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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말씀 따라 하는 개혁 (느 10: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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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 따라 하는 개혁 (느 10:28-39)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을 뿐 아니라 유다 백성의 신앙을 재건하는 일에 착수했습니다. 제사장 겸 율법학자인 에스라는 유다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기 시작했으며(느8:2-3) 그 율법의 말씀을 들은 백성은 울며(느8:9) 그들이 이방 왕들의 종이 되고 자기들의 삶이 곤핍해진 원인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데 있음을 자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튼튼히 세우고 성실하게 지킬 것을 다짐하며 그 언약을 기록으로 남기고 느헤미야를 비롯한 모든 지도자들이 서명 날인하여 인봉했습니다(느9:38-10:27). 오늘 본문은 유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서명하고 인봉했으며 나머지 백성이 다 따르기로 동의한(본문 28절) 그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문 29절에 보면 그들은 “저주로 맹세하기를”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저주로 맹세” 했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잘못 지키면 저주를 주실 것을 하나님께 맹세했다는 말입니다. 

옛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모여 여섯 지파는 그리심 산에 서고 다른 여섯 지파는 에발 산에 서서 레위 사람들이 큰 소리로 율법의 모든 말씀을 읽어주며 “그 율법들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면 모든 백성이 “아멘!” 할 것을 명한 바 있습니다(신27:11-26). 그리고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이어서 한 차례의 뼈아픈 실패를 겪은 뒤 아이 성을 점령하고는 모세의 명령대로 백성을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서게 한 후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말씀을 모두 낭독한 사실이 있습니다(수8:30-35). 

느헤미야 때 유다 백성이 저주로 맹세한 것은 분명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저주의 역사를 뼈저리게 체험하고 난 후 깨달은 사실 즉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 행하면 복을 받고 그러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행위였고 이제는 정말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 행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는 백성이 되자는 결의였을 것입니다. 신앙의 개혁이란 새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가고 그 말씀대로 살기를 다짐하는 것임을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겠다는 자세로 유다 백성이 엄숙히 맹세한 그 언약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첫째는 30절에서 보는 대로 “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 한 것입니다. 출34:16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하시며 경계하신 바 있습니다. 또 신7:3-4에서는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경고하시기도 했습니다. 

둘째는 본문 31절 상반절에서 보듯이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품이나 온갖 곡물을 가져다가 팔려고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그들에게서 사지 않겠다.” 한 것입니다. “안식일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하신 계명을 잘 따르겠다는 맹세입니다. 

셋째는 같은 본문 31절 중간에서 보듯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겠다.” 한 것입니다. 
출23:10-11에 보면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했습니다. 또 레25:1-7에서는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했습니다. 이 율법의 말씀대로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역시 31절 끝에 있는 대로 일곱째 해마다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한 것입니다. 신15:1-2에서 “매 칠 년 끝에는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그의 이웃에게 꾸어준 모든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의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는 여호와를 위하여 면제를 선포하였음이라.” 한 대로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본문 32절에서 읽는 대로 “우리가 또 스스로 규례를 정하기를 해마다 각기 세겔의 삼분의 일을 수납하여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쓰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에스라의 지도 아래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전을 이미 재건했습니다. 성전이 재건되었으면 이제 그 안에 있어야 할 모든 것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행해져야 하는 일들이 다 행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출30:11-14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라.” 하셨습니다. 다시 그 말씀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성전세는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 자신도 내신 세금입니다(마17:24-27). 본래 반 세겔인 성전세를 느헤미야 때는 삼분의 일 세겔로 한 것은 그 당시 백성의 빈궁한 경제 상태를 고려한 결정일 것입니다. 

여섯째는 성소에서 차리는 진설병과 각종 제물을 드리는 일에 관계된 것입니다. 본문 33절을 보면 “곧 진설병과 항상 드리는 소제와 항상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한 절기에 쓸 것과 성물과 이스라엘을 위하는 속죄제와 우리 하나님의 전의 모든 일을 위하여 쓰게 하였고” 합니다. 진설병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레24:5-9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각종 제물에 관한 하나님의 명령은 출29:38-42과 민28:1-15에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조금 특이한 것입니다. 본문 34을 보면 “또 우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들이 제비 뽑아 각기 종족대로 해마다 정한 시기에 나무를 우리 하나님의 전에 바쳐 율법에 기록한 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사르게 하였고” 합니다. 나무를 바치라는 직접적인 명령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레6:12-13에서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한 것으로 보아 제단 불이 꺼지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나무의 공급을 확실히 하려는 결의가 필요하여 행한 맹세였을 것입니다. 

여덟째는 본문 35절에 있는 대로 “해마다 우리 토지 소산의 맏물과 각종 과목의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율법대로 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입니다. 출23:19에 보면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것과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유다 백성의 뜻은 땅에서 나는 식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과 짐승에까지 확대됩니다. 

본문 36절에 보면 “또 우리의 맏아들들과 가축의 처음 난 것과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전으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주고” 합니다. 율법에 기록된 대로 하겠다고 했는데 출13:1-2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한 것과 출13:11-12에서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한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홉째는 십일조에 관한 맹세입니다. 본문 37을 보면 “또 처음 익은 밀의 가루와 거제물과 각종 과목의 열매와 새 포도주와 기름을 제사장들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의 전의 여러 방에 두고 또 우리 산물의 십일조를 레위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였나니 이 레위 사람들은 우리의 모든 성읍에서 산물의 십일조를 받는 자임이며” 합니다. 이와 같이 맹세하며 유다 백성이 생각했을 민18:21-24에는 우리가 주목할 만한 언급이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릴 십일조를 다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레위 자손들은 다른 지파 자손들과는 달리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분할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다른 백성과 같이 땅을 경작하여 그 소출을 먹고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성전의 일만 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직접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수 없으며 거기 접근하다가는 죽을 것이었습니다. 백성이 직접 하다가는 죽을 그 성소의 일만을 하도록 성별된 레위인들이 대신 하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바치는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즉 성전에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필수적 의무였으며 그 일차적 목적은 성전에서의 예배가 온전히 드려지기 위하여 그 일에 성별된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는 유다 백성이 이러한 맹세의 끝에 한 말을 주목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레위인들에게 돌아가야 할 십일조를 그들에게 온전히 돌아가게 하지 않을 때 그것은 레위인들을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느헤미야를 비롯한 온 유다 백성이 맹세한 언약의 내용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율법이었습니다. 이제 그 율법으로 돌아가 그대로 지켜 행하겠다고 저주로 맹세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율법을 바로 지키지 않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 사람들과 통혼하고 그들이 섬기는 이방신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났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이방인들과 상행위를 했습니다. 일곱째 해마다 땅을 쉬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도 따르지 않았고 매 칠 년 끝에는 모든 빚을 면제해주라는 명령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성전세도 내지 않았습니다. 

물론 한 때 나라도 잃고 성전도 다 파괴된 때가 있었지만 에스라에 영도 하에 새 성전을 짓고서도 칠십 년이 지나도록 성전세를 제대로 내서 성전의 기능을 온전히 회복시키는 일에도 게을렀습니다. 성소에서 진설병도 제대로 차려지지 않았고 각종 제물을 바치지 않아서 율법대로 제사를 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제단 불을 꺼뜨리지 않고 계속 피울 나무도 제 때 제 때에 공급할 줄 몰랐습니다.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아 레위인들이 먹고 살 수가 없어 딴 일을 찾아 나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새로 짓기만 했지 진정한 의미의 성전이 되지 못한 채 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지 않은 결과는 오직 저주뿐임을 유다 백성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해야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와 함께 온 백성이 “저주로 맹세하기를”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며 준행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그 말씀대로 살기로 구체적인 다짐을 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 쌓기로 그치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 의지와 그 실천이 함께할 때 참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개혁은 지식의 개혁에만 머물지 않고 의지의 쇄신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며 살기를 끊임없이 다짐하고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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