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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롭게 도약하는 교회 (딤전 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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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도약하는 교회 (딤전 4:6-1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성장이 멈추는 병

얼마 전에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 중학생이 성장이 멈추는 병에 걸린 것을 보았습니다. 성장이 멈췄다기 보다는 점점 어린 아이의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그 부모는 어린 아이의 기억이 다시 되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침대 옆에 여러 사진을 붙여 놓고 기억을 회생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또한 루게릭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병은 두 팔과 두 다리에 힘이 빠지는 병입니다. 근육이 약화되고 근육이 굳어가는 무서운 병이지요.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힘을 잃어갑니다.

성장이 멈춰버리면 우리는 모두 긴장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도 생명체입니다. 교회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하고 좋은 영향을 미치는 교회로 자라가야 합니다. 교회가 루게릭병에 걸리면 되겠습니까? 힘이 빠지고 점점 쇠퇴하는 병에 걸리면 될까요? 우리 교회가 계속해서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좋은 영향을 미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승진이 너무 늦어 불만이 많던 어느 중학교 선생님이 어느 날 교장 선생님에게 이렇게 따졌다고 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 몇 년이나 있었는지 아세요. 자그마치 25년이에요.” 교장 선생님 대답이 “25년이 아닐세. 그건 자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자네는 1년 동안 있었네. 그걸 25번 반복한 것뿐이야.” 세월이 25년이 흘렀지만 조금도 성장이 없이 그 자리에서 1년씩 25회를 반복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이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해 한해를 반복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 4:15). 각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새롭게 부흥하고, 새롭게 도약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회가 새롭게 도약하려면

그러면, 교회가 새롭게 도약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본문 6절 말씀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라.” 교회가 새롭게 도약하려면 예수의 일꾼이 한 사람, 한 사람씩 세워질 때에 교회는 새롭게 도약합니다. 교회 마다 교회 건축을 중요한 교회 성장의 한 요소로 생각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건물을 세웠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교회가 새롭게 도약하는 것이 아니지요. 교회를 이루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세워질 때에 그 교회는 새롭게 도약하는 것입니다. 

교회성장연구소에서 「한국교회 경쟁력 보고서」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은 204개의 문항이 담겨져 있는 설문지를 2,000교회에 배부하고, 그 중에 864개 교회로부터 설문 응답을 받아서 분석한 내용입니다. “교회가 많지만 과연 어떤 교회가 이 시대에 경쟁력 있는 교회인가?”, “어떤 교회가 부흥되는 교회인가?”, “어떤 교회가 과연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교회인가?” 

이 책의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경쟁력은 교회의 크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건강하고 건실한 정도에 달려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고 키우고 훈련하는 인적 자원이 풍성한 교회가 앞으로 경쟁력 있는 교회의 베스트 모델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경쟁력 있는 교회는 인적 자원이 풍부한 교회, 즉 예수의 일꾼으로 세워진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경쟁력이 있는 교회요, 새롭게 도약하는 교회요, 영향력 있는 교회가 된다는 결론입니다.

이 연구 결과는 본문에서 전하는 말씀을 뒷받침해줍니다.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라.” 이것이 바로 경쟁력 있는 교회요, 새롭게 도약하는 교회입니다. ‘이만큼 교회의 건물이 커졌으니’ 자만하고 뒷짐 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의 경쟁력은 인적자원이 세워져야 합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점은 인적자원이 물적 자원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성전을 새롭게 건축하던지, 새롭게 리모델링한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좋은 터전이 있는 것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이제는 믿음의 일꾼들이 많이 세워져야 새롭게 도약하는 교회로 우뚝 서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으로 양육 받는 예수의 일꾼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예수의 일꾼으로 세워질 수 있을까요?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양육을 받을 때에 일꾼으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을 살찌우는 양식입니다. 먹어야 합니다. 먹어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먹어야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일꾼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으로 양육을 받지 않으면 예수의 일꾼으로 세워질 수가 없습니다.

스코틀랜드 어느 작은 마을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한 주간 동안 계속되는 집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별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를 영접하고 헌신할 사람을 계속해서 초청했지만 아무도 앞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마지막 날, 한 작은 소년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목사님은 부흥회 기간 동안 예수를 영접하고 헌신한 사람이 겨우 한 사람밖에 없다는 사실에 무척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사람, 예수를 영접하고 헌신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온 이 소년만은 달랐습니다. 그의 눈에는 뜨거운 불꽃이 일어났으며, 그 소년은 “오! 하나님, 저의 생명을 주님께 드립니다. 저에게 아프리카를 주십시오” 라고 외쳤습니다. 이 소년이 바로 ‘리빙스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예수의 일꾼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경건의 훈련으로 세워지는 예수의 일꾼

어떻게 하면 성도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시킬 수 있을까요? 좋은 예수의 일꾼으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께 기도하는 제목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임무입니다. 말씀으로 양육을 받을 때에 예수의 일꾼으로 세워집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다음의 말씀을 보십시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계속해서 경건의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예수의 일꾼으로 세워집니다. 

왜 우리에게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까? 교회에서 술·담배 하지 말라, 도박하지 말라, 음란을 버리라, 향락을 버리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경건의 훈련을 강조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경건의 그릇에 담겨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악한 영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 가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혹은 우리의 믿음은 경건의 그릇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의 믿음이 조금씩 자랍니다. 이 믿음의 탑이 잘 쌓여지기 위해서는 경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경건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하루 아침에 믿음의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삼손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서 주신 큰 힘을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힘센 일꾼이었습니다. 나귀의 새 턱뼈로 일천 명의 위협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삼손이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머리털이 깎이고, 모든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마치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이 된 것입니다.

경건의 토양 속에서 자라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고, 이 믿음은 경건의 도움을 받으며 잘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경건의 능력을 잃을 때에 믿음의 공든 탑은 무너져 내립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경건의 토양 속에서 자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추씨를 심었으면 배추씨가 잘 자랄수 있는 좋은 토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은 경건의 토양에서 자랍니다. 경건의 토양을 잃어버리면 말씀은 자랄 수 없습니다. 믿음도 자랄 수 없습니다. 

믿음의 세계에도 상류가 있고, 하류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일류가 있고, 이류가 있고, 삼류가 있습니다. 믿음생활의 삼류는 세상에 한 발, 교회에 한 발 이렇게 양다리를 걸친 사람입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이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세상에서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게 맞는 소리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하고 식사할 때면 식사 기도하는 것도 부끄러워서 하지 못합니다. ‘차라리 예수를 몰랐으면 좋았을 걸’하는 사람은 삼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생활의 이류는 그래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합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십일조도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그게 모두 자기 열심입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열심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는 열심입니다. 내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서 하는 열심인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순간 한계에 부딪히면 곧장 실족합니다. 교회를 나오느니 안나오느니 하면서 투덜댑니다. 그러면 일류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나 같은 죄인 살려주신 은혜가 고마워서,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은혜가 고마워서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삼류 믿음생활은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경건의 그릇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이류 믿음생활은 말씀을 듣고,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나”라는 존재가 너무 크게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보다 나의 자존심이 더욱 중요합니다. 예수보다 나의 얼굴이 더욱 중요합니다.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만 하면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러나 일류 믿음생활은 은혜에 대한 감격이 있습니다. 이 은혜는 경건의 그릇에 잠 담겨져 있습니다. 

유명한 성자 성 프란체스코가 제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성 프란체스코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무슨 성자야.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지. 생각해 보게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망극한 은혜를 이 세상의 저 도둑들이나 깡패나 살인강도에게 주었다면 그들은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리는 성자가 되었을 것이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았다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가 아니겠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를 바랍니다. 예수의 일꾼으로 세워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이제부터 우리도 일류 믿음의 사람으로 도약해 봅시다. 체면유지 정도로 충성하지 맙시다. 인기 유발을 위한 충성도 하지 맙시다. 은혜가 감사해서 뼈를 깎는 희생으로 충성해 봅시다. 예수의 일꾼이 많이 세워져서 새롭게 도약하는 교회, 이 시대에 경쟁력 있는 교회로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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