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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날마다 새로워지는 신앙 (고후 5: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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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새로워지는 신앙 (고후 5:14-17)


성경에 보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과 뜻을 모아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해 보십시오.  제가 보면서 느끼는 것은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가짜 믿음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 떠나갑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인가 해보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비는 인간이 뽑아도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눈에 나타난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세계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 보다 보지 못하는 세계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여기에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더 많이 사모하십시오.  더 뜨겁게 사모하십시오.  사모하는 것만큼 받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위대한 신앙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고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할 이야기가 있는 사람들을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고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을 교인이라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교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증인이 필요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증인을 찾으십니다.  내가 고비 고비마다 어려움을 넘어가면서 이렇게 하나님을 믿었더니 이런 역사가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해야 합니다.  내 삶에서 경험되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삼일만에 부활하셨다는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제자는 자신을 위해서 사는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싸워야 하는 자들입니다.  자기의 이익을 탐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헌신하는 자들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 종교적 예배를 통해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 종교인에 불과할 뿐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주님의 제자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변화와 믿음의 힘이 곧 미래의 경쟁력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변화를 주도하십시오.  변화를 만들어내십시오.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른 신앙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갱신시키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믿음을 축복하십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약속하기를 확실한 믿음에만 보상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바로 세워지면 환경이 변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생명이라도 믿음만 들어가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창조적인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있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있으면 구부러진 생활이 바로 됩니다.  믿음이 있으면 절망적인 환경이 소망으로 변합니다.  변화된 믿음은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태도가 변하면 그 사람의 존재 가치가 변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는 부끄러운 믿음, 나약한 믿음으로 지내왔다고 할지라도 산을 옮길만한 큰 믿음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믿음을 통해 삶의 역사를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굳어진 생명에는 내일이 없습니다.  굳어진 것은 죽은 것만 굳어집니다.  나무도 그렇고 돌도 그렇습니다.  죽은 것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시면 굳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그 속에서 생명력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면 그 주변에 활력이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붙잡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에 붙잡힌 사람들은 생명력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로 인해서 그 주변이 생기로 가득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굳어진 생명에는 내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가정과 목장과 교회 안의 사람들이 굳어지는 것을 막아야 됩니다.  사람이 굳으면 큰일입니다.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가 굳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어린 아이 같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 같아야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굳어진 인생은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습니다.  굳어진 인생은 애곡을 하여도 울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시면서 패역한 세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들 마음 한 구석에는 무난한 것을 좋아하는 심성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난한 환경, 무난한 생활, 무난한 인생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무난은 최상의 적입니다.  결코 무난하지 마십시오.  모세가 무난했습니까?  바울이 무난했습니까?  요셉이 무난했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동양의 유교권 만이 갖고  있는 이상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발전이 없습니다.  그래서 튀는 사람, 스타를 보면 가만있지를 못하고 제거시켜 버립니다.  조직 속에서 튀지 않도록 무난한 인생이 되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조직이든 스타가 없는 팀은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스포츠팀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대중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그 팀에 스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난한 사람들끼리 모여 가지고 무난한 짓이나 하는 조직은 존재해야 할 가치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무슨 무난한 사람입니까?  요셉이 어디 무난한 사람입니까?  그들은 무난한 형제들 속에서 언제나 스타였습니다.  모름지기 바른 믿음의 사람은 스타 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조직도 스타를 키워야 됩니다.  스타가 존경받아야 됩니다.  지금 미국 프로골프가 후원사들을 찾지 못해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스타가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타이거 우즈라는 스타가 있어서 이 한 사람 때문에 수많은 후원사들이 경쟁적으로 후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스타를 보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타이거 우즈가 스스로 타락하면서 스타의 반열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기업들이 후원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스포츠팀이 다 그렇습니다.  야구에도 스타가 있어야 됩니다.  축구에도 스타가 있어야 됩니다.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교회에도 스타가 있어야 됩니다.  전도의 스타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금식 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모아놓고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전도의 스타가 되십시오.  전도의 스타가 없는 무난한 사람들끼리 나약하게 모여 있는 조직은 생명력을 잃어버린 조직입니다.  무난한 사람들을 데리고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주도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려는 스타가 있어야 됩니다.  스타란 남보다 앞서서 자기의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도적으로 자기 일을 자기가 찾아내는 것이 스타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무난한 사람들은 스타를 용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난한 사람들이 스타를 죽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는 무난한 사람들 속에서 스타를 발굴하고 스타를 키울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남들과 똑같이 걸으려고 하지 말고 한 발짝 앞서 걸어가십시오.  남들과 똑같이 믿으려고 하지 말고 한 걸음 앞서 믿으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난한 것을 추구할 때 그들은 꿈을 꾸고 한 발짝 앞서 나간 사람들입니다.  시대는 가고, 역사도 가고, 사람은 흘러가도 내가 하나님 앞에 가졌던 그 꿈과 신앙은 오래도록 남아서 발자취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믿음의 스타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무난한 인생이 아니라 스타를 찾으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본문 17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바른 삶의 방향과 자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신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신앙은 박물관에 전시된 그런 신앙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 있었던 어떤 신앙의 경험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간혹 우리들 가운데 보면 과거에 믿었던 신앙의 회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할 때마다 자신의 과거에 했던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전 것은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신앙은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칭찬과 상급의 기준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신앙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 과거의 신앙 때문에 책망과 심판의 기준이 될 수도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제자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신앙의 삶을 사셔야 합니다.  갱신이 없는 신앙은 생명력을 잃어버린 죽은 신앙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무엇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의 사명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명에 사로잡혀서 사명으로 자신의 생애를 바쳤던 사람입니다.  그는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과 박해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그 사명을 놓지 않았습니다.  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는 순간 순간마다 그 사명을 자신의 마음에 새롭게 각인을 시켰습니다.
"나는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자다.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부르셨다.  그러므로 나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  그리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갈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사명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잃어버린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사명을 붙잡아야 됩니다.  사명을 잃어버리면 절대로 안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주 깨닫는 것은 실천이 이론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동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천 마디의 말이 아닙니다.  한 번의 행동이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은 모든 것을 아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내가 꼭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면 그 내면의 깊은 곳에서 열정이 일어납니다.  사랑이 식었다는 말은 그 내면에서의 열정이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가 어디에 있든지, 혹은 무엇을 하든지 열정은 참으로 중요한 삶의 자원입니다.

사람이 열정에 사로잡히면 열광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광하게 되면 인생은 그야말로 신바람 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신바람만 나면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불가능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열정을 일으키려고 하면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사명이 있어야 됩니다.  내 자식들에게 열정을 일으키려고 하면 먼저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내 조직에 열정을 일으키려고 하면 무엇보다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새롭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명이 무엇입니까?  사명은 일종의 꿈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꿈이 없으면 망합니다.  꿈이 없으면 방자해집니다.  꿈이 없으면 휘청거립니다.  그런데 이 꿈이라고 하는 것도 자기 중심적인 꿈이어서는 안됩니다.  그저 나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꿈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 꿈을 축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자신과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상실감에 자신이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을 이용하거나 짓밟아야 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입니다.  그런 꿈은 꾸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공동의 선을 위한 꿈을 가지셔야 합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꿈을 가진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꿈을 꾸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꿈만 꾸면 안됩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없으면 망합니다.  꿈이라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점에서 목표는 아주 그림같이 구석 구석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모두가 원하는 것이어야 됩니다.  나 혼자만 원하는 것은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전체가 원할 수 있는 것이어야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목표는 실행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야 됩니다.  이 단계를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기억하십시오.  꿈을 향한 목표는 아주 구체적이어야 됩니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 꿈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의 부흥은 우리의 꿈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꿈은 그냥 꾼다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구체적인 목표와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한 주에 한 사람씩만 전도하십시오.

이번 주부터 셀리더들에게 한 주에 한 사람씩 전도를 했는지를 체크하려고 합니다.  정확하게 실행 가능한 것을 가지고 되는가 안 되는가를 체크해야 됩니다.  그냥 놔두면 되겠지...  놔두면 절대로 안됩니다.  그래서 매 주일에 셀리더들에게 이것을 구체적으로 한 번 체크할 것입니다.  사람은 믿고 그냥 놔두면 절대로 안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꿈에만 사로잡혀 있으면 안됩니다.  "어느 날인가 될 거야, 언젠가는 될 거야."  구체적인 행동과 단기적인 목표는 무시하고 꿈에만 사로 잡혀 있는 몽상가 집단은 아무 일도 못합니다.  아이들이 밥도 안 먹고 밤새도록 오락을 왜 합니까?  결과에 대한 측정이 금방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눈으로 단기적인 성과를 금방 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인가는 될 거야."  이 사람들을 데리고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눈에 보여야 됩니다.  사람은 가능성이 보일 때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럴 때에 최선을 다합니다.

밤을 새워 희생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단기적인 희생에 대한 보람과 기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됩니다.  아무 것도 안 되는 집단은 성공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가지고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성공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그 사람을 보고 자극을 받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 변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 점에서 단기적 성과라고 하는 것은 우리 속에 큰 추진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주신 자신의 사명을 새롭게 하십시오.  그리고 꿈을 가지십시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십시오.  그리고 헌신에 대한 보람과 기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위해서 주도적인 사람이 되십시오.

두 번째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19세기 덴마크의 철학자였던 키르케고르라는 사람은 당시 대중들의 위선적인 신앙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리스도계는 있으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없다."

저는 이 말이 오늘 우리의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이 땅의 교회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정말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계중의 계원들은 많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서 먹고 마시고 즐깁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의 이익을 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정말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셨던 그 길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사람들은 적다는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제자란 자신의 기득권과 익숙한 것을 다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떠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필연성은 그의 제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의 고난과 버림받음과 십자가에 달리심에 동참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는 날마다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돌아볼 뿐만 아니라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외적으로 변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옛것은 지나가며 모든 것이 새롭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새롭게 된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제자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자는 모든 것이 다 새롭습니다.  새로워진다는 것은 그 속에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이 새로워지고 있다는 기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신비로움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축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계모임의 계원들과 같은 종교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무난하고 편안한 삶이 아니라 험한 가시밭길이라도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참된 제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가 무엇입니까?  성도는 세상과 구별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물론 성도들도 세상을 완전히 등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속에서 부름 받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교회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은 교회와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세상에서 날마다 새로운 삶의 결단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종교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우리는 세상과는 다르게 거룩하게 되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를 맺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와 함께 자신의 욕구와 향락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것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제 이후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통해서 세상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결단을 내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많은 사람들은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몸은 교회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세상과 타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적인 종교인은 될 수 있겠지만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추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바라보거나 감상하면 그것이 신앙인 줄로 압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추방하고 내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야 그리스도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논쟁이 기적을 낳는 것이 아니라 순종이 기적을 낳습니다.

마가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고 계시는 것을 구경꾼들이 지켜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손을 내밀라고 명령하시고 "일어서라!"고 했을 때 군중들은 놀라고 바리새인들은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환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기적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논쟁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믿음은 살아 있는 것이고, 활동하는 것이며, 능력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믿음과 능력을 절대로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원리를 따라가면 산을 옮기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문제는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붙잡고 시간마다 때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증거 되고,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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