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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수년 내에 부흥하는 길 (합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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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내에 부흥하는 길 (합 3:1-6)

< 마귀의 팔복 >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주님의 위대한 산상설교가 나옵니다. 그 설교는 처음에 8복에 대한 정의로 시작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이 주님의 산상팔복의 반대 개념으로 더글라스 파슨즈는 마귀의 팔복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첫째, 피곤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예배에 빠지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나의 가장 충실한 일꾼이 될 것임이요, 둘째, 목사의 흠만 보고 트집만 잡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은혜의 길이 막힐 것임이요, 셋째, 교회에서 나오라고 사정해야 나오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교회의 말썽꾼이 될 것임이요, 넷째, 뒷담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다툼과 분쟁을 일으킬 것임이요,  

다섯째, 쉽게 삐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교회를 떠날 것임이요, 여섯째, 헌금에 인색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내 일을 가장 잘 돕는 자가 될 것임이요, 일곱째, 형제와 이웃을 미워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영원한 내 친구가 될 것임이요, 여덟째, 성경을 읽고 기도할 시간이 없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은 내 꾐에 넘어가 수치를 당할 것임이라.”  

요새 마귀의 팔복을 받는 사람이 점차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팔복을 추구하고 더욱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예비하십시오.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시간에 하박국 말씀을 통해 은혜를 넘치게 받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수년 내에 부흥하는 길 >   

하박국은 ‘기쁨의 선지자’란 별명이 있지만 처음에는 의문이 많은 ‘의문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1장부터 계속해서 의문을 표합니다. “하나님! 왜 악인들은 흥하고 의인들은 고통을 당합니까?” 그렇게 질문한 후 성루에 서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합 2:1).  

그 질문에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믿음으로 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합 2:2-4). 그리고 하박국 2장 5절부터 악인의 멸망에 관해 말씀하면서 마지막 2장 20절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그 말씀을 듣고 하박국은 깊은 감동에 빠졌다가 곧 기도를 터뜨립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이 구절에서 ‘시기오놋’은 음악과 관련된 어떤 부호나 악기로 추정됩니다. 그 말은 하박국이 찬송하며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때 그가 처음으로 한 기도가 무엇입니까?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이 하박국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 선교와 구제의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나가는 저희 교회를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 수년 내에 저희 중에 큰 사업가가 여러 명 일어나게 하소서! 네트영어 교육방송의 비전도 수년 내에 역사가 나타나도록 뜻 있는 사람과 거룩한 커넥션이 이뤄지게 하소서!” 이 하박국의 기도대로 수년 내에 부흥의 은혜를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은혜를 받으려면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은혜 받는 삶의 첫 단계는 바로 주일성수입니다. 그처럼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일 때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이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가끔 보면 어떤 사람은 예배 때 예배에 집중하지 않고 남만 쳐다보고 딴 생각만 합니다. 어떤 청년은 교회에 와서 어떤 자매 생각만 합니다. “오늘은 그 자매가 어디에 앉았나?” 어떤 분은 예배하면서도 자꾸만 돈 생각을 합니다. “내일이 어음을 막는 날인데...” 그러면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한 사업하는 장로님이 주일저녁 남선교회 헌신예배 사회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장로님이 계속 그 다음 날에 돈 막을 생각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사회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다 같이 찬송가 355원을 부르시겠습니다.” 그렇게 딴 생각을 하면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깊은 은혜를 받습니다.

저는 1979년부터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5년 동안 출석했습니다. 그 뒤로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장로교 통합측 교회를 다녔고 신학교는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신학교를 다녀서 그 뒤로는 순복음 교회를 거의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잘 몰라도 제가 다닐 때는 순복음 교인들에게 2가지 탁월한 장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장점은 그들의 헌금하는 자세입니다. 당시에 여의도 순복음 교회는 저녁 예배 때도 따로 헌금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헌금 얘기만 들으면 마음이 닫히고 얼굴이 경직되지만 당시 여의도 순복음 교인들은 “헌금합시다!”라고 하면 “할렐루야!” 하고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 마치 이런 고백 같았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바칠 축복의 시간이 왔구나!” 드리면 축복받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기쁘게 드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둘째 장점은 그들의 사모하는 자세입니다. 당시에 교회버스에서 내려서 예배당까지 갈 때 저는 천천히 걷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 달렸고 심지어는 할머니들도 잽싸게 내달렸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으면서 달렸습니다. 빨리 예배당으로 들어가서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극성맞습니까? 그러나 때로는 그런 극성맞은 사람이 있어야 전도도 되고 예배도 활성화됩니다. 

예배드릴 때 예배 시간 전에 나와 기도한 후에 예배를 드리면 아무래도 은혜가 임할 확률이 더 커집니다. 또한 자리도 조금 더 앞자리에 오면 조금 더 사모하는 자세가 됩니다. 그래서 “앞자리는 금 자리이고, 가운데 자리는 은 자리이고, 뒷자리는 동 자리다.”란 말도 합니다. 물론 뒷자리에서도 간절히 사모하며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그래도 앞자리로 오면 더 예배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큰 교회에 가면 대개 이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아래층에 자리가 많이 비었어도 꼭 이층으로만 갑니다. 그러면 마치 방청석에 앉은 기분이 되고 예배의 주인공이 되어 예배에 몰입되기보다는 예배의 구경꾼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은혜가 임할 확률은 그만큼 떨어집니다. 은혜는 사모할 때 주어집니다. 

은혜를 사모하면 기도 자세도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당 자리에 앉으면 먼저 손에 깍지를 탁 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도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저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셨사오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고 목사님에게도 능력을 더해주소서!”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자신부터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예배당 자리에 앉으면 먼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눈 감고 기도하는 척 하다가 별로 기도할 것이 없으니까 곧 하품하며 눈을 뜹니다. 그런데 옆 사람을 보니까 가슴을 치고 고개를 흔들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은혜를 주소서! 이 예배를 받아주소서!” 그러면 속으로 생각합니다. “왜 저렇게 극성스럽게 기도하지? 남편한테 구박을 맞았나? 젊은 여자가 참 안됐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 은혜가 임하겠습니까?   

예배 자세도 중요합니다. 예배 때는 어떤 경우에도 팔짱을 끼지 마십시오. 어른 앞에서 팔짱을 끼면 얼마나 건방지게 보입니까? 그런 사람은 출세 제로입니다. 예배 때 팔짱을 끼면 마치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쏘 홧(So what)?” 그런 자세는 아주 좋지 않은 반항적인 자세입니다. 그러면 은혜가 임하기가 힘듭니다.  

또한 사모하는 사람은 찬송 부르는 자세도 다릅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찬송하면서 필요하면 박수도 칩니다. 더 나아가 사모하는 사람은 말씀에 반응하는 자세도 다릅니다. 그래서 말씀이 은혜가 되면 “아멘!”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어금니를 꽉 물고 절대 웃지도 않고 아멘도 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렇게 각오한 사람 같습니다. “내가 자존심이 있지. 나는 죽어도 아멘은 안 해!” 그러면 은혜가 임할 수 없습니다. 은혜는 사모할 때 주어집니다.
  

2.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간절히 기도하라고 해서 오래 기도해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식사기도 같은 기도는 간단히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분은 식사기도를 할 때 천지창조부터 시작해서 한국 교회와 세계 선교를 위해서까지 간절히 10분 이상 기도합니다. 그러면 국은 식고, 침은 반찬에 튀고, 듣는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납니다. 어떤 분은 아이스크림을 놓고도 간절히 10분 이상 기도합니다. 그것은 간절함이 아니라 주책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교회를 개척했을 때 같이 동참한 한 여자 전도사님은 사람이 적어서 주일 예배 때마다 그분이 대표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시간이 얼마나 긴지 보통 10분이 넘고 어떤 때는 15분도 넘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기도가 언제 끝나나?”라는 생각만 들면서 은혜가 떨어졌습니다. 기도는 길게 해야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짧게 해도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아주십니다.  

또한 간절히 기도하라고 해서 꼭 부르짖어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조용히 기도하면서도 얼마든지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특히 묵상기도나 예배를 시작할 때 성가대의 송영에 맞추어 기도할 때는 조용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간절히 부르짖으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썬다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땅에서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늘에서는 비상벨이 울린다.” 그렇게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의 비상적인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3. 자신을 드리십시오   

구약성경을 보면 놀라운 승리의 역사나 부흥의 역사가 있기 전에 “온전한 번제를 드렸다.”는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온전한 번제는 온전한 헌신을 상징합니다. 그렇게 온전히 헌신하는 한 사람만 있어도 공동체가 살아나고, 비전이 이뤄지고,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성도는 헌신할 때 승리와 축복을 목표로 두고 헌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헌신은 성도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정말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면 우리가 아무리 큰 희생을 해도 그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결국 헌신은 하나님 앞에 내세울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할 최소한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번제를 원하십니다. 온전한 번제란 자신을 완전히 불살라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처럼 하나님께 몸과 마음과 물질과 시간을 드리며 최선의 헌신을 드릴 때 놀라운 은혜와 부흥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가끔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을 때는 금식을 합니다. 금식은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께 가까워지려는 회개의 일환으로 하는 일종의 헌신입니다. 죄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죄는 ‘고착성’이 있습니다. 찰거머리처럼 집요합니다. 죄는 ‘성장성’이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습니다. 죄는 ‘방해성’이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 관계와 사람 관계를 극도로 방해합니다. 죄는 ‘파멸성’이 있습니다. 죄는 양심과 인격, 그리고 가정과 사회를 파멸시키다가 결국 영혼을 파멸시킵니다. 

은혜를 받으려면 반드시 죄를 끊어내야 합니다. 그 일이 쉽지 않기에 때로는 금식과 회개로 죄를 끊어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살면서 인생의 성패를 좌우할 만한 큰 기도제목이 있으면 항상 자신의 죄를 살피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고라 무리처럼 반항하고 불순종한 죄를 용서하소서! 하나님! 시기하고 질투한 죄를 용서하시고 공명심으로 날뛴 죄도 용서하소서! 하나님! 음란한 마음을 가졌던 죄를 용서하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 성을 공격할 때 아간의 탐심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하고 결국 아간의 모든 가족들도 죽게 되었습니다. 그 장면을 기억하며 금전문제에서 양심에 찔리는 것이 있으면 회개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한 죄를 용서하소서!” 그처럼 자신을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드리려고 힘쓰면 하나님의 남다른 은혜가 수년 내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4. 축복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축복도 주시려고 이미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사람을 만나 꿈과 비전을 이루도록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이미 가장 좋은 배우자도 예비해 놓으셨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마련해 놓으셨고, 가장 좋은 일감과 일터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 축복을 믿고 나가야 축복의 가능성도 커집니다. 결국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찬란한 축복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행하고 보이는 것을 따라 행하지 마십시오(고후 5:7). 어떤 일을 눈으로 보기 전에 먼저 믿으십시오. 일이 더디게 이뤄지고 어떤 한계에 갇혀 일에 진전이 없을 때도 보이는 것만 의지하지 말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아무개야! 굳센 믿음을 가져라! 이미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축복의 길은 내가 다 마련해 놓았다. 이제 곧 상황은 바뀌어 축복의 때가 올 것이다.”  

그처럼 축복의 약속에 대한 예민한 영적 지각력을 가지십시오. 현실적으로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 않고 빚도 청산할 수 없을 것 같아도 속으로는 빚이 곧 청산될 것이란 영적 센스를 가지십시오. 현재 진료 기록이 좋지 않아도 그 사실만 받아들이지 말고 곧 건강 문제도 풀리게 될 것이라고 지각하십시오. 모든 상황을 자기 생각으로만 이해하고 분석하지 마십시오. 건강과 관련된 수많은 웹사이트를 통해 분석해도 그것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때로는 그런 자세가 오히려 축복을 지각하는 영적인 감각만 무디게 만듭니다.  

이제 인간적인 생각을 거부하고 내면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으십시오. 그때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납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고 믿음이 역사하는 방법입니다. 그처럼 상황이 안 좋아도 꾸준히 하나님을 붙잡고 나가면 어느 때에 갑자기 마음에 믿음의 불꽃이 점화되는 것을 느끼면서 이런 음성이 내면에서 들려올 것입니다. “아무개야! 이제 곧 회복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이제 좋은 사람을 만나서 어려운 상황도 극적으로 반전되는 놀라운 축복의 때가 올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음성에 동의하십시오. 논리적인 생각을 멈추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지각하고 받아들으십시오. 사람이 축복받지 못하는 이유는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문제와 장벽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축복에 대한 영적인 지각능력이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이 찬란한 축복을 기대하지 않고 꿈과 비전과 사명을 따라 열정적으로 살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 축복을 믿으십시오 >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찬란한 삶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씨앗을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심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잘되게 하실 것입니다.  

<세 얼간이>란 영화를 보면 “알 이스 웰(모든 것이 좋다, All is well)”이란 말로 꿈 많은 청년들이 어려움을 헤쳐 나갑니다. 그처럼 “예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All will be well in Jesus).”란 믿음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것만 잘되거나, 50%만 잘되거나, 99%만 잘되게 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고 믿음만 잃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잘 되게 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이제 힘들고 어려워도 꿈과 비전과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낙심의 재를 통해 찬란한 미래를 건축하시려고 지금도 간절히 말씀하십니다. “아무개야! 내가 네게 새로운 축복의 문을 열어줄 것이다. 나와 함께 멋진 미래를 향해 나가자! 지금 힘들어도 절대 믿음을 잃지 말라. 그러면 반드시 복된 길이 열릴 것이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믿고 나가십시오. 때로는 인간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믿음을 잃지 않으면 하나님은 더 좋은 사람을 붙여주실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끝은 항상 새로운 시작입니다.   

엘리야 선지자 때 3년 반 동안 극심한 가뭄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야가 아합 왕에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이제 올라가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비가 내릴 조짐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때 아합은 엘리야가 실성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합은 무슨 일인지 엘리야의 말대로 그냥 먹고 마시러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에 정말로 엄청난 장대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야는 큰 비의 소리를 육신적인 귀가 아닌 영적인 귀로 들은 후 담대하게 입으로 그 축복을 선포했습니다. 그런 축복의 선포를 지금 이 시간에 저도 여러분들을 위해 하길 원합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복되고 풍성하고 놀라운 축복의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와 세계 선교를 위해 놀라운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 간절히 기도했던 그 일도 이뤄질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귀를 두렵게 하는 담대한 믿음의 용사가 될 것입니다.”  

지금 큰 비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축복과 건강의 비, 용기와 지혜의 비, 승리와 적시타의 비, 그리고 재정적인 비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지금 재정과 사업의 가뭄, 건강과 인간관계의 가문, 그리고 배우자와 자녀의 가뭄으로 고민이 있어도 먼저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굳게 믿고 그 축복을 미리 지각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와 축복의 문을 열어주시고 여러분 앞으로 예약해 놓은 축복을 곧 손에 잡히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마음과 생각을 찬란한 축복에 대한 영상으로 가득 채우고 그 축복을 입으로 선포하며 사십시오. 재정적으로 어려워도 마음과 생각과 입술이 가난 주변을 맴돌게 하지 말고 늘 머리로는 축복을 생각하고 입으로는 축복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곧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 혹시 건강이 안 좋아도 마음과 생각과 입술이 병 주변만 맴돌게 하지 마시고 이렇게 선포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건강을 회복해서 독수리처럼 높이 날아오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실성한 사람처럼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저들은 건강하지도 않은데 왜 건강하다고 할까? 돈도 없으면서 왜 저런 엄청난 계획을 세울까? 왜 저렇게 큰소리를 칠까?” 그런 말이 들려도 무시하고 나가십시오. 축복의 장대비 소리는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이 어떻게 신실한 성도가 지각하는 것을 지각하겠습니까? 이제 엘리야처럼 놀라운 일이 이뤄지기 전에 그 일을 먼저 지각하는 거룩한 지각력을 가지고 수년 내에 이뤄질 축복을 꿈꾸며 믿음의 행진을 계속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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