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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찬양 (출 1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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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찬양 (출 15:1-18)


얼마 전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심코 보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 노래 속에 빠져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어느새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눈물이 나더라구요. 

가수 인순이씨가 부른 [아버지]라는 노래입니다. 
“점점 멀어져 가버린 쓸쓸했던 뒷모습에 내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이 대목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홀로 투병하시며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시던 그 모습이 떠올라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이 대목에서는 정말 아버지가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렇습니다.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때로는 슬픈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 또 때로는 외로운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줍니다. 또 때로는 위축된 마음에 용기를 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에 빠져듭니다.

그런데 노래는 노래지만 전혀 다른 노래가 있습니다. 차원이 다른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찬양입니다.
이 찬양은 노래와 몇 가지 점에서 다릅니다.

첫째, 찬양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노래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로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는 없습니다. 요즘 노래 잘한다는 가수 박정현이 노래를 부른다고 해도, 성악가 조수미가 노래를 부른다고 해도, 전설적인 테너 파바로티가 살아서 노래를 부른다고 해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찬양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둘째, 찬양은 사람의 영혼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로는 사람의 영혼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노래를 통해서도 영혼이 은혜를 받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평안을 맛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잠자던 영혼이 깨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찬양은 사람의 영혼을 움직입니다. 사람의 영혼이 깨어나고, 사람의 영혼이 힘을 얻고,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양은 노래는 노래지만 차원이 다른 노래입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릴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물론이고, 사람의 영혼을 움직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노래도 부를 수 있지만, 찬양을 부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 43:2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가 찬양하도록 하시기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찬양하도록 하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창조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찬양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찬양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고 난 후 입을 열어 찬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찬양을 게을리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찬양을 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찬양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의 연구팀이 인간의 웃음을 연구한 일이 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는 하루에 적게는 400번에서 많게는 5000번까지 웃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이 웃음이 하루 15-20번으로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어른들은 거의 웃음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웃음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삶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불안과 염려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예수 믿고 은혜 받았을 때 감격적인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 찬양의 횟수가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세월이 많이 흐르면 점점 찬양의 감격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찬양의 횟수도 줄어듭니다. 심할 경우 형식적인 찬양만 드리게 되고, 때로는 아예 찬양을 잃어버리고 마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찬양을 회복해야 합니다. 감격적인 찬양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늘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찬양을 회복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이 소중한 교훈을 줍니다.

첫째, 찬양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뒤에, 모세가 하나님께 드린 찬양입니다. 모세가 이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분명한 찬양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 14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출애굽 도중에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진을 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애굽의 바로 왕이 마음을 바꿔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려 따라나섰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총동원되어 추격에 나서서,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이 진치고 있던 홍해 바닷가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우선 구름기둥이 밤새도록 애굽의 군대가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큰 동풍이 불게 하셔서 바닷물이 물러가게 하셨고, 물이 갈라져서 바다가 마른 땅처럼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갈라진 마른 땅을 밟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러자 애굽 군대도 이를 보고 계속 추격을 시도하여 바다 한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추격하던 애굽 군대가 뒤엉켜 우왕좌왕하게 만드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 건넌 뒤에 하나님께서 다시 바다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그 일로 애굽 군대는 수장되어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일로 온전히 애굽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아주 특별한 일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온 몸으로 체험했던 것입니다. 저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래서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찬양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태어났고, 하나님 때문에 구원 받았고, 오늘도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저마다 찬양할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 가장 찬양을 잘한 사람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다윗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특별히 찬양의 이유를 잘 찾았습니다.

특히 시 23편을 보면 1절에서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목자가 양을 보호하고 인도하듯이 자신의 인생을 보호해 주셨고 또 인도해 주셨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앞으로도 목자가 양을 보호하고 인도하듯이 자신의 남겨진 인생과 그리고 그 이후도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음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아주 특별한 관계 속에서 찬양할 이유를 찾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찬양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행하신 일들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때문에 놀라신 일들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때문에 감격해 보신 일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찬양할 구체적인 이유를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찬양할 내용을 성찰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모세의 찬양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3을 보면 이렇게 찬양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용사이신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홍해의 저 놀라운 사건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신학적으로 깊이 성찰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찾아냈습니다. 
여호와께서 용사시라는 것입니다. 그 용사이신 여호와께서 나의 힘이시고, 나의 노래시고 또 나의 구원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을 보면 이렇게 찬양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리로다” 

모세는 그동안 바로만이 통치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30년 동안 바로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홍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바로를 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로부터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진정한 통치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신의 통치자이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찬양 안에는 찬양의 내용이 담기게 됩니다. 그 찬양의 내용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나열하는 것으로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깊이 성찰하고 그 안에서 신앙고백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신앙고백을 찬양의 내용으로 하나님께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 송명희 자매는 영감있고 영감있고 감동적인 시로 찬양을 드려왔습니다. 뇌성마비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가운데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리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감의 울림을 이끌어내는 찬양을 드려왔습니다.

대표적 작이라 할 수 있는 찬양 시가 “나”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이 찬양은 장애인으로 남보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고, 나은 것 없는 것 같은 자신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다는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안에 자신의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바로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이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찬양에는 자기 나름대로의 내용이 담겨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께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고백이 담겨야 합니다. 내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찬양 안에 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의 찬양에 어떤 신앙고백을 담고 계십니까? 찬양의 내용을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나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는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라고 찬양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또한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자기의 노래 자기의 찬양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양을 세 종류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전 찬양입니다. 예전을 위해 준비된 찬양곡을 예배 순서나 형식에 따라 회중이 함께 드리는 찬양을 말합니다. 이 찬양은 공동체의 찬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연주 찬양입니다. 찬양대나 특송자들이 이미 만들어진 찬양곡을 회중 앞에서 드리는 찬양을 말합니다. 일종의 연주이기 때문에 연주 찬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개인 찬양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서 드리는 찬양을 말합니다. 때로는 기존의 찬송가나 CCM곡을 사용해서 찬양할 수 있습니다. 또 때로는 나만의 시나 노래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 종류의 찬양을 다 드리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찬양이든지 내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나의 찬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찬양 안에 나의 신앙고백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 찬양 안에 주님께 대한 나의 감사가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 찬양 안에 주님 앞에 드리는 나의 결단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프린스턴 신학교의 한 교수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 교수님이 변했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나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무엇인가 계속해서 입으로 흥얼흥얼대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얼마 전에 이 교수님이 꿈을 꾸었답니다. 하늘나라의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줄 선 사람들의 자격을 심사하더랍니다. 자기 차례가 왔는데 천사가 말하더랍니다. “당신이 부를 수 있는 찬송을 하나 불러보시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생각나는 찬송이 하나도 없더랍니다. 예배 때 찬송을 그렇게 많이 불렀지만 건성으로 불러서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더랍니다. 그리고 늘 공부한다고 책과 씨름하다가 하나님께 제대로 찬양을 드린 기억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우물쭈물하니까 천사가 호통을 치더랍니다. “형편없는 신자구먼 찬양도 못하면서 어떻게 천국에 오려고 해!”

호통소리에 깨어났고, 그 이후로부터 찬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찬양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특히 나의 찬양을 불러야 합니다. 모세가 자신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듯이 우리도 우리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찬양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찬양 속에서 여러분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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