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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목하게 하는 복음 (고후 5: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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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에 일어난 미국테러사건은 증오범죄에 속하는 사건이다. 즉 돈을 빼앗는다든지 원수를 갚는다는 등의 어떤 특별한 목적이나 이유가 있어서 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 사람이나 단체나 국가에 대한 미움과 증오 때문에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바로 이 증오범죄의 시대인 것이다.

특별히 이번 사건 이후 온 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은 공격을 당한 미국이 본격적으로 보복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미 전쟁상태에 돌입했다고 개전선언을 한 상태이다. 세계적인 뉴스채널인 CNN을 보면 이번 테러사건에 대해서 보도할 때마다 항상 “WAR Against Terror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자막이 화면에 떠 있는 것을 본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 더 이상 무고한 피를 흘려서는 안되고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한 테러리스트들을 잡아들여서 보복하고 차제에 테러리즘을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소리에 가려지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 세계는 언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할 것인가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전 세계를 향해서 미국 편에 설 것인지 테리리스트 편에 설 것인지 선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권의 공산국가가 무너진 후 세계는 냉전구도가 사라지고 평화의 시대가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대결은 사라졌지만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진정한 평화를 맛볼 수 없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인가?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는가? 세계평화라는 거창한 문제를 조금 좁혀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남한과 북한의 통일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다. 우리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되려면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무력에 의한 강제통일이나 힘에 의한 흡수통일이 아니라 평화적인 통일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요즈음 남한과 북한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어떤 사람들은 남한과 북한의 통일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남한과 북한의 왕래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여러 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각계 각층 사람들 중에서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의 숫자가 꽤 많이 있다. 지난 8월말 중국 심양에 갔을 때에 북한냉면을 파는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잘 아는 목사님을 만났다. 서울에서도 바빠서 자주 못 만나는 분인데 그곳에서 만나니 참으로 반가웠다. 그분 말씀에 평양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통일이 가까이 왔는가? 어떻게 하면 남한과 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이 되어 모두 함께 행복하게 잘 살수 있겠는가? 몇 년 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국장 김영주목사가 북한선교회 헌신예배에 설교한 적이 있다. 그 때 김목사님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임원들과 북한을 다녀온 직후여서 생생한 북한의 현실을 우리에게 상세하게 들려주었다. 그때 설교를 마치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던 것을 기억한다. “50여 년을 떨어져 살아온 북한과 지금 통일이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지금 통일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화목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50년 동안 떨어져 살면서 사상과 이념과 생활과 언어와 문화가 차이가 나는 북한과 통일을 이루고 함께 살아갈 수 있겠는가?” 아마 지금 당장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면 우리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계평화를 바라기 전에 먼저 우리 주위의 사람들과 화목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북한과의 통일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내 주위 사람들과, 이웃들과 친구들과 가족들과 화목하게 사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성도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화통일을 주시고 또 세계평화를 주실 것이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평화를 누리려면,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기 원한다면 먼저 우리 자신들이 변화되고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평화의 문제는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불화하거나 반목하지 않고 누구와도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나는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가는 곳마다 모든 관계들을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게 되고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게 된다. 세계평화와 민족의 평화통일은 지금 나의 손에 나의 어깨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아니 내가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그 대답이 오늘 본문 말씀에 나와 있다. 20절에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했다. 이 땅에 평화를 이루는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이 말씀은 지금 사람들이 우리가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인간과 하나님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고 열려 있지 못하고 막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혀 있는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으면 내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영혼의 상태도 불안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고 자꾸만 문제가 생기고 불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화목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죄 때문이다. 본래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안에서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아무 문제없이 즐겁게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탄이 인간의 마음 속에 욕심과 교만을 넣어 주었고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짓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막혀버리고 불화한 사이가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어떻게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어떻게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가? 바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고 관계를 회복시키시려고 오신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열어 주셨다. 그래서 오늘 본문 19절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셨다”고 했다. 또 21절에도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씻음 받아야 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다고 약속해 주셨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할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다른 사람과 화목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진다. 이런 사람을 오늘 말씀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목하였는가? 지금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활짝 열려 있는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것은 없는가? 회개하지 않은 죄는 없는가? 내가 하나님의 전권대사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과 나 사이가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잘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능력과 복이 계속 내게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활짝 열린 사람에게는 몇 가지 증거가 있다. 먼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불안하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 4:8에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라고 했다.

또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 있는 사람은 그 마음에 기쁨이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망과 좌절과 낙심에 빠지지 않는다. 손해를 보고 아픔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늘 기뻐하며 살 수 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을 다 잃어버려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한다. 시편 4:7에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고 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 있는 사람에게는 또한 너그러움과 사랑이 있다. 다른 사람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허물을 너그럽게 받아주고 용서할 줄 안다. 나도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 있는 사람은 자꾸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다. 자기도 모르게 별 것 아닌 것 때문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섭섭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평소에 잘 지내던 사람과의 사이에서 갑자기 문제가 생기고 관계가 틀어지게 된다. 원인은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활짝 열려 있는 사람은 너그러움과 여유가 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가슴에 안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받아줄 줄 알게 된다. 하나님께 풍성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흘러 넘친다. 그리고 그 사랑과 함께 전해지는 복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움직이는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삶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과도 화목하게 지내는 믿음이 되자.

전도란 무엇인가? 죄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가 막히고 불화하게 된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은혜로 죄의 문제를 해결해서 하나님과의 막힌 관계를 회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다.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맡겨 주셨다. 화목하게 하는 대사로 우리를 불러 세우셨다. 18절에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고 했다. 예수님을 믿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성도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책임을 주셨다는 것이다. 19절에도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했다. 그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라고 부탁하셨다는 것이다. 

20절에는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화목하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사신의 직책을 받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라는 직책을 받는 하나님의 사신으로, 하늘나라의 전권대사로서 권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이것이 전도이다. 하나님께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늘나라의 전권대사가 되어서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전도이다. 나로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예수를 믿게 하신 것은 이 화목하게 하는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9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나를 부르신 목적이 모든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이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이제 이 화목하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아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래서 이 땅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반목과 불화가 사라지고 화평을 이루게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 즉 개인과 개인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짐으로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에 단순히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 화목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가 회복된 사람은 가는 곳마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을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할 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십자가의 복음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가 화목하게 되는 일이 계속 늘어나면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세계 각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들이 복음의 사람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화목하게 하는 사람들이 되면 이 땅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임할 것이다. 

내가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꿈을 꾸면서 전도하라. 내가 한 사람에게 전도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으로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지고 그 사람과 연결된 관계들이 회복되는 꿈을 꾸라. 그 사람의 가정이 달라지고 직장이 달라지고 새로워지는 꿈을 꾸면서 전도하라.

내가 사는 지역에 예수를 믿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역사회가 달라지고 변화되는 꿈을 꾸면서 복음을 전하라. 복음으로 가정이 달라지고 동네가 달라지고 나라가 달라지고 세계가 달라지는 꿈을 꾸면서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보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별 것 아닌 일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반목하고 다투고 싸우는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 섬기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화목하는 세상이 되는 것을 꿈꾸면서,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보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자.

세계 평화가 위협을 받고 있는 이 때에, 모든 나라들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이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렇게 열심히 십자가의 복음, 화목하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기를 힘쓰는 것이다. 에베소서 2:14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다”고 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원수된 것을 풀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하나되고 화목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슬람 과격파 교도가 테러를 저질러서 무고한 생명들을 죽게 하는 것이나 내가 어떤 사람을 미워해서 그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고 험담을 하고 비난을 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미국이 테러범들에게 보복을 하기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가난한 나라를 총공격을 하려는 것을 나쁘다고 하기 전에,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지 넘어지게 하려 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을 비난하고 그가 한 일을 갚아주려고 하는 것부터 중지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화해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는 이 때에 우리가 지금 시급히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의 순종과 사랑을 통해 이 땅에 평화를 이루는 일에 앞장서자.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게 하고 막힌 관계를 다시 열게 하는 일에는 희생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처럼 누군가의 희생이 있을 때에 화목하게 되는 일이 이루어진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일에도 희생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일에도 역시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오래 전에 인도네시아 자바섬으로 리차드슨이라는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복음을 전하러 갔다. 그 때는 아직 그 섬에 식인종이 있을 때였다. 그곳에는 부족간의 싸움이 심했다. 그리고 서로 한참을 싸우다가 화해를 청할 때는 자기 마을의 갓난아기 하나를 상대편에게 주는 관습이 있었다. 그들은 이 아기를 ‘평화의 아기’라고 불렀다. 리챠드슨 선교사가 그 섬에 도착한 지 2년 째 되던 해에 큰 부족간의 싸움이 시작되었고 오랫동안 화해의 기운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백인 부부가 아기를 안고 언덕에 나타났다. 대치하고 진을 치고 있던 양쪽 부족이 깜짝 놀라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바로 리챠드슨선교사 부부였다. 그들은 한 살 된 자신들의 아들을 평화의 아기로 내놓은 것이다. 말없이 바라보던 양편 진영에서 함성이 터졌다. 증오의 소리가 아니라 평화를 약속하는 기쁨의 환성이었다. 평화가 찾아온 것을 기뻐하는 함성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서 아들을 바치는 백인선교사 부부의 사랑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사건은 전도의 문이 굳게 닫혀 있던 인도네시아 자바족에게 복음이 들어가는 큰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희생으로 복음이 전해졌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수고와 희생이 따른다. 희생의 수고가 없으면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평화를 이루는 일에는 희생과 수고가 있어야 한다. 그 희생과 수고 때문에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화목하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 이제 나도 다른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하게 하기 위해 희생하고 수고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사람과 저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고 화목하게 되기 위해서는 중간에서 희생하고 수고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가 필요하다.

마태복음 5:9에서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다. 화평케 하는 자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평화를 만들고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을 받는다는 뜻이다. 왜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대신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평화가 오게 하는 이 일에 우리들이 나서자. 일어나 주위 사람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복음을 열심히 전하자.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화목하는 일에 앞장서서 깨어지고 틀어진 관계들을 돌이키고 회복하자. 나를 통해서, 내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서, 나의 사랑과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는 하늘나라의 전권대사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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