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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로서 사명 감당합시다 (엡 5:27)

첨부 1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로서 사명 감당합시다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일반적으로 교회에 대해서 몇 가지로 큰 오해가 있다고들 합니다. 어떤 오해입니까?
교회를 학교(institute)로 오해한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그룹별로 여러 가지 성경 공부를 가르치고 배우지만 그것 자체를 교회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 공부와 교회는 별개입니다. 진리를 가르치고 배운다고 해서 교회를 학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헬라식의 판단입니다.

친교(koinonia, fellowship)하는 곳을 교회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오해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친교 하는 것이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물론 성도의 교제가 있지만, 이것이 결코 교회의 본질은 아닌 것입니다.

교회를 자선사업 단체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교회를 향하여 "도대체 교회가 무엇하고 있느냐?"고, 교회가 돈을 내놓지 않는다고 야단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은 한 푼도 내지 않으면서 교회가 돈을 쓰지 않고 무엇하느냐고 원망합니다.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는 구제할 뿐이지 구제를 위한 기관은 아닙니다.

불의에 항거하는 어떤 저항단체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들을 막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목회자는 신령한 목회자로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목회자는 회색분자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예언자적인 성격은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불의에 항거하는 저항단체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이 아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바울 사도가 기록한 에베소서에서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그런가 하면 교회를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건물로 비유합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교회의 초석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사도는 교회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 즉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표현합니다. 신랑의 기쁨이 곧 신부의 기쁨이 되고, 신부의 기쁨이 곧 신랑의 기쁨이 됩니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주인공의 위치에 있지만, 신랑이 없다면 그녀 또한 아무 의미가 없는 주인공일 뿐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설명 하며 우리의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신부인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기를 원하신다고 합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 앞에 세우심을 받는 신부는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한 기업입니다.

(엡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엡 3: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교회 앞에는 항상 영광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이 ‘영광’이란 단어는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관계되는 단어이며 하나님이 부여하신 선물이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성경은 교회를 ‘영광스러운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의 몸이기 때문에 몸된 교회는 그의 영광에 참여 하니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그리스도는 언약적 머리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 가운데 피택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둘째 아담으로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롬 5:19)었으며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고전 15:22)게 되었습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7)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9) 하신 말씀대로 땅에서 난 자들이 하늘에서 난 자의 형상을 입게 되었으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유기적 머리 이십니다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골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이와 같이 교회는 그리스도와 유기적으로 연합되어 있으므로 말미암아 영적 생명을 소우하고 있으니 영광스로운 존재입니다.
  

그리스도는 통치하시는 머리이십니다.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빌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교회는 머리되신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통치자시며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 되시므로 그의 친 백성이 된 교회 회원들은 영광스러운 존재 들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기에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신부로서 사랑의 대상이기에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엡 5:25상)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사랑받을 만해서 사랑받은 것이 아닙니다. 흠이 많고 티가 있으나 사랑의 대상으로 지목하시고 영광스런 존재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영광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할 때 교회는 교회다워지는 것입니다. 성도는 교회를 떠나서는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으며 교회를 등지면 결국 주님 사랑과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유일독특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포함한 교회를 강권하신다고 했습니다

(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이끄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흡인력이 있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근본 동인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나를 강권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주님의 사랑에 올바로 접촉하게 되면 자신에게만 초점을 두고 살 수 없게 됩니다. 오직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됩니다. 
  
자신을 주셨으니 영광스럽습니다

(엡 5:25하)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남편과 아내의 사랑을 주님과 교회 사랑과 병행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주는 것입니다. 만약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자신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호화로운 집과 훌륭한 음식이 준비되었을지라도 그 결혼은 성립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로서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신분적으로 새롭게 하시고 자신안에 있는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엄청난 사랑을 받는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요구하실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십니다. 성도의 행복은 주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그 사랑에 뛰어드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인생답게 만드는 것은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때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주셨다는 주님의 깊은 사랑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합니다. 주님의 그 사랑이 감정을 움직이고 자원하는 심령으로 주님의 사랑 앞에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주님께서 거룩하게 하셨으니 영광스럽습니다.

(엡 5:26-27)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이 자기 스스로는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셔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제 우리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칭찬과 상급의 대상으로 변화되었으며, 주님 앞에서 영광스런 교회라는 아름다운 칭호를 얻게 되었습니다. 비록 죄의 유혹이 있고 상처도 있지만 주의 피로 값주고 사신 사랑의 복음을 통하여 거룩한 교회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거룩함을 보존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흠(죄로 인한 불결함)과 티(생활의 부패로 인한 영적인 결함)가 없도록 하셨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기대감과 우리를 변화시켜주신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달을 때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기다려주시는 사랑, 아버지의 기대감을 알았기에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주님도 끝까지 우리를 거룩한 자로 불러주시고 주님의 기대를 우리에게 쏟아부어주십니다. 주님의 기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주 앞에 나아가 주님의 기대감을 다시한번 마음속에 새기고 부단하게 달려나가는 능력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물로 씻어야 합니다.

‘물로 씻는 다’는 것은 세례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세례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 나아갈 때에 씻는 것은 우리의 몸의 때가 아니라 영의 때입니다. 한 번 세례를 받음으로 묵은 때를 씻어 낸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회개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늘 우리의 죄를 씻고 그리스도 앞에 나아갈 때, 그리스도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평화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말씀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더러워진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시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말씀은 우리를 깨끗케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 우리의 삶이 바른지 그른지를 알 수 있고, 말씀의 힘을 의지하여 우리가 깨끗함을 입어 그리스도 앞에 기쁘게 설 수 있습니다.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거룩해질 수 있을 까요? 주님이 거룩하게 하시면 우리는 거룩해집니다. 깨끗한 신부가 남편의 영광인 것처럼 거룩함을 입은 교회는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그 죄를 깨끗케 하심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순종하는 교회에서 티나 주름 잡힌 것을 없애 주십니다. 이렇게 성결한 교회를 만드시면 이 교회가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게 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을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깨끗하게 보존하여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영광스런 교회, 영광스런 성도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교회로 부름을 입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교회는 본질상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여자가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이 언제입니까?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를 입고 예식장에 입장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신부인 교회는 어떻게 해야 영광스러운 신부, 영광스러운 교회가 될 수 있을 까요?
    
자신을 거룩한 예배자로 드려야 합니다. 
  
구원을 체험한 자는 예배하는 자가 됩니다. 왜 교회가 세워졌습니까? 왜 직분이 주어졌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진정한 예배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깊이 묵상하고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일을 깨달을 때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가치가 있으십니다’라고 선포하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양심이 소생하게 되며 죽었던 영혼이 생기를 얻게 됩니다. 예배는 교회 안에서의 공식적인 예배 뿐 아니라 우리의 전 삶이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지는 ‘삶으로서의 예배’를 포함합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가정생활과 직장생활도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선 자리, 하는 일 모두가 거룩하여야 합입니다. 가정의 영적 제사장과 직장의 영적 지킴이가 되어야 합니다.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실존을 깨닫고 그 공동체를 예배하는 공동체로 바꾸어가는 성도들이 진정 힘 있는 성도들인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순종해야 합니다.

(엡 5:22-24)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 대한 안목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다스리심을 마음에 기뻐하고 환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전환하며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아내의 영광은 남편에게 순종할 때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거꾸로 된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남자들이 여자들 앞에서 발발 떤다고들 합니다.
“간 큰 남자 시리즈”같은 것이 왜 나옵니까? 그만큼 남편들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고 복종하는 신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얼굴이 달라진다 합니다. 얼굴을 바라보면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지 아니면 지질히 고생을 하는지 대충은 알 수 있다고들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을 받는 사람은 얼굴이 예뻐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영광이 교회의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똑같이 누립니다. 그러나 이 영광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고, 그의 지체로서 누리게 되는 것이지 독자적으로 획득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항상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르고, 섬기며, 순종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서고, 해야 할 일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 교회를 영광스러운 교회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주님은 하늘 영광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아버지께 복종하셨습니다. 이것을 ‘비하의 신분’ 즉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고난으로 끝나버렸다면 우리가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를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빌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고난 후에 가장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주님 (퀴리오스)이라는 칭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퀴리오스)이라고 부를 때 하나님 아버지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십자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고난 후에는 영광에 또한 동참하게 됩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이유는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 즉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데 있습니다
(벧전 2:9-10)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의 신분변화에 합당한 삶의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덕을 선전하는 복음증거, 즉 전도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의 사랑이 내 안에 가득하다면 어떻게 그 사랑을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총동원 전도주일을 작정하고 40일 특별 새벽기도회를 갖게 됩니다. 입을 열 때마다 주님 사랑을 힘 있게 외치며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영광스러운 주님의 신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로서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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