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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절 어떻게 지킬 것인가 (신 1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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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절 어떻게 지킬 것인가 (신 16:9-12)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는 작품마다 주인공을 통하여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햄릿]에서 주인공 햄릿의 입을 통해,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리어왕]에서는 리어왕의 입을 통해 감사에 관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식은 뱀의 날카로운 이빨보다 더 날카롭게 가슴을 찌른다.”

리어왕이 이 말을 하게 된 배경 이야기가 이렇습니다.

리어왕이 나이 80이 되자, 다스리던 땅을 세 딸에게 나눠주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딸들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한 뒤에 그 사랑의 크기만큼 땅을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먼저 첫째 딸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이 아비를 얼마나 사랑하니“ 그러자 맏딸은 눈치를 채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제 목숨보다 아빠를 더 사랑해요. 아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어요. 정말이지 아빠는 제가 사는 의미입니다." 리어왕은 그 말에 감격하여 땅의 1/3을 주었습니다.

다음으로 둘째 딸에게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둘째 딸 역시 마음에도 없는 준비된 답을 했습니다. "제게는 아빠 말고는 사랑하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아빠는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예요." 그 말을 믿은 왕은 또 자기 왕국의 1/3을 둘째 딸에게 주었습니다.

이제 왕이 속으로 가장 사랑하던 셋째 딸 차례입니다. 그래서 가장 요지인 나머지 1/3을 주려고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셋째 딸은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빠! 제가 아빠를 사랑하는 건 맞지만, 아빠만 사랑한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어요. 제게는 남편도 있고, 또 제 사랑을 나눠 받아야 될 사람이 많답니다. 아빠를 사랑하긴 하지만 아빠만은 아니에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진 왕은 셋째에게 주려고 했던 땅을 첫째와 둘째에게 나눠주고 말았습니다.

이제 계획대로 하야한 뒤 얼마 뒤에 맏딸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원일입니까? 아버지를 그토록 사랑한다던 맏딸이 아버지를 모질게 박대하고 성에서 내쫓아버리는 것입니다. 이 때 리어왕이 배은망덕한 마음에 이 말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은혜 베푼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뱀의 날카로운 이빨 보다 더 날카롭게 가슴을 찌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리어왕처럼 마음이 아프실 때가 많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토록 은혜를 베풀었건만 배은망덕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날카롭게 찌른 사람들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습니다. 출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으로 홍해를 건너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무후무한 이적으로 바다에 길을 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바다에 추격해 오던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해 나올 수 있었고, 저들이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됐습니다. 정말 놀라운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출 15장을 보면, 저들이 출애굽 직후 마라라는 곳에서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물이 써서 마시기 힘들다고 원망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 물을 마시기 좋게 바꾸어주셨습니다. 또 다시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출 16장을 보면, 저들이 마라를 지나 신광야로 접어들었는데, 여기서 또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고기가 먹고 싶다고 원망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17장을 보면, 저들이 신광야를 지나 르비딤이라는 곳에 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또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마실 물이 없어서 원망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제가 화가 났습니다.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뱀의 날카로운 이빨보다 더 날카롭게 그 마음이 찔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제 문제고, 또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들까지 내어주신 그 망극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삶의 순간순간마다 참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깊이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삶에서 부딪히는 사소한 문제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갑니다. 계속 밀려드는 고단한 삶의 문제들 때문에 원망과 불평 속에서 살아갑니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원망하며 불평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감사를 되찾아야 합니다. 평상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 감사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잃어버린 감사를 되찾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특히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또한 감사로 예배드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첫째, 감사를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9-10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여기서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이란 보리의 첫 이삭을 수확하여 첫 단을 하나님 앞에 요제로 바치는 초실절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칠칠절은 이 날부터 일곱 번째 안식일을 계수하여 만 49일이 지난 날, 즉 제 50일째가 되는 날을 말합니다. 

왜 하필이면 칠칠절일까요? 우선 하나님께서 보리를 첫 수확한 뒤, 그 첫 단을 하나님께 바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초실절입니다. 저들이 첫 단을 하나님 앞에 바치면서, 한 해 농사를 잘 짓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 보리 추수를 하게 됩니다. 49일이 지나면 보리 추수가 마무리 되고, 새로 밀을 또 추수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때 다시 또 밀을 추수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칠칠절로 본격적인 추수 감사 제사를 드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보리를 추수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밀도 추수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많은 것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이것들을 하나씩 둘씩 손꼽아 보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금년 한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들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숨은 그림찾기] 놀이가 생각이 납니다. 그림 속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얼핏 보면 하나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그리고 꼼꼼히 들여다보면 여러 가지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고추, 망치, 열쇄, 지갑, 오이...

감사가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 안에 하나님께서 참 많은 감사 거리를 담아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건성으로 들여다보면, 하나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세하게 꼼꼼히 찾아보면, 그 안에서 많은 감사 제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나를 사랑하셨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밀하게 나를 위해 역사하셨구나!...

그런데 본문 12절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은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없었습니다. 종살이를 했기 때문에 농사짓고 수확을 해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주셔서 농사짓게 하셨고, 내 땅에서 수확하는 기쁨을 맛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베푸신 은혜를 눈으로 보고도 깨닫지 못하겠거든, 과거 없었던 때를 생각하면서 베푸신 은혜를 깨달으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에 헌신하고 계신 한 집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오랫동안 질병으로 고생해 왔습니다. 그리고 우울증도 심해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었습니다. 병원 치료도 열심히 받았습니다. 그래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고쳐만 주신다면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서원도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차도가 있었습니다. 병을 고쳤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원한 대로 전도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늘 감사한 마음이 식을 때면, 병으로 고통 받던 때를 기억합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다시 고쳐주신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깨닫는 만큼 할 수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고서는 결코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깨닫고 드리는 감사만을 받으십니다.

둘째, 감사를 표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칠칠절 즉 감사절을 지킬 때, 우선 하나님 앞으로 제사 드리러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감사를 깨닫고 마음에 담아만 두지 말고, 구체적으로 감사를 표하라는 말씀입니다.

“감사”라는 말에 해당하는 우리말 표현은 “고마움”입니다. 이 “고마움”이라는 말은 명사로 ‘고맙게 여기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동사로 “고맙다”라는 말은 ‘은혜나 신세를 입어 마음이 흐뭇하고 즐겁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말에서 감사라는 뜻은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는 차원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자어를 풀이해 보면 감사는 “느낄 감(感)”과 “사례할 사(謝)”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마움을 느끼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사례 즉 표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감사하다”라는 말이 “야다(Yada)”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문맥에 따라 “찬양하다”, “고백하다”라는 말로도 쓰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감사는 고마움을 적극적으로 노래로든 물질로든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언제나 감사는 관계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상대방이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내가 소중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 내가 그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상대가 구체적으로 그것을 받고, 기뻐할 수 있게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감사입니다.

노래가 불려 져야 노래이듯이, 그림이 캔버스에 물감으로 표현되어야 그림이듯이, 감사도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것이 감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표현되어야 합니다. 찬양으로, 입술의 고백으로, 몸의 헌신으로, 그리고 헌금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스스로 판단해서 자기 분수에 맞게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표하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 감사를 표할 때, 사람을 의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감사하거나 분수보다 과하게 감사할 때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하나님 보실 때 너무 인색하게 감사를 표할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감사를 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가 있습니다.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감사를 표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감사가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감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칠칠절을 지킬 때, 소외된 사람들, 삶이 힘든 사람들,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과 받은바 은혜를 나누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받은바 은혜를 나누며 그들과 더불어 기뻐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사는 나눌 때, 진정한 감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감사 제사를 다른 제사와 구별해 놓으셨습니다. 

우선 제물의 처리 방법을 구별해 놓으셨습니다. 다른 제사는 제물을 드리고 난 뒤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준다든지 아니면 본인이 취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감사 제사는 달랐습니다. 제사를 드리고 난 뒤 제물을 함께 나누게 하셨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 제사장과 나누고, 심지어 노비들과도 나누게 하셨습니다.

다음으로 제물 처리시기를 구별해 놓으셨습니다. 다른 제사의 남은 제물들은 처리시기를 못 박지 않으셨습니다. 당일 처리하든지 아니면 보관하고 있다가 후일에 처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독 이 감사 제물만큼은 당일 날 다 처리토록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처리시기를 못 박아 놓으셨을까요? 반드시 나누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제물을 보관해 두게 되면, 나중에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고, 또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일 다 처리토록 하실 경우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감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특히 감사하기 힘든 사람들, 감사할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들 그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우선 그들에게 감사할 이유가 생기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도 감사를 깨닫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오늘 두 가지를 주변 이웃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는 떡입니다. 숭실대 기숙사에 있는 청년들과 주변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과일입니다. 제단에 장식된 이 과일들을 푸드뱅크에서 돕고 있는 독거노인들에게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감사의 기쁨을 이웃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감사를 나누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를 전염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예배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감사절 예배를 잘 드리실 수 있기 바랍니다. 더욱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베풀어주신 은혜를 남김없이 다 깨달을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감사를 하나님 앞에 표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감사를 이웃과 나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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