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령의 음성을 듣는 교회 (계 3:7-13)

첨부 1


성령의 음성을 듣는 교회 (계 3:7-13)
 

지금 우리는 교회 창립 15주년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교회의 주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묻기를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하니, 다시 물으시기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때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시대뿐 아니라, 지금 21세기에도 교회를 세우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는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닌 줄 믿습니다. 15년 전에 이 교회를 세우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다만 주님의 지시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도 첨단 지역의 금호 아파트의 거실에서 첫 예배를 드리던 그 날의 감격을 기억합니다. 비록 다섯 가정, 아홉 명의 성도님들과 함께 교회를 시작하면서도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하고 힘이 솟구쳤습니다. 그 때 저는 주님께서 우리교회를 세우시기를 원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신 약속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지, 열흘 만에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곧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여 성도들 위에 임하심으로써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16)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고 하셨는데,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이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오순절 날, 강림하신 성령께서 하신 첫 번째 일은 사도들과 성도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초창기의 모습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42)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 당시에는, 예배당 건물이 없었으므로 성전에 모이거나, 오늘날 우리가 구역예배를 드릴 때처럼 성도들의 집에서 모였습니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와 같은 교회 조직도 없었고, 다만 사도들이 직접 성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시설도 없고 조직도 없었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은혜가 넘치고, 형제 사랑이 충만하고, 이적이 나타나는 교회였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예루살렘 교회를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훌륭한 건물이나 조직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인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성령의 역사를 간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교회를 세우실 뿐 아니라, 교회를 다스리십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사도들은 항상 성령을 의지하여 모든 일을 행했습니다. 사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담대히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서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에게 이르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니, 사도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이르기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곧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삼 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체포되셨을 때, 제자들은 하나 같이 주님을 버리고 도주했습니다. 수제자였던 시몬 베드로조차 자기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몰리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그처럼 소심하고 겁 많던 제자들이 그로부터 불과 2달이 채 되지 않아서 오순절 날, 성령을 받고 나자 강하고 담대한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앞에 끌려갔을 때, 저들이 위협하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무엇이 사도들로 하여금 이처럼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한 것일까요? 그것은 성령께서 저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제 저는 창립 15주년 감사예배 시간에 무슨 설교를 해야 할까 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중에, 계시록 3장에 근거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교회’ 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아시는 대로, 계시록 2장과 3장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로 되어 있습니다. 승천하신 주님께서 환상 중에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명하셨습니다. 거기 보면,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핍박을 견디느라 많은 수고를 했으나 처음 사랑을 상실한 것을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켜서 주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무리와 니골라 당에게 철저히 대항하지 못한 까닭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많은 일을 하고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한 일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사데 교회는 우유부단한 신앙태도로 인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끝까지 믿음을 지킨 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태도로 인해서 주님으로부터 토하여 내치겠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각 교회를 권면하신 후에 한결같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는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성령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으로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역할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이 교회들에게 주신 것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 각 사람에게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구원받은 성도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가 곧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은 곧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은혜롭고, 사랑이 넘치고, 선한 사업을 열심히 하려면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은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집사님들이 할 일이지, 나는 직분을 받지 않았으니 상관이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귀 있는 자”는 누구나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 세상에 귀 없는 사람도 있습니까?”라고 반문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귀가 있더라도 듣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귀가 있어도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서 우리는 “쇠귀에 경 읽기”라고 합니다. 또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그런 까닭에,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들을 귀’란 말을 듣고 이해하는 것 곧 이해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을 때,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들을 귀’를 가진 사람입니다. 

만약에 ‘들을 귀’가 없다면 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은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구태여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세상 욕심에 마음을 빼앗기고 교만해 지면 하나님의 말씀 곧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귀가 어두워지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세상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성령의 음성에 귀를 막으면, 언제부턴가 세상 이야기만 들리고 성령의 음성은 아예 들리지 않게 됩니다. 듣기 좋은 말에만 귀를 열고, 듣기 싫은 말에는 귀를 닫을 때, 그 사람은 귀가 있어도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지금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켜나가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를 만났습니다. 그것은 핍박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헌법으로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다종교 사회여서 종교 간에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적은 핍박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없는 현실이 기독교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세속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안일한 생활이 우리 마음을 방심하게 만들고 영적으로 졸며 자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사데 교회와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은 죽은 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가는 것입니다. 세상 재미에 빠져서 영적으로 졸고 자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들을 귀가 없는 신자들이 많아지면, 교회 전체가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비극적인 일이 생겨납니다. 

어떤 교회는 신자들이 편을 갈라 다투고 분쟁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시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신자들은 몸의 지체들인데, 교회 안에서 파당을 만들어 싸우면 그것은 몸에 속해 있는 지체들이 서로를 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해치는, 자해 행위와 같습니다. 자해하는 사람을 보고서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분쟁이 생기는 것은 교회의 지체들인 신자들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성령께서는 성도들을 하나 되게 하시는 영이시므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신자들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3) 하신 대로, 하나 됨을 위해 힘쓰기 때문입니다. 

작년 10월 18일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수정 교회가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수정 교회는 1955년에 로버트 슐러 목사가 야외 공연장을 빌려서 창립했는데, 부흥을 거듭하여 1800만 달러를 들여서 일 만 장의 유리로 된 거대하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교회입니다. 예배실황을 전국에 티비로 생중계하고, 성탄절이나 부활절, 추수감사절이 되면 거금을 들여서 화려한 이벤트를 공연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수정 교회를 배우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몇 해 전에 로버트 슐러 목사가 고령으로 은퇴하고 나자 신자들이 줄고, 헌금도 줄다보니 티비 방송료와 행사를 위한 장비대여료 등으로 당장 갚아야 할 빚이 7백50만 달러나 되고, 3천6백만 달러의 건물 담보대출을 포함해서 총 채무액이 5500만 달러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수정교회는 할 수 없이 파산신청을 한 것입니다. 교회가 돈이 없어서 문을 닫다니,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수정교회가 무너진 것은 그 교회의 책임자들이 성령의 음성을 듣지 않고 사람들의 이목을 즐겁게 하고 사람들의 평가를 높이는데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번듯한 예배당 건물 하나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행사를 하지도 않았고, 유명 가수들을 출연시켜서 공연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오직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데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랬더니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교회로 돌아왔으며,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많은 이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2천년 교회사에서 가장 은혜롭고 능력 있고 참신한 교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인간적인 방법을 의존하지 말고, 돈에 구애받지 말고, 오직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한 때, 저는 교인들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 것으로 인해 낙심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몇 년 만에 교인수가 수천 명이 되었다는 말을 듣거나 수십억을 들여 크고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비교의식을 갖고 의기소침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선배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 목사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교인수의 많고 적음으로 목회의 성공, 실패를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큰 교회를 목회하는 것보다 진실하게 목회하는 사람을 더욱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의 말씀을 듣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늘날은 기독교인들도 세속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어서 외형을 보고서 교회를 평가하는 경향이 심합니다. 사람들이 대형백화점을 좋아하듯이, 요즘 신자들 가운데는 큰 교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큰 교회에 가서 대중 속에 묻혀서 마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성도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은 하나같이 ‘들을 귀’를 갖고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할 줄 압니다.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들을 때 진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라는 주님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언제나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께서 의의 길로, 평강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주님의 음성은 곧 성령의 음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해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성령의 음성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고 했습니다. 예배 시간에 선포하는 말씀은 성도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들을 때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칭찬이든 책망이든,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달게 받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찔림이 있다는 것은 그 말씀이 나에게 주신 성령의 음성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약에 다른 사람에게 해당되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말이라면 찔림을 받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찔림이 있을 때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인 줄 알고 기쁨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방법으로 그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하신 주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듯이, 예수님의 말씀은 영의 말씀이요 육에 속한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말은 육에 속한 말이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지 못하지만,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은 영 곧 성령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은 그 말씀이 곧 성령을 힘입어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주님의 말씀의 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께서는 성도들의 마음을 감화하셔서 바른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 때 우리는 성령의 감화를 소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을 강제로 변화시키지 않으시고 그 대신 감화, 감동하셔서 자발적으로 따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를 들면, 설교를 듣고서 “이제부터 나도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감화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성령의 감화를 따라서 신앙생활에 열심을 낸다면 그로 인해 믿음의 성숙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화가 주어졌을 때 그 생각을 억누르고 묵살하면 불이 커지듯이 성령의 감화가 사라지고 맙니다. 바로 그것이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살전 5:19). 그래서는 결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의 영적 무지와 불순종으로 인해 성령의 감화가 빈번히 소멸된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령께서는 성도 개인에게 감화하실 때가 있는가 하면, 교회 전체를 감화하실 때도 있습니다. 저는 예배당 리모델링을 시작할 때 성령께서 교회 전체를 감화하셨다고 믿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각자의 형편과 처지에서 최선을 다해 헌금을 드렸기 때문에 계획대로 리모델링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역 복음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 나갈 인재들을 키워내야 합니다. 타국에 나가 수고하는 선교사님들을 더 힘껏 도와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같은 뜰 안에 세워진 신학교의 발전을 위해서도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 사랑이 충만한 교회가 되도록 한 마음으로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선한 소원이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은 곧 성령께서 우리를 감화하신 결과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 일곱 교회 가운데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본문으로 택한 이유는, 우리 목양제일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주님의 칭찬 받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교회가 핍박을 무릅쓰고 주님의 말씀을 지킨 것을 귀히 보시고 파격적인 약속을 주셨습니다. 

첫째로,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열린 문은 곧 천국의 문, 영생의 문이 열릴 것이니,  곧 구원의 보장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열린 문은 복음 전도의 문이 활짝 열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장차 온 세상에 임할 시험의 때 곧 대환난을 면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탄이 제 아무리 우는 사자처럼 덤빌지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므로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15년 동안 우리 교회를 지켜 주신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이 교회와 함께 하셔서 복음의 진리를 지키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를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마다 마음의 귀가 밝아져서 언제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교회의 지체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쓸 뿐 아니라 하나님 성전의 기둥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