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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울 전에 서두르라 (딤후 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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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전에 서두르라 (딤후 4:9-22)

지난 금요일에 비가 내리더니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물론 캘리포니아는 겨울이라 해도 혹심한 추위가 없기에 별도의 겨울 준비를 하지는 않지만 제가 보스턴에 있을 때는 겨울철에 접어들면 TV에 자동차 정비를 하라는 광고가 갑자기 많아집니다. 더 춥기 전에 라디에이터, 배터리와 브레이크를 점검하라고 합니다. 

요즈음은 모르겠으나 전에는 한국에서 이때쯤 되면 김장을 하기 위하여 배추, 무, 고춧가루와 각종 젓갈들을 장만하는 것이 집안의 큰 행사였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세례와 성찬식이 있고 셋째 주일은 한해를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며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이어 닥치는 성탄절 준비를 하다보면 금년이 지나가게 됩니다. 

겨울하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스키를 좋아하는 분들은 눈이 쏟아지는 겨울이 기다려지지만 적지 않은 분들은 겨울 하면 또 한해를 보낸다는 생각에 무엇인가 아쉽기도 하고 허전한 느낌을 가지기도 합니다. 더구나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는 분들에게는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남은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믿음의 대선배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은 인생의 겨울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그가 마지막으로 쓴 서신인 디모데 후서를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 나름대로 영적 월동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바울이 첫 번째 투옥되었을 때에는 이년 동안 감옥에 있었습니다(행 20:38). 이제 두 번째 갇힌 상태에서는 전처럼 다시 풀려나기를 기대하기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음을 위하여 순교를 당하느냐 아니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믿음을 버리느냐 하는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에 일하던 동역자들이 대부분 바울의 곁을 떠났고, 바울은 수감되어 로마에서의 사역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보통 학교의 신상명세서나 보험신청서에는 비상 연락처를 쓰는 난이 있습니다. 자기 가족이 아닌 사람 중에서 긴급한 일이 생겼을 때 연락을 하면 달려올 수 있는 사람을 적는 것입니다. 

각자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먼저 연락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도움을 요청할 때 모든 것을 제쳐두고 내게 달려올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이웃이 있는 사람이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어떠하였습니까?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어려울 때 연락할 수 있고 심지어 오라고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디모데입니다. 믿음의 아들이요 젊은 동역자인 디모데를 간절히 보기 원하여 서둘러 오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기 생애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어떠한 모습을 보입니까?

1) 자신의 심정을 디모데와 나눕니다(9-13절)

바울은 어둡고 차가운 로마의 감옥에서 자기가 겪는 심리적인 외로움, 육체적인 어려움을 디모데에게 알려줍니다. 돌아보니 함께 일하던 사역자들이 하나둘씩 이런저런 이유로 자기 곁을 떠나갔습니다. 데마가 제일 먼저 언급됩니다. 

빌레몬서 1장 24절을 보면 바울은 데마를 동역자라고 부릅니다.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할 때만 해도 누가와 같이 문안인사(골 4:1)를 드렸던 데마가 여기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린 자로 나옵니다. 바울과 데마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복음을 위한 고난의 길을 외면한 채 바울을 떠난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의 행동이 바울에게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또한 세상의 즐거움을 버리고 복음 증거에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레스게는 자신의 사역지인 갈라디아로 떠났고 디도는 바울이 세운 교회를 돌아보기 위하여 달마디아로 떠나갔습니다. 제이차 전도 여행 때부터 바울과 동행하였던 누가만이 로마로 호송된 바울 곁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함께 있어 바울을 돕습니다. 골로새서 4장 14절에는 누가를 '사랑을 받는 의사'로 소개합니다. 교회의 전승은 그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라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서둘러 오라고 하면서 아울러 전에 불편한 관계를 가졌던 마가도 함께 데리고 올 것을 요청합니다.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고 하며 지금은 마가를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1차 전도여행 중 바나바와 함께 데리고 갔던 부잣집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험한 전도 여행이 힘들어 중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행 13:13). 

그 일로 인하여 원칙주의자인 바울은 선배 동역자인 바나바와 심히 다투다가 결국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로 이차 전도여행을 떠나고, 바나바는 그 위로자라는 이름 그대로 넓은 마음으로 마가를 품고 그를 구브로로 데려갔습니다(행 15:36-41). 다시 사역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마가는 충성스럽게 일함으로 교회의 귀한 지도자가 되었고 마가복음도 집필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힘을 다하여 디모데를 격려해서 담대한 전도자로 세우고 누가와 함께 변화된 마가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로마사역을 감당케 하려고 합니다. 한편 디모데가 마가와 함께 에베소 교회를 떠나 바울에게로 올 수 있도록 바울은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내었음을 밝힙니다.  

세번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하여 지중해 연안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여러 교회를 개척한 위대한 사도의 말년이 초라하게 보입니다. 로마의 겨울은 쌀쌀해서 외투 없이 지내기가 쉽지 않기에 바울이 전에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들렀을 때 거기에 겉옷을 두고 왔는데 디모데가 오는 길에 가져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또한 가죽 종이에 쓰인 구약 성경을 가지고 오도록 부탁을 합니다. 옥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려는 바울의 모습이 도전이 됩니다. 

바울은“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4:6) 하면서 자신의 험난했던 생을 돌이켜 보며 주님 앞에 갈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이 있을 지라도 믿음으로 극복하며 살기를 원하시나 슈퍼맨처럼 살기를 원하시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지위나 직분이나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감추려 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 놓고 자기의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나 그룹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의 관계라 하며 다른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교제를 전혀 나누지 않고 은둔자처럼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함께 삶을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가 성경에서 말하는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외로울 때 주 안의 형제들을 보내시고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요즈음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그들과의 교제가 내게 큰 힘이 됩니까? 
 

2) 대인관계의 지혜를 보여줍니다(14-16절)

바울은 자신의 사역 중에 상처를 준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그중의 대표적인 인물이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입니다. 그는 구리를 이용하여 각종 조각물을 만들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영향력이 있던 알렉산더가 바울이 로마에서 재판을 받을 때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며 복음을 전할 때 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고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을 알았기에 그를 향하여 개인적으로 분노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또한 바울이 처음 재판정에 섰을 때 알고 지내던 형제자매들이 바울을 위하여 변호하기를 하나같이 거절했을 때 심한 배반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며 도리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배신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용서를 베풀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기도하셨고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을 용서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철저히 본받는 삶을 살았던 바울인지라 예수님의 본을 따라 자기에게 손해를 보였던 사람들에 대하여 관용을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디모데에게는 알렉산더를 주의할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서로를 용서하고 이해하여야 하나 경계할 때는 하여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둘기 같이 순수하면서도 뱀같이 지혜로울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용서하고 포용해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한편 나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경계하도록 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3) 믿음으로 주님을 붙듭니다(17-18절)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인생관이 달라지고 생의 목표가 달라져서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 나온 것처럼 배신을 당했지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경험한 주님, 감옥에서 묵상한 주님, 여전히 붙들고 있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 바울 곁에 계신 분입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광야 40년의 여정 가운데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낮에는 불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때도 하나님은 그들과 여전히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한 사람들이 어떤 복을 받습니까? 

창 39장 2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삼하 5:10을 보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약속을 보면,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실제로 주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신 이후로 언제나 그의 곁에 계시며 그의 사역을 도우셨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을 때 유대인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천부장이 불상사가 일어날까봐 무리들에게 둘러싸인 바울을 억지로 빼앗아 영문 안으로 옮깁니다.  

그날 밤 예수님께서 환상 중에 바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행 23:11) 바울도 인간인데 계속되는 위험 속에 어찌 염려가 되지 않겠습니까? 생명의 위협을 받는 바울에게 주님께서 위로하시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말씀해주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말고 담대하게 주님을 증거 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바울을 지키실 것이고 그의 궁극적인 목적지인 로마까지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 바울을 강건케 하신 분입니다.

목사님은 항상 기쁘신 것 같아요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고 답변은 하지만 저도 속이 바짝바짝 탈 때가 있습니다. 언짢은 소리, 섭섭한 소리도 종종 듣습니다. 제가 교만해질까봐 목사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는 교우들도 계십니다. 저 혼자의 힘으로 사역할 수 없기에 교우들의 기도가 필요하고 주님께서 힘 주시는 대로 단 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섬깁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상황을 바꾸어주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상황은 그대로 있고 대신 극복할 힘을 주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가나안을 정복하려는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에는 어떤 전제가 있습니까? 문제는 있다는 겁니다.‘가나안 정복 네 힘으로는 안 된다. 그러니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한다는 믿음으로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라 그러면 내가 너로 하여금 가나안을 얻게 하리라’는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이기게 하십니다.

고린도 후서 11장을 보면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유대인의 형벌 가운데 하나인 태장을 다섯 번이나 받았습니다. 로마인의 형벌인 몽둥이 매질을 세 번씩이나 당했습니다.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고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강도의 위험과 주리고 목마르고, 추위에 헐벗고 떠는 위험도 많이 당했습니다. 수많은 멸시와 박해를 당하면서 바울이 실패한 자처럼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이나 위험이나 고난이 그를 약하게 만들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하는 귀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고난, 고독 그리고 위협 속에서도 바울이 약해지거나 흔들리지 않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주께서 그를 강건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과 지혜로 충만했고 은혜로 충만했고 능력이 충만하였습니다. 주께서 바울을 강건케 하신 목적은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명자에게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힘을 주십니다.  

- 바울을 건지신 분입니다.

바울이 심한 고생을 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질 상황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바울이 감당할 만하니까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이요 시험 중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신다는 점입니다. 문제만을 바라보고 자기의 감정에 사로잡히면 더 처지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믿음으로 먼저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문제를 보는 시각이나 그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바울의 사역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그때마다 주님은 바울을 건지셨습니다. 자신의 구원을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은 것'으로 표현한 것은 그가 '죽을 고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경험을 토대로 바울은 주께서 자기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지시기를 간구합니다. 그가 섬기는 주님은 자신의 육신만이 아니라 그 영혼을 죽음과 지옥의 권세에서 능히 건져내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그는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능력과 구원의 주님께 영광을 세세 무궁토록 돌립니다.


4) 동역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입니다(19-22절)

바울의 마음은 여러 동역자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먼저 같이 장막을 만들며 전도에 힘쓰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이들은 아볼로를 불러다가 복음을 더 자세히 풀어 알릴 정도로 뛰어난 영성을 가진 평신도 부부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위하여 자기 목이라도 내어놓았던 자들이어서 바울이 아주 신뢰하고 귀하게 여겼습니다. 

바울의 전도로 복음을 믿게 된 오네시보로는 에베소를 떠나 로마에 와서 그를 도와 그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던 귀한 형제였습니다. 또한 에라스도와 드로비모의 근황을 잠시 소개합니다. 이들은 바울과 함께 전도사역을 하는 도중 각 교회의 사정과 질병 등으로 인하여 바울과 함께 로마에 오지 못하고 각각 고린도와 밀레도에 남겨졌습니다. 

동역자들 중에는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고 로마인도 있고 헬라인도 있고 귀족도 있고 평민도 있습니다. 바울은 편지를 통하여 여러 형제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었을 지라도 영적 네트워크가 되어있어 서로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확인하며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교제를 나눌 수 있고 또 나누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항상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 외에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또 서로 이메일을 주고 받거나 전화로 안부를 묻는 일은 주 안에서의 교제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때때로 부담이 될 때도 있으나 결국은 우리 자신에게 평안과 위로를 줍니다.  

바울은 다시 한 번 디모데에게 '겨울 전에' 서둘러 올 것을 간절히 청합니다. 왜냐하면 겨울이 오면 항해가 위험하여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가 이제는 떠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속히' 올 것을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언급되는 Eubulus, Pudens, Linus, Claudia 등의 인물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인 것 같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인사는 디모데 개인과 그 서신을 읽을 교인들을 향한 것입니다.  주께서 디모데의 심령에 함께 하시며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있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성도의 유일한 위로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뜻하는 영적인 의미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시련과 연단, 심지어 죽음까지도 가리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항상 순탄하지 만은 않습니다. 세상이 너무 재미있어서, 사업이 너무 분주하여서, 인간관계에서 실망하여서, 병이 들어서, 신체적으로 노쇠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신앙생활이 소홀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하나님과 멀어지고 믿는 자들과의 교제가 멀어집니다. 이 세상도 겨울로 치닫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말세의 징조들이 있는데 거짓 선지자, 사이비 종교의 출현, 전쟁의 소문, 기근, 지진이 있습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불법이 성행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갑니다.

우리의 삶에 겨울이 오기 전에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1) 금년이 가기 전에 할 일은?

본문은 인생과 사역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사도 바울이 자기의 삶을 돌아보면서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겨울 전에 서둘러 오라고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겨울을 제대로 준비하려면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전도서 12장에서 솔로몬은 "너는 아직 젊을 때, 곧 고난의 날이 오기 전에, 아무 낙이 없다고 말할 때가 되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전 12:1, 13) 라고 권면합니다. 

주님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때가 오기 전에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지금부터 작은 데에서부터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훈련된 병사가 싸움에서 우왕좌왕하지 않고 잘 싸웁니다. 평소부터 기도와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며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금년에 하나님 앞에 결단은 했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말씀을 통한 깊은 교제를 나누기로 했는데 제대로 이행하셨습니까? 이웃과의 관계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았거나 혹시라도 서먹서먹했던 것이 있었으면 금년이 다가기 전에 풀어야 합니다. 그것이 가족이던, 친구이던 사업상 만나는 사람이든 풀어야 합니다. 어려움에 있는 형제자매, 나와 도움을 주고받았던 형제자매에게 감사의 전화를 하거나 감사의 편지라도 띄우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2) 나의 영적 월동준비는? 

바울은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능력과 건지시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효율적으로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일만 되새기며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전에도 함께 하셨고 강건케하시고 건지셨으니 앞으로도 함께 하시고 강건케하시고 건지실 것을 확신합니다. 과거에 자신을 불러 주시고 이방인의 사도의 사명을 주신 주님,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주님, 그리고 앞으로 구원의 완성을 시키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감옥에 갇혀서도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과거의 고난만 본 것이 아니라 앞으로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고후 4:8-9)한다고 바울은 고백하였습니다. 미지근하던 우리의 신앙이 다시금 뜨거워지며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원합니다. 문제가 없을 수는 없으나 문제를 인하여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 모두 바울과 같이 역경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며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기 원합니다. 환경에 지배되지 않는 담대함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사명을 생각하라. 이제까지 허락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라. 그리고 함께 하셨던 주님과 그분의 구원을 묵상하라. 본문이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도전입니다. 어려우십니까? 외로우십니까? 답답하십니까? 억울하십니까? 밖으로 터뜨리기 전에 먼저 곁에 계신 주님의 음성을 듣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항상 성도들의 곁에 계시며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 조용히 눈을 감고 내 곁에 계신 주님, 앞으로도 나를 통하여 역사하실 주님을 묵상해보아야 합니다. 아직도 미루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아직도 마음에 섭섭한 것을 담아 두고 있습니까?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고 달려갈 길을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다 달리며 주님이 주실 의의 면류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바울과 같이 ‘겨울 전에 서두르라’는 권면을 기억하시고 흐트러졌던 신앙생활의 고삐를 다시 한 번 조이시고 하나님과는 신실한 관계를 통하여 영광을 돌리며 이웃과는 화해와 격려와 위로를 통하여 유익을 끼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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