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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왕하 6: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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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왕하 6:14-23)

미국이 영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던 1775년에 사라토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는  독립전쟁의 전환점이 된 역사적인 전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전투를 앞두고 미 독립군은 영국군이 병력이나 화기 면에서 우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뉴햄프셔의 다니엘 모건은 '모건 소총부대'라는 오합지졸의 농부들로 구성된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전투 전날 밤 그가 부하들에게 내린 명령은 간단했습니다. "일당 6펜스를 벌려고 싸우는 놈들에게 총알을 낭비하지 말라 견장 단 놈들만 맞추어라." 독립군은 실탄이 한정되어 있어서 그것으로 적 사병들에게까지 총격을 가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명령에 따라 그들은 어깨에 견장을 단 영국군 장교들에게만 집중 사격을 했습니다. 전투 이틀째가 되자 영국군 장교들 중에 태반이 죽었습니다. 영국군은 여전히 병사들은 물론 화기와 보급품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전투가 끝났을 때 영국군에는 장교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수행하는데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전투였습니다.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믿는 자를 공격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을 넘어뜨리고 합니다. 단순한 프로그램이나 인간적 전략들은 영적 전쟁에서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에서 영적 전쟁의 선봉에는 엘리사가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어주신 능력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건집니다. 

그런 엘리사를 마귀가 그대로 내버려 둘리가 없습니다. 엘리사가 제거되어야 이스라엘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중적인 공격이 대상이 된 엘리사가 어떻게 아람 군대의 공격을 물리쳤는지 살펴보면서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을 얻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과 지혜로 무장하여 자신은 물론 하나님의 교회와 뭇 영혼들을 원수의 공격에서 지켜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람왕의 작전이 번번이 실패합니다(8-13절)

아람은 다른 말로 시리아입니다. 아람은 그야말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데 헌신한 나라입니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눈에 가시 같은 이웃을 통해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더 매달리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좀처럼 바뀌지 않으니 아람의 공격은 계속 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건지시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영적으로 타락해 있지만 엘리사를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엘리사의 사역이 개인의 필요를 채워주는 데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 나라를 구원하는 것으로 확장됩니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가운데 어떤 어려움을 당하는 것과 어느 정도 미리 알고 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당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적군에 대한 정보입니다.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아람과의 전투에서 패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엘리사가 아람 왕이 세우는 모든 작전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람 왕이 신하들과 은밀하게 작전을 짠 후 매복을 하거나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할 때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그들의 모든 움직임과 공격 계획을 알려주어 대비하게 합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니 아람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신하들을 불러 모아 추궁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자가 없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그때 신하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란 선지자가 있어서 왕이 침실에서 한 말도 다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포위합니다(14-17절)

엘리사가 있는 한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으려고 혈안입니다. 마침 엘리사가 도단 성에 있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아람 왕은 그 밤에 말과 병거와 중무장한 군사를 보내어 성을 포위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지라도 때로 어려움을 당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믿음을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해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이 얼마나 약한지 알 수 있습니다. 도단은 수도인 사마리아에서 북쪽으로 불과 10마일밖에 안 떨어졌는데 거기까지 아람 군대가 쳐들어 왔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아람 군대의 공격을 알게 하셔서 대비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기에 엘리사가 잠든 틈을 타서 아람 군대가 기습적으로 포위하였습니다. 자칫하면 엘리사가 그들에게 붙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아람 군대의 기습 공격을 알려주지 않으셨을까요? 적의 동태를 알려주는 것만이 하나님의 능력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려고 하십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아침 일찍이 일어나 밖에 나갔다가 아람 군사와 말과 병거가 온 성읍을 에워싼 것을 보고 크게 두려워합니다. 즉시 엘리사에게 달려가 보고합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큰 일 났습니다. 우리는 꼼짝없이 죽었습니다. 사환은 호들갑을 떠는데 엘리사는 너무도 태연합니다. 엘리사는 그 사환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영의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특히 "우리와 함께 한 자"를 힘주어 말했을 것입니다. 

사환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한 자요? 지금 여기에 우리 밖에 누가 더 있습니까?' 이때 엘리사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곧 응답하십니다. 사환의 눈에 조금 전까지 도단 성을 둘러싼 아람 군대만 보였습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떠지니 하나님의 군대가 아람 군대를 둘러싼 것을 보게 됩니다. 불말과 불병거가 온 산에 가득합니다. 와!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엘리사가 밤에 도망칠 필요가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람 왕이 큰 군대를 보내 엘리사를 에워쌌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더 강한 군대로 엘리사를 에워싸고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를 전능하신 손으로 보호하시고 책임지십니다. 우리가 육의 눈을 가지느냐 영의 눈을 가지느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다르고 대처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이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사환은 육의 눈으로 아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였지만 엘리사는 영의 눈으로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담대하였습니다.   

아람 군대가 포위됩니다(18-20절)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으려고 다가옵니다. 이들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엘리사가 다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눈이 어두워진다'는 단어가 창세기 19:11에 한 번 나옵니다. 두 천사가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집에 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소돔 남자들이 모여듭니다.  "그들을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남자들이 남자들과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그것도 개인적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소돔 사람들이 얼마나 성적으로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흥분하여 달려드는 무리들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롯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아가 그들에게 두 남자대신 자기의 두 딸을 대신 내어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소돔 남자들에게 롯의 제안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색다른 것을 즐겨보려는 자들, 음욕에 불타는 그들의 목표는 소돔 성을 방문한 두 천사입니다. 죄를 행하려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달려드는 자들이나, 그들의 기세에 밀려 부끄러운 제안을 하는 롯이나 타락한 인간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소돔 성 남자들이 막아서는 롯을 밀치고 롯의 집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이때 천사들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으며 몰려든 문 밖의 무리들의 눈을 어둡게 합니다. 눈이 어두워지니 문을 찾지 못하고 서성댑니다.  

어둡게 해달라는 것은 그들의 눈을 완전히 멀게 하여 다시는 보지 못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분별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심판은 그 눈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총을 베풀 자들에게 은총을 베푸시며 심판을 행할 자들에게 심판을 행하십니다. 특히 심판당할 자들에게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십니다. 그러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듣고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하나님은 보고자 하는 자들의 눈을 가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눈이 어두워진 자들의 특징은 자신의 길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람 군사들의 모습이 정확히 그와 같습니다. 

엘리사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합니다.  "이 길은 당신들이 가려는 길이 아니며, 이 성읍도 당신들이 찾는 성읍이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아람 군대는 갑자기 순한 양처럼 되어 엘리사가 인도하는 대로 얌전히 따라갑니다. 사마리아 성까지 걸어서 가는 10마일이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닙니다. 제법 시간이 걸립니다. 그들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서자, 엘리사가 "이들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그들이 보게 됩니다. 

아람 군대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적국의 수도인 사마리아 성 한 복판에 갇혀 버린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잡으러 간 자들이 도리어 잡히는 우스꽝스러운 꼴을 당합니다. 엘리사는 그 많은 아람 군사들을 간단하게 포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실 중무장한 군대를 사마리아 도성 안으로 데려가는 일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불말과 불병거는 하나님의 군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엘리사를 보호하여 아람의 군대를 사마리아로 끌고 가게하고, 또 아람 군대가 엘리사와 사마리아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지켜주었습니다. 


아람 군대가 안전하게 돌아갑니다(21-23절)

졸지에 원수인 아람 군사들을 사로잡게 된 이스라엘 왕은 이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신이 나서 엘리사에게 묻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라는 이스라엘 왕의 소리가 아람 군사들에게는 죽음의 사자의 소리입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칼과 활로 잡은 자들도 아닌데 어떻게 칠 수 있느냐고 하면서 물과 떡으로 대접하고 돌려보내도록 합 합니다. 포로가 된 자들에게  "치지 마소서"라는 엘리사의 대답은 복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의 권고대로 그들에게 먹을 것과 물을 제공해주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을 잘 대접해서 보낸 것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무사히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니 아람 군사들이 이스라엘 땅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역은 하나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무엇이 참다운 승리입니까? 쳐들어온 원수를 다 죽이는 것입니까? 사환은 엘리사의 기도로 영의 눈을 떠서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반면, 아람 군대는 엘리사의 기도로 육의 눈까지 어두워져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사마리아 성까지 끌려가 졸지에 사로잡히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들을 잘 대접해서 돌려보내라고 당부합니다. 엘리사가 왜 그랬을까요? 그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람 군대는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를 잡으러 왔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자신이 진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그들에게 보여줄 뿐 아니라 여호와가 참 하나님을 그들에게 알리기 원했습니다. 여호와는 악한 자라도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 전쟁은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것, 미움과 갈등이 아니라 화해하는 것, 끝없는 보복과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포로가 된 아람 군대는 도리어 후한 대접을 받은 후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결과 전쟁이 또 다른 전쟁을 낳는 굴레서 벗어나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분간은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없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보이는 현실 세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눈을 떠야 합니다. 치열한 영적 전쟁 속에서 두려움이나 갈등, 보복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누구신지 사람들이 주목하게 됩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승리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1절에서 우리의 씨름의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물인 마귀라고 합니다. '씨름한다'는 말의 어원을 보면 '레슬링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맞붙어 싸워야하고 마주 잡고 뒹굴어야 합니다. 싸우는 전선이 따로 없기에 이 싸움은 더욱 힘듭니다. 그런데 선교지만이 영적인 싸움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모든 삶의 현장이 영적인 싸움터입니다. 가정, 학교, 사업장, 심지어 교회까지도 영적 싸움터입니다. 그 싸움에서 마귀는 주로 영적 리더들을 목표로 삼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어떻게 싸워 이깁니까?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1)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섰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따라 간섭하고 일하십니다. 아람 왕이 큰 군대를 보내어 엘리사를 에워쌌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더 강한 군대로 엘리사를 에워싸고 보호하십니다. 무리의 눈을 어둡게도 하고 또 다시 눈을 열어 보게 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한 선지자로 하여금 한 나라의 군대를 좌지우지 하도록 하심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무장을 한 수만의 군대보다 더 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고 그를 의지하는 사람에게 이런 능력이 주어집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제자들의 영적 어두움을 치유하신 예수님께 오늘 우리의 눈을 열어 하늘의 불 말과 불 병거를 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입술에만 머물지 않고 말없이 행동하는 능력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나 우리를 둘러싼 상황을 인하여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모든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을 여셔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상황을 보게 하시고 날마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일 4:4) 하면서 믿음으로 성도들이 세상을 이길 것을 선언합니다. 사방에서 고난이 다가오고 삶의 문제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때 우리도 엘리사가 사환에게 외친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붙들어야 합니다. 육신의 눈은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하나님의 눈으로, 즉 믿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두려워 떠는 성도들을 평안케 하시는 방법은 단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그들에게 영적인 안목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엘리사의 능력은 하나님과 친밀한 인격적 교제를 나눈 결과입니다. 우리 모두 자기의 지혜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엘리사가 살아 있는 한 아람은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없었기에 아람 왕은 엘리사를 없애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사탄의 전략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데 전력을 다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은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엘리사의 능력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아람 왕은 어리석게도 군사들을 동원하여 엘리사가 있는 성을 밤새 에워쌉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 군사를 보며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그의 두려움은 상황을 온전히 파악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아니하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본 것은 허상이 아니라 실상입니다. 엘리사의 기도로 눈이 열린 사환도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을 둘러 진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영의 눈이 열릴 때 시련과 환난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리는 길은 기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눈을 여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엘리사가 세 번 기도합니다. 기도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사환의 눈을 열어 하늘 군대가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엘리사는 아람 군사들의 눈을 어둡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마리아로 끌어들인 후에 다시 그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엘리사의 즉각적인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참 신입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자가 없습니다. 기도는 그분의 능력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엘리사는 칼을 휘두르거나 활을 쏘는 일 없이 아람 군대를 포로로 삼았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까? 주저하기 마시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화평의 신, 구원의 투구, 믿음의 방패, 말씀의 검. 여기서 진리, 의, 화평, 구원, 믿음, 말씀 이 모든 것은 결국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로 덧입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병사가 아무리 좋은 무장을 하더라도 싸울 힘이 없으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듯이 영적인 싸움에서 계속적으로 싸울 힘을 공급받기 위하여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가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이끕니다. 

에베소서 6:18절에 의하면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것은 기도가 그 형태와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성령과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드릴 때 성령의 뜻에 따라 기도하게 됩니다. 또한 기도하되 다른 성도를 위해서 그리고 목회자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면합니다. 

사단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온갖 궤계와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특히 사탄은 영적 지도자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그들이 교회와 성도들이 갈 길을 말씀으로 밝게 비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을 위하여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능력 있게 사역을 할 수 있게 됩니다.   


3)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는 연단 중에서 힘든 것이 사람에 의하여 연단 받는 것입니다. 따라다니면서 있는 말, 없는 말로 괴롭히고 위협을 합니다. 두려운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런 자를 통한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자기를 겸손하게 낮추며 나 때문에 수고한다는 생각을 하며 도리어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미워하는 원수를 단지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그보다 더 악한 자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변화되어 정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을 보면 원수에 대하여 어떻게 할 것인지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19절은 소극적인 교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원수를 직접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20절에는 보다 적극적인 교훈이 나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무슨 뜻입니까? 원수를 미워해서 이글이글 타는 숯불을 올려놓아 죽이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는 말입니다. "숯불을 그 머리에 쌓는다"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원수를 향해 계속 사랑을 베풂으로써 그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후회와 부끄러움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하여 자신이 죄악에서 돌이키게 한다는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그로 하여금 스스로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쌓아가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든 바울의 요지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선한 일을 통해 악으로부터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사환을 위하여 기도한 것처럼 영적 어두움에 갇힌 우리 이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생명을 빼앗으려다가 사로잡힌 자들을 칼로 치지 않고 오히려 자비를 베풀어 악을 선으로 갚았습니다. 특히 내게 악으로 대한 사람도 선으로 대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스토리는 엘리사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엘리사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람이 섬기는 신보다 더욱 뛰어난 신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담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단 성을 둘러선 수많은 아람 군대 앞에서 사환은 두려워 떨었지만 엘리사는 담대했습니다. 보지 못하는 자는 두려움에 빠지지만 보는 자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엘리사 같은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도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군대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그 능력을 보는 자는 아람의 큰 군대와 같은 어떠한 환난도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내게 닥친 문제를 세상 지혜로만 판단하지는 않습니까? 나의 영의 눈이 열리기를 위해 기도합니까? 성령으로 충만하여 영의 눈을 뜨게 되고 세상을 이길 힘을 얻으며 날마다 이김을 주시는 주님을 경험하며 감사와 찬송을 돌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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