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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의 시각을 바꾸십시오 (벧전 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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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시각을 바꾸십시오 (벧전 4:12-19)


목회 중에 종종 난감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애써서 한 자매를 전도해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그 자매의 남편은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못 마땅했지만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서 교회 출석을 허락했다. 그 자매는 교회에 잘 적응해 갔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 그 집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시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화살은 며느리에게로 돌아왔다. ‘네가 교회 나가면서부터 집안이 편안치가 않다’는 것이다. 시댁과 남편으로부터 시달림을 받은 그 자매는 결국 당분간 교회를 쉬겠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교회를 다니면 모든 것이 좋아져야 한다는 기대와 기복적 사상을 가지고 있다. 교회 다니면 더 잘되고, 더 건강해지고, 더 착해지고... 그러나 반대 현상이 나타나면 ‘교회 다니는데 왜 그 모양이냐’며 질책을 당하게 된다. 

교회 잘 다니고 그래서 복도 받고 형통하면 얼마나 좋은가? ‘저 사람 예수 잘 믿더니 저렇게 복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목사의 간절한 소망이다. 요즘 같이 교회 안에 어려움 당하는 가정들이 생겨나면 목사는 근심하게 된다. 혹 그 어려움으로 인해 시험에 들지는 않을까? 

그러나 고난은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것이 고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고난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고난에 대하여 우리의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고난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권면하고 있다. 

1.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왜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는가? 고난 당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라는 뜻인가? 그런 의미는 아니다. 고난 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고난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면 당하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사도 베드로는 불 시험의 목적이 성도들의 연단을 위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연단하시기 위해 고난이라는 용광로 속으로 들여 보내신다. 

철광석을 용광로 속에 넣으면 찌꺼기들이 다 걸러지고 순수한 철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더욱 더 성숙하게 더욱 강한 성도로 만드시기 위해 고난이라는 과정을 허락하신다. 예)권투선수, 레슬링선수들의 체중 감량, 그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2.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난 당하고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한 단계 더 나아가 즐거워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이것은 수용하기 힘든 역설이다. 그러나 사도는 즐거워해야 할 이유에 대하여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1)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무엇인가? 의로운 죽음, 곧 십자가를 가리키는 것이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이러한 고난이라면 참여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의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주의 일에 참여하면서 고난을 받게 되면 주님과 더욱 더 친밀해진다. 이것을 동일화라 한다.
예)김병만의 아프리카 체험. 전우애.

그러나 만일 불의한 일에 참여함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것이라면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2)주의 날에 받을 큰 기쁨과 상급이 있기 때문이다. 

벧전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3.고난은 축복의 통로다.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쉬운 성경,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받는다면, 그것은 도리어 복입니다. 이는 영광의 영이신 하나님의 성령이 여려분과 함께 계시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모욕을 당해 본 적이 있는가? 내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것으로 인해 무시 당하거나 무례한 일을 당해 본 적이 있는가? 직장에서, 아니면 이웃들에게 비난 조롱 당한 적이 있는가? 군대에서 종종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지난 7월 해병부대총기사건의 공범 정이병, 선임병들의 가혹행위 - 내가 신이다. 나에게 기도해라. 성경을 불 태우고 담뱃불로 지지는 행동들이 반복됐다고 한다. 

마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행2장,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해서 각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들이 듣고, ‘아침부터 이 사람들이 술 취했다’라고 조롱했다. 행26장,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총독 베스도가 바울을 향하여,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는도다’라고 비난했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복음 전하다가 모욕을 당하고 조롱당한 사건의 기록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비난하고 조롱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대항하지 않았다. 그들은 욕을 먹었고, 맞았고, 쫓겨 다녔다. 그들이 힘이 없어서 무식해서 당한 것 아니다.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때때로 모욕을 당하는 일이 있으면 맞대응하지 말라. 도리어 기쁨으로 수용해라. 주의 이름으로 욕 먹을 때 주님께서 위로해 주신다. ‘네가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고난 당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처음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불림을 받았다(행 11:26).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는 따로 따로 나뉘어 있지 않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 그래서 하나가 된 존재가 된다. 내가 고난을 받으면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고난이 되는 것이고, 내가 치욕을 당하면 그리스도께서 치욕을 당하신 것이 된다. 그러나 종종 자신의 신분을 숨기는 경우가 있다. 

막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그렇다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적극적으로 담대할 필요가 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로서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부끄러운 행동들을 확실히 끊어버려야 한다.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자신이 그리스도인 된 신분으로서 고난을 당하게 되면 당당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왜냐하면 바로 그 때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 바로 이때가 하나님께 영광돌릴 때로군요. 감사합니다!’ 고난 당할 때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도리어 그때 감사하고 영광 돌려야 한다.

당시 고난 받는 성도들을 향한 사도의 권면
1)고난 당함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단련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2)즐거워하라. 주의 재림 때 그리스도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함이다.
3)축복의 통로가 된다. 장차 상급이 있다.
4)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가 된다. 

사도의 경고

고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신실한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그러나 불경건한 자와 불신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된다. 

벧전 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
본문 17절에서,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고 심판은 고난을 가리킨다. 교회 공동체에 닥치게 된 고난을 통해서 알곡과 쭉정이를 가린다는 뜻이다. 참된 신자는 더욱 더 믿음에 견고히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짓된 신자는 믿음의 길에서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성도의 삶 속에 고난을 주셔서 그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2)마지막 심판은 긍휼 없는 엄중한 심판이다.
어느 정도로 엄중한가? 의인도 겨우 구원을 받을 정도로 엄중한 심판이라는 것이다. 적당주의로 신앙생활하는 신자들에게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말씀이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항상 깨어 있는 것과 같은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계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경건치 않은 자와 죄인들에게 긍휼 없는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귀담아 듣는 성도들은 두려움 중에도 소망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고난, 즉 심판이 결국 악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형벌이지만 자신들에게 축복과 영광이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의 결론적 권면

벧전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쉬운 성경,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받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기 영혼을 맡겨 두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지은 분이시니 우리 영혼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옳은 일에 계속 힘쓰시기 바랍니다.

1)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라.
왜 그런가? 하나님은 우리를 지은 분이시며 우리 영혼을 지켜 주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히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자기 영혼을 하나님께 맡긴 사람들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을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히 11:38)이라 했다. 믿음의 베짱이 필요하다.예)독종

2)흔들리지 말고 옳은 일에 계속 힘쓰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붙잡고 흔드신다. 왜냐? 불필요한 것들 다 떨쳐버리도록 하기 위해서 흔드신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된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된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이 흔들지 못한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욥의 고백
욥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
히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혹 믿음으로 인해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는가? 낙심하지 말라. 고난은 축복의 통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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