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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 (계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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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 (계 20:4-6)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가장 기뻐할 사람은 물론 대통령 당선자입니다.
하지만 그 당선자에게 표를 던졌던 국민들 역시 그에 못지않게 기뻐합니다.
그에게 찬성표를 던진 사람이 그 정도라면,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하여 발 벗고 뛰어 다녔던 측근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네가 모시고 밀던 사람이 대통령이 됨으로써 자기네들에게도 장관을 비롯하여 '한 자리'씩 돌아오게 될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그 주위에는 그것을 마치 자기 일처럼 좋아하고 진정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기독신자들에게도 그와 똑같은 기쁨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왕 중의 왕으로 모시는 참된 신앙인들은 본문 4절 하반절에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라고 했으며 6절에서도 다시 한 번 "그들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 '천년왕국'은 예수님의 초림 이후부터 예수님의 재림 이전까지의 기간 동안 신자가 교회를 중심으로 이 불신 세상 앞에서 영적으로 왕노릇하게 됨을 가리킵니다.
즉 '지상교회와 신자'는 바로 이 영적 왕권을 가지고서 '용, 옛 뱀, 마귀, 사단'이라는 이 악령의 권세들을 대항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하여 구령운동을 완수해 가는 승리의 기쁨을 같이 나눔으로써 '하나의 왕국과 그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는', 그리스도를 모심으로써 자기도 마치 왕이 된 듯한 기분으로 세상을 영적으로 리드하고 원수를 정복하는 즐거움은 그저 '교회'와 '신자'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다 누리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세상 나라에서도 대통령에게 가까운 측근이 되면 될수록 그를 모시고 있는 기쁨도 더 커지듯이, 이 '천년왕국'의 왕이 되신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기쁨도 오직 그 예수님의 진짜 측근이 되는 신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주어진 말씀을 통하여 과연 어떤 교회와 신자가 진정 주님과 함께 세상을 향하여 왕노릇할 수 있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복음진리 사수를 위하여 순교적으로 충성하는 신자와 교회만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할 수 있습니다.

4절 상반절 말씀에 "4a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거기 앉은 자들"이란 그 영혼이 이미 천당에 가 있는 신자들을 뜻합니다.
그들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는 말씀은 모든 기독신자들은 예수님께서 최후심판을 실시하실 때에 그 심판주와 '함께 왕노릇하며' 그들을 심판할 권세를 부여 받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처럼 세상을 심판할 성도들 가운데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순교자'들을 가리키는 것인데, 순교란 두말할 것 없이 신자로서의 최고 충성이며 순교자라는 이름을 받게 되는 것은 주님 앞에서 최고의 영광입니다.

그런 순교의 조건에 필수적인 것이 바로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행을 다니다가 우연히 이슬람교 테러분자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해서 순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독재 정권에 항거하다가 죽임당하는 사람은 '열사'라고는 불릴 수 있지만 '순교자'는 아닙니다. 또한 목사나 기독신자라 하더라도 무슨 '사회 정의'를 부르짖다가 죽게 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희생'일 뿐이지 절대로 '신앙적인 순교'는 아닌 것입니다.

순교는 반드시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 다시 말해서 성경 말씀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선포하고 수호하려다 '목 베임' 즉 죽임을 당했을 때에만 성립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제 때 신사참배라는 우상숭배에 반대하다가 죽임당한 신자들이나, 무신론을 자기네 신앙으로 내세우는 공산주의자들의 총칼 앞에서 기독교의 유일신앙을 지키다가 죽임당한 신자들이야말로, 정확하게 성경에서 정의하는 순교자에 해당됩니다.
바로 이런 진정한 순교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신자가 다 순교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순교는 '자기가 자원해서 획득하는'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허락해 주심'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참된 신자라고 해서 모두 다 순교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참된 신자라면 평화시대에도 순교적 정신과 자세를 가지고 복음 진리에 대하여 충성해야 한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유명한 말씀은 '충성하다가 꼭 죽어라'는 뜻이 아니라 '언제든지 죽을 각오까지 단단히 하고 항상 충성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 현대사회는 이런 고귀한 순교를 무슨 광신자들이나 할 바보짓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습니다.
아니, 교회사를 전공한다는 신학자들 중에도 과거의 순교자를 두고 '개죽음 당한 사람들'이라고 비웃는 자들이 있는 형편입니다.
즉 '순교적 신앙'을 두고 '자기만 바로 믿는다고 생각하는 독선주의자들의 오만'이라고 오히려 욕을 퍼붓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실제로 지금 우리 주변에서, 기독교계 안에까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가 종말을 향해 치닫게 될수록 인간의 육신적 생활은 더욱 편해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더 편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육신의 안락은 영적인 태만으로 어김없이 연결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어찌하든지 부담 없고 편한 것만 찾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고 앞으로도 현대 교인들의 주류는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만 나아갈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자기희생'이란 말은 기독신자들 사이에서도 점점 더 의미가 희미해지는 단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평화 시대에조차 시간과 물질과 땀과 정성을 바칠 줄 모르는 교인들에게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아예 귀를 막고 듣기 싫어할 정도로 가장 꺼려하는 소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처럼 '희생과 충성'도 모르는 교회와 교인이라면 물론 '순교'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이 영광스러운 명칭은 결국 그런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는 '사라져 버린 고어'가 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진리사수'를 위해 '순교적 자세'로 충성할 줄 모르는 교인들은 '예수 이름으로 복 받으라.'는 말에나 환성을 지르고 박수를 칠 수 있을 뿐이지 절대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은 하지 못할 자들인 것입니다.

세상 정치계에서도 자기가 모시는 지도자를 어떻게든지 대통령으로 한 번 만들어 보려고 온갖 정치적 비난과 박해, 인간적인 수모와 고통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그의 '오른팔 왼팔' 노릇을 기꺼이 해내는 충성스러운 '킹 메이커'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충성스러운 측근들이 나중에 그 대통령의 영광을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적어도 그런 자세로 희생할 줄 아는 신자,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일에 충성하기 위하여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각오로 섬길 줄 아는 신자가 그 주님 바로 곁에서 그 영광도 함께 누리게 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온갖 이단 교리와 무신론 사상들이 더욱 활개를 치는 이 종말시대에 끝까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만을 지키기 위하여 이 평화시대에도 진정 순교적 각오로 충성하는 영적 충신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종교통합 운동에 결탁하지 않고 참된 신앙을 지키는 신자와 교회만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4절 하반절과 5절에 "4b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5(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짐승"이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의 우상"이란 그런 적그리스도가 펼치는 우상종교 운동을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전체를 살펴보면, '용'으로 나타나는 사단이 바로 이런 '적그리스도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의 공동전선을 통하여 교회를 대항하며 박해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사주를 받은 적그리스도의 활동은 거짓 종교인들을 앞장세워 꼭두각시로 사용하는 전법을 쓰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적그리스도는 항상 기독교 아닌 우상종교나 기독교인 척하지만 실상은 이단에 속한 교회들을 사용하여 참된 교회와 신자들을 핍박해 오는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만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왕국을 누린다고 했습니다.
'이마와 손의 표'란 바로 저 유명한 '666의 표'(계 13:18)인데, 이것은 그 적그리스도 짐승의 '이름'이기도 하고 '숫자'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그 '666'의 의미로서 확실한 것은 이것이 바로 '사람의 수'라는 사실입니다.
  
'7'이란 숫자가 '하나님의 완전수'인데 그 '7'에서 하나 모자라는 것이 곧 사람의 숫자 '6'이 되는 것이니, 이 '666의 표'란 한마디로 말해서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의 극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바로 우상종교와 결탁하여 모든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의 표를 받게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표를 이마나 손에 받지 아니하는 자 즉 이런 인본주의와 결탁한 우상종교와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매매를 못하게" 즉 인간 사회에서 살지 못하도록 왕따를 시키고 핍박을 가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실로 오늘날 세계의 영계에서 바로 이런 현상이 너무나도 뚜렷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적그리스도를 통하여 참된 교회를 위협하는 사단의 작전은 바로 세상의 우상 종교들을 통하여, 또한 기독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거짓 선지자들을 통하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든지 자유주의든지 간에 어쨌든 하나님이란 이름만 같으면 무조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가시적 교단 통합 운동이 날이 갈수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후예이든지 그 종교개혁자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파문한 로마 카톨릭의 후예이든지 간에 사실은 '나누어진 한 형제'인 것을 서로 인정하고 같은 기독교 이름 아래 합쳐져야 한다는 주장들이 아주 압도적입니다.
아니 바로 그 자유주의 기독교와 로마 카톨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적 종교 일치 운동' 즉 '어떤 종교이든지 신을 믿는다는 것은 똑같으니 종교 간의 분쟁을 그치고 서로 이해하고 화해하고 교류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그야말로 '음녀의 잔'처럼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달콤하게 유혹하고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반면에 이런 풍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배척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라고 다 같은 기독교가 아니다', '천주교는 이단이다', '우상 종교에는 결코 구원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독교의 참된 사랑의 정신을 전혀 모르는 교만한 독선주의라고 몰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말이지 '666의 표'를 받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발붙일 곳이 없고, 이 인본주의 사상에 동조하고 이 세속적 종교통합운동에 가담하지 않으면 기독교인으로 취급도 받지 못하게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단의 전면 공격이 태풍과 쓰나미처럼 덮쳐오면서 참된 교회와 신자를 위협하고 있는 시대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 말씀은, 성령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가르치십니까?
오직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만 "살아서 그리스도와 왕노릇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신앙의 절개를 끝까지 바로 지킨 신자, 절대로 비진리와 타협하지 아니한 신자, 그런 우상종교 통합운동의 회원권을 받지 아니하고 끝까지 외톨이가 됨을 감수한 교회만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할 수 있다고 명백하고도 단호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조국의 주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국가의 공무원이 될 수 없다면, '원수와 하나가 되려는' 사람이 왕을 모시고 나라의 관원이 되어서는 더욱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자들은 두말할 것 없는 간신이요 반역자이며 조국과 민족을 팔아먹는 최악의 매국노일 따름입니다.
'자유주의 기독교이든 천주교이든지 간에 교리는 상관없이 무조건 하나로 합치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바로 참된 기독교를 도매금으로 팔아먹으려 하는 배교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통합주의와 종교 혼합주의의 이 압도적인 우상 세력 앞에서도 절대로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는' 가운데 끝까지 참된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악한 불신세상 앞에서 성별된 생활을 지킬 수 있는 신자와 교회만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할 수 있습니다.

6절 말씀에 "6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첫째 부활"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함으로써 중생을 받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지옥의 영벌에서 구원 받게 됨'을 가리킵니다.
그처럼 '구원의 확신과 영생 소망'이 확실한 신자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이것은 참된 기독신자들이 그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을 하게 되는 '현실적인 내용'을 강조해 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란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이 악한 세상 앞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거룩하고 선하게 사는 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사람으로서 신약 시대의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고귀한 직분입니다.
바로 베드로전서 2장 5절 말씀에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는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의인 롯'이 죄악에 아예 쩔어 살고 있던 소돔성 사람들을 향하여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고 외쳤던 것처럼, 참된 교회와 신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이 죄악이 관영한 불신 세상 앞에 정확하게 보여 줄 줄 아는 이 시대의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무슨 압력단체나 정당을 조직하여 정치적 권력을 잡는 것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가 사회에 무슨 세속적 영향력을 과시하는 존재가 되라는 뜻도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오직 교회와 신자가 영적으로 세상을 리드하고 변혁시키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야 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상은 분명 '진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윈의 진화론'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인간의 영적 타락과 세상의 불신앙적인 조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세상은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이 죄짓고 더 악한 행위들을 창출해내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인류는 더 똑똑해지고 더 재주가 늘고 더 잘 살게 될수록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쪽으로만 일사천리로 진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도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불신결혼을 하면서 '장부들을 낳고' 건강하게 잘 살았습니다.
문명은 발달하고 산업이 확장되었으며 여가생활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태평성세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죄악이 땅에 관영"했습니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실 정도로까지 극악으로 치달았던 것입니다.

'물 심판'을 받기 직전의 세상이 그러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제 '불 심판'을 앞에 두고 있는 말세는 더욱 그러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과 인류는 날이 갈수록 더욱 악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발달하고 죄에 익숙해지고 죄를 변호하고 아니 죄를 죄라고 인정조차 하지 않는, 그야말로 죄가 관영하며 죄가 세상에 넘쳐흐르는 쪽으로만 치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 죄악의 진화 아닌 악화가 거듭될수록 '거룩, 경건, 성화'란 말은 이 불신 세상 사람들에게는 점점 더 잊혀져가고 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참된 신자는 더욱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서 주님과 왕노릇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의 가신이나 측근일수록 더욱 자기의 사생활까지도 조심해야 합니다.
대통령을 모시게 되었다고 해서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거나 부정부패를 저지르면 그것만큼 대통령에게 불충스러운 일이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은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던 특권적인 자리에서 당장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있는 '제사장'이라면 당연히 우리의 삶 역시 이런 '거룩하신 성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측근답게 '순결한 생활'로 나타나야 마땅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똑바로 따라 살아가는 신자들만이 끝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참된 신민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이 갈수록 더 더러워지고 더 악해지기만 하고 있는 불신 세상 앞에서 끝까지 '성별된 신행일치의 삶'을 지킴으로써 우리가 함께 모시고 있는 '거룩하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당에 당적을 두고 있다고 해서 절로 대통령의 총애와 신임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를 대통령으로 세우기 위하여 일사각오로 충성해 왔던 사람, 정적과 결코 결탁하지 않고 끝까지 의리를 지켜 왔던 사람, 자기가 모시는 대통령의 명예를 추락시킬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고 깨끗하게 정치 생활을 해 왔던 사람만이 그가 모시는 대통령과 함께 그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의 간판을 내걸고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민이 되지는 않습니다.
교회 명부에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해서 다 그리스도의 측근이 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오직 순교의 각오로 충성하는 신자만이, 사단의 세력과 결코 뒷거래를 하지 않고 신앙절개를 지키는 신자만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를 짓지 않고 진정 그의 제사장다운 경건한 생활을 사는 신자만이 그 자신이 진심으로 '왕 중 왕'으로 모시는 그리스도 바로 곁에 서서 이 현세의 천년왕국인 교회를 통하여 영적으로 왕노릇하며 내세의 왕국인 천국에서 또한 영원히 함께 왕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494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이 날은 '그리스도 대신에 교황이 왕이 되어 있는' 천주교를 명백한 이단으로 규탄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왕으로 모시는' 참된 사도적 교회를 계승했던 역사적인 기념일입니다.
모시는 왕이 다르면 당연히 서로 다른 나라이며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백성이 아니겠습니까?
자기네가 모신다고 하는 왕 대신에 다른 사람이 소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자처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면 그야말로 '쿠데타 종교'일 뿐인 것입니다.
그처럼 '다른 왕'을 섬기는 천주교가 어떻게 우리와 '같은 기독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종교개혁 기념일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날수록 '반종교개혁적'인 종교통합 운동은 더욱더 기세를 떨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라는 말은 사람들이 참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은 보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껍데기'에 같은 '666의 표'만 붙여서 하나처럼 만들고자 하는 종교통합 운동이 그래서 온 세상 종교인들, 아니 불신자들에게까지도 그처럼 인기가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것에 반대하는 교회와 신자들은 더욱 따돌림을 당하고 외로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와 이단'이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신자와 우상숭배자'가 하나가 될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비난과 핍박을 당할지라도 그 어떤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의 표'를 받지 아니하고 오직 순교적인 각오로써 참된 '진리와 신앙과 거룩한 생활'을 지킴으로써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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