와 목사님의 삶을 깊이 존경하고 있던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 오직 이 가가와 목사라는 일본인 한명 때문에 200만명의 일본인들을 무사히 돌려보냈고 일본 분할에 적극 반대함으로써 이루어진 일이었다고 합니다. 

장개석 총통은 ‘일본인들은 내 민족의 원수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을 위해 지금도 뜨겁게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있을 가가와를 생각할 때 나는 그들을 미워할 수만은 없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가가와 목사님이 위대했던 것은 자신이 받았던 사랑을 남에게 더 크게 갚았던 사랑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한사람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고 한 민족의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인간의 사랑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이 하나님의 끝이 없는 사랑만이 우리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온 세상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원하기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늘 간직되어 날마다 승리하며 나아가 그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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