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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 기도, 용서 (막 11: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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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기도, 용서 (막 11:22-26)

예수님은 기도한 대로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 마음속에 기대와 소망이 생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라고 말씀하셨듯이 기도를 방해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싶은 마음과 기도를 방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 안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나치 수용소서에서 고난을 겪은 코리 텐 붐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일대기를 보면 한 공간에 모여 있던 20여 명의 사람들이 한 병에 들어있는 비타민을 나눠 먹어도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비타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그들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간증을 들으면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도전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있는 기도를 되돌아보면 응답을 체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응답을 경험하지 못하면 의심을 생기거나 실망을 하게 됩니다.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험이 더 많았다면서 낙심을 하기도 합니다.

과연 크리스천들의 기도는 응답될까요.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요. 기도응답을 체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또한 예수님이 말씀 하신 그대로 응답받는 기도는 어떤 기도일까요.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라?’”(22절).

예수님은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말씀보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을 먼저 하셨습니다. 여러분, 기도의 시작은 하나님입니다. 때때로 기도는 자신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문득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잡아당기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 기도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에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스스로는 결코 기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주시고 기도할 언어와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을 보면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신 예수를 바라봅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의 창시자의 의미는 믿음을 시작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믿음의 대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주십시오’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믿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을만한 행동을 한다면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믿어달라고 요청하지 않아도 그를 믿을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믿음의 대상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믿음은 믿어지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나를 찾아오시는 하나님께에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더욱 간절하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쉬지 않고 응답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기도의 중심 ‘믿음’

기도의 중심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자 행동입니다. 믿음은 기도로 나타나고 기도를 통해서 믿음은 강해집니다. 믿음은 기도에 불을 붙이고, 기도는 믿음의 역사를 만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은 그분을 간절히 찾는 사람들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히 11:6).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습니다. ‘듣는다’는 말은 히브리어 ‘쉐마’로 표현됩니다. 쉐마는 귀로 들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따르는 것까지를 포함합니다. 즉 쉐마는 순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들은 대로 행하는 분입니다 .이 확신이 필요합니다.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가 부모에 대해 가지는 확신은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입니다. 자녀가 어릴수록 부모가 전능한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사달라고 합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확신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믿음의 한 요소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 지나치게 하나님 앞에서 정중하게 말을 합니다. ‘과연 들어주실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자녀는 자라면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보다 해줄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하나님은 알아갈수록 못하시는 것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성장할수록 부모에게 덜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큰 기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신앙의 성숙입니다.


하나님 뜻 따라 간구하는 신앙’

영적생활 초기단계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구해야 합니다. 응답을 받은 경험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구하는 습관을 가져야합니다. 이러한 체험을 하다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집니다. 그러면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하나님의 뜻에도 순종하게 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구하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를 앞에 두고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우리가 갖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곧 무엇이든지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라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을 알면 우리는 우리가 구한 것들을 그분으로부터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요 5:14~15).

믿음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기도하는 내용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 15:7).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말씀이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의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기도하는대로 이뤄지길 원하십니까. 하나님 안에 거하고, 말씀이 여러분 안에 거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기도가 무엇이든지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이미 받은 줄로 믿는 믿음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한다. 누구든지 저 산에게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23절). 
이말씀은 당시 유대 사회의 격언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들이 이루어졌을 때 그들은 ‘산이 바다에 빠졌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장벽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는 자에게 이러한 일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의 격언이지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24절을 보면 기도를 통해 한 단계 더 깊어지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24절). 

그대로 이루어지는 믿음보다 깊은 차원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한 단계 더 나아간 믿음입니다. 이미 받은 줄로 믿는 믿음은 기도의 클라이맥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고, 아직 이뤄지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 뜻 알게 하는 ‘기도’

여러분, 이미 받은 줄로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공항에서 좌석 표를 손에 들고 여유롭게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편안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기도의 응답여부를 알지 못해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미 받은 줄로 믿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미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기도를 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미리 알고 계시지만 정작 자신이 자기의 문제를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기도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제목을 모르기 때문에 기도로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와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필요한 것을 얻는 것보다 큰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비밀입니다.

자녀를 너무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미리 알고 준비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구해달라고 요구하기 전에 이미 부모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모가 사랑이 넘칩니다. 하나님도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만 하면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받은 줄로 믿는 믿음은 허황된 상상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줄로 믿고 기다리는 것은 참된 믿음의 모습입니다.


의심 없는 올바른 기도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께 무엇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그의 모든 길은 정함이 없습니다”(약 1:5~8). 
의심이 왜 생길까요. 자신을 속이고 마음이 둘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의심 없이 올바르게 기도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여섯 가지 질문이 필요합니다.

첫째,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제가 대학생 때 그룹별로 통성으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 그 기도는 입술에만 머무는 기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 봐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일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입니다. 농부들은 가뭄 때문에 비가 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오늘 운동을 하러 가니까 비가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셋째,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모두 했는가’입니다. 넷째,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입니다. 하나님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를 살펴야합니다. 다섯째,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신다면 하나님과 자기 자신 중에 어느 쪽이 더 영광을 받는가’입니다. 여섯째, ‘그 기도가 응답되기를 진심으로 원하는가’입니다. 이 여섯 가지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마음에 의심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의심으로 나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구한다면 기도한대로 응답될 것입니다.


용서의 열매가 맺어지는 기도

구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기도는 용서의 열매가 맺어지는 기도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등진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을 용서해 주라. 그러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25절).

믿음은 기도로 나타나고 기도는 용서로 나타납니다. 믿음과 기도, 기도와 용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응답받는 기도는 용서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등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중에 ‘서서 기도할 때에 어떤 사람과 등진 일이 있다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를 하는데 문득 등진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성령님이 지금 하고 있는 기도가 응답되기 원한다면 먼저 등진 사람과 화목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응답의 조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우리 마음에 가책 받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요일 3:21~23).

응답 받는 기도의 조건은 마음에 가책 없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등진사람과 화목해지는 것이 기도가 응답되는 조건입니다. 산상수훈에서도 예수님이 동일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된 용서

“너희가 너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남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14~15절).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와 동시에 우리도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겠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일종의 서약과도 같은 기도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용서의 종류를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과 관계된 용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용서입니다. 십자가 앞에 나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용서입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용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용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용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응답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깨져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도응답을 받는데 제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기도가 응답되는 축복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는 것과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용서 없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도응답을 체험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용서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용서하지 않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힘들지만 누군가를 용서하면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응답을 막고 있던 모든 장벽들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유명한 기독교 사상가인 포사이스라는 사람은 <영혼의 기도>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응답을 하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그분과 그분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분의 기도는 바로 예수님이 당부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고 화목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긍휼과 용서가 가득한 마음으로 구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기도한대로 응답될 것입니다. 날마다 기도가 응답되는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길 바랍니다. (이재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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