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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게 주신 모든 은혜 감사 (시 1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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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신 모든 은혜 감사 (시 116:12-14) 


우리 모든 사람의 공통적인 소망과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주 단순한 표현으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바람과 소망에서 끝내지 않고 그 바람과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그 소망과 바람을 이루며 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노력의 부족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더 노력하고 부지런히 살면 그 목적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며 삽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꿈은 좀처럼 이루어지질 않습니다.

노력의 부족 때문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그것이 노력의 부족이라기 보다는 지혜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살지 못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지혜의 부족 때문입니다. 정말 잘 사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를 정말 잘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은 대개 잘 모릅니다. 정말 못 사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우리를 정말 못 살게 하는지 또한 사람들은 대개 모릅니다.

야구의 홈런은 힘으로 거리만 멀리 친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방향이 맞아야만 홈런이 될 수 있습니다. 방향에서 벗어난 홈런성 타구들을 파울이라고 합니다. 지혜가 없어서 생의 바른 방향감각을 갖지 못하면 아무리 홈런성 타구를 때린다고 하여도 모두가 다 파울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죄의 삯이 사망’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죄의 뿌리가 욕심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죄를 무서운 줄 모르고 짓고 살면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유능하고, 아무리 부요하고, 아무리 세상적으로 출세를 하였다고해도 결국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로 잘 살고 싶으면 무엇보다도 죄와 씨름을 해야만 하고, 죄의 뿌리가 되는 욕심과 싸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말씀도 우리들에게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가르쳐 주는 지혜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항상 기뻐하며 행복하게 잘 살려면 늘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늘 감사할 수 있다면 항상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잊으면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감사의 반대는 불만입니다. 늘 모든 일에 불만인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항상 기쁘게 살 수 있겠습니다.

반대로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는 뜻은 모든 일에 불만과 원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불만이 없으니 늘 만족할 것이고, 원망이 없으니 늘 행복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으로 행복하게 잘 살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감사를 배워야만 합니다. 감사를 훈련해야만 합니다.

옛말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본심이고 심성이니 어떻게 행복하게 잘 살수가 있겠습니까? 은혜는 돌에 새기고 원수는 물에 새기고 살아야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왜 우리들은 감사할 줄 모르고 은혜를 물에 새기며 사는 것일까요? 그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의 끝없는 욕심 때문에 은혜를 받아도 만족할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절과 12절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고백합니다.

사도바울은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 즉 만족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 부할 때만 만족한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할 때에도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니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 이하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와 같은 능력을 갖게 된 비결이 있다고 말씀입니다.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이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세상 사람들이 욕심 부리는 것들을 배설 물로 여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욕심을 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리니 모든 것에 자족하고 만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울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길 수 있게 된 까닭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보물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사는 것과 같이, 귀한 진주를 만난 사람이 그것을 위하여 전에는 아까워 버리지 못했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사는 것과 같이 바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길만한 귀한 진주와 보물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소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믿음이 가장 소중하였습니다. 그 가장 귀하고 소중한 보물을 얻고 보니 세상의 모든 욕심이 다 배설물처럼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게 되니 어떠한 형편에도 자족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고 만족할 수 있게 되니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되니 어떠한 형편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바울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서 발견되어집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은 오늘 본문 시편 116편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의 기자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만 보면 시편 기자가 그와 같은 고백을 하는 순간이 매우 행복하고 좋은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편의 기자가 이와 같은 고백을 하는 순간은, 그 삶의 자리는 전혀 행복과 형통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1절에서 3절을 보면 우리는 이 시편의 기자가 지금 어떠한 형편과 삶의 자리에서 이 시편을 기록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으면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렀다’라고 표현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자리에 서 있는 시편의 기자가 바로 그 자리에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망의 줄이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임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그 은혜를 보답할까를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라는 말씀 속에서 찾습니다.

시편 기자에게는 구원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자시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스올의 고통 속에서도, 사망의 줄이 자신을 두르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도 그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소망을 주었습니다. 이 사망의 줄은 결국 풀릴 것이고, 이 스올의 고통은 결국 사라지게 될 것을 그는 믿었습니다. 그것을 믿게 되니 언제나 자신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감격하고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라는 본문의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동감하고 동의했습니다.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많지만 그 중에 제일 큰 은혜와 축복은 내가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사망의 원인이 되고 동기가 되는 그 죄가 저에게 있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정말 나에게 사망의 줄이고 스올의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내 속에 있는, 내가 이미 지은 죄의 문제를 풀고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그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그 죄의 값을 치루어 주셨습니다. 내 아이가 산 물건의 값을 아비인 내가 대신 치루면 물건의 주인은 내 아이에게 물건 값을 더 이상 요구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죄의 값을 아버지이신 예수님께서 대신 갚아 주셨음으로 사탄은 더 이상 나에게 죄의 값을 요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망으로 그 값을 대신 치루신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믿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까닭은 이 이상의 복음이 저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도 세상을 좋아하고, 세상의 것들에 대하여 욕심이 있는 사람이지만 저에게 죄 사함과 구원보다 더 크고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얻었기에 그 외의 다른 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 상관 없는 그런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구원을 생각하면 부해도 감사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똑같은 마음과 고백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하박국 3장 17절에서 18절의 말씀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할 수 있으니 항상 기쁩니다. 정말 이 세상에서도 하늘의 영광을 누립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맞습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행복의 크기는 감사의 크기와 동일합니다. 우리의 행복하지 못함과 불행의 원인은 환경과 형편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욕심 때문입니다. 그 욕심 때문에 은혜를 모르고,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감사를 모르고, 감사를 모르기 때문에 행복을 모르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니 이래도 불만이고 저래도 불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 여러분의 형편은 어떠십니까? 무화과 나무의 열매는 많이 달리셨습니까?. 우리에 양은 그득하고 외양간의 소는 많아지셨습니까? 그것이 많으시면 감사할 것이고 그것이 좀 부족하면 감사하지 않으실 작정이십니까? 무화과와 소와 양과 비교할 수 없는 구원의 축복은 안중에도 없으신 것입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음 주일은 무화과와 양과 소를 들고 감사하기 이전에 먼저 구원의 잔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주일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옥합을 깨트리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나와와 진정으로 감사하는 주일이 되실 수 있도록 한 주일 열심히 우리 한번 기도하십시다.

그리하여 기도의 응답으로 정말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내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여호와께 보답할꼬’ 찬송하며 우리 하나님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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