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자녀 (롬 8:12-17)

첨부 1


하나님의 자녀 (롬 8:12-17)

(롬8:12-17)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 ‘나는 누구인가?’ 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사람들의 대답은 구구각색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은 그들이 배운 바에 따라 여러 가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합니다.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를 막론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지 쉬운 듯 하면서도 쉽게 ‘나는 누구인가?’에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모르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 의미와 그 가치를 깨닫고 인생을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정확한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누구인가?’, 즉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으로 오신 분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9-10입니다.

(요1:9-10)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이렇게 빛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성도 여러분을 두고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도 여러분의 정체성은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마태복음5:13-14입니다.

(마5:13-1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성도 여러분의 정체성을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빛과 소금’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도 여러분을 두고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는 말씀으로 성도의 정체성을 “택하신 족속” 이라고 했습니다.

‘족속’은 헬라어로 ‘게노스’(γ?νο?)인데 ‘낳았다’(Birth), ‘자손’(offspring), ‘가족’(family)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낳으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낳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낳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낳았다’고 말씀했습니다. 고린도 전서4:15입니다.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을 믿은 사람들을 “나의 자녀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했다.”고 했습니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 믿게 된 많은 이방인들에게 ‘영적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영적 아버지가 되어 예수 믿는 그들이 때로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마다 그들을 바로 잡아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해산의 고통과 같이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그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복음을 전했을 뿐이고 그 생명이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한 사람이나, 그 믿음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물을 주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거나 그 생명의 씨가 자라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기 때문에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3:6-8입니다. 

(고전3:6-8)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예수 믿음으로 낳아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양육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성도 여러분은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낳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두고 “왕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부르므로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낳으신 목적,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바로 “왕같은 제사장들”임을 밝히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드리는 자로 여러분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어 이러한 직분을 주신 것은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곧 우리를 생명의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도 여러분의 삶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자신의 존재, ‘나는 누구인가?’를 바로 발견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의 목적을 바로 깨달아 인생을 바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하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마16:16-17)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 대답하고 예수께로부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바로 알고 고백하는 것이 복있는 사람이고, 또 그러한 이해와 고백은 사람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깨달은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일은 곧 인간을 아는 일이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게 될 때 자신의 존재의미와 삶의 목적을 바로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아담(인류)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보잘 것 없는 한 줌 흙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고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창2:7)고 했습니다. 

인간 타락 이전에 사람을 “생령”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인간과 함께 하므로 인간은 존재 의미가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인간과 함께 하실 때 인간은 영원무궁한 존재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여 함께 하셨던 성령이 떠나감으로 인간은 한 줌 흙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타락하여 성령이 사람을 떠나므로(창6:1-8)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스스로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은 죄의 문제를 해결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인간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그 존재 목적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과학, 천문학, 철학, 문학, 예술 등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편리한 것들이지만 인간이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밝혀주지는 못합니다. 

모든 것을 알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몰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알고 있으면 그는 생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며 모든 것을 소유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고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3:7-9입니다. 

(빌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 즉 구세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실존의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치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3.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한 줌 흙에 지나지 않는 인생이 자신의 죄값을 자신이 치루지 못하고 영원히 무가치한 존재로 끝나버릴 텐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그 죄값을 대신 치루게 하셨기 때문에,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빚진 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빚진 자” 된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바로 다음 구절에서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야만 합니다.” 에덴 동산에 살던 아담과 하와는 사탄이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며 유혹했을 때, 하와가 그 말에 선악과를 보니 달리 보였습니다.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결국 그래서 하와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 아담에게도 주자 그도 금단의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행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그들에게 함께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지 아니하고,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지 못하고 육신대로 살아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도가 육신대로 살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한 경험을 두고 이렇게 그 곤혹스런 자신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그러나 사도 바울은 현실 생활에서 죄와의 투쟁 가운데 절망을 겪지만,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절망과 고난을 이기셨기 때문에 끝까지 예수 믿는 믿음을 간직한다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음을 깨닫고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그토록 심각한 좌절감이 찾아올 때 예수 믿기를 포기한다면, 이것은 곧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사는 삶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육신에게 져서 성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 믿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 버린다면, 영원히 사망의 종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에 인도하심에 따르지 못하게, 육신대로 살도록 유혹하고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에베소서6:10-19을 보겠습니다.

(엡6:10-19)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첫째,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둘째,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을 신으라. 그리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의 검을 가지라, 넷째 항상 깨어 기도하라는 것 등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 사탄과 싸우기 위해 스스로 준비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성도들을 위해 예비해 주시는 것들입니다. 

먼저, 사탄과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강건해져야만 합니다. 강건해지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 안에서”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그 힘의 능력” 곧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합니다. “주 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데 이는 예수께서 포도나무 비유에서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15:1-7을 보겠습니다.

(요15:1-7)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기서 참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는 예수 믿는 성도를 말합니다.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접붙임이 되어서야만 극상품 포도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접붙임’이란 예수 믿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을 뜻합니다. ‘접붙임’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열매를 맺으려면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 믿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뜻합니다. 예수 믿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할 때 강건해져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2:14입니다.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모든 싸움에서 이기게 하시고 승리의 아름다운 향기를 나타내게 하십니다.’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생활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은 예수 믿는 성도들 가운데 함께 하시는 성령의 역사(役事)를 말합니다. 에베소서3:16을 보겠습니다.

(엡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 하는 것은 ‘속 사람’입니다. ‘속 사람’은 인간의 ‘영’, ‘마음’, ‘이성과 의지가 활동하는 인격’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마음과 성품, 인간의 이성과 감성 등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강건해짐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의 속사람이 성령으로 강건해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격과 이성, 그리고 감성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강건해지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전신갑주’는 전투에 임하기 위한 모든 장비, 다시 말해 공격과 방어를 위한 모든 무기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 첫째는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이사야 11:5에서 “(사11: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로 허리띠’는 진실과 충실(성실)을 말합니다. 모든 일에 진실해야 하고 맡은 일에 항상 성실해야 사탄과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람이 거짓되면 ‘거짓의 아비’인 사탄의 자식이 되고 맙니다. 요한복음8:44입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둘째는 “의의 흉배”를 붙여야 강건해집니다. “의의 흉배”는 윤리, 도덕적으로 거리낌이 없이 살라는 것입니다. 셋째,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어야 합니다.” 신발이 편해야 전투에 임할 때 편안한 것입니다. ‘평안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누리게 되는 평화를 말합니다. 이사야 53:5입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 십자가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게 되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예수 십자가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믿음위에 굳건히 설 때, 사탄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 십자가를 믿음으로 평화를 누리며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마지막으로, 14절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영, 성령을 받은 자가 됩니다. 성령을 받은 자는 당연히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요1:12)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과 부자(父子)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부자관계에서는 ‘아무 때나, 무시(無時)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부자관계에 있으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녀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아무 때라도 아버지에게 구하듯이 무시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리는 권세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다 시행하십니다.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구하는 대로 다 성취해 주십니다. 요한복음14:13-14입니다.

(요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또한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택하여(낳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세웠기 때문에 풍성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십니다. 요한복음15:16입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무시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리는 권세있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이루어지는 영광스러운 성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이면 또한 후사(後嗣),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함께 받게 될 것입니다.’(17절) ‘자녀’는 가족관계를 나타내는 것이고 ‘후사’는 상속(相續)관계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실 때는 권세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사시고, 장차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