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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주도자! (요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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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주도자! (요 5:1-9)

 
 5: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5: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5: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5: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5: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5: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5: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성도님의 모든 문제는 그리스도가 해결하셨습니다.”

[서론] 마 4:23을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중점적으로 하셨던 사역의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 4:23)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특징은 ①가르치고 ②전파하고 ③고치는 세 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가르치시기 위해 고치시는 치유 사역을 매개체로 활용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사복음서를 보면 불치병과 죽을병을 고치시는 것과 같은 놀라운 이적과 기사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요한복음에는 사도 요한이 일곱 가지 기적을 선별하여 기록하였고 이를 가리켜 ‘표적’이라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기적에 ? 무엇인가를 보여 주려고 하는 ? 어떤 의도가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도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0~31)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요한복음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기록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시는 표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8년 이라는 긴 시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병자의 삶은 완전한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찾아와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질문하신 까닭은 그를 치유하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38년 동안 해결하지 못해 고통 받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가운데에도 오랜 시간 동안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이 가진 각양각색의 문제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되는 기쁨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도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이를 통해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불신 현장의 실상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요 5:1~4)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 성의 북편에 위치한 양문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양문은 말 그대로 양의 문입니다. 당시 희생 제물로 사용되기 위한 양들이 들어갔던 문이라 하여 ‘양문’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 양문 근처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베데스다는 히브리어로 ‘긍휼(은혜)의 집’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이 연못가에는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각종 질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이 베데스다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었습니다. 천사가 내려와 연못에 고인 물을 솟구치게 하는 때가 있는데 이 때 가장 먼저 연못에 들어가면 어떤 병이든지 낫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에는 이런 미신과도 같은 소문을 사실로 믿고 물이 솟구치기만을 기다리는 불치병 환자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이 베데스다 연못에 구원과 치유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절망과 좌절을 안겨주는 현장일 뿐입니다. 이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 5:7)라고 하소연을 합니다. 이를 보면 이 연못의 전설이 얼마나 큰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정말 중병에 걸린 사람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연못에 맨 처음 들어가는 사람이 낫는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몸이 덜 아픈 사람일 것입니다. 본문에 요한이 언급한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마비 환자)은 결코 자력으로는 그 연못에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얼마나 모순된 상황입니까!

영적으로 볼 때 이 베데스다 현장은 율법 앞에 서 있는 인간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상 종교 앞에서 구원을 구하고 있는 인간의 허망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인간의 힘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믿는 창세기 3장의 불신 현장의 모습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현장에 나가보면 이러한 영적 상태를 아주 잘 볼 수 있습니다. 율법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종교생활을 통해서는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6) 하면 할수록 더 큰 좌절과 절망을 안겨 주는 것이 인간의 방법입니다. 결국 더 큰 갈증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도 이런 현장의 실상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방법을 붙잡고 있으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불신 현장에는 자기 생각 속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영적 부분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오답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이 해답인양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스스로 결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신 예수님처럼 여러분이 그들을 찾아가 인생의 정확한 해답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통해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고 반드시 승리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문제 해결의 키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요 5:5~7)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친히 찾아가셔서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런데 이 사람의 입에서 “네, 낫고 싶습니다.”라는 대답 대신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자기가 먼저 베데스다 연못에 들어가면 병이 나을 텐데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서 지금까지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진 전혀 몰랐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주여’라는 표현은 성인 남성에 대한 존칭어일 뿐이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젊은 청년이 와서 낫기를 원하느냐고 질문하니까 자신을 베데스다 연못에 넣어 주기를 기대하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요 5:8~9) 예수님께서는 이 병자에게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이 병자는 예수님에 대한 어떠한 믿음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그랬음에도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표적을 행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생 모든 문제 해결의 키가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다 거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그것을 여러분이 쥐고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결국 문제 해결의 키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바라볼 때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여 주십니다.

요즘은 최첨단 기술이 발달하여 거의 진짜처럼 보이는 위조화폐를 만들어냅니다. 이에 따라 위조화폐를 가려내는 감별사의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위조화폐 감별사는 수많은 종류의 위조화폐에 대해 공부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위조화폐는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진짜 화폐만을 연구한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진짜 화폐만을 보고 또 보다보면 가짜는 금방 알아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 인본주의적 해결책은 아무런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문제 해결의 키는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베데스다 연못과 같은 창세기 3장의 불신 현장에서 참된 문제 해결의 키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이 주도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오늘 오후 3시에는 고3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가 있습니다. 기도회의 특강 제목을 ‘Finish Strong’이라고 잡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멋지게 마무리하라는 의미입니다. 거창하게 시작해놓고 용두사미식으로 끝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딤후 4:7~8을 보면 바울은 “나는 내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그야말로 finish strong 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주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언약을 붙잡고 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베데스다 연못과 같은 현장에서 방황하는 불신 영혼들에게 여러분이 찾은 해답과 응답을 증거하는 현장 전도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인생의 주도자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응답을 받아 누림으로 현장의 불신 영혼들에게 생명줄을 던지는 전도자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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